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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내 친한 친구, 말미잘
유 금 호 (소설가)
‘김 태수(金太守)’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든 채 벌떡 일어섰다. 다리가 휘청하는 느낌에서 빠져나오기도 전, 수화기 저쪽에서 겔겔겔 거리는 그의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이 사람, 놀라기는? 고향 친구, 태수, 김 태수.”
“말미잘?”
엉겁결의 내 반문에 그는 한참을 겔겔겔...그렇게 웃었다.
이틀 전 한국에 들어왔고 맨 먼저 보고 싶었던 것이 나였다고 했다. 내일 회사 근처 호텔 커피숍에서 연락을 하겠다며 그는 전화를 앞서 끊었다.
창밖으로 비구름이 뒤엉켜 흐르고 있었다.
충격이 풀리면서 그의 얼굴을 떠올리자 실실 웃음이 밀려 나왔다.
“부장님 반가운 소식이라도 있으신 모양이지요?”
앞자리 미스터 최가 서양 애들처럼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말미잘’이라고 내 초등학교 때 친구가 있어....”
대꾸를 하고 나자 가슴 안쪽에서 웃음이 밀어 올라와 나는 두 손에 얼굴을 묻으면서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을 토해냈다.
“부장님 웃으시는 모습 오랜만에 봅니다.”
평소 잘 웃지 않았지만 명예퇴직 송별회를 치루고 사물함 정리를 하던 며칠 사이는 웃음을 보일 여유도 없었지 싶었다.
부원들 끼리 간단히 소주나 한 잔씩 나누자고 해서 그러자고 한 참이었다. 부원이라야 나를 빼면 여섯, 둘이 출장 중이어서 나까지 다섯이었다.
“미스 서, 미스터 큰 김, 작은 김, 미리 한 잔씩 걸쳤을 겁니다.”
“괜히 서로 번잡스러운 것 아닌가?”
“삽겹살에 소주 한잔이 복잡할 게 뭐가 있습니까?”
10년 넘게 지각 한 번 없이 매일 드나들던 사무실 계단을 내려오면서는 잠시 가슴 안쪽에 휑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부장님, 그 친구라는 분 이름이 좀...“
“아, 말미잘? 이름이 김 태수야, 고향 친군데 어렸을 때 하도 부잡스러워서 별별 말썽을 다 부렸거든. ‘말미잘’ 별명은.....‘말미잘’이 뭔지나 아나?”
“저 해풍 받고 큰 갯놈입니다..... 썰물 때면 바위틈에, 갯바닥에 너울너울 그게 얼마나 많았는데요.”
“술집 가면 미스 서도 있고 하니까, 말미잘 이야기, 거기서 꺼내기는 뭐하고 말야...”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갯벌에서 놀던 이야기를 간단히 재구성해 들려주었다.
갯가에서 자란 사람은 비슷한 기억들이 있겠지만 장난감이나 놀이터가 없던 아이들은 더워지기도 전부터 갯벌이 놀이터였다. 입은 옷을 언덕에 팽개치고 발가벗은 채 고동이나 조개를 잡느라고 썰물이 된 갯벌을 뛰어다니고 뒹굴고 했다. 한참을 놀다가 해가 기울면 우리는 햇볕으로 달구어진 갯벌바닥에 한참씩 엎디어 있고 했다, 알몸에 닿는 따뜻한 펄 흙의 감촉 때문에 썰물이 들어오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혼이 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 친구가 하루는 그 펄 밭에 있는 말미잘한테 고추를 물린 거야. 작은 고기나 바지락을 먹어치우는 말미잘한테 그걸 물렸다니까...”
“부장님은 무사하시구요?‘
“아, 이 사람아. 나는....”
“그 말미잘 뿌리, 돌멩이 같은 데 깊이 붙어 있던데...”
펄 흙을 상당히 깊이 파내어 말미잘 뿌리 붙은 돌멩이를 끄집어낸 후에도 주머니칼로 고추에 붙은 말미잘을 조각조각 찢어낸 뒤에야 그 친구는 자유를 찾았다. 그런데 말미잘 배속의 게 껍질, 조개껍질 조각들이 친구 고추에 가로 세로로 꽤 많은 상처를 남겼던 것이다. 친구는 울면서 그 일만은 비밀을 지켜달라고 했고, 나는 약속을 지켰지만 졸업 때까지 그 친구 별명이 정식으로는 ‘말미잘에 좃 물린 놈’이었고, 줄어들어 ‘말미잘’이 되었던 것이다.
미스터 최는 걸음을 못 옮기고 허리를 꺾더니 나를 빤히 올려보았다.
“친구 사이라는 게.....원래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이 사람아, 나는 10년 동안 회사에 지각도 않은 사람이야.”
