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25년 1월 1일’과 ‘을사년 정월 초하루’를 지났으나 분명히 한 살을 더 얹었다. 무겁기도 하지만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팔십도 중반에 올라서니 이젠 명실공히 노인 아니 영감쟁이다. 젊은 사람들은 저들이 어떻게 자랐는지도 모르고, 또 저희 놈들도 우리 같이 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걸 살아보지 않았으니 알 턱이 없다. 그래서 ‘꼰대’니 어쩌니 하면서 폄하하기도 한다.
삶의 흔적이자 훈장(勳章)이기도 한 얼굴의 주름을 여인들처럼 화장으로 상당 부분은 감출 수도 없고 아무리 애써도 구부정한 등줄기에다 양쪽 귀에 꽂은 보청기를 빼면 세상이 고요한 적막강산이다. 이 때문에 장애인 판정을 받았으니, 가끔은 패찰을 목에 걸고 동사무소나 은행이라도 가서 들어 보이면 한층 공손히 큰 소리로 얘기해주는 혜택을 보기도 한다. 머리는 검은 카락이라곤 가뭄에 콩나기이다.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고혈압에 척추 협착, 가끔 여름밤 귓가에 모기 소리나듯 하는 이명(耳鳴), 역류염 등등 죽어야 낫는 병이 수두룩하다.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기도 하다.
어쩌다 나라가 뒤숭숭 하지만 그래도 애들은 열심히 가르쳤기에 나름대로 자신의 갈 길들을 잘 가고 있으니 잘 대처하리라 믿는다. 우리도 그랬다. 4·19 시절, “논밭 팔아 대학 보냈더니 공부는 안 하고 맨날 데모만 한다.”고 부모님들로부터 꾸중도 들었고 심려도 끼쳤지만 잘했기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다행히 아내도 잘 따라와 주기에 자주 손을 잡아 준다. 가끔은 절친들이 소주잔을 사이에 두면, “니 주사약(?)이 좋아서 그런갑다.” 하며 농담을 하지만 아무튼 감사한 일이다.
아직은 제 발로 걸어 다니고 돋보기 안 껴도 신문은 읽을 수 있으며 가까운 거리의 내 놀이터 ‘석암연당’까지는 손수 운전하여 출‧퇴근 하고, 컴퓨터로 문서나 그래픽 작업, 또는 인터넷으로 내가 필요하거나 갖고 싶은 것들을 마누라나 애들 성가시게 하거나 잔소리를 듣지 않고 주문하여 사기도 한다.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 먹물로 묵향(墨香)을 피워보기도 하고… .
한 달에 두어 번은 술친구와 약주 한 잔씩 나누고 얼큰해지면 여전히 세상이 눈 아래로 보이며 “아직은 살만하다.”고 가슴을 펴보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도 매끼 밥상을 마주하면 “어머님 아버님 감사합니다.”고 고개를 숙인다. 외람된 얘기지만 참으로 깊은 정성과 좋은 재료(?)를 써서 만들고 키워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정신과 의사인 이근후 씨는 그의 저서에서 “특별한 일, 재미있는 일 하나 없다고 지루하게 되지 말자. 찾아서 누리려고 하면 즐거운 일은 늘 우리 곁에 있다. 대접받으려는 수동성(受動性)이야말로 세상과 불화(不和)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고 했다.
정말 그렇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가 늘 바쁘다. 언제 갔는지 자기 전 칫솔질 하면 아침의 칫솔질이 조금전의 일 같이 느껴져 “벌써 하루가…”한다.
독일 최고의 동화 작가인 에리히 캐스트너(Emil Erich Kästner)는 <두 가지 계율>이란 책에서 “한 번은 살아야 한다. 그것이 제1의 계율이고, 한 번만 살 수 있다. 그것이 제2의 계율이다.’고 했다. 이젠 제2 계율의 끝자락에 와 있다. 용케도 세월과 세파(世波)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이것이 내게는 바로 기적이라 믿는다.
지구 여기저기에서는 전쟁이 터지고, 비행기가 엎어져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집과 가족을 잃고 있다. 그렇다. 우리의 삶에는 전쟁 아닌 것이 없다. 반드시 총칼을 들고 상대방과 맞서며 현대식 미사일 포탄이 난무하는 전장(戰場)에서 싸우는 것만이 전쟁이 아니다.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전쟁이고 삶의 현장이 곧 전장(戰場)이 아니었던가. 생존을 위한 자기 자신과의 처절한 대결,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복잡하고 냉혹한 대립, 자연과의 힘겨운 싸움. 병마와의 투쟁. 이제는 ‘늙음’이라는 마지막 적과 샅바를 쥐고 맞붙어 있다. 이들도 엄연한 전쟁이며 이 전쟁들은 죽는 날까지 우리를 따라 다니며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고 불경(佛經)에서 말했듯이 태어남과 죽음은 계속될 것이고, 더불어 이들 전쟁도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아 있을런지는 하느님도 부처님도 의사도 내 자신도 그 누구도 모르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오늘 이 순간에 충실하며 내 자신과 가족들에게 보다 더 자상하자는 생각을 한다.
80여 년의 삶을 엮고 이어온 이 기적은 내가 만들어 낸 것도, 누군가가 만들어준 것도 아니다. 내 운명의 뜻이었음을 통찰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므로 내 인생과 마지막 대화(對話)를 하자. 이제는 그럴 때가 되었다. 단단한 땅이 아니라 늘 출렁이며 굼실대던 바다 위에서 겪었던 고뇌와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애별리고(愛別離苦) 등 내가 거쳐온 모든 회한들과 화해(和解)하고 용서를 나누어야 한다.
삶의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갈등, 다툼, 후회 등등은 그때는 잘하려고 했던 일들이었다. 이들을 모두 풀고 여한이 없는 인생으로 정리하고 마감되어야 한다. 그것이 내게 남은 마지막 일이요 업(業)이라는 때늦은 각성이 든다. 그리곤 자각(自覺)과 자성(自省)과 자중(自重)을 남은 내 삶의 제1의 계율로 삼자. 새로운 을사년 벽두에야 철이 드는가 보다. 헐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