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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상회담의 동시통역
본문: 시63:1-11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63편 말씀 중심으로 정상회담의 동시통역이라는 제목의 말씀 증거 합니다.
정상회담의 동시통역.
여러분, 1802년에 프랑스공화국의 제1 통당이 된 나폴레옹이 제정한 상이 있습니다. 레지옹 드뇌르라고 하는 프랑스에서 존재하는 최고의 훈장입니다. 레지옹 드뇌르.
요새는 우리나라가 국력이 발달하고 각계 분야에서 뛰어난 분들이 나오면서 이 레지옹 드뇌르라고 하는 훈장을 받은 분들이 여럿 되십니다.
그중에 여러분 잘 아시는 임권택 감독님, 또 미술 분야에서도 나온 줄 알고 있고 특이할만한 것은 지금 현재 외국어대학교의 동시통역대학원 교수로 계시는 최정화교수님이 계십니다. 여자분이신데.
이분은 여러분 아시는 분은 또 아시겠습니다마는1978년에 외국어대학의 불어과를 졸업하시고 파리 제3대학의 동시통역대학으로 유학을 가셔서 우리나라와 아시아 통틀어 최초의통역사가 되십니다. 통역사가 되신 이래 무려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쫓아다니며 7~8차례 동시통역을 했을 뿐 아니라무려 국제회의에서 국가정상들이 참석하는 국제회의, 뭐 아니면 다른 여러 제 분야의 국제회의, 1800여개가 넘는 국제회의에서동시통역으로 지금까지 살아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공로가 인정되면서 상도 여러 개 타신 중에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레지옹 드뇌르라고 하는 훈장까지도 받게 됐습니다.
참, 특이해요.
14살 되셨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들리는 프랑스 말에 매료되어서 그 말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때부터 불어를 하기를 결심해갖고 막무가내로 불어를 하셔갖고 영어와 불어와 한국어 3개 언어로 아시아최초의 동시통역사가 되셔서.
놀랍지 않습니까? 1800여개의 국제회의, 정상회담에 참석하셔서 동시통역을 하셨다. 그런 얘기를 우리가 다시 한 번 기억을 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 시편에 이러한 동시통역에 관한 영적인 차원에서 볼 때 동시통역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에요.
역시 시편의 배경은 압살롬의 모반사건입니다.
그래서 요단강 동편 마하나임으로 피난을 가고 또 유다광야를 전전하며 피난생활을 하던 그때를 배경으로 해서 쓴 시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 특기할만한 사항은 1절을 보면 여러분 벌써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1절에 보면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주의해주세요 이제.)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함이여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라는 말이 나와요.
이건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 처해있는 게 현실입니다.
사무엘하 15장 23절과 28절에 보면 피난 가는 모습을 묘사할 때 기드룐 시내를 건넌 뒤에 왕과 백성이 광야 길로 행한다는 말이 나와요.
그러니까 물이 없고 곤핍한 땅으로 들어간 겁니다. 실제로.
그런데 물이 없고 곤핍한 땅으로 들어간 사람이 지금 누굽니까?
왕궁에서 모든 방면에서 부족함이 없이 지내다가 그렇게 피난가게 된 왕이에요.
사람이 작은 차에서 큰 차로 바꾸고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바꾸는 것은 쉽습니다마는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잘사는 사람이 못 살게 되는 것은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요.
못 살던 사람들이 잘살게 되는 것은 적응이 빠릅니다.
왕으로 지내던 자가 지금 광야로 피난을 가게됐어요. 그런데 실제로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한다는 것까지는 크게 봐서 이해를 하겠습니다. 영혼을우리가 그냥 쉽게 생각하기에 그 마음이, 다윗의 마음이 간절히 여호와를 갈망한다는 것까지는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에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물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육체도 주를 앙모하나이다. 이게 이해가 안 간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럴 수가 있겠냐는 것이에요.
제가 언젠가 말씀드렸는데 그 프랑스 파리에 8월달에 방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안내할 사람 한 사람을 안내하고 그러느라고 그 안내하는 사람이 만나야 될 사람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 파리지도를 펴놓고 파리를 헤매다가 그 사람을 만나게 하고 이제 집사람과 둘이서 남았을 때 딱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요.
너무너무 더워서 온 몸이 겉에 입은 옷, 저는 보통 티만 입지 못하고 속에다 런닝셔츠를 입고 티를 입습니다. 그 런닝셔츠 젖고 티가 다 젖었어요. 바지가 다 젖었어요. 땀에. 아무리 봐도 물 한 모금 마실 때가 없는 거예요.
그러고 가다가 맥도널드 간판을 봤어요. 얼마나 반갑든지 그때는요 제가 그 유학 가서 신학논문을 쓰고 있을 때 아닙니까? 그런데요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게 되지도 않고 내 몸은 더더군다나 주를 앙망하지 않게 되던데요.
