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와 범이
최 화 웅
나도 어느 틈에 고희를 맞고 말았다. 고희를 앞두고 계획한 일 중의 하나는 가족들과 함께 내가 태어난 일본 나고야로 출생지 답사여행을 떠나기로 한 일이었다. 그러나 출발 며칠 전 초등학교 동기들과 어울려 저녁을 먹으려던 참에 사위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님, 사비나가 임신을 했답니다.”하고는 “이번 여행을 어떻게 하죠?”라고 조심스럽게 의논을 해왔다. 나는 “축하하네! 산모의 건강이 무엇보다 중요할 테니 주치의의 말을 들어보고 결정하기로 하자, 별일 없으면 조심해서 가도 되지 않겠냐?”하고 예사스럽게 받아 넘겼다. 그러나 사위의 전화를 끊고 나서 왠지 뒤가 켕겼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에게 사위와의 통화내용을 전했더니 자기도 전화를 받았다는데 나의 대응과는 달랐다. 새 생명의 잉태는 우리가 추구하는 어떠한 일이나 가치보다 고귀하고 우선하는 것으로 거의 모든 것의 으뜸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렇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소통에 다소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소식을 접하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기쁨과 놀람의 충격이 동시에 덮쳐 흥분을 주체할 수 없는 얼떨결에 신중하지 못한 자신을 책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딸의 임신소식은 온통 집안의 화제가 되었다. 늦은 결혼에 결혼한 지 4년 만에 기다리던 아이를 갖게 되었으니 여간 경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임신소식은 어떤 뉴스도 제압하듯 덮어버렸다. 나는 딸의 임신소식을 듣고 감사하는 마음에 처음 한 일이 사돈과 점심을 같이 했다. 내 생일날 딸은 병원에서 초음파진단 결과 임신 6주의 판정을 받았고 출산예정일을 내년 8월 16일이라고 알려와 무엇보다 귀한 생일선물을 받게 되었다. 두 장의 초음파 태아영상을 확인한 날 저녁은 가족들이 모여 근사한 외식을 했다. 산후조리원 예약도 서둘러했단다. 이 기쁜 소식은 미국의 아들네 집에도 전해졌고 며느리가 “얼마 전 저희 어머니께서 잘 생긴 호랑이가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손을 맞잡은 꿈을 꾸셨데요.”라고 꿈 이야기를 전하며 흥을 돋우었다. 우리는 그 꿈을 태몽으로 흔쾌히 받아들이고 태아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범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난달 돌을 맞은 첫 손녀 리아에 이어 내년 8월이면 둘째 범이가 태어나 세상 부러울 것이 없게 되었다.
매일같이 주고받는 카카오톡의 동영상에서 리아가 발자국을 뗀다 싶더니 자박자박 걷기 시작했다. 곧 이어 장난감과 인형을 끌어안고 집안을 종종걸음으로 바쁘게 돌아다니기 시작하고 뛰기도 했다.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는 모습과 천진난만한 표정이 여간 귀엽지 않았다. 엄마 아빠의 말을 알아듣고 흥얼거리며 소리를 내는 것으로 봐서 곧 말을 할 것도 같다. 아직은 트레이와 통에 담아주는 밥이나 간식을 손으로 집어먹지만 간혹 포크나 숟가락을 잡기도 한다. 한 달 전부터는 엄마와 아빠가 <주먹 쥐고 손을 펴서>와 <개굴개굴개구리 노래를 한다>는 동요를 함께 불러주면 곧잘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들어대고 간간이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춰 에어로빅을 배웠나 싶다. 화상채팅 때면 낯선 분위기에 처음에는 표정이 굳어 얼음공주가 되기 일쑤였으나 요즘 들어서는 말을 걸고 어르면 손을 흔들어 반기고 신이나면 뽀뽀시늉과 배꼽인사까지 한다. 어떤 때는 자랑하려는 듯 장난감과 책을 죄다 내와서 펼쳐 보인다. 그럴 때면 나도 해맑은 손녀의 나라에 함께 들어간다. 그 순수하고 소박하며 티 없이 밝은 세상에서 함께 살고 싶은 것이다.
