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32장,
며느리를 그렇게 모질게 대하는 아내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다.
“대체 왜 그러는 거요?
작은애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그렇게 모질게 대하는 것이요?“
”그냥 싫은 걸 어쩝니까?
우리 용재가 억울하고 아까운 걸 어쩝니까?“
심숙희는 남편의 꾸중에 마음이 상한다.
지금까지 싸움은커녕 싫은 소리 한 마디도 없이 살아온 부부다.
“잘 들으시오.
난 당신이 누구보다 속이 깊고 도량도 넓고 마음이 따뜻하고 자애로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소.
이렇게 잔인하고 독한 성품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했던 거요.
자식을 상대로 어찌 이렇게 잔인하고 독할 수가 있다는 말이오?“
”.................................“
“설령 내 아들이 당신 말대로 아깝다고 칩시다.
용재가 싫은 결혼을 했소?
그 아이가 용재에게 매달려 바지가랑이를 잡았소?
그 아이 역시 부모에게 소중하고 귀하게 자란 사람이오.
내 자식만 아깝고 내 자식만 귀하다는 당신의 그 이기적인 성품이 여러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
유노인은 크게 역정을 낸다.
심숙희는 남편의 역정에 아무런 말대꾸도 하지 못한다.
처음으로 들어보는 남편의 노기 띤 음성이다.
“잘 들으시오.
더 이상 그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면 당신 역시 이 집에서 나가야 할 것이오.
당신은 빈손으로 나가고 나 역시 빈손으로 요양원으로 가 버릴 것이니 내 말을 허술하게 듣지 말고 명심하시오.“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당신과 같이 그렇게 독하고 악한 사람과 함께 한 집에서 숨을 쉬기가 싫소.
이것이 내 마지막 말이오.“
유노인은 그 말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심숙희는 정신이 아찔해져 온다.
말을 번복을 하고 생각을 바꿀 남편이 아니다.
한 번 입 밖으로 내 놓은 말에는 그대로 실행을 하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심숙희는 깊은 한숨을 내 쉰다.
이제 아들이 절교를 해 오고 남편의 심한 역정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답답한 마음뿐이다.
당신 자신도 독하게 다루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모두 용재를 위하고 집안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심숙희는 자신의 그런 마음을 모르고 심한 역정을 내며 무서운 말을 한 남편이 서운하고 서럽다는 생각을 한다.
이젠 마음대로 아들 집에 갈 수도 없다.
마음 놓고 아들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속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홧 증이 난다.
그런 시어머님의 마음을 알고 있는 김은하는 살며시 시어머님이 혼자 계신 곳으로 차를 가지고 간다.
“어머님!
좋아하시는 대추차를 준비했어요.“
“싫다.
이 심정에 무엇이든 목에 넘어가겠니?“
”어머님!
마음을 푸십시오.
설마 그런다고 서방님께서 집을 알려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동서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될 것입니다.“
”참으로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는 아이다.
그만한 시집살이도 견디지 못하겠다던?“
“어머님!
반드시 어머님께서 시집살이를 시켜서만 그런 것이 아니지요.
생각해 보십시오.
죽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재혼을 했는데 살아서 돌아온 남편을 어쩌겠습니까?
그 심정 그 마음 어떠하겠습니까?
게다가 곁에 있던 딸마저도 엄마 곁을 떠나 아빠에게로 갔고 딸아이의 수능 날인데도 엄마로서 아무것도 해 줄 수도 아는 척을 할 수도 없으니 그 마음 어떠하리라는 것을 저도 아이를 키운 엄마로서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날따라 별일도 아닌 것에 어머님께서는 트집을 잡고 힘들여 한 식혜를 모두 쏟아버리셨으니 충격을 받았겠지요.“
“.........................”
심숙희는 며느리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어머님!
마음을 조금만 여시고 동서를 불쌍하게 생각해 주십시오.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우면 삶의 의지까지 놓아버리겠습니까?
어머님께서는 평소에 인자하시고 인정이 많으신 어른이십니다.
더구나 동서는 어머님의 자식이고요.“
”내가 그렇게 심하게 했던 것이냐?“
”네!
제 솔직한 마음도 그런 것 같았습니다.“
”그래?
내가 그랬었니?“
심숙희는 그 말을 하고서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유용재는 아내의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는 것에 안도의 숨을 내 쉰다.
집은 매매가 되고 유용재는 아내가 퇴원을 하기 전에 집을 구하려고 병실을 비우고 집을 보러 다닌다.
