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이자 가장, 아버지
까진 앞머리, 쌍꺼풀을 소유한 부리부리한 눈매, 오똑 선 코, 잔소리가 터져나오는 입, 조금 튀어나온 배.. 이것은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다. 때론 엄하시고, 때론 유머러스 하시며 가정에 화목을 불러오시는 아버지이다.
아버지께서는 1966년 5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셨다. 외증조할머니에게서 태어난 첫 외손자였다. 그래서 굉장히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라셨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이야기로 아버지께서 어렸을 적 미역국을 드시는데 미역이 먹기 싫어 미역만 먼저 먹었는데 외증조할머니께서는 그게 맛있어서 많이 먹는 걸로 보이셨는지, 미역을 더 주시며 많이 먹으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 결과 아버지께서는 미역국을 여전히 싫어하신다.
4남1녀의 장남으로써 모든 면에서 잘해야 동생들(삼촌,고모)이 잘 본받는다는 부담감에 말 못할 정신적 스트레스도 많이 받으셨다고 한다. 고창에 있는 공음중, 대성고등학교를 졸업하셨으며, 특별한 사고 뭉치도 공부도 잘하지도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하신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펼쳐보니 전교1등 성적표가 나왔다. 고모께서 아버지와 같은 중학교를 나오셨는데 첫 중간고사때 시험지를 백지로 내셨다고 한다. 그리하여 담당선생님께 불려갔는데 담당선생님께서 학교 상위권이었던 저희 아버지를 기억하시고는 동생(고모)이 이런 데에도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하셔 조용히 넘어가 주셨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대학교를 다니셨는데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집안형편이 펴질 않아, 주말마다 내려와 할머니, 할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하셨던 것이다. 또 군시절, 큰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고 하신다. 그 이유인 즉슨, 막내 삼촌께서 어렸을 적부터 몸이 좋지 않으셨다. 그러나 형편이 형편인지라, 큰병원으로는 다닐 엄두를 못내자 아버지께서 무슨 배짱이었는지 고위관계자들 모르게 막내 삼촌을 진찰받게 하신것이다. 정말 장남으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 아버지께서 많은 노력을 하셨다는게 느껴졌다. 나도 장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요즘 아버지께서는 책을 읽으시는 데 흥미가 들리셨는지 1년 새에 아버지께서 혼자 읽으신 책만 100권 가량 된다. 또 책을 읽으시고 좋은 말들을 종이에 인쇄해주시거나 저와 제 동생에게 그 말들을 해주신다.
아버지께서는 한가지만을 바라신다. 나와 내 동생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그 외에 바라시는 것 없다고 한다.
나는 우리 아버지가 참으로 대단하고 자랑스럽다. 늘 나에게 이것 밖에 못해줘 미안하다 하시지만 나는 아버지께서 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힘이 된다. 그런 아버지가 나는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