둘의 얼굴에 웃음기가 남았던지 삼겹살집에서 기다리던 친구들 눈이 반짝거렸다.
“부장님 초등학교 친구 분 전화가 몇 해만에 온 거야. 그런데 그 분 별명이 뭔지 알아? ‘말미잘’이야. ‘말미잘’..”
“그게 뭔데요?”
미스 서가 제일 먼저 호기심을 보였다.
“도깨비 같은 친구가 하나 있었어... 그냥 엉뚱하고 재미있는 놈이.”
화제를 바꾸려고 했지만 미스터 최가 또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그 친구의 ‘똥 장사’ 이야기를 하나 더 하고 말았다.
‘말미잘 사건’이 나고 한두 해가 지났던 듯싶은데, 그 무렵은 회충 감염자가 많아 학교에서 매년 ‘변 검사’라는 것을 하고, 학생들에게 구충약 ‘산토닌’을 나누어 먹였다. 비닐 같은 게 없던 때여서 ‘변’을 받아 학교로 가져가는 일이 썩 쉽지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몇 대 맞고 말지, 빈손으로 등교한 아이들에게 공포의 시간이 다가 왔다. 담임이 무섭기도 했지만 지난해 담임을 했던 학생들 이야기로는 변을 안 받아 온 학생들은 당장 집으로 내빼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충고였다. 야구방망이로 엉덩이에 피멍이 드는 것 까지는 참을 수 있지만 친구들 앞에서 신문지를 깔아놓고 바지를 까고 앉아 기어이 변을 보아야한다는 것이었다.
나를 위시해서 10여명 학생들 얼굴이 샛노랗게 변해 버렸다.
그때 ‘말미잘’이 운동장 한쪽 미루나무 아래에서 우리에게 손짓을 했다.
헌 장판 종이에 누런 변을 한 무더기 가져다 놓고 그는 성냥개비로 사탕 한 개만큼씩 변을 덜어내어 신문지 조각에 올려놓고 팔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우르르 몰려가 얼마씩 돈을 내고 그 변 한 조각씩을 나누어 받고 얼굴에 핏기가 돌았다. 나도 신문지 조각을 내밀었는데 그가 한쪽 눈을 찡긋하면서 내게는 돈을 받지 않았다.
미스 서는 코부터 싸쥐었고, 모두 허리를 꺾는데 미스터 최가 한 마디를 던졌다.
“그러니까 부장님과는 뭐가 통한다, 동업자나, 동지의식, 그런 게 아니었을까요?”
“에이 이 사람, 10년을 나를 보아 오면서...”
서둘러 화제를 돌려 소주잔을 부딪쳤지만 술이 들어가면서였을까, 그의 전화를 받았을 때의 섬뜩함이나 일종의 불안감 대신, 그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었던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를 화제에 올리면서 목소리가 커졌고, 양평의 작은 시골집 이야기에도 과장이 많아졌던 것 같다. 숲과 냇물, 황토구들장 방, 심고 싶은 관상수에 대해 계획에 없던 말까지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원들 고기 사들고 한번 몰려가는 겁니다.”
“동네에서 떨어진 골짜기여서 밤새워 마셔도 시비할 사람 없으니까 염려 놓으라고...”
집에 돌아와 마루에 사지를 뻗고 누워서도 나는 한참을 낄낄거렸다. 아내 영정 사진이 내려다보는 침실에서도 아내에게 술자리에서 하지 못한 친구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는 기분이었다.
사실 그는 우리에게 왕초였고 자석(磁石)같은 친구였다. 그가 없으면 무슨 장난을 해야 할지 따분하고 난감할 때가 많았다. 그때 그가 나타나 엉뚱한 일을 만들어 우리를 신나게 하고, 가슴을 뛰게 하고, 매를 맞게도 했다.
기억에는 원근법이 없다.
과거는 자주 뒤섞여 뭉개지고 지워지고 변색되지만 어떤 것은 뿌연 형상이나 바늘 끝이 되어 살아나기도 한다, 기억의 단층에 매몰시켜버리고 싶은 부분도 있지만 어떤 조각들은 도리어 반짝거리면서 나태해진 현재를 비집고 올라와 가슴을 뛰게 하기도 한다.
어느 때였는지 그가 너구리를 잡자고 한 적이 있었다.
