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9월 20일 금요일. 22℃, 가을 날씨 같다.
늦잠을 잤다. 아침 식사는 빵과 치즈와 요플레, 과일로 했다. 아침 10시에 체크아웃을 했다. 오늘의 여정은 버스를 타고 포르투갈 라고스까지 가는 것이다.
오후에 버스를 예약해 두어서 천천히 대성당이 있는 시내를 통해 터미널로 갈 예정이다. 산타쿠르즈 옛 지구를 빠져나간다. 골목길을 지나간다. 이제 길이 좀 낯익어 편하게 걸어간다.
세비야 대성당이 있는 광장에 들어선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거리가 분주하다. 특히 젊은이들의 출근 모습이 보기 좋다. 인디아스 고문서관(Archivo General de Indias (América)을 마주한다.
식물원(Lonja del Archivo General de Indias Garden)이 보인다. 대리석 조각상이 있다. 특이하게 개 조각상도 있다. 동물들, 사자 조각상이 일반적인데 여기는 개 조각상도 있다.
인도 기록 보관소 정문 입구에 있는 정원 공간이다. 중앙 분수대, 여러 개의 개 조각상, 보행자 구역 정원 사이에 쉴 수 있는 벤치도 있다. 정원은 잘 가꾸어져 있고 식물도 잘 가꾸어져 있다.
유명인 가수 동상(Estatua a Francisco Palacios 'El Pali')을 만났다. 그의 무대 이름 El Pali(1928-1988)로 알려진 Francisco de Asís Palacios Ortega는 El Trovador de Sevilla(세비야의 음유시인)라는 별명을 가진 세비야의 유명한 플라멩코 가수이자 작곡가였다.
그는 20개 이상의 앨범을 녹음하고 200개 이상의 곡을 작곡하여 이전에는 그룹이 지배했던 장르인 세비야에서 순수 음악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는 어린 시절 사라져가는 도시의 전통을 묘사하면서 코랄레라스 세비야나스의 순수한 음악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큰 키와 심한 근시로 인기 있는 상징이 되었다.
그는 Colegio San Diego에 다녔으며 그곳에서 학문적 우수성과 운동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의 별명 "엘 팔리"는 그의 날씬한 체격에서 유래되었다.
그의 음악을 유튜브(El Pali 1973 – Sevillanas para Bailar)를 통해 본다. 뚱뚱하게 변해버린 무뚝뚝한 몸매에 아름다운 소리가 흘러나온다. 의자에 거꾸로 앉아있는 동상은 광장을 쳐다보고 있다.
그는 1928년 세비야에서 태어나 1988년에 사망했다. 이 조각품은 그가 태어난 카사 데 라 모네다(Casa de la Moneda)와 그가 오랫동안 살았던 토마스 데 이바라(Tomás de Ibarra) 거리 사이에 있는 구시가지의 상징적인 장소에 위치해 있다.
그는 세비야나의 가장 유명한 가수이자 작가 중 한 명이었다. 관공서(Delegación de Hacienda)를 등지고 있다. 분수대(Híspalis Fountain)가 있는 로터리가 나온다.
여인상을 중심으로 많은 아기들이 만들어져 있다. 칸나 꽃이 노랑과 빨강으로 잘 피어있다. 마차와 트램, 자동차에 사람들도 많이 붐비는 곳이다.
물과 어우러진 나체 여인상이 누워있는 조각상, 27세대(Monumento a la Generación del Veintisiete)도 있다. '27세대'는 20세기 문학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스페인 시인 그룹을 식별하는 데 사용되는 이름이다.
이 시인들은 상징주의, 미래주의, 초현실주의 등 유럽 운동의 영향을 받았지만 혁명적 사상이나 정치적, 사회적 성향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27세대의 작품은 시에 강렬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창조된 은유와 새로운 단어를 지속적이고 과감하게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란다. 어제 보았던 황금탑도 나온다.
오페라 극장 옆의 모차르트 기념상도 다시 만났다. 반갑다. 뒤편에 있는 하얀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교회와 병원 건물이다. 오스피탈 데 라 카리다드(Hospital de la Caridad) 다.