몸도 마음도 물만 찾게 되요. 몸도 마음도. 그것도 광야도 아니고 파리 시내 한 가운데서. 몸도 마음도.
그런데 이 사람 지금 다윗은 황폐한 광야로나갔습니다. 왕궁에서 왕으로 살던 사람이 황폐한 땅으로 나갔습니다. 하루 이틀 지내다가 아니, 물을 얼마를 갖고 피난을갖겠습니까? 그 당시 교통수단으로. 한 푸대 정도 갖고 나갔겠지요, 뭐.
그러면 왕만 마셔요? 신하들도 다 마셔야 되니까. 백성들도 마셔야 되고.
물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그리고 그 밑에 읽어보면 가관이에요.
내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해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이건 뭐냐 하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볼 때처럼 지금도 주를 바라보기를 앙망하고 갈망한다는 겁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음으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낫다. 지금 내가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겁니다.
그런데 이 생명을 유지해야 될 이유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의 사랑을 만끽하기 위해서라는 거예요.
만약에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느껴지지 않고 하나님을 볼 수 없을 바에는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다. 이런 뜻입니다. 생명보다 낫다는 것은.
내 생명이 살아있는 이유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요,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요, 하나님으로 만족하기 위해서다. 그게 안 될 바에는 차라리 죽어버려라. 이 뜻입니다.
이 사람이 정신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라.
5절 보세요.
광야로 피난 갔어요. 지금 이 노래가 가당키나 합니까?
5절,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이거는 뭐 도대체 무슨 말이 통해야 이 사람하고 말을 하지요.
여러분, 와신상담이라는 유명한 사자성어 다 아시지 않습니까?
와신상담이 뭐지요?
춘추전국시대에 오나라의 왕이 월나라를 침입했다가 월나라 왕 구천에게 오나라의 왕이 패하고 죽습니다. 그래 오나라의 왕이 자기 아들 부차에게 아비의 원수를 갚아라. 그러니까 이 부차가 가시나무장작 위에서 잤어요. 와신.
그러면서 사람을 집문 앞에 세워두고 자기가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부차야, 네 아비의 원수를 잊었느냐. 소리치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기어코 월나라의 구천을 무찌릅니다.
그러자 이 구천이 자기의 아내를 부차가 첩으로 삼고 나라를 다 점령해버려서 나라를 잃어버렸어요.
그러니까 구천이 이를 악물고 잠자리에다가 쓴 쓸개를 옆에 둡니다. 그래서 잠잘 때마다 쓸개를 핥아먹어요. 그 쓴맛을 되새기면서 내가 반드시 이 굴욕을 갚음할 날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20년이나 쓸개를 먹고 핥다가 20년 뒤에 부차를 정복하고 이기게 됩니다. 상담. 담, 쓸개를 먹었다는 것이에요.
아니 지금 이런 마음 가져야 되는 거 아닙니까? 다윗이.
와신상담. 가시나무장작 위에서 자면서 이를 갈고 원한을 되새겨야 되고 그리고 쓴 쓸개를 날마다 밤마다 핥아먹으면서 원수를 갚을 날을 생각하며 나라를 회복할 것을 다짐해야 될 때 아니냐, 이 말이에요.
그런데 피난 가서 한다는 것이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이 물 없어 황폐한 땅위에서 내 몸이 물을 갈망하는 게 아니라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이 사막에서일지라도 하나님으로 배부르기를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부차와 구천과 비교해보면 속이 없는 사람 같아요.
그런데 왜 그럴까요?
모든 인생의 살아가는 방식이 부차와 구천처럼 살아갑니다. 와신상담해서.
그런데 왜 다윗은 지금 이 상황에서 만족할 것이라는 노래를 하고 있는 겁니까?
통역이 되기 때문이에요.
부차와 구천은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이 무슨 뜻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이 무슨 뜻인지를 자기의 현실을 통역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이에요.
그때그때 주어지는 현실과 삶의 순간들을 동시통역할 수 있는 사람, 이 다윗의 이런 노래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에요.
여러분, 현실이 뭐예요?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은 하나님의 생각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이 땅과 저 하늘을 지으셨어요. 말씀으로.
말씀이라는 것은 하나님 입에서 나오면 말씀이요 하나님 입에서 나오지 않으면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그렇잖아요.
우리도 머릿속에 머물러있으면 생각이요, 그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오면 말이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이 현실, 이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 이 꽃 한 송이도 피고 지는 것을 관장하시는 하나님, 참새의 깃털까지 세시고 아시고 그 참새를주관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이 세상에서 주어지는 나의 현실은 하나님의 언어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의 언어를 바르게 통역할 수 없는 한 우리의 삶은 바른 삶이 될 수가 없고 거기에 진정으로 한번 제대로 기뻐볼 수도 없는 거예요. 왜?
