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월적 존재 >
인간은 감각기관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는 지각없이 세상을 알아볼 수도 없고,
사람으로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이 모두는 우리가 몸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와 자연은 물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도 모양을 갖추고 있는 물질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이런 물질적인 것만이 세상의 전부인줄 생각합니다.
그러면 지각할 수 없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것들은 어떻게 있는 것일까요.
사랑이나 우정, 아름다움이나 믿음 등은 말할 것도 없지만, 영혼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런 것들은 아무리 뛰어난 현대 과학이라도 실제로 검출할 수 없습니다.
이 모두는 현실적인 세계를 넘어서는 그 이상의 실재로 자리합니다.
이런 세계를 감지하고 이를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인간 존재의 독특함 때문입니다.
이것을 철학에서는 초월이라고 부릅니다.
초월이란 얼핏 매우 어려운 말인 듯하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 삶은 이런 영역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그 이상의 것을 생각하고 마주합니다.
물질세계와 현실의 한계를 넘어 그 이상의 것을 향해 가려는 마음은
우리의 본성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이것을 이해하고 표현하고자 합니다.
신적인 영역은 말할 것도 없지만,
사랑이나 믿음 같은 비물질적 실재들은 손으로 잡을 수는 없지만
그런 세계는 분명 우리 삶 안에 가득차 있습니다.
인간은 이러한 그 이상의 세계에 대해 이해하고 말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그 이상의 것’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지닐 수 있을 때
그는 물질의 영역을 넘어 초월로 나아가는 존재가 됩니다.
인간의 초월적 특성을 넓은 의미에서 영성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입니다.
철학적 영성은 인간이 그 이상의 세계를 향해 가는 존재이며,
영혼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밝혀내려 합니다.
영혼을 뜻하는 고대 유럽어들은 모두 생명의 숨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철학적 관점에서 영성은 생명의 원천과 인간의 인간다움은 물론,
인간이 지닌 근본적인 초월적 특성을 지성으로 이해하고 표현한 말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초월적이고 영성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세계에 몸담고 살아가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 모두를 넘어
그 이상의 세계로 향해가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초기 낭만주의 철학자 노발리스의 말처럼
인간은 고향을 향한 그리움, 향수를 지닌 존재입니다.
지나치게 물질적 세계에 묶여있는 현대 사회 안에서 이를 넘어서려면
초월적 특성에 대해 생각하고 말해야 합니다.
실증적 문화에 갇힌 현대인은 그 이상의 세계를 보려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 안에서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입니다.
내적으로도 인간은 자신의 근본적인 유한성과 우리 안에 가득한 모순 때문에
끊임없이 실존적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 모두를 감내하면서 극복하는 길은 우리가 지닌 초월성을 직시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자신의 초월적 특성을 잊어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이 모든 한계를 넘어 고향을 찾아갈 수 있을테지요.
우리가 초월적 존재이며 이를 이해하고 말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을 때
우리는 인간일 수 없습니다.
고향을 상기하고 그리워하는 인간의 특성이
이 초월을 향한 길에서 남김없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신승환 스테파노 |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