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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연화도
1박2일 통영 연화도 수국 여행… 부속섬 우도 몽돌해변 캠핑장에서 야영하고 연화도 트레킹
해질녘 용머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노을 풍경. 멀리 욕지도가 보인다.
‘바다에 핀 연꽃’이란 뜻의 연화도는 통영시 욕지면의 한려수도 청정해역에 위치한 섬이다. 북쪽으로 우도가 있는데 보도교로 연결된 부속 섬이다. 연화도의 북쪽 포구에는 연화마을, 동쪽 포구에는 동두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서 출발한 배는 바다를 가르며 1시간가량 이동했다. 거대한 보도교 아래를 지나 연화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수국은 연화도에 피어 있지만, 연화도는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하기 때문에 야영이 금지되어 있다. 연화도에서 가까운 캠핑장이 있는 우도선착장에서 하선했다.
우도와 연화도 사이의 작은 섬 반하도를 잇는 보도교를 건너고 있다.
커다란 배낭을 멘 백패커 몇몇이 보였다. 선착장에서 15분 거리의 한정된 캠핑장에서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면 경쟁을 해야 했다. 배가 선착장에 닿자마자 백패커들의 걸음이 빨라졌다. 선두 그룹은 눈치를 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고요한 경주를 벌였다.
마을 사이사이로 이어진 비탈길을 올랐다. 강렬한 태양 아래 뜨겁게 달궈진 시멘트 도로 위를 걷기는 쉽지 않았다. 경주마가 달리듯 앞만 보고 열심히 걸었다. 쉴 틈도 주지 않는 된비알은 허벅지가 터지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쏟아지는 땀을 훔치며 오르막 끝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긴 호흡을 내뱉었다. 뒤돌아보니 마을 벽마다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비탈길 옆으로는 거대한 동백나무가 늘어서 있었다. 아름다운 섬의 이 멋진 길 위에서 앞만 보며 경주하고 있다니. 순간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몽돌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캠핑장의 경치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텐트를 쳤다. 뒤늦게 도착하는 백패커들이 자리가 없어 한참동안 서성이는 모습을 보니, 예쁜 마을을 외면한 채 이기적인 걸음으로 내달렸던 순간들이 면죄부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
타프를 치고 그늘에 앉아 고요하게 일렁이는 푸른 바다를 보았다. 텐트가 빼곡한 캠핑장은 바람이 파고들 틈이 없어 무더웠다. 사람들은 하나둘 바다로 들어갔다. 오로지 수국 생각만 하고 온 우리를 달래 주는 건 시원한 맥주뿐이었다.
우도 마을 곳곳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 동화나라에 들어온 듯 걷는 것이 즐겁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독점한 채 신나게 내리쬐는 태양열이 진정되기만을 기다렸다. 오후 3시쯤 작은 배낭에 물을 넣고 연화도로 출발했다. 더위가 차단된 동백나무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동백꽃이 만발했다면 수국 못지않게 많은 이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했을 것이다.
선선한 오솔길을 걸었다. 완만한 둘레길을 30분 남짓 걷자 용강전망대가 나왔다. 동쪽으로 길게 이어진 연화도가 보였다. 푸른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절벽을 따라 우도의 끝에 다다랐다. 우도와 연화도를 잇는 해상보도교가 있었다. 섬과 섬을 잇는 보도교 중 309m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고 했다. 연화도로 들어오는 여객선이 그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우도가 조용한 바닷가 마을이라면 연화도는 관광객이 많아 활기가 넘쳤다. 여객선터미널에서 벽화가 그려진 거리를 따라 걸으면 그 끝에 연화사 입구가 나타났다. 탐스럽게 핀 아름드리 수국 한 그루가 절을 찾는 이들을 반겼다. 더위에 지친 우리는 첫 수국에 화색이 돌았다. 사찰로 이어진 길을 따라 더욱 풍성한 수국이 이어졌다. 서쪽으로 살짝 기운 태양이 사찰을 황금빛으로 물들여 더욱 신비로워 보였다.
수국이 활짝 핀 연화사.
연화도사가 연꽃으로 변한 전설 깃들어
500여 년 전 연산군의 억불정책을 피해 온 연화도사가 제자 3명과 함께 연화봉 암자에서 전래석을 모셔놓고 도를 닦으면서 살았다고 한다. 연화도사가 타계하자 제자들과 섬 주민들이 도사의 유언에 따라 시신을 수장했고, 도사의 몸이 한 송이 연꽃으로 변해 승화되었다고 하여 연화사라 이름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오늘날의 연화사는 쌍계사 조실인 고산 스님이 19세기에 창건한 관음도량이다. 오래된 사찰은 아니지만 돌담과 8각 9층 진신사리 석탑 등이 어우러져 무척 운치 있었다.