흔히 우리는 ‘아이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자란다.’거나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왔다.’고 말하면서 맑고 고운 동심의 세계를 동경한다. 그렇다. 세상에 나온 리아는 지난 일 년 동안 하루가 다르게 몰라 볼만큼 자라고 범이는 지금 엄마 뱃속에서 힘찬 심장박동으로 생명의 고동을 전하고 있다. 의학내시경과 초음파검사로 확인되는 심장박동이 아직은 미세하지만 검진과정을 통해 우렁차게 느껴졌다고 한다. 생명의 창조는 경이롭고 신비롭다. 한 생명이 태어나기까지 기다림과 설렘 넘어 타임머신을 타고 생명탄생의 세계로 가보고 싶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 아빠가 먼저 태어났고 또 그에 앞서 엄마 아빠의 엄마 아빠가, 또 그 전에 엄마 아빠의 엄마 아빠의 엄마 아빠가 태초에 인간의 선조로 태어났을 생명의 숨결을 더듬어본다. 범이가 엄마 뱃속에서 세상을 향해 출발한 지 265일만이면 세상의 빛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생명의 여정은 우리가 결코 놓칠 수 없는 우리 혈통의 감동드라마다. 지금 우리는 생명의 비밀과 존엄성을 간직한 아기의 탄생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손주가 태어나는 환희의 기쁨에 젖어 벌써부터 행복하다. 위대한 새 생명이 태어나는 생명의 탄생, 그 감격과 축복의 순간이 손꼽아 기다려진다. 그리고 내 사랑하는 마음의 천사, 리아와 범이가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당당한 아이로 자라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나도 이 모든 것을 위해 사랑으로 충만한 할아버지가 되리라고 다짐해본다.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4년동안 얼마나 애태우며 기다렸는지, 그래서 그 기쁨이 얼마나 크고 귀하게 다가오는지 저는 알지요.
저도 꼭같은 시절이 있었답니다. 커가면서 사춘기 때 쯤이면 그 소중함을 가끔씩 잊고 막 싸우기도 하였지요.
항상 처음의 마음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드리며 다시 한 번 기쁜소식에 축하드립니다.^^
아폴로니아님!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저도 손주 얻으심을 축하드립니다....너무 좋으시겠습니다...^^*
마음지기님!
감사합니다.
비오국장님,고희를 맞이하심에 축하드립니다. 고희 때 일본 가신다고해서 그 이후에 한번 뵐까 합니다.
일본은 다녀 오셨는지요...둘째 손주를 기다리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느낌니다. 정년퇴직한 후 머지않아
경노 우대증을 기다리던 국장님의 모습을 환기해 봅니다. 해후하는 그날까지 건강하십시오
신부님!
범이 때문에 일본 답사여행은 자연스럽게 딜레이됐습니다.
강화의 차고 맑은 겨울바람이 그립습니다.
나도 고희쯤 되면 저런 글 쓸 날 오려나? 부럽습니다, 그리움님.
참나리님!
모든 사람이 겪게되는 일이 아닐까요?
그밑바닥에는 차마 말로 다 하지못할 인생의 시련과 고통, 후회와 울분, 갈등과 증오가 흐를테구요.
삶은 자신이 느끼는만큼 갖게 되는 것 아닐까요?
최국장님 고희를 축하 드립니다. 만수무강 하시고 주님의 은총이 듬뿍 내리시길 바랍니다. 또한 손주 소식도 축하 드립니다. 기쁘고 즐거운 성탄 맞으십시요.
명금당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또한 그대에게도 주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길 빕니다.
제가 바빠서 이 귀한 글을 이제야 읽게 되었답니다.
귀한 손주 범이를 기다리시는 할아버지의 마음, 또 멀리 미국에 살고 있는 귀염둥이 손녀 리아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저의 짝쿵 스테파노도 이 다음 선생님처럼 다정다감한 할아버지가 되길 바래봅니다. ^*^
청초이님!
스테파노 형제님께서도 그러실꺼에요. 행복한 주말 보내십시오.
전 '레미제라블'을 본 감상을 쓰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