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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루나 졸업식
더니든. 오타고 대학교 의대 졸업식장이 축제 분위기였다. 루나가 6년간의 어려운 학업을 잘 끝마치고 결실을 보는 순간.
루나와 함께하는 졸업생은 물론, 학부모의 얼굴에 해맑은 꽃들이 피어났다. 화려한 장미꽃도, 은은한 안개꽃도, 향기 그윽한 아카시아도.
루나가 총장으로부터 수석 졸업 표창패를 받았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졸업식장에 울려 퍼졌다. 루나 엄마와 아빠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민재도 울컥한 마음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드디어 해냈구나. 총장이 루나를 가볍게 포옹하며 어깨를 도닥여 주었다.
루나가 뒤돌아서서 환호하는 학부모 참석자들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루나 얼굴에도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졸업식을 마치고 나온 루나가 엄마 품에 안겨 울었다. 민재가 뒤에서 감동 순간을 사진으로 담았다. 루나 아빠가 모녀를 꼭 껴안았다.
민재의 사진 셔터가 계속 터졌다. 루나가 상패를 엄마 손에 맡기고, 민재 품에 달려들었다. 민재가 루나를 번쩍 안아 들어 올렸다.
“우~와!”
주변에서 환호와 축하 박수가 울려 퍼졌다. 남녀노소 말할 것 없이 다 축하하고 축하받는 가족이 되었다.
졸업식에 축하차 참석한 더니든 시장이 마오리 전통 의상을 입은 채 나왔다. 스코틀랜드 백파이프 악단이 전통 축하곡을 연주했다.
까만 가운을 입은 의대 졸업생들이 사각모를 동시에 하늘 높이 던져 올렸다. 푸른 하늘에 까만 사각모가 다양한 모습으로 조형 아트를 만들었다.
민재가 가방에서 소담스러운 부케 꽃다발을 꺼내 루나에게 안겼다.
“민재 오빠! 이 꽃은 수국화네. 내 침실에서 보이는 그 꽃! 분홍색 수국화.”
“응. 루나야. 지금은 내 방인 그곳에서 바라보는 꽃이야. 꽃들이 따라왔어.”
“어떻게 그걸? 오클랜드에서 더니든까지 가져왔어?”
“물만 있으면 싱싱해서. 물주머니 차고 왔지. 큰 가방에 넣어서.”
루나가 민재 팔짱을 끼고 분홍색 수국 화를 들어 올렸다. 꽃말처럼 발랄한 아가씨도 수국 화가 되었다. 루나 엄마가 셔터를 눌렀다.
“루나야. 이 축제의 날, 정든 교정을 보면 감회가 뭉클하겠어.”
“민재 오빠. 더니든에 있으면서 강의실과 실험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살았는데. 아~. 중앙 도서관은 나의 은신처였어.”
루나가 학교를 떠나기 전, 엄마와 아빠 그리고 민재에게 학교 구경을 시켜주었다. 특징적인 것만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뉴질랜드 최남단 지역, 더니든에 위치한 오타고 대학교는. 뉴질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로 1869년 설립되었어.
더니든 도시는 오타고 대학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육도시로 오타고 시라고도 불러. 오타고 대학생 수가 더니든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대.“
루아 아빠가 루나에게 물었다.
“이 더니든은 오클랜드하고는 완전히 달라 다른 나라 같아.”
“응. 아빠. 남섬에서 크라이스트처치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인구는 12만 명. 뉴질랜드에서 6번째 큰 도시야.
더니든은 남반구의 스코틀랜드로 불려. 그 문화가 짙은 도시야. 남반구의 에든버러래. 네오고딕 양식의 건물들로 아담하고 고풍스러운 고성 도시 같아.“
루나가 이야기해주는 학교와 더니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맛있는 걸 사드리겠다고 루나가 안내한 레스토랑. No. 9 BALMAC.
먼저 온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마침 한 테이블이 비어있어서 넷이서 앉았다. 고풍스러운 실내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창가에 앉아 바라본 바깥 빨간 벽돌 건물이 옛 도시로 온 느낌이었다. 루나 엄마와 아빠가 꽤 좋아하셨다. 두 분이 옛 추억을 이야기했다.
“와! 벌써 주문한 음식이 나왔네. 캬아! 애피타이저로 Grilled 문어, 엄마. 아빠. 이거 정말 맛있어. 언젠가 이걸 여기서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나중에 울 엄마, 아빠와 함께 먹어봐야지 했는데. 이제 그 시간이 와서 기뻐. 물론 민재 오빠하고도.“
어린아이처럼 신나 떠드는 루나가 귀엽게 보였는지. 루나 아빠가 벌써 배부르다는 듯 배를 톡톡 쳤다. 포크로 잡고 나이프로 잘라서 한 입씩 먹었다.