스님의 염불소리를 뒤로하고, 다시 수국 길에 올랐다. 길 양쪽으로 끝없이 이어진 수국은 해지기 전에 돌아가야 할 우리의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수국은 그냥 봐도 예쁘지만, 자세히 보면 더욱 예쁘다. 두 주먹만 한 눈 뭉치를 마구잡이로 박아놓은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작 꽃잎은 아주 작고, 꽃받침들이 한껏 치장을 한 채 꽃잎 행세하며 옹기종기 모여 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더위에도 꿋꿋하게 피어 있는 수국이 기특했다. 산을 오를수록 더욱 풍성하고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더위에 익어가는 내 얼굴은 발그레해졌으나 아랑곳없이 수국에 취해 걸었다. 그러다보니 통영 8경에 해당하는 용머리 입구에 다다랐다.
캠핑장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멋진 동백나무 고목이 늘어서 있어, 그늘이 되어 준다.
연화도 동쪽에 위치한 동두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산길로 들어서니 출렁다리가 나타났다. 앞사람 걸음의 진동이 점점 커지더니 출렁다리 가운데로 갈수록 흔들림이 커졌다. 약간 어지러움은 있었지만, 딱딱한 포장도로를 걸어왔던 탓에 신이 났다.
하늘은 옅은 노을을 머금기 시작했다. 마을버스 운행시간은 오후 5시까지였기에, 만일을 대비해 버스 기사님께 물어보니 특별히 태워 주시겠다고 연락 달라고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용머리전망대에서 노을의 절정을 만끽하기 위해 서둘렀다. 굽이진 절벽을 따라 이어진 계단을 단숨에 올랐다. 파란 하늘을 붉게 물들인 노을은 장관이었다. 전망대 앞바다로 용 한 마리가 노을의 끝을 향해 헤엄쳐 나가듯 작은 섬 몇 개가 바다로 이어져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다 옅은 어둠이 드리워지고 나서야 돌아섰다.
전망대에서 본 연화도의 절경. 동두항을 중심으로 형성된 동두마을과 웅장한 대바위를 감상할 수 있다.
별 없지만 노을과 일출로 충분히 만족
무더위 속에서 걷느라 너나할 것 없이 지쳐 있었다. 마을버스 기사님께 전화를 드리자 흔쾌히 개인 차량으로 데리러 와주셨다. 도로로 내려서니, 더위에 지쳤을 우리를 위해 시원하게 에어컨을 틀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기사님은 2시간 넘게 걸어온 길을 단숨에 달려 연화도 여객터미널에 내려주셨다. 어둠이 짙어가는 검은 바다 위로 붉은 노을이 비쳤다. 연화도는 마지막까지 아름다움을 쥐어 짜내고 있었다. 우도를 잇는 보도교 끝에 도착하자 강렬했던 노을은 사라지고 어둠 속에서 꿈이 깬 듯했다.
어슴푸레 빛나는 가로등 불빛을 따라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어둠이 내려 선선해진 캠핑장은 형형색색 텐트 불빛으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펜션 불빛에 가로등까지 과한 불빛 속에서 별빛을 보기가 어려웠다. 별 대신 수국으로 만족해야 했다.
다음날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캠핑장은 아직 조용했다. 조용히 텐트를 열고 몽돌해변으로 내려갔다. 썰물 시간이라서 바로 앞에 있는 목섬까지 길이 열려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나가 길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목섬과 일출에 포커스를 맞췄다. 자리를 잡자마자 동쪽 끝에서 붉은 태양이 솟아올랐다. 태양이 온전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 어둠이 사라지고 조용한 바람이 불어왔다.
몽돌 사이로 밀려오는 바닷물이 바람에 일렁였다. 해변 건너편에 있는 구멍바위가 빛을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해변에서는 그냥 하나의 섬에 지나지 않는 구멍바위는 목섬으로 가는 길이 열리면 섬 가운데에 난 구멍을 볼 수 있었다.
수국의 매력에 빠져 사진을 찍는 백패킹 친구 김효주·김성미씨.
해가 뜨자 캠핑장은 순식간에 더위에 휩싸였다. 사람들이 하나둘 텐트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더위를 피해 재빨리 숙영지를 철수했다. 어제는 치열함 속에서 삭막하고 뜨거운 시멘트에 지나지 않았던 길이 오늘은 멋진 동백나무 고목들이 늘어선 아름다운 길로 변해 있었다.
오로지 길을 위해 걷는 산티아고 순례길 같았다. 걷는 이의 마음이 그대로 길 위에 반영되는 것이다.
앞서 내려가는 친구들을 보며 동백꽃이 만발할 즈음에 이 길을 다시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시멘트 길이 아닌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즐거움이 넘쳐날 길 위를.
첫댓글 6월 27~29 명인방에서 연화도 수국및
출렁다리 트레킹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