시골 마을은 대개 몇 마리씩 닭을 길렀고, 병아리들이 태어났다. 병아리 털갈이가 시작될 무렵 솔개들이 병아리를 채가고 했는데, 너구리가 산에서 내려와 어미 닭까지 물어가는 일도 흔했다. 그때 그가 너구리를 우리 손으로 잡자고 제안을 했다. 울타리 구멍으로 너구리가 드나드니까 거기에 덫을 놓으면 틀림없을 것이라고 했다..... 너구리 고기는 모닥불 피워 구워먹고, 가죽을 벗겨서 파는 거라, 가죽 팔아서 그 돈으로 우리 몫의 병아리를 기르는 거지. 메뚜기, 여치, 방아깨비, 개구리가 들판에 지천이니까 그걸 잡아다 먹이면 큰 닭이 여러 마리가 되어 알을 낳고, 병아리들을 또 까고....
우리는 ‘말미잘’네 집 헛간에서 덫을 찾아내어 우리 집 울타리 구멍에 설치해놓고 교대로 망을 보면서 며칠을 지켰다.
이틀, 사흘....너구리 기다리는 일이 시들해진 나흘째 되던 날 해질 녘, 덫을 지키던 태수가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흩뿌리면서 제기차기에 한참이던 우리에게로 헐레벌떡 뛰어 왔다.
“걸리긴 걸렸다.”
얏호!! 친구들이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공중으로 제기를 차올리고 펄쩍 펄쩍 뛰었다.
“그런데...”
그가 시무룩하게 내 뒤로 자리를 옮기는데도 우리는 너무 들떠서 생각 없이 우리 집 울타리를 향해 달려갔다.
어스름 속에서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이 뒷발을 파고 든 덫의 강철을 끊으려고 몸부림치던 누런 짐승의 입가에 흐르는 피와 새파랗게 불을 켠 눈이었다.
소름이 돋았다.
“너구리가 아니라, 늬네 누렁이여.”
나는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는 지도자였고, 기획가였으며 실천가였지만 그 결과가 상처로 돌아올 때의 책임은 대개 우리 몫이었다. 눈이 새파랗게 변해서 주인도 모르고 으르렁거리는 누렁이를 발견한 아버지는 자초지종을 짐작하고 나서 지게작대기로 나를 후려 패댔고, 눈에 불을 켜있던 누렁이는 동네 어른들 몽둥이에 맞아죽어서 이튿날 개울가의 큰 무쇠 솥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날 오후 개울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앉아 피어오르는 생솔가지 연기 속을 떠도는 누린내를 맡으며 손등으로 눈물과 콧물을 뿌리면서 혼자 서럽게 울었다.
유년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다가 사진 속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아내가 혀를 차는 듯싶었다.....나는 늘 뒤치다꺼리만 했어, 무슨 일에 내가 앞장선 걸 본적 있어?.....딸년 시집가서 살고, 아들놈도 제대하고 취직이 되었고....‘사오정, 오륙도’라는 말 알아?.... 45세면 정년, 56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이래. 앞으로 양평 골짜기에 사둔 땅, 당신과 같이 못가 서운하지만 나. 거기 가서 나무도 심고 채소도 가꾸고......
이튿날, 태수의 전화가 걸려오자, 오래 그를 기다렸던 것같이 나는 서둘러 호텔 커피숍으로 나갔다.
외국 사람들이 몇 테이블, 한산한 커피숍 중앙에서 흰 양복이 일어서면서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고 보니 세월이 가긴 갔네. 자네 앞 머리털 빠진 걸 보니....”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싸 쥐고 그가 겔겔겔겔....하는 독특한 웃음소리를 냈다.
“3년 전 들어 왔다가 그때 바빠서 그냥 나가면서는 내가 사람 구실 못하나 싶었네. 아, 이거....”
미리 준비한 듯 흰 봉투를 내밀며 그가 희극배우처럼 내게 허리를 굽혔다.
“자네 부인 상사(喪事), 내가 심부름도 하고 해야 되는데 밖으로 떠돌다보니, 예(禮)가 아니네만 상사에는 시간 지나도 인사를 하는 것이니 허물 말게.“
4년이나 지난 아내 상(喪)에 ‘謹弔’ 봉투라니.
어정쩡하게 봉투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자 그가 담배를 꺼내서 권했다.
담배를 끊었다고 하자, 우리 나이에 아직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아주 독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주변에서 담배 끊으라고 극성들인데 주눅 안 들고 피우는 게 가상하다던가....그러면서 다시 겔겔겔 웃었다.
“지난번에는 ‘캥거루 꼬리꼼탕’ 때문에 나왔었어, 자네 캥거루 알지? 호주 말일세. 이게 너무 많아져서 호주에서는 교통사고가 많이 나거든.”
캥거루들이 저녁에는 숲에서 자다가 새벽이면 아스팔트로 어슬렁거리며 내려온다고 했다. 낮에 햇볕을 받은 아스팔트로 내려와 캥거루들이 새벽잠을 자는 통에 숲속 고속도로 사고가 빈번해지자 정부에서 적정 숫자 유지를 위해 5년 전부터 일부를 도살, 고기를 판다는 것이었다.