하나님의 언어의 표현으로서의 내 현실이 통역이 안 되는데, 뭐. 무슨 뜻인지를 모르는데.
타임지를 읽어도 뭔 뜻인지를 몰라요. 그냥 까맣게 그림으로 보여요. 글자가.
아무 내용이 전달이 안돼요. 마찬가지입니다. 마찬가지에요.
타임지가 아무 내용이 전달이 안 되니까 애들한테 타임지를 주면 그 타임지 글씨 위에다가 매직으로 자기가 장난을 해요. 막 이렇게 막 써요.
그런 것과 똑같은 거예요.
부차와 구천 같이 와신상담하는 사람들이 대단해보여요, 그것이 인간의지의 승리 같아 보여도 자기에게 주어진 타임지종이 위에 매직으로 엉뚱한 그림을 그려대는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 뜻을 모르니까.
그러나 다윗이 그 뜻을 알았어요. 동시통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면 그 뜻이 뭡니까?
지금 피난을 갔어요. 광야로 피난을 갔습니다.
몸이 당장 물이 급하고 몸이 물을 원해요. 물이 부족하다는 걸 느끼는 겁니다.
그런데 육체적으로 너무 본능적인 이 갈망을 이 부족함을 이 욕망을 욕망할 수밖에 없고 부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을 통역합니다. 뭐라고 통역합니까?
물이 부족해서 당장 목이 말라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은 이 현실은 이 현실로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의 뜻은 뭐냐?
하나님이 부족한 거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족하다라는 것이 물이 없어 죽을 수밖에 없는 이 광야 땅에서 부족함을 느끼는 그 참내용이라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우리가 부족함을 느끼며 살아요.
예를 들어 돈이 부족하다. 돈이 부족한 현실이 주어지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돈이 부족하다는 현실이 하나님의 언어에요. 하나님의 생각의 표현이에요. 그럼 그걸 통역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언어니까.
그러면 어떻게 통역하느냐?
돈을 벌어라. 돈 벌기 위해서 애를 쓰고 계획을 하고 부지런을 떨어라. 이렇게 받아들이고 이해를 합니다.
돈이 없어 보면 돈이 최고다. 이렇게 번역을 해버리고 통역을 해버려요. 자기 자신에게.
이게 모르는 거예요. 하나님의 언어를 모르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통역해야 되느냐?
돈이 없는 현실이 주어지면 아, 돈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이 현실의 뜻은 하나님을 갈망하라는 뜻이구나. 이걸 알아야 이게 통역이 되는 거예요.
하나님이 부족하기 때문에 돈이 없는 것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지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라는 걸 바르게 깨달아야 된다는 겁니다. 바르게 나 자신에게 통역을 해줘야 된다는 거예요.
자식의 성적이 안 올라서 속이 무지 상합니다.
그러면 자식의 성적이 안 오른다는 그 상황을 바르게 통역을 해야 되요. 왜냐?
자식의 성적이라고 하는 계기를 통해서 진짜 내 속의 부족한 것이 뭔가를 하나님이 들춰내시는 겁니다.
진짜 자식의 성적 때문에 내가 불행한 게 아니고 그 성적이 안 올라서 내가 부족을 느끼는 게 아니라 그 성적이 안 오른다는 사실로 인해서 나한테 진짜 부족한 게 뭐라는 걸 가르치는 겁니다.
돈이 없다는 사실이 돈이 없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돈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하심으로서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일깨우려 하신다는 겁니다.
이걸 다윗은 바르게 통역하는 거예요.
지금 물 없는 광야에서 내 몸이 하나님을 갈망한다고 하는 이유가 뭡니까?
자기 자신이 피난의 현실을 직면하고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이 피난의 현실을 나한테 주셨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도움이라고 그래요. 7절에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습니다.
원 세상에.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피난살이하게 됐다 그러면 그 도움 받아서 뭐하게요?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보느냐?
피난을 하게 되면서 내가 지금 물이 부족하고편한 잠자리가 부족하고 왕권을 상실하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이 모든 현실을 아,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그만큼 하나님이 내안에 모자란다고 가르쳐 주시는구나. 그만큼 하나님으로 충만하라고 나에게 가르쳐 주시는구나.
그리고 피난 가가지고 왕권을 회복하는 와신상담의 생각을 하지 않고
밤에 침상에서도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생명이 위태로운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만끽할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고 하나님을 갈망하고 갈망하고 하나님만을 원하고
어떡하든지 왕권과 상관없이 하나님으로 배부르겠다고 결심하고 다짐하고 골수와 기름진 것으로 먹고 내 영혼이 만족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만족하리라고 노래하고 있는 겁니다.
