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아내린 빙하, 1986년 실종된 등반가 드러냈다... 지구 온난화의 단면
이혜진 기자별 스토리 • 7시간 전
이달 초 스위스 테오둘 빙하에서 발견된 실종된 독일 등반가의 등산화. /로이터 연합뉴스© 제공: 조선일보
기후 변화로 알프스 빙하가 급속도로 녹으며 과거 눈 속에 파묻힌 사고의 흔적들이 종종 드러나곤 한다. 이달 초엔 스위스 유명한 봉우리 마터호른 근처 빙하를 지나던 등반가들의 눈에 사람의 유해가 발견됐다. 37년 전 실종된 산악인의 시신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28일(현지시각)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이 시신은 이달 초 스위스 체어마트 위 테오둘 빙하를 지나던 등반가들이 발견했다. 이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등산화와 아이젠도 얼음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DNA 분석 결과 시신은 37년 전 실종된 독일 등반가인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당국이 대대적인 수색·구조작업을 벌였으나 그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경찰은 등반가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실종 당시 38세였다고 밝혔다.
테오둘 빙하는 알프스 전역의 다른 빙하와 마찬가지로 최근 몇 년 동안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눈에 띄게 변하고 있다. 테오둘 빙하는 유럽에서 가장 높으며, 연중 스키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체어마트의 유명한 지역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테오둘 빙하는 이웃한 고르너 빙하와 연결돼 있었지만 지금은 따로 떨어져있다.
매년 여름 얼음이 녹으면서 예상치 못한 발견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에는 알레치 빙하에서 1968년에 추락했던 비행기의 잔해가 발견됐다. 2014년엔 1979년부터 실종 상태였던 영국인 산악인 조너선 콘빌의 시신이 발견됐는데, 마터호른 산악 대피소에 보급품을 배달하던 헬리콥터 조종사의 눈에 띄었다. 이듬해에는 마터호른 빙하 가장자리에서 일본인 등반가 2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들은 1970년 눈보라 속에 실종됐다.
지구 온난화로 스위스와 이탈리아 사이의 국경 지대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국경선은 통상 빙하가 녹은 물(해빙수)이 한 나라 또는 다른 나라를 향해 흐르는 유역인 ‘분수계’(하천의 유역을 나누는 경계)로 정해지는데, 빙하가 줄면서 이 위치도 바뀌는 것이다. 이 때문에 스위스와 이탈리아 정부는 국경선을 두고 미묘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빙하가 녹는 것은 국경을 둘러싼 갈등보다 환경에 더 커다란 문제를 일으킨다. 알프스에 쌓인 눈은 라인강과 다뉴브강과 같은 유럽의 여러 강에 물을 공급하고, 농사에 물을 대거나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수로 사용된다. 지난해와 올해 모두 라인강의 수위가 너무 낮아 네덜란드에서 독일을 거쳐 스위스로 화물을 운반하는 선박 운항에 애로를 겪었다.
스위스 빙하 전문가들은 과학자들이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빙하가 줄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기준 1931년 이래로 빙하 전체 부피의 절반 정도가 사라졌는데, 이 속도라면 금세기 말에는 거의 모든 알프스 빙하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