아프리카에서도 코끼리 숫자가 너무 불어너서 숲을 파괴하자 일정 숫자를 정부에서 도살한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캥거루들이 아스팔트로 내려오는 광경을 떠올리자 유년의 갯벌이 떠올라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그 역시 그 시절을 잠시 반추하는 듯 작은 눈이 가느다랗게 되었다.
“알잖은가? 백인들, 동물 뼈다귀나 내장, 대가리, 꼬리 같은 건 다 버리지 않나? 뭔가, 초창기 미국 갔던 한국 친구들 ‘소꼬리곰탕’으로 돈 좀 만졌지. 그런데 미국 애들이 눈치를 채고는 지금은 뼈, 꼬리도 돈 받고 한국 사람들에게 넘겨. 호주에서는 캥거루 고기는 못 먹는 것으로 되어 있었거든. 그런데 캥거루 꼬리가 얼마나 커? 꼬리로 몸을 지탱하고 싸울 때 휘두르고 하지 않나? 그래서 이왕 버리는 그 꼬리로 곰탕을 만들면 한국에서야 최고 아니겠어? 남자 정력에 최고다, 한 마디면 장사 끝이지. 그런데 이게 꼬이더라고. 처음 살코기가 조금 팔렸는데 쇠고기가 흔하다보니 전에 안 먹던 캥거루 살코기도 먹으려고 안 하는 거야. 결국 캥거루 식용화는 포기한다, 그렇게 된 거야.”
“그럼 죽인 캥거루들은?”
“매장하지. 묻어버린다고.....이왕 버릴 것 꼬리만 떼어 가겠다는 말이 거기에서는 통하질 않아. 썩혀버릴 고기, 돈 내면서 꼬리 잘라가겠다는 게 저희들한테는 이상하겠지만 추진 중이야.”
그는 금년 1월 호주 스트레키 배이 해안에서 바닷물에 씻겨 밀려 온 ‘용연향’을 주워서 한국 돈으로 7억의 횡재를 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산책 중에 밀랍(蜜蠟)같은 덩어리가 있어서 집어왔는데 고급 향수 원료로 사용되는 ‘용연향’으로 드러나 횡재를 했다는 기사였다.
향유고래 수컷이 번식기에 장이 약해져서 토해낸 앰브레인(ambrein)’이 주성분인데 처음에는 냄새가 고약하지만 몇 년간 바다를 떠다니고 햇볕에 마르면서 반투명 물질로 변한다고 했다. 용연향 가격이 금보다 비싸다는 것이다. 현재 1g당 27달러에서 87달러시세라고 했다.
그 기사를 나도 읽은 적이 있어서 고개를 끄덕였더니 커피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커피에 대한 기호가 있나?”
커피 잔이 반쯤 비었을 때 그가 물었다.
“그냥 습관으로 마셔.”
“코피 루왁(kopi luwak)이란 걸 들어 본 적은 있어?...한 잔에 한국 돈으로 따지면 16만 원 정도의 커피...”
“미쳤나? 커피 한 잔에 그런 돈을 주고 마시게?”
그가 다시 겔겔겔, 웃더니 세상에서 제일 비싼 인도네시아 산의 ‘코피 루왁’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가 호주머니에서 엽서크기의 상표 한 장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위쪽에 큰 글씨로 ‘kopi luwak"이라는 도안이 있고, 너구리처럼 생긴 동물 꼬리를 사람 손 하나가 치켜들고, 다른 한 손에 들린 커피 잔이 그 배설물을 받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림 아래에 ’Good to the last dropping"이라는 글자가 인쇄되어 있었다.
“‘커피 루왁’ 상표야. 세상에서 제일 비싼.....”
‘코피 루왁’은 1년 총생산량이 500 킬로그램 이하여서 1킬로에 미화 1,000달러에 달한다고 했다. ‘긴꼬리사향고양이’가 완숙한 커피 열매를 따먹고 겉껍질을 소화한 뒤 딱딱한 씨만 배설하는 습성 때문에 만들어진 커피라고 했다. 배설물로 나온 커피 씨로 커피를 만들어 보았더니 그 맛과 향이 기가 막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코피 루왁’의 독특한 향과 맛이 ‘사향고양이’ 체내에서 소화되는 과정 중 아미노산이 분해되면서 특유의 맛을 내는 것으로 설명한다고 했다. 꽃 속의 꿀 성분이 꿀벌 위장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꿀이 되는 것과 같은 원리라는 것이다. '시빗(Civet palm)'이라고도 불리는 ‘사향고양이’의 배설물로 만든 ‘코피루왁(Kopi luwak)’은 배설물 속의 커피 씨앗만 씻고 잘 볶아 만들어서 위생상 문제는 없다고 했다.
