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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영락경 제13권
38. 정거천품[3]
[한 가지 법]
천자여, 마땅히 알아라. 내가 옛적에 도를 구하여 무수한 겁으로부터 본말(本末)을 분별하였지만, 아직 일법의 정의[一法定意]를 능히 궁구하여 다하지 못하였다.
어떤 것이 일법(一法)인가?
이른바 무념(無念)이다.
보살이 무념의 정의(定意)를 얻으면, 온갖 법이 모두 형상이 없다고 관하느니라.
이와 같이 천자야, 내가 이제 부처를 이룸은 이 일행(一行)을 말미암아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루게 되었느니라.”
[보살과 부처의 관계]
그때에 정거천자가 앞에 나아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제 들었듯이 보살이 행한 바는 온갖 법이 한량없어서 다하기 어렵고, 중생은 서로 근기가 같지 않사온데,
어떻게 위없는 바르고 참된 도를 이룸을 얻고자 하나이까?
또 부처님께서 부처님이 행하신 바와 같아서 다름이 없다고 말씀하심을 듣고서 이제 여래께 여쭈오니,
어떤 것이 부처님이 행하신 바와 같아서 다름이 없음이나이까?
오직 원하옵건대, 세존께서는 낱낱이 분별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나서 천자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보살이 행한 그 법은 각각 다르고, 지향하는 뜻이 나아간 행적도 같지 않나이다.
어째서 세존이시여, 부처님이 행한 바와 같아서 보살이 다르지 않으면,
무슨 까닭에 부처라 이름하지 않으며,
무슨 까닭으로 10력(力)을 갖추지 않았는데도 마군의 궁전을 항복시키며,
무슨 까닭에 이름하여 일체지(一切智)라 하지 않으며,
무슨 까닭에 일체 모든 법을 깨달아 마쳤다고 이름하지 않으며,
무슨 까닭에 두루 보살도를 관해서 행한다고 이름하지 않으며,
무슨 까닭에 부처님 도량에 앉아서 연기(緣起)를 널리 선포하지 않으며,
무슨 까닭에 최정각(最正覺)이라고 이름하지 않으며,
무슨 까닭에 3세의 바른 법과 여러 부처님의 행한 바를 알지 못하며,
무슨 까닭에 수명이 한 겁에 머물면서도 지혜를 선포하지 않으며,
무슨 까닭에 온갖 법을 의지하면서도 정수(正受)의 정의(定意)를 닦지 않으며,
무슨 까닭에 법계를 분별하고 한량없는 지혜(無量慧)에 나아가서 보살을 가르쳐 권속으로 삼지 않나이까?”
그때에 부처님께서 정거천자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족성자야. 너의 물음대로 이미 온갖 양(量)을 지나쳤다. 이제 마땅히 너에게 말하리니, 살펴 듣고 살펴 들어서 잘 생각하여라.
천자가 이제 물었듯이,
‘보살의 행한 바가 부처님과 다름이 없다’는 것에 답하면,
온갖 선남자나 선여인이 온갖 법은 형상이 없어서 볼 수 없다고 깨닫고 나서,
보살의 큰 서원을 일체의 과거ㆍ미래ㆍ현재의 형상 있는 무리에게 널리 미쳐서 전전(展轉)하여 서로 이루지만, 아직 지혜 청정의 공관[智慧淸淨空觀]을 얻지 못했으니,
가령 지혜를 응당 얻은 이라면,
그 때문에 그 이름을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이라 한다.
보살의 지혜에 의지하여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 하며, 스스로 얻어서 다시 다른 이에게 주는 것을
소위 보살도(菩薩道)라 이르고,
능히 3독(毒)을 끊고 10악(惡)을 일으키지 않아서 여래의 경계를 다하는 것을
소위 10력(力)이라 이름하고,
이미 범부를 초월하여 보살의 행적을 세워서 마음이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에서 옮기거나 움직이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보살이라고 이른다.
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법계를 분별하여 함께 서로 받아들여 들어간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일체지(一切智)라고 이른다.
마치 온갖 법은 본래 모양이 없지만 중생 때문에 각각 이름이 있는 것과 같다.
나아갈 때는 나아갈 줄 알고 버릴 때는 버릴 줄 알아서 선의 근본[善本]을 여의지 않고 보살의 도를 닦으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라 한다.
만일 보살이 하나도 없고 둘도 없음을 분별하여 자연히 온갖 바라밀을 출생하며, 또한 스스로 깨닫고 나서 다시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그 법상(法相)과 같게 하면,
이를 이름하여 부처라 하느니라.