연이어 나온 메인 요리를 들었다. 포크 밸리에 치킨 요리. 곁들여 나온 감자구이. 어니언 링스 튀김. 모두 맛있게 먹었다.
고풍 천장 한번 보고. 바깥 빨간 벽돌 건물도 보고. 함께 먹는 사람 입도 보고. 배부르고 부자가 된 기분. 딱 좋았다.
연한 레드와인을 한잔 씩 한 터에. 루나가 제일 먼저 얼굴이 발갛게 피어났다. 민재가 가만히 손목시계를 내려다봤다.
“손에 문어 요리가 묻어서 잠깐 손 좀 씻고 올게.”
“응. 오빠. 저 구석 왼쪽이야.”
민재가 손을 씻고 나오다. 카운터에 들러 음식값을 계산했다. 꽤 많이 나왔다. 루나 졸업 축하 자리에.
루나 가족을 위해서 좀 썼다. 자리에 앉으니 루나가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했다.
“지금부터. 앞으로 제 계획을 이야기할게요. 졸업 후, 인턴과정이 이어지는데요. 1. 2. 3 지원을 모두 오클랜드로 했어요.
오클랜드 병원. 노스 쇼어 병원. 와이타케레 병원으로요. 국내에서 가장 큰 병원이기도 하고. 집에서 출근하며 엄마 밥 먹고 싶어서요.“
“그래. 우리 루나. 엄마가 맛있는 것 매일 해줄게. 루나 시집 갈 때까지는 그 낙으로 살아야지. 시집가서 손주 나으면 손주 보는 재미로도 살 거고.”
“치~. 엄마도. 이 자리서 웬 시집 이야기래. 나. 시집 안 가. 병원 생활하며 공부를 더 할 거야. 소아정신과 박사 될 때까지는.”
민재가 루나와 루나 엄마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루나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 아빠가 민재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웃었다.
“루나야. 내가 택시 운전하면서 보니까. 오클랜드 병원 뒤쪽에 스페셜 병원이 하나 있던데. 별관 같았어. 그 이름이 뭐더라. 아. 맞아. 스타쉽 하스피탈.
어린이 전문 종합병원인데, 응급 환자 대응 시스템이 잘 되어있던데. 오클랜드 전국과 남태평양 국가로부터 어린 환자가 몰려온대.
에어앰뷸런스 헬기 서비스도 하던데. 심장질환부터 간 이식 수술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의료 서비스를 하더라고.
공항 가는 손님들도 많아서 자주 가게 돼. 외부 사업체나 단체에서 이곳에 도네이션도 엄청 많이 하던데.“
“민재 오빠는 모르는 게 없네. 모르는 게 대체 뭐야?”
“응. 루나. 네 마음. 허허.”
“오빠는. 엄마 아빠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어. 크크.”
루나 엄마가 옆에서 빙그레 웃었다. 잘 논다. 너희들. 뭐? 허허. 크크.
“루나. 네가 소아 정신과. 전공을 한 대니까. 어린이와 연관된 것만 봐도 자꾸 생각이 나도 연결이 되는 거야. 스타쉽 하스피탈도.”
“오빠. 그러잖아도 그곳 스타쉽 하스피탈에서 많은 어린이 만나고 싶어. 외상보다 정신적으로 아파하는 아이들 보며.
내 전공을 적용해 치료를 해보려고. 처음에 오클랜드 병원에 근무하다가. 다음에 그곳 스타쉽 하스피탈에 배치되면 좋겠어. 3818
어린이 만나는 일이라면 다 해보려고. 참. 오빠. 한국학교. 새로 옮겼다며. 거기에 유치원 과정 교사 자리 혹시 나면 알려줘.“
“아. 그러고 보니까. 다음 달, 호주로 떠나는 분. 유치원 선생이 있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나한테 부탁하던데. 그 자리 맡아 가르칠 선생님을.‘
“그래서. 오빠가 뭐랬어? 나 여기 있는데.”
“당연하지. 어린이. 유치원생. 하면 누가 생각나겠어? 우리 루나지.”
“그럼. 내 이야기 해뒀어?”
민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 얼굴에 분홍색 수국 화가 피어났다. 루나 엄마도 아빠도 흐뭇하게 웃으셨다.
민재가 다시 손목시계를 봤다. 이제는 일어날 시간이 되었네. 공항으로 출발할 때가 가까워졌다. 루나 엄마와 아빠를 보며 이야기했다.
“저는 이제 일어나 봐야겠어요. 오클랜드로 가는 비행기 시각이 얼마 안 남았어요. 두 분과 루나랑 함께한 오늘 루나 졸업식.
정말 기쁘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말씀하신 대로 두 분은 루나랑 남섬 여행하며 더 즐겁고 오붓한 가족 시간 가지셔요.