미스터 정과 ‘까리따’가 나타나지 않았으면 커피 강의가 더 계속되었을 번했다. 어렸을 때도 그와 있을 때는 주변 사람들은 허물어져 사라지고 그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적이 자주 있었다. 깔끔한 검은 색 정장의 청년과 동남아계의 젊은 여인이 동석이 되면서 나 역시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
미스터 정이라는 청년은 민망할 만큼 내게 깍듯하게 허리를 굽혔다.
“두 사람에게 야기한적 있지? 어릴 때부터 제일 친한 친구라고, 오 건우씨.... 그리고 자네도 인사하게. 이쪽은 인도네시아의 ‘코피 루악’본사의 미스 ‘까리따’...”
“김 회장님이 친구 말씀하셨습니다. 제 이름은 까리따입니다. 앞으로 많이 부탁드립니다.”
여자가 손을 내밀면서 어눌한 한국어로 인사를 했다.
“자, 앉지. 우선 좀 앉아..”
여자가 내 앞자리에 앉았고 청년은 저 회장님, 하면서 친구의 등 뒤쪽으로 다가서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박 사장님과 최 사장님 두 분이 각각 3,000주씩 묘목 값 입금하신 것 은행에서 확인했습니다. 묘목을 바로 내일 아침 비행기 편에 탁송하도록 본사에 팩스를 넣을까요?”
“아, 그래? 아, 조금 있다가....그런데 나무 심을 땅은 확인하고 온 거야?”
“다녀오는 길입니다. 내일이라도 묘목 도착하면 바로 식수(植樹)하도록 일러두고요.”
커피 묘목이 들어온다고 했다. 겨울 보온을 위해서 묘목 심은 밭을 덮는 하우스를 가을 들어 짓도록 하고, 여름은 노지에서 키우는 게 성장이 빠를 거라고 했다. 파인에플, 망고, 파파야 하우스 재배는 오래되었지만 커피 묘목이 한국에 들어오는 것은 처음일 것이라고 했다.
“1년 후면 한국에서 첫 ‘코피 루왁’이 수확될 거네.”
“그럼, 그 고양이도?”
“그 ‘긴꼬리 사향고양이’이란 놈들 말이지. 잡식성이야. 원래 야생이니까 사료 먹일 필요가 없지만 당분간 주거제한을 하게 되니까, 가축사료 있잖아? 고양이 사료, 개 사료.....가끔 과수원에서 솎아낸 과일이나, 감자, 고구마..... 양계장 닭 도축할 때 나오는 닭대가리나 내장 같은 것 있지 않나?.....두어 쌍씩만 우선 장에 넣어 기르다가 하우스 만들 때 울타리 철망을 치고 커피 밭에 풀어놓으면 되는 거지... 물건은 생산 되는대로 인도네시아 본사에서 수집할 테니까..... 아, 그런데 자네, 미스 ‘까리따’와 두어 시간 점심데이트 좀 하게..... ‘까리따’ 외할아버지가 한국 사람이야. 한국 피가 섞였지. 한국말도 하니까, 쉬운 영어하고 섞어 쓰고 ...나는 정 비서하고 이쪽 파트너들 잠깐씩 면담을 하고 돌아오겠네. 오후 4시까지..괜찮겠지?”
내 의사도 묻지 않고 두 사람이 나가버린 바람에 인도네시아 아가씨와 예정에 없던 점심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생선초밥’ 이야기는 들었지만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해서 ‘까리따‘와 나는 호텔 안 일식집으로 옮겨 점심을 같이 했다.
‘자카르타’와 ‘발리’를 패키지여행으로 다녀 온 적이 있다고 했더니 ‘까리따’가 몹시 반가워했다. 원래 보르네오 출신이라는 것, 2차 대전 중 일본군 점령군이었던 한국인 청년과 원주민 처녀 사이에서 자기 어머니가 태어났다고 했다.
“4분의 1에 한국 피가 섞였지요. 어머니는....다야크(Dayak)족....”
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몇 마디 한국어를 배웠고,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다고 했다.
“다야크(Dayak)족, 아세요?..... 2층으로 된 길게 지은 집(longhouse)과 사람 머리사냥(head-hunting)습관.....”
그녀는 꾸르륵 웃더니 지금은 전설로만 남아 있는 이야기들이지요, 했다.
일반적으로 코가 낮은 남방계와 다르게 ‘까리따’의 높은 코는 한국계 유전자 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맥주 두 병을 반주로 가볍게 마셨다.