만일 저 보살이 둘 혹은 셋의 온갖 법이 생겨나는 바를 보지 않고서 잘 살펴 잊지 않고 사유해서 통달하고 나서,
법은 무엇으로부터 일어나고 법은 무엇으로부터 멸하며,
법륜을 굴리는 이는 누구이고 법을 들음은 누구인가 하면서 능히 일체 모든 법을 이해하면,
이와 같은 이를 이름하여 보살이라고 하느니라.
만약 보살이 그 혜안(慧眼)으로 삼천대천세계에 애욕의 마음[愛慾心]이 있음과 애욕의 마음이 없음, 어리석은 마음[愚癡心]이 있음과 어리석은 마음이 없음, 화내는 마음[嗔心]이 있음과 화내는 마음이 없음을 두루 관찰하면,
다시 능히 사유하여 근본을 두루 끊기 때문에 이름하여 지혜의 눈[慧眼]이라 하느니라.
다시 다음에 혜안(慧眼)이 있는 보살이 온갖 부처님 경계를 두루 돌아다니고 왔다 갔다 노닐면서 중생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낱낱이 알아서 제도함과 제도하지 않음에 응해서 문득 능히 교화에 들어가 품류에 따라 제도한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라 하느니라.
만일 보살이 여러 가지 광명으로 널리 비추는 바로 온갖 경계에 두루하며,
또한 한량없는 지혜로써 모든 부처님 세존의 깊고 그윽한 법을 기억한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라 하느니라.
만일 보살이 지혜의 광명[智慧光]으로 능히 허공계를 비추어 밝히고,
여래의 신령한 지혜가 나타나 앞에 있고, 죄의 문은 막히고 열반의 길은 열려있으며,
다시 18본지(本持:界)에 물들지 않아서 얽힘도 없고 집착도 없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라 하느니라.
만일 보살이 부처님의 위의(威儀)로써 여래가 독보(獨步)하여 짝이 없음을 스스로 닦아 익혀 분별하고,
명색(名色)ㆍ6입(入)ㆍ갱락(更樂)ㆍ수(受)ㆍ유(有)ㆍ나고 죽음[生死]ㆍ과거 3세의 중생의 본말 하나하나를 다 안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동등한 짝이 없다[無等侶]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이 여래를 계승하여 불과(佛果)를 내는 종자[佛種]를 끊지 않고 불사(佛事)를 베풀어 행하고,
생겨남에 생겨남을 알지 못하고 멸함에 멸함을 알지 못하며,
본래 없고 비고 고요하여서 네 가지 평등한 마음[四等心]을 갖추고,
또한 다시 본래 없다가 지금 있는 것, 본래 있다가 지금 없는 것을 분별하고,
모조리 공함을 알아서 약간의 생각도 내지 않는다면,
이런 까닭에 이름하여 부처라 이르느니라.
만일 보살이 신통지혜를 얻어서 중생의 겁(劫)이 가까이 있음과 멀리 있음을 관하고서 겁이 멀다 해서 슬퍼하지 않고 겁이 가깝다 해서 기뻐하지 않고,
이루는 겁[成劫]이든 무너지는 겁[散劫:壞劫]이든 또한 한결같아서 뜻을 거두고 마음을 지녀 어지럽지 않음이니,
이런 까닭에 이름을 보살이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정거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보살도(菩薩道)를 행하려면,
다시 마땅히 일체 모든 법을 사유해서 처음 뜻을 발한 것으로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나[吾我], 나와 남[我人], 목숨[壽命]을 헤아리지 않고 그 행이 스스로 그러해서 온갖 번뇌를 끊어야 하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의 도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다시 어떤 보살이 도를 발하여 구하는 자라서 온갖 중생을 위하여 고행을 짊어지고,
또한 도를 얻음이 있는 자를 보지 않고,
또한 다시 아승기 한량없는 중생 중에 수증(受證)한 자든 수증하지 못한 자든 능히 제도하고,
그 가운데서 수기를 받아 물들어 집착한 바 없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도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세 가지 공]
다시 다음에 천자야,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세 가지 공[三空]의 한량없는 깊은 법을 분별하여 여실히 알아야 하는데,
어떤 것이 세 가지 공인가?
