오메가 손목시계
내무공무원 이셨던 아버님께서 위로 형 두 분, 아래로 남동생 하나, 여동생 둘, 이렇게 6남매 중 셋째인 나를 유난히 챙겨주시는걸 시시각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때는 “네가 우리 집 딸로 태어났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라시며 ,이런 땐 어머님마저 맞장구치며 거드시는 것이었다. 어쩌다 지방출장에서 복귀하실 때면 으레이 나를 맨 먼저 찾으실 뿐 아니라 나에게만은 반드시 선물을 안겨주시곤 하셔서 동생들에게 여간 미안한게 아니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대천해수욕장 직장수련회에 아버님을 따라 나섰는데 걸핏하면 나더러 노래를 부르라셔서 여러사람들 앞에 나가 ‘우리의 소원’, ‘어버이 은혜’, ‘어린이 날 노래’등으로 목청을 돋구고나면 칭찬의 박수에 분위기가 고조되었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아버님께 특별히 두둑한 점수를 딸 기회가 다가왔었다. 마침 충남 도내 중등부 학력경시대회가 있다는바 각반에서 3명씩 그러니까 1학년 5개반 15명이 예비시험을 치른결과 내가 단연코 1위로 선발되었던 것이었으니 이런 횡재가 어디 또 있었겠는가? 위로 두분 형님을 서울에 유학(서울대, 사대부고)보내신 아버지의 입장에서 자랑스러운 마음이 여간 아니신 것 같았다. 하루는 아버님께서 애지중지 하시던 오메가 손목시계를 선뜻 풀어 내게 채워주시며 수 십년간 간직해오신 보배처럼 귀한 물건이니 잘 보존하라시며 원래는 왜정시대 때 금딱지 시계였는데 공출인가 뭔가 하는 바람에 금딱지만 떼어버린 보물처럼 아끼시던 아버님의 손목시계였었다.그 시계를 매만질 때마다,“너 중학생이 되어 1학년 대표로 도내 학력경시대회에 선발되었으니 이 손목시계 선물로 주겠다.”시던 아버님의 말씀이 늘 귓가에 맴돌았었다. 처음엔 극구 사양하려 했었으나 아버님의 진정한 뜻이 담긴 귀중한 선물인지라 더욱 값지고 보람있게 차고다니며 들여다보고 있었다.어느새 고교생이 되었고 우리반에 손목시계를 차고다니던 친구가 불과 대여섯 명 정도였으니까 우쭐댈만도 했었는데 나의 친구 정 0수 군은 ‘에니카’제품이었는데 항상 나보다는 한수 아래였었다. 혹 시간이 부정확하다싶으면 의례히 내게들와서 묻곤하였었다. 고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게 되면서 ‘국산품 애용’ 이라는 생각이 퍼뜩 떠오르며 오메가 손목시계가 생도신분에 어울리지않는 것 같아 아버님께 사유를 말씀드리고 다시 반납한 일이 있었다.육사 4학년이 되던해(‘64) 시골에서 가사를 정리하고 우리집은 서울로 이사를 왔다. 하루는 아버님께서 홀로 창경원 동물원엘 구경하러 가셨는데 지갑과 시계를 소매치기 당하셨다는 것이었다. 노인네가 얼마나 당황하시고 놀라셨을까?설상가상으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시느라 안간힘을 쓰시던 아버님께 큰형수가 핀잔을 퍼부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아버님! 시골에서 올라오신 분이 그 복잡한 창경원엔 뭣하러 가셨다가 손목시계를 도난당하셨어요? 그냥 집에서 쉬시지않고...”라고 퉁명스럽게 면박을 주었다니 어디 이게 도대체 있을 수나 있단 말인가?몇일 후 외박시에 아버님을 뵌자리에서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순식간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한 분노를 느꼈다. “아버님! 얼마나 놀라셨어요? 그까짓 손목시계 다시 사드릴께요. 너무 속상해 하지마세요 아버님!”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불효막심한 며느리가 또 들어올까봐 나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고싶다고 호언장담 하였었다.나는 즉석에서 큰형께 전화를 들이댔다. “그따위 불효막심한 며느리가 이세상 천지에 어디 또 있을 수 있단 말인가?”라며 싸우듯이 대들었고, 그런 형수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역성들고 있는 큰형의 옹졸한 심사와 불효가 이해가 안되었다. 생명처럼 소중한 소유물로 수십 년간 간직해 오셨던 오메가 손목시계를 졸지에 잃어버리셨으니 그 상심인들 오죽하셨겠는가?내가 육사 졸업 후 양구지역 소대장으로 부임했다가 무장간첩과의 치열한 교전사건이 발생하였을 때와 그후 파월 맹호 소총 소대장, 소총 중대장으로 위험한 전투에 참가하는 것을 지켜보시던 아버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얘야! 너 빨리 제대하고 한 6개월만 절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면 은행원이나 제약회사에 응시할 수 없겠니?”
그당시 홀로 험난한 직업군인의 길을 걷고 있던 셋째 아들을 그냥 지켜만 보시기에 무척 안타까운 생각이 드셨던가 보았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생각할 때마다 그 오메가 손목시계에 얽힌 아버님의 진정어린 자식 사랑이 자꾸만 묻어나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