“우리나라 민속 술에 ‘싱꽁’이라고 하는데요. 고구마 비슷해요. 이걸 항아리에 으깨어 담아 두면 술이 됩니다. ‘뚜악’이라고 그래요. ‘뚜악 술’이 익으면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빨대로 돌아가면서 빨아 마시지요. 연인이나 부부끼리 ‘오두막’에 갈 때도 ‘뚜악’항아리를 안고 가요. 아, 다야크 족은 대가족생활이어서 산 속에 작은 오두막이 있어요. 사랑을 나눌 때는 두 사람만 그곳 오두막으로 가요.”
그녀, ‘까리따’는 쾌활한 성격이어서 더듬거리는 한국어였지만 많은 이야기를 유쾌하게 들려주었다.
나는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으며 산골에서 관상수도 심고, 채소 가꾸면서 지낼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해 버렸다.
“열대지방은 3모작 농사를 짓지만 한국은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봄이면 가난한 집에 식량이 바닥이 나고 했어요. 농업을 공부해서 식량을 남아나게 하겠다, 그런 꿈을 가졌는데, 부모님 시키는 대로 법과에 진학, 고시 실패하고 평범한 회사원의 일생.....슬픈 사랑을 해 보겠다는 공상은 해보았지만 부모가 소개한 여자와 결혼, 그래서 앞으로 여생은 내 식대로 나무 심고 지내겠다, 그런 생각으로 회사를 나왔지요.”
“용기 대단하세요.”
“내 나이 쯤 되면 내 의지로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되나? 살아온 게 아니고 생존(生存)해 왔다는 후회, 남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자각....하찮은 것이라도 내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없나, 그런 생각...”
나는 결국 그녀에게 현재의 내 심경을 필요 없이 다 쏟아낸 것 같았다.
그 고백의 결론이 이왕 마련해 둔 땅이 있으니까 하우스 안에 커피 묘목을 심는다. 울타리를 막아 ‘긴꼬리 사향고양이’를 사육한다. 적당한 시기, 커피 열매가 익으면 ‘사향 고양이’들이 잘 익은 커피 열매만 골라서 먹고, 울타리 안에 배설을 할 것이다. 그 배설물을 인도네시아 ‘코피 루왁’본사로 보내 세계에서 제일 비싼 커피를 생산하게 한다.
김 태수를 만나기 전 상상해보지 않았던 엉뚱한 일을 나는 이튿날 아침 하고 있었다. 1,000그루 커피 묘목 값과 두 쌍의 ‘사향고양이’ 대금을 정 비서가 지정한 은행계좌에 송금했기 때문이다.
김 태수가 내 곁에 등장하고 묘목을 심기까지 걸린 시간이 5일이었다.
다섯째 날에는 미스터 정이 직접 인부까지 동원해서 내 앞으로 도착한 커피 묘목을 내 산골짜기 밭 500여 평에 심어주었다.
“가을 하우스 문제는 여주에서 농장을 해왔고 이번 커피 묘목 3천주씩을 심은 박 사장, 최 사장님이 도움이 될 거야. 정 비서도 ‘사향고양이’가 도착해서 적응하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한국에 머물 테니까 자주 연락하기로 하고...”
키 1m 남짓의 커피 묘목 1천주가 집 가까운 밭 한쪽 5백여 평에 심어지고, 미스터 정이 직접 주문해서 조립한 ‘사향 고양이’ 임시 사육장이 그 곁에 놓이게 되었다.
“겨울 추위 문제도 있고 해서 구리배수관을 잘라다가 땅 속으로 굴을 만들었습니다.”
정 비서는 회장 친구인 내게 최대의 성의를 보이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나무 심기가 끝나자 전에 준비해둔 바비큐 그릴을 처음 꺼내 수고한 인부들까지 불러 삼겹살에 소주와 맥주 파티를 열었다.
인부들이 돌아가자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우리는 바비큐 그릴을 마루로 옮겼다. 장마가 일찍 시작할 것이라던 기상 예보가 맞는 듯 했다.
“비 오는 것 보세요. 나무들 착근이 얼마나 잘 되겠습니까? ‘사향고양이’도 같이 도착했으면 금상첨화인데 야생동물 검역은 좀 시간이 걸리네요. 길어도 3,4일이겠지요.”
정 비서가 잔 세 개에 소주 한 잔씩을 섞은 맥주를 가득씩 따랐다.
“자, 새로운 커피 농장을 위해서.”
태수가 내 잔에 자기 잔을 부딪쳐 왔다.
“비오는 시골 집 툇마루에 앉아 있으니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네....그래도 자네는 시골집에 나무를 심고... 고향을 찾은 셈일세. 자, 축하. ‘까리따’도 같이 합시다.”