루나도 마음 푹 놓고 엄마 아빠랑 행복한 시간 갖고. 머잖아 오클랜드에서
만나. 마음껏 누려봐. 지금. 자유를. 행복을.“
민재가 일어서자, 루나 아빠가 고맙다며 손을 내밀었다. 신뢰감이 느껴졌다. 루나 엄마도 민재 손을 잡았다. 따뜻한 정감이 물씬 풍겼다.
민재가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루나가 따라 나왔다. 바로 민재 품에 안겼다. 민재가 루나 등을 톡톡 두드려 주었다.
“박사님. 이제 들어가시지요. 이제부턴 부모님 모실 시간입니다. 저는 이제 가보렵니다. 저도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운수업계 회장까지 가려면 거쳐야 할 단계와 관문이 의외로 많아요. 택시 운영 업무를 더 쌓고.
자금 확보도 더 해야 하고. 신규 택시 회사 만들고. 다음 단계로 버스 업계까지. 박사님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아. 회장님. 제가 회장님 하는 일에 뭘 못하겠습니까. 말씀만 하시지요. 전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서로 돕고 살 운명 아닙니까. 우리는.
제가 박사 되고. 나중에 어린이 병원 원장을 할 텐데요. 회장님께서 우리 어린이 병원에 큰 도네이션을 부탁드립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박사님. 허허.“
“저는 회장님만 믿고 갑니다. 크크.”
민재가 휴대폰으로 더니든 택시를 불렀다. 제니가 하나 궁금한 게 있다며. 민재 가까이로 더 다가와 물어보았다.
“민재 오빠. 저 번에 엄마를 통해 주고 간 쿠션 있잖아. 그거 잘 쓰고 있어?
오빠 생각하고 내가 손수 만든 건데. 침실에 있어? 내 생각하며 끼고 자?“
“어? 그 쿠션. 연두색 쿠션. 너네 집으로 이사하던 날. 네 방. 아니 지금은 내방에. 제일 먼저 그 쿠션을 먼저 갖다 놨거든. 엄마 아빠도 보셨어.
그날 제니가 도와주러 왔어. 루나 엄마랑 함께 그 방에 들어갔어. 제니가 그 쿠션을 집어 들고 루나 엄마한테 물었어.
루나가 이 쿠션을 놓고 갔나 봐요. 루나 엄마가 엉겁결에 대답했지. 어. 그런가. 내가 가지고 있어야겠네.
그때부터 제니가 그 쿠션에 눈을 못 떼더라고. 그 쿠션. 지금은 내 방에 없어. 사라졌어.”
“뭐라고? 오빠! 그게 어떻게 만든 쿠션인데. 잃어버려? 제니 언니 손에.”
루나가 작은 주먹 손으로 민재 등을 마구 두드렸다. 고양이처럼 앙칼진 눈으로 민재를 쏘아보면서. 힘을 더 가했다.
민재가 반항 없이 루나 주먹 손 방망이질을 다 받아들였다. 식당 안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다, 루나 엄마가 뛰어나왔다.
“루나야. 웬일이야? 민재 오빠를. 그렇게 세게 때리고. 어라? 울기까지 하고.”
그때 더니든 택시 한 대가 와서 차 문을 열었다. 민재 가방을 트렁크에 넣었다. 민재가 바로 택시에 탔다. 택시가 공항을 향해 떠나갔다.
민재가 창유리를 내리고. 루나와 루나 엄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뒤늦게 루나 아빠가 나와 민재한테 손을 들어 보였다.
망연하게 서 있는 루나를 루나 엄마가 감싸 안았다. 루나로부터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은 루나 엄마가 갑자기 루나 등을 두드렸다.
“아이고. 이 맹꽁이. 그때 제니가 그랬어. 나도 부담되더라고. 그 뒤로 그 쿠션이 네 방에서 사라졌어. 나중에 내가 찾았지.”
“엄마. 어디야? 제니 언니 집? 제니 언니가 민재 오빠 살던 집에 렌트 산다며.”
“아니. 민재 운전석. 쿠션으로. 운전할 때마다 등에 대고 다니더라. 더 어떻게 해주랴?
루나야. 넌. 다 확인도 않고 민재 오빠를 그렇게 두들겨 패니?
바쁜 사람이 어렵게 시간 내서. 네가 쓰던 방에서 보이는 수국꽃까지 물주머니에 싸서 들고 와. 네 졸업식 축하까지 해주었는데.
조금 전 식대도 다 계산하고 갔더라. 넌 오빠한테 사람을 배워야 해.
넌, 의대 수석 졸업은 했어도, 아직 멀었어. 인생 공부는 언제 할래?“
루나가 엄마를 껴안고 펑펑 울었다. 울면서도 웃으며 슬프게 외쳤다.
“민재 오빠! 미안해. 내가 잘 못 했어. 그 마음도 모르고. 흑흑. 오빠!” *
63화 끝(5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