첫째는 거친 생각도 있고 미세한 생각도 있음[有覺有觀]이요,
둘째는 거친 생각은 없고 미세한 생각만 있음[無覺有觀]이요,
셋째는 거친 생각도 없고 미세한 생각도 없음[無覺無觀]이니,
이것을 세 가지 공으로서 보살이 행하는 바라고 이르느니라.”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세 가지 공이 있으니,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다함의 공[盡空]이요,
둘째는 다함이 없는 공[無盡空]이요,
셋째는 다함도 아니고 다함없음도 아닌 공[非盡非無盡空]이니,
이것을 세 가지 공으로서 보살이 행한 바라고 이르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세 가지 공이 있으니,
첫째는 생겨남의 공[生空]이요,
둘째는 생겨남이 없는 공[無生空]이요,
셋째는 생겨남도 아니고 생겨남 없음도 아닌 공[非生非無生空]이니,
이것을 세 가지 공으로서 보살이 행하는 바라고 이르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세 가지 공이 있으니, 어떤 것이 세 가지인가?
첫째는 머무는 공[住空]이요,
둘째는 머묾이 없는 공[非住空]이요,
셋째는 머묾도 어니고 머묾 없음도 아닌 공[非住非無住空]이니라.”
그때에 정거천자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온갖 법에서 온갖 중생은 모두 나고 멸하고 집착하고 끊음이 있사온데, 이 세 가지 공이 있나이까, 없나이까?”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내 이제 너에게 말하리니, 잘 생각하고 생각하여라.
어떤 것이 머무는 공[住空]인가?
이른바 머무는 공은 함이 없어서 고요함[無爲寂靜]이 그것이니라. 천자야 마땅히 알아라.
어떤 것이 머묾이 없는 공[無住空]인가?
너의 몸과 내가 그것이니라.
어떤 것이 머묾도 아니요 머묾 없음도 아닌 공[非住非無住空]인가?
온갖 형상 있는 3세의 모든 법이 그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이 세 가지 공을 알아 문득 능히 일체 모든 법을 알며, 5음의 몸[五盛陰身]도 또한 다시 마찬가지이면, 이것을 보살의 도라고 이르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온갖 법은 본래 합함도 없고 흩어짐도 없고, 또한 깨끗함을 보지도 않고 깨끗하지 않음도 보지 않는다.
또한 스스로 ‘만일 내가 부처를 이루면 마땅히 어떤 곳의 나라와 고을과 부모와 종친에, 어떤 성씨와 이름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해 말하지 않으며,
또한 ‘어떤 겁(劫) 가운데 태어나서 목숨이 길고 짧다’고 다시 생각지 않으며,
또 스스로 ‘몸은 황금빛으로 꽃나무 아래에 앉아서 마땅히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를 이루리라’고 스스로 생각하여 말하지도 않으니,
이것을 ‘보살도를 이미 능히 갖추어서 불퇴전(不退轉)을 얻어 남이 없는 마음[無生心]을 행하고, 본래 한 모습[一相]도 없거니 하물며 두 모습[二相]이 있으랴’라고 이르느니라.
이때에 보살이 온갖 법이 모조리 공적(空寂)으로 돌아감을 분별하여서 항상 스스로 수호하여 마군에게 틈을 얻게 하지 않으며,
나아가되 나아가는 바 없고 구하되 구하는 바 없이,
이처럼 법계의 한량없는 공의 지혜(智慧)에 이미 들어가서 능히 스스로 온갖 모습의 법을 장엄하고 꾸미느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마치 눈과 빛깔이 안팎으로 주인이 없는 것과 같으니, 세 가지 일이 함께 합하여야 안식(眼識)을 이루느니라.
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안팎이 성취해야 비로소 온갖 식을 이루느니라.”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에게 비유를 끌어 대리니, 지혜 있는 이는 비유를 통해 스스로 아느니라.
가령 이라발(伊羅鉢:이라파드라)용왕은 금복산(金福山) 기슭 중간 지점에 사는데,
7보(寶)로 장엄된 전당(殿堂)과 탑 그리고 7보로 된 나무 등 사다리[梯]ㆍ층계[階]ㆍ거리가 모두 7보로 되어 있고, 이것에는 무늬가 새겨져 있고 온갖 보배로 장식되어졌다.
당시 저 이라발용왕은 몸이 눈처럼 희어서 하얀색 구슬과 같았고,
금으로 된 양산[金蓋]이 뒤를 따랐으며, 몸은 향기롭고 영락은 다 7보(寶)로 만들었고,
다시 7보로 그릇을 만들었고, 순수한 자마금(紫磨金)으로 꽃다발 장식[華鬘]을 만들었고,
다시 7보로 종과 북 등의 악기(樂器)를 만들었다.
또 신체의 일곱 곳[七處]이 가지런히 평평하고, 치아도 고르며, 얼굴모습이 단정하여, 보아도 싫증나지 않고, 청정하고 향기로워서 좌우로 돌더라도 저촉하거나 걸리는 바가 없었으니, 이 온갖 덕은 헤아릴 수가 없었다.