빗줄기가 점점 더 세어졌다.
“나무 때는 아궁이도 만들었다며?....참새 구워 먹던 생각이 나.”
태수는 무쇠 솥 쪽에 눈을 주었다가 망연하게 비가 쏟아지는 허공으로 눈을 주었다. 잠시 그의 표정에 쓸쓸함이 번지는 듯 했다.
“회장님. 박 사장과 최 사장님 농장을 잠깐 둘러보고 돌아오시지요.”
“아, 그래. 그렇군.”
태수는 시간을 확인하면서 두 시간만 ‘까리따’와 기다려 달라고 했다.
“너무 조용해서요. 인도네시아 숲속 오두막에 있는 같아요. 스콜 쏟아지는....”
“출퇴근 같은 것 안 하고, 상관도 없고... 이렇게 좀 지내보고 싶었습니다.”
“용기 대단하세요.”
둘은 술을 한 잔씩 더 마시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까리따’는 한국식 아궁이를 처음 본다고 했다. 나뭇가지가 아궁이 속에서 벌겋게 타들어가는 것에 재미를 붙여 그녀는 아궁이 앞을 떠나지 않았다. 빗줄기 속에서 아궁이의 불빛으로 검게 윤기 나는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나는 ‘아!’했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었다. 군대 휴가를 나왔다가 태수가 마을 끝에 살던 젊은 과부를 데리고 도망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보다 10여 살 많았던 가무잡잡하던 여자였다. 그 여자와 얼굴을 부딪치지 않으려고 그 집을 멀리로 돌아다녔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 여자와 부딪치는 것이 두려웠는지 어렴풋하게 짐작이 이제야 되는 듯 했다. 세월이 지난 뒤에도 여자에 대한 상상을 할 때면 늘 그 가무잡잡하던 연상의 여자가 맨 먼저 떠올라 오던 것을....
‘까리따’는 나무 가지를 아궁이에 밀어 넣으면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가끔 올려다보고 했다.
“훗날 혹시 보르네오 시골 마을에 여행 가실 때가 있으면요. 짐승 두개골과 사람 해골을 새끼에 꿰어 매달아놓은 다야크(Dayak) 마을, 롱 하우스에 꼭 한번 들려 보세요. 그리고 오두막에서 하루 주무셔보기도 하구요.”
나무를 심은 지 사흘째 되는 날, 택배회사 기사라면서 산골 집 위치를 알려달라는 전화가 걸려 왔다.
“큰 상자가 두 개인데...살아 있는 짐승 같은데요.”
“예.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프린트 해 놓은 “사향고양이‘의 사진을 꺼냈다.
너구리를 닮은 것 같았다. 여우보다는 짧은 주둥이였지만 회갈색의 털에 묻힌 녀석의 생김새가 귀여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 꼬리 한쪽을 치켜들고 엉덩이에 커피 잔을 대고 있는 코믹한 상표 생각에 쿡 웃음이 나왔다.
택배회사 직원이 산길로 들어오느라고 힘이 들었다며 상자를 내려놓고 돌아 간 다음 마루 위의 휴대폰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오 건우씨 전화 맞는가요?”
상대방이 너무 큰 소리를 질러대어서 내 이름이 아니었으면 잘못 걸려온 전화려니 생각할 번했다.
“네, 그렇습니다만.”
“뭐? 그렇습니다만? 시골에 묻혀있는 농사꾼으로 만만하게 보고 애들 장난도 아니고......”
걸걸거리는 큰 목소리가 너무 황당해서 나는 수화기를 다른 쪽 귀로 옮기면서 물었다.
“누구신데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그래, 나 박 사장이오. 커피 묘목 3천 그루 심은 박 사장, 알겠소? 그래 당신 들, 초등학교 동창끼리 이런 애들 같은 사기를 쳐?”
“무슨 말씀인지?”
“지금 몰라서 되묻는 거요? 당신, 그 김 태수인지 하는 그 친구, 지금 어디 있소? 그 뺀돌이 같은 젊은 놈하고 여우같은 그 여자하고 말이요.”
“김 태수가 뭘 어떻게 했는데요?“
“이 친구, 한 수 떠 뜨네...그래, 그 황금커피를 똥으로 싼다는 ‘사향고양이’인가 하는 게 어째서 도둑고양이로 바뀌었느냐, 하는 거요.”
“도둑고양이라니요?”
나는 순간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어 택배 직원이 내려놓고 간 ‘사향고양이’가 든 나무상자 쪽으로 뛰어 내려갔다. 등 뒤로 마루에 내팽개친 휴대폰 속에서 큰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었다.