유용재가 병실을 비우면 김은하가 병실에 잠시 와서 보아주기도 하고 수진이가 오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은 사람을 반기는 이정아의 모습이 아니다.
수진이는 이제 이사를 앞두고 바쁜 시간들을 보낸다.
학교 입학을 하고 나서 이사를 해야 한다.
“엄마!
학교 입학식에 엄마하고 함께 가려고 했는데 어떻게 하지?“
“미안해!”
이정아가 처음으로 입을 열어 말을 한다.
“엄마!
지금 미안하다고 했어?“
”정말 미안해!
엄마가 못나서...................“
”엄마!
엄마가 못난 것이 아니야!
엄마는 아빠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야.
누구든지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잖아?
나 또한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뿐이었어!
정말 아빠가 살아서 돌아오신다고 믿은 것은 아니었어!“
수진이는 엄마의 마음을 달래주고 싶다.
“엄마!
엄마는 아저씨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잖아?
그러면 되는 것이지 뭐가 못난 거야?
엄마를 대신해서 내가 아빠를 보살펴드리고 아빠의 뒷바라지를 다 할 거니까 너무 자책하지 말고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 동생 동준이를 생각해서라도 그래야 하는 거잖아?“
“아, 동준아!”
이정아는 비로소 아들을 생각해 낸다.
그동안 아들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니, 삶에 대해서조차 아무런 희망도 갖고 싶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수진이는 엄마가 이제 조금씩이나마 삶에 대한 의지를 보인다는 생각을 한다.
아마 동준이는 엄마의 또 다를 삶의 목적일 것이다.
“수진아!”
이정아는 가만히 수진이를 부른다.
“응, 엄마!”
“.............아빠는 건강하지?”
어렵고 힘들게 처음으로 전 남편에 대한 것을 묻는다.
“네!
건강하시고 다시 회사에 가셔서 열심히 일을 하고 계십니다.“
“....................잘 됐네!”
이정아는 힘들게 물어본 것이었다.
그래도 자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이정아는 수진이의 말에 조금은 실망을 하는 표정이다.
그러나 수진은 엄마에게 아빠에 대한 미련을 심어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더 이상 아빠에 대한 말을 하지 않는다.
엄마가 아빠를 잊고 아저씨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엄마!
빨리 건강을 되찾고 대학생이 된 엄마 딸하고 쇼핑을 가야지?
엄마가 해 보고 싶어 하는 일 아니야?“
”그래, 그럴게!
엄마한테 자주 올 거지?“
”엄마!
시간이 나면 갈게!
동준이도 보고 싶으니까 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요.“
이정아는 고개를 끄덕인다.
수진은 입학을 하고 이사를 하느라 바쁘다.
모든 것이 새롭다.
집도 넓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하고는 달리 쾌적하고 넓은 집에서 아빠하고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랜다.
수진이는 학교를 다니면서 집안 살림을 할 생각을 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많은 세상이다.
그런 학생들에 비하면 자신은 편안하고 복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수진아!
이젠 너도 대학생이 되었으니 우선은 운전면허부터 받도록 하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도우미아주머니를 불러 살림을 맡기도록 하자.“
”아빠!
집안은 제가 알아서 꾸려가겠습니다.
아빠와 저만의 집에 다른 사람이 손을 대는 것이 싫습니다.“
”네가 학교를 다니면서 살림을 하면 힘들어서 안 된다.“
”아빠!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버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런 학생들에 비하면 제가 힘들 것이 없지요.
모든 것이 우리 집이고 어차피 제가 해야 할 것들입니다.
아빠의 뒷바라지도 남에게 맡기는 것이 싫고요.“
”그래도 아빠는 우리 수진이가 편안하고 즐겁게 학창생활을 즐겼으면 하는 마음인데 아빠 마음을 모르겠어?“
”알지요.
아빠 마음을 수진이가 모르면 누가 알겠어요?
아빠도 수진이 마음을 알죠?“
부녀는 서로를 마주 보며 환한 얼굴로 웃는다.
“그래, 네 마음을 알겠다.
그럼 이렇게 하자.
일주일에 두 번 정도를 도우미 아주머니를 불러서 집안 청소와 빨래를 부탁하면 어떻겠니?“
”네!
그 정도는 제가 양보를 하겠습니다.“
”하하하하...............
우리 공주님! 허락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진이는 운전학원을 다니면서 한 달 만에 면허증을 취득을 한다.