석제환인(釋提桓因)은 삼십삼천을 거느린 천왕 중의 존자인데,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가 있으면 손가락을 튀기는 동안에 이루었다.
그는 금복산 기슭의 이라발용왕으로 하여금 팔을 굽혔다 펴는 사이에 삼십삼천에 이르게 하고자 하였는데, 좌우의 시종(侍從)이 천왕에게 모시고 가는 데 막히거나 걸림이 없었다.
그때에 천왕 석제환인이 온갖 하늘에게 그의 공덕을 증험하여 밝히기 위해 즉시 7보(寶)로 용의 몸을 장엄시켰다.
그리고 천제석은 이 신룡(神龍)을 타고 동쪽 서쪽으로 노닐었는데, 바로 그때 이라발용왕은 다시 신통의 힘으로 갖가지 공양을 만들어 내어서 받치고 저 천제석을 공손히 따랐다.
용은 스스로 형상을 변화하여 서른두 개의 머리를 만들었는데,
낱낱 머리의 입에는 일곱 개의 어금니가 있고,
낱낱 어금니에는 일곱 개의 욕지(浴池)가 있고,
낱낱의 욕지에는 7백의 연꽃[蓮華]이 있고,
낱낱의 꽃에는 7백 명의 옥녀(玉女)가 있고,
낱낱의 옥녀는 다시 7백 명의 하인[使人]을 거느리고 있어서 풍악을 울리며 서로 즐기고 있었다.
만일 다시 천왕 석제환인이 뜻이 게을러져 쉬고자 하면 즉시 7보로 장엄된 궁전으로 나아갔다.
나중에 이름이 향결(香潔)이라 하는 한 욕지에 이르면, 몸소 욕지에 들어가 이라발용왕을 타고 자유자재로 유희하였다.
그때에 천왕 석제환인은 한 훌륭한 욕지에 들어가 이 용을 타고나서는 온갖 섞여 있는 보배로 그의 몸을 장엄하고 풍악을 울리며 5욕(欲)으로 스스로 노닐면서 즐기니 그 즐거움은 말할 수 없었다.
그때에 이라발용왕은 본래의 형상을 버리고 용의 몸을 짓지 않고서는,
자기의 신력(神力)으로 삼십삼천의 모양으로 변화하여 다시 한 욕지에 들어가서 저 여러 하늘과 온갖 옥녀를 거느리며 함께 서로 즐겼는데, 그것이 또한 천제석과 다름이 없었다.
좌우에서 이 변화를 관하여 보니, 하늘의 몸과 용의 몸이 각각 다름이 없고, 몸과 하늘 몸이 더불어 같고, 색(色)과 하늘의 색이 더불어 같아서 함께 한 욕지에 있으며 다름이 없어서, 제석의 몸과 용의 몸이 하나이지 둘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모두 숙세에 쌓은 공덕을 말미암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 둘은 본래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를 구하였는데, 오늘날 부처를 이루는 것도 또한 오래지 않으리라.
행은 마음으로부터 얻고, 마음이 깨끗하면 도가 이루어지리니,
마치 저 하늘 궁전[天宮]이 본래 온 바를 모르고, 가도 이르는 곳이 없듯이,
일체의 모든 행은 모두 공하고 모두 고요하니라.
천자여 마땅히 알라. 너의 지금 이 몸과 저 하늘 궁전의 일월(日月) 천자는 다 마멸(磨滅)로 돌아가서 오래 보전치 못하느니라.
이런 까닭에 천자야, 마땅히 법성(法性)의 이루어지고 무너짐의 나아가는 바와 일어나고 멸함이 항상 나뉨을 알아야 하느니라.
오직 열반만이 가장 편안하고 가장 묘하여서 칼ㆍ검ㆍ주문ㆍ요술이 능히 꺾거나 헐거나 부수거나 무너지게 하지 못하느니라.”
그때에 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도 또한 마찬가지라서 걸림 없는 정의(定意)를 얻고 큰 서원이 견고하며,
보살 삼매의 7보(寶)로 스스로를 영락하고,
7각의(覺意)의 꽃으로 그 몸을 장엄하고,
걸림 없음에 훌륭히 머물러서 정의(定意)가 어지럽지 않느니라.
몸에서 광명을 놓아 비추지 않음이 없고,
법의 소리를 내는 북[法鳴鼓]을 쳐서 소리가 시방에 사무치고,
법의 높은 깃대를 세워서 위의(威儀)를 나타내 드날리고,
몸 구쇄골(鉤鎖骨)의 힘이 천인(天人)을 능가하고,
일체의 온갖 바라밀을 더 늘리며,
자연의 법률에서 모두 다 성취하고,
살결은 보드랍고 유연해서 티끌의 때[塵垢]를 받지 않고,
지혜의 법륜을 연설하여 법왕 가운에 훌륭하며,
법장(法藏)에 깊이 들어가서 여러 보살로 권속을 삼고,
여덟 가지 해탈의 욕지(浴池)로써 마음의 때를 씻고,
온갖 사람의 큰 서원의 근본을 끊지 않느니라.