작은 케비넷 크기의 나무 상자 한 개의 위쪽 작은 판자 조각을 뜯어냈다.
잿빛 털의 동물 두 마리가 놀랐는지 상자 안쪽으로 몸을 사리며 높은 소리로 야아옹 하고 울기 시작했다. 다른 상자 속의 검은 색에 흰 얼룩이 박힌 놈들 역시 구석 쪽으로 몸을 사렸다.
사진 속의 ‘긴꼬리사향고양이’와는 주둥이 모습이 달랐다. 사진 속의 ‘긴꼬리사향고양이’는 주둥이가 길었고, 담황색이었다.
상자 속 고양이가 높은 소리로 울어대기 시작하면서 빗방울이 다시 들기 시작했다. 너무 번식률이 높아 구제작업을 해야 한다는 소리가 들렸던 도둑고양이 네 마리의 동그란 눈들이 나를 향해서 퍼렇게 불을 뿜는 듯 했다.
수 십 년 전, 너구리 덫에 걸린 누렁이의 눈이 떠오르면서 내 안쪽에 억눌려 있던 웃음덩어리들이 토사물처럼 터져 나왔다.
그 토사물 한쪽에서 그 무렵 ‘옻나무 피리 사건’이 흑백사진처럼 기억의 틈을 비집고 떠 올라왔다.
‘버들피리’를 만들던 봄날 ‘말미잘’이 내게 헌 장갑을 찾아오라고 시킨 일이 있었다.
그는 내가 가져다 준 면장갑을 끼고 씩 한번 웃은 다음, 옻나무 가지를 잘라다가 피리를 만들었다. ‘옻나무 피리’ 세 개를 길에 놓아두고 그는 장갑을 벗어 멀리 던져 버렸다. 셋이었나, 넷이었나, 우리가 신나게 버들피리를 부는 동안 쭈빗쭈빗 우리 곁으로 다가온 아이가 있었다. 용구라는 얼굴이 흰 아이였다. 눈치를 보던 아이에게 ‘말미잘’이 눈으로 ‘옻나무 피리’를 가리키며 턱을 까닥거렸다. 가져도 되? 아이가 물었고,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옻나무 피리를 집어 들고 V자를 그리며 뛰어갔고, 곧 우리의 버들피리 소리 보다 훨씬 맑고 높은 피리소리가 언덕 아래쪽에서 들려 왔다.
사건은 그날 밤 늦어서 일어났다.
천방지축 뛰어노느라고 저녁 숟가락 놓기 바쁘게 곯아 떨어졌던 나는 부엌 쪽에서 들려오는 귀에 익은 아낙네의 악 쓰는 소리에 설핏 잠이 깨었다.
옻나무 피리를 가져갔던 용구 어머니 목소리였다.
용구 고추가 옻이 올라 제 애비 것보다 더 커졌다는 것이었다. 옻나무 피리를 불었던 입술은 돼지주둥이같이 부어서 뒤집어지고, 그 손으로 오줌을 눈 용구 고추 역시 옻이 올라 퉁퉁 불었으니 당장 병원으로 싣고 가던지 하라는 것이었다.
.....그 옻나무 피리, 내가 만든 것 아닌데...., 태수가 만들었다니까.....변명도 소용없이 그날 밤 어머니에게 부지깽이로 얼마나 얻어맞았던지 며칠간 학교 오가는 길을 절뚝이면서 걸어야 했다. 평소 친하지도 않은 용구 녀석이 왜 태수 이름 대신 내 이름을 대었는지 그것은 어른이 된 후에도 안 풀리는 수수께끼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빗방울을 얼굴 가득히 받으면서 참으로 오래간만에 눈물이 나올 만큼 웃어재꼈다.
“야!! 이 ‘말미잘 새끼’야. ‘말미잘에 좃 물린 새끼’야. 야! 똥 장수야!“
악을 쓰는 소리가 빗소리 속에 빨려 들었지만 나는 세 번 네 번 계속해서 악을 썼다. 목이 터지게 친구의 비밀을 허공을 향해 쏟아내자 가슴 속이 후련해지면서 까닭 모르게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눈물이 빗물에 섞여 볼을 타고 흘러 내렸지만 나는 계속해서, 계속해서 친구의 별명을 입 속에서 웅얼거리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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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호 (1942-)
196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하늘을 색칠하라’당선.
장편소설 ‘내 사랑, 풍장“,”열하일기“, ”만적“
소설집 ‘깃발’, ‘새를 위하여’,‘허공중에 배꽃 이파리 하나’
‘속눈썹 한 개 뽑고 나서’ 등.
‘한국소설문학상’, ‘PEN 문학상’,‘ 만우 박영준 문학 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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