결과가 어떻게 됐어요, 여러분?
왕권 회복되고 모든 것이 평정되고 와신상담 안했어도, 안했어도, 하나님께서 다 나라를 다시 다윗에게 돌려주십니다. 다.
이게 믿음이라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이 세상을 지으시고 이 세상 땅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람의 삶을 관장하시고 주관해 가시는 이 세상의 대통령이요, 이 전 지구의 대통령이요 통치자이십니다.
그분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나의 하루하루 매 순간순간은 하나님께서 직접 통치해 가시는 현실이 내게 주어짐을 통해서 정상회담이 될 수밖에 없어요.
이 세상의 왕이신 하나님과 내가 주어지는 현실을 통해 매번마다 정상회담, 매순간마다 정상회담이 될 수밖에 없어요.
뭘 이해를 해야 뭐 하나님께서 통치를 계속 해나가시지요. 바르게 통역이 돼야.
순간순간 주어지는 현실들.
자, 돈이 부족하고 건강이 부족하고 아이의 성적이 부족하고 내게는 남자친구가 없고 여자친구가 없고 남편이 마음에 안 들고 부인이 마음에 안 들어요.
그래서 내 마음에 부족함이 계속 느껴집니다. 부족함이 느껴지는 현실을 허락하시는 그 하나님 심중의 말씀을 바르게 통역해야 내 삶이 바르게 나갈 거 아닙니까?
하여간 이 세상에 살면서 아, 이게 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이게 부족하다. 라는 느낌이 드는 모든 순간에 모든 현실에 통역하세요.
아, 내 마음에 하나님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돈이 부족한 현실로 일깨워주시는구나.
내 마음에 하나님으로 충만해있지 않다는 그 사실을, 내가 직업이 없다는 사실을 통해 일깨워주시는구나.
내가 아직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 모습이 되지 않은 것을 내 자식들의 모습을 통해, 자식의 부족함을 통하여 내게 일깨워주시는구나.
바르게 통역을 하라는 겁니다. 번역을 하라는 거예요.
왜 와신상담의 스타일로 말도 안 되는 통역을 해버립니까?
돈이 부족하면 돈 벌어야지. 자식이 성적이 안 올라가면 과외선생을 붙여서라도 어떻게 해서라도 올려야지. 내 건강이 이상하다 그러면 건강프로젝트 5개년 계획, 뭐 이런 거. 이거 아니라는 거예요. 이거 아니라는 거예요.
사람관계가 부족하고 뭐 남편과 아내가 삐그렁빠그렁하면 어떻게 뭐 상담을 할까? 대화를 해서 풀어볼까? 돈을 많이 벌어주면 아내의 마음이 편해질까? 이거 아니라는 겁니다.
하여간 부족과 결핍이 느껴지는 광야 같은 현실이 주어질 때마다 그 현실을 다르게 통역하세요.
이 세상의 통치자 되시고 왕 되시고 대통령 되시는 그 하나님의 언어인 우리의 현실, 바르게 통역할 때, 바르게 통역할 때 뭐가 살아납니까?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가 살아납니다.
아, 내가 하나님이 부족하구나.돈 부족하고 건강 부족하고 일이 안 되고 문제가 생기고 이 모든 현실 속에서 아, 내가 하나님이 부족하다는 말씀을 하나님이 지금나에게 현실의 언어를 통해 해주고 계시는구나. 라는 걸 알 때 비로소 십자가를 향해야 할 이유가 생긴 겁니다. 왜냐?
십자가에서 내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는 이 모든 세상 현실에 대해 죽지 않는 한 내 마음이 끊어지지 않는 한 내 마음은 하나님께로 갈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하나님으로 채워질 수도 없기 때문에.
이 세상 현실을 바르게 통역하는 사람에게 해답으로서의 십자가사건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상회담. 오늘도 순간순간이 정상회담이 될 수밖에 없어요. 왜?
세상의 통치자 되시는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고 계시니까.
이 현실을 통해 느껴지는 모든 부족함의순간순간 속에서 하나님을 갈망하고 그 하나님의 갈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정말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은영혼의 만족함과 손을 들어 하나님을 송축하는 복된 삶이 하루 왼종일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아버지!
매순간 주어지는 현실을 바르게 동시통역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나에게 하나님의 언어로서의 나의 현실을 바르게 통역하지 않는 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이유도 내 마음에 생기지 않을뿐더러 영원히 광야생활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돈이 너무 부족하지만 내 건강이 너무 부족하지만 내 가족의 문제가 너무 부족하지만 진정으로 진정으로 부족한 것은 하나님의 충만함인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찾는 아침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