보리수[道樹] 밑에 앉아서 온갖 업을 버리고,
나라의 영화를 아끼지 않고 은혜로운 보시[惠施]를 하고,
그리하여 불도를 이루어서 소리내길
‘오늘 바로 이때, 내가 성불하지 못하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
깨칠 바를 깨쳐야만 자리에서 일어나리라’라고 하니,
오직 대지의 나무 신(神)만이 나의 마음을 알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이 말씀을 설하실 때에 시방의 한량없는 항하 모래의 찰토에 있는 80억해(億姟)의 신통 보살이 모두 함께 와서 이르렀고, 하늘과 땅이 크게 진동하였다.
그리고 시방의 여러 부처님이 각자의 방소(方所)에서 그 공덕을 칭찬하시면서 사부대중에서 말씀하셨다.
“오늘 보살 석가모니란 분이 사바의 찰토에서 마땅히 위없는 바르고 참다운 도를 이룰 것이다. 너희들도 능히 저 나라에 가는 걸 감당할 수 있다면 위의를 거두어 갖고 가서 뵈어라.”
이때에 시방의 온갖 신통 보살들은 부처님의 높으신 뜻[聖旨]을 받들어서 모두 공경하는 마음을 일으켜 부처님을 세 번 돌았으며, 그리고 각각 향과 꽃을 가지고 사바세계[忍世界]에 나아가서 공양을 일으켜서 보리수를 둘러쌌다.
선을 칭송함은 한량없고 참는 마음[忍心]은 대지와 같으며, (두려움에) 털을 세우지 않고 뜻을 앞에다 붙들어 매고서 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자비의 마음이 마침내 치성하여 고난과 액운을 당한 이를 불쌍하게 여겼다.
“내가 이제 성불코자 하는 까닭은 일체를 불쌍하게 여기기 때문이니라.”
이 말씀을 설하실 때에 하늘과 땅이 여섯 번 거듭 진동하였다.
그때에 세존께서는 곧장 앞을 보시면서 7일 동안 움직이지 않으셨다.
이에 여러 하늘ㆍ용ㆍ귀신 등 8부의 무리는 모두 와서 보살을 에워싸고 옹호하며 말하길
“성불하여 구경(究竟)을 얻기까지 저희들도 또한 보살의 행하신 바를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하였다.
[여섯 가지 성스러운 법]
(부처님께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천자야, 보살의 신족(神足)은 여섯 가지 성스러운 법[六聖法]을 행하여 성불로 나아가 비로소 도의 가르침에 응하였다.
나는 이전에 성불했을 때 이 여섯 가지 행을 말미암아 큰 자비를 행하였으니,
어떤 것이 여섯 가지 행인가?
첫째는 사랑하는 마음과 어진 마음으로 제도 못한 이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고,
둘째는 보시하여 일체를 두루 만족케 하는 것이고,
셋째는 성인의 지혜를 널리 연설하여 나아가고 물러남이 없게 하는 것이고,
넷째는 세 가지 공혜[三空慧]를 행하여 국토를 깨끗이 거두는 것이고,
다섯째는 국토를 깨끗이 거두어서 나아가고 물러서는 마음이 없는 것이고,
여섯째는 부처님의 인신(印信)을 받아 중생을 봉인(封印)하는 것이니,
이것을 소위 여섯 가지 일로 여래ㆍ지진ㆍ등정각을 이룬다고 하느니라.”
[통혜(通慧)에 응하는 여섯 가지 일]
부처님께서 다시 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보살마하살이 다시 여섯 가지 일로 중생을 교화하겠다고 생각해서 게으름을 품지 않고 온갖 중생의 소원을 충족시켜 주니,
첫째는 정진하여 여러 가지 번뇌를 끊음이요,
둘째는 고행하여 도의 마음을 버리지 않음이요,
셋째는 스스로 생각하여 몸ㆍ입ㆍ뜻을 거두어 잡음이요, 넷
째는 스승을 따라 정법을 구하여 받음이요,
다섯째는 덕을 닦음이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며,
여섯째는 정(定)에 들어가 근원을 관찰함이니,
이것을 소위 보살마하살이 여섯 가지 일을 갖추면 문득 통혜(通慧)에 응한다고 이르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