수진이는 아빠가 출근하시기 전에 아침밥을 준비한다.
늘 아침이면 밥을 드시는 아빠를 위해서 새벽에 일어나 준비하는 수진이다.
강인태는 그런 딸의 모습이 안쓰럽다.
“수진아!
아빠는 회사에 가서 사 먹으면 되니까 새벽에 일어나서 준비하지 마!“
“아빠!
수진이가 있는데 아침을 사 드신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이제 수진이는 어린아이가 아니고 다 큰 성인입니다.
아빠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저도 아침을 먹어야 하니까요.“
”우리 수진이가 고생을 하는 것을 보면 아빠마음이 많이 아파!“
“아빠!
이런 것을 고생이라고 하신다면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일들을 어떻게 견디어 가겠어요?
이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너무 즐거운 일이거든요.
아빠하고 둘만의 삶이 너무 좋고요.“
”아빠도 우리 수진이와 단 둘만의 삶이 정말 좋다.
그러나 수진이가 모든 살림을 다 하고 새벽부터 일어나 주방에 들어가는 것은 아빠가 마음이 아프다.
아빠는 우리 수진이가 아무런 걱정도 없이 하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도록 해 주고 싶단다.“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런 걱정도 없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데요.
반드시 이런 날들이 오리라고 굳게 믿고 살아왔던 세월들이었습니다.“
”우리 딸의 그런 믿음이 아빠에게도 전달이 되어서 아빠가 모든 것을 이겨내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던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우리 딸은 늘 아빠에게 많은 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아빠는 그 힘으로 무섭고 두려운 정글 속에서도 버티어 낸 것이다.
수진아!
이제 아빠는 아빠의 남은 생을 아빠 딸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아빠 딸이 행복해야 이 아빠도 행복해지는 것이지.“
부녀는 참으로 만족스러운 삶이라는 생각을 한다.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그런 존재들이다.
그렇게 이제 그들의 삶은 안정적이고 행복한 모습을 갖추어간다.
이정아는 입원 두 달 만에야 퇴원을 하고 집으로 온다.
“여보!
한 달만 있으면 이사를 가니까 그때까지 잘 견디어 냅시다.
엄마는 절대로 오지 않으실 거야.
그리고 현관의 비밀번호를 바꾸었으니까 엄마가 예전처럼 함부로 막 들어오시지도 못하실 것이고.
무서워하지 말고 나를 믿을 수 있지?“
이정아는 고개만 끄덕인다.
“내일은 내가 가서 동준이를 데리고 올게!”
“오늘 갔다 오면 안 돼요?”
“그래도 되겠소?
당신이 힘들지 않겠어?”
“아니요.
우리 동준이 너무 보고 싶어요.“
”그래!
내가 지금 다녀올게!
당신 혼자서 기다리고 있을 수 있지?“
”나도 함께 가요.
대신 난 차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렇게 합시다.“
유용재는 다시 아내를 데리고 본가로 간다.
아들을 보고 싶어 하는 아내가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 또한 그동안 떼어 놓았던 아들이 보고 싶고 궁금하다.
유용재는 아내를 차에 두고 혼자 집으로 들어간다.
“서방님!
오늘 퇴원을 하신다더니 퇴원을 하셨어요?“
“네, 퇴원을 해서 동준이를 데리러 왔습니다.”
“이 삼일 이곳에 더 두시지요?
병원에서 막 퇴원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쉬게 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집사람이 아이를 보고 싶어합니다.“
“그야 당연한 일이고 동준이를 생각한다는 것이 그만큼 상태가 좋아진 것이라서 반갑고 다행스럽습니다.
그럼 동준이를 준비시켜서 데리고 나오겠습니다.“
유용재는 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가지도 않는다.
심숙희 또한 아들이 온 것을 알고는 거실로 나와 보지도 않고 있다.
아들이 당신들의 방으로 들어와 인사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유용재는 동준이와 물건들을 받아들고 형수님께만 인사를 하고는 곧 바로 집을 나선다.
심숙희는 인사를 하지도 않고 돌아가는 아들이 서운하다.
그러나 남편의 눈치가 보여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앓고 있다.
유영감은 아들의 심정을 이해를 한다.
지금 아들은 엄마를 보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유영감이다.
그런 남편과 아들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심숙희는 그저 혼자서 가슴앓이를 하는 것이다.
유영감은 그런 아내를 모른 척 해 버린다.
모든 것이 다 서운한 심숙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