귀족 미겔 마냐라가 설립한 1600년대 병원으로 예술품으로 가득한 바로크 양식의 예배당이 있다. 바람둥이의 대명사 돈후안의 실제 모델인 미겔 마냐라가 삶을 후회하며 지은 자선병원이다.
푸른색의 아술레호로 아름답게 장식된 외관이 볼만하다. 아술레호(azulejo)는 14세기 이래 스페인(나중에는 주로 포르투갈)에서 생산되었던 타일을 말한다.
아랍어로 '작은 돌'이라는 뜻의 az-zulayj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북아프리카 모자이크만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후에는 한 변의 길이가 약 13~15㎝인 장식으로 가득한 타일을 가리키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마냐라는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였는데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방탕한 생활을 접고 수도승과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가 지은 이곳 자선병원도 가난한 노인들을 수용하는 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병원 입구 오른쪽에는 미겔 데 마냐라 초상 포스터가 있다. 입구 위로 Sant CARIDAD라고 씌어있고 아래로 Damus pauerum이라고 씌어있다.
Sant CARIDAD는 자비, 자선을 목적으로 설립된 이 병원의 이름이 Hospital de la Caridad(자선병원)이다. Damus pauerum은 가난한 집, 천국의 계단을 나타내는 라틴어란다. 안으로 들어가면 예쁜 회랑에 파티오가 있다.
파티오 옆으로 이어지는 두 곳이 나란히 있다. 파티오 가운데는 십자가를 든 분수가 있다. 하얀 벽에는 세비야식 타일 장식 그림이 장식되어있다. 자선 병원 안에 있는 산 호르헤 성당도 멋지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화려함을 보여준다. 주 제단 아래에 미겔 데 마냐라의 초상이 놓여있다. 초상에는 그의 이름과 creo, Amo, Espero라는 글씨가 들고 책에 기록되어있다. 이는 믿는다, 사랑한다, 소망한다라는 뜻이란다.
성당 벽에는 무리요의 그림(오병이어)도 있단다. 많은 그림중에 무리요의 ‘헝가리 성녀 엘리자벳’도 무리요의 그림이란다. 성녀 엘리자벳은 왕비의 신분으로 청빈하게 살며 자신이 살던 성에 병원을 세워 아픈 사람들을 돌보았단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병원 설립이 이곳 자선 병원 설립의 뜻과 같아서 무리요가 이 성녀를 주제로 그렸다고 한다. 자비를 주제로 그린 무리요와 같은시대의 화가 발데스 레알의 죽음에 대한 작품도 볼 수 있다.
자선 병원에서 나오면서 미겔 데 마냐라의 흉상도 볼 수 있다. 길 건너편 정원(Parque Don Miguel Mañara)에는 미겔 데 마냐라(Monumento a Miguel de Mañara)동상이 세워져 있다. 힘들게 환자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오페라 극장 앞으로 왔다. 투우장을 또 지나간다. 건너편에 세워진 카르멘 동상(Monumento a Carmen La Cigarrera)을 확인한다. 버스터미널(Estación de Autobuses “Plaza de Armas”)에 12시 전에 도착했다.
35번 탑승장에서 플릭스 버스를 탄다. 12시 35분 출발한다. 맨 앞에 앉아서 간다. 이제는 세비야를 떠나 포르투갈 라고스를 향해 간다. 부드럽게 시내를 빠져나가 고속도로에 올린다.
버스는 A-49번 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잘 달린다. 도로는 넓고 좋다. 포르투갈 이정표가 보인다. 버스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다. 과자와 요플레다. 스페인을 상징하는 검은 황소 조형물이 언덕위로 보여 반갑다.
스페인 어느 곳을 가든지 흔히 보이는 조형물이다. 올리브 나무가 잔뜩 심어진 과수원도 지나간다. 도로변에는 협죽도(유도화) 꽃이 싱싱하게 피어있다. 이탈리아 고속도로에서 많이 보던 꽃이다. 포르투갈 73km라는 이정표도 지나간다.
고속도로 속도 제한은 120km다. 휴게소 마을 같은데로 들어가 잠시 쉰다. 과디아나 강 위에 세워진 커다란 다리(Guadiana International Bridge)를 지나면 포르투갈이다. 이제는 포르투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