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13일 78만8천 명 중 한 명.
오전 4시 30분에 기상했다. 뭔 걱정이 그리 많은지 새벽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일찍부터 일어나 랑카위 다음 항로들을 확인중이다. 아무래도 랑카위에서 한방에 코타키나발루까지 가기엔 무리가 있다. 나 혼자가 아니라 4명이 움직이니 물이 제일 문제다. 중간에 코칭마리나(Marina Kuching, Sarawak )를 확인해본다. 그 이후엔 코타키나발루를 패스하고 coron에 앵커링 할까? 그럼 물과 디젤유 보충은? 내친김에 타이완까지 확인해본다. 주말이라 여의치 않다. 타이완에 거주 중이신 한국 분께 귀찮게 해드리고 있다. 너무 감사한일이다.
오전 7시 스리랑카 지인 G 에게서 카톡이 와 있다. G는 내가 포천에서 비닐 공장 관리자할 적에 외노자로 와 있던 5명의 스리랑카인 중의 한명이다. 싹싹하고 일을 잘 했다. 그런데 그 공장주가 그야말로 일만 부려 먹는 스타일이라,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그들을 내 돈 들여 삼겹살 파티하고, 주말에 비무장지대 관광이나 한강에서 요트도 태워 주고, 데리고 다니며 비자 문제들을 해결해 주었다. 그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이 요구에 귀를 기울였다. 내게 어떤 이익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게 외국 와서 고생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G가 스리랑카에 돌아간 뒤에도 연락을 계속하고 있었다.
오만에서 스리랑카에 간다고 알렸을 때 답이 없었다. 도착해서 카톡 하니, 지금 다시 한국가려고 공부중이라 수업 끝나고 연락한다고 하고, 오후 9시에 연락이 왔다. 어쩐지 내가 귀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아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 서로 귀찮게 할 이유가 없다. G가 오늘 보낸 문자는, 내가 콜롬보에 와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한다. 어쩌지? 지금 정황상 콜롬보까지 갈 시간적인 여유는 없다,
오전 8시 50분. 취사용 가스를 받으러 마리나 정문에 갔다. 폴의 패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보증금 3,000 루피 먼저 냈는데, 3일 만에 가스통을 채워 왔다. 참고로 한국에서는 3.5Kg 한통에 6,000원(1,396 루피)이다. 손으로 적은 계산서를 내민다. 한통에 8,000루피(34,376원)다. 그래서 가스 7Kg에 16,000루피(68,761원)란다. 기가 차다. 나는 한국에서는 1,396 루피라고 보여준다. 난 가스도 필요 없고 통도 필요 없으니, 너희가 다 가져 가라고 한다. 당황 하는 게 보인다. 내가 분명히 몇 번이나 가격이 얼마냐고 물었다. 그러나 너희가 답을 안했다. 만약 이렇게 비싼 줄 알았으면 난 안 샀을 거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니 난 가스통까지 다 너희 줄 테니 가져가라. 난 이렇게 비싼 가스를 쓸 순 없다. 유럽에서부터 몇 번이나 가스를 채워왔지만 이렇게 비싼 가스는 처음이다. 너희가 세계에서 제일 비싸다.
그러는 와중에 내 음성이 높아졌나보다. 나는 성질이 급하고 성격도 좋지 않다. 그러나 사람을 물지는 않는다. 폴의 패거리가 음성 낮추라며, 이러다가 마리나 관계자가 온다고 쩔쩔맨다. 내가 왜? 오거나 말거나! 그럼 통까지 다 너희 가지고 가라. 빠이! 하고 돌아서 오려는데, 12,000루피만 내란다. 아냐 됐어. 잘 가. 그럼 얼마까지 줄 수 있냐고 한다. 난 지갑을 열어 보여준다. 4,000루피가 있다. 보증금 3,000 루피까지 총 7,000루피(3만원)다. 그래도 비싸긴 하지만 이거 받고 가든가, 아니면 나는 더 필요 없으니 통까지 다 너희 가져라. 하고 돌아선다. 그러니까, 7,000 루피를 받는단다. 알겠다고 하고 나는 가스통을 가지고 돌아왔다.
시애틀 사는 여동생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까, 어려운 사람들인데 그냥 주지 그랬냐고 한다. 물론 어려운 사람들에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12,000원 짜리를 68,000원 주고는 못 사겠다. 그리고 내가 미리 가격을 여러 번 물어 봤는데 답도 안했다. 대부분의 스리랑카 사람들은 참 선량하다. 친절하고 잘 웃는다. 그런데 돈 맛을 본 일부는 참 많이 망가져 보인다. 기분 영 씁쓸하다. 어제와 오늘은 어쩐지 좀 실패한 날들 같네. 스리랑카는 좋은데 마리나 근방 사람들은 어쩐지 좀 넌덜머리난다. 이집트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그렇다.
오후에 호주에서 온 옆 배에 놀러 갔다. 선실도 구경하고 지부티와 수단 수아킨과 이집트에 대해 알려주고 함께 수다 떨었다. 그는 현재 66세로 은퇴 후 세계일주중이다. 호주 퍼스에서 Galle 까지 4주 걸렸다고 한다. 이제 몰디브로 갔다가 지부티, 수단 수아킨, 수에즈, 키프러스 또는 크레타로 갈 예정이다. 바람도 맞고 좋은 계절이다. 내가 볼 때 그는 완벽한 인생이다. 열심히 일하고 은퇴 후, 좋은 요트를 사서 아내와 함께 세계일주 세일링. 도대체 세계인구의 몇 %가 이런 노후를 맞을 수 있을까? 싱겁게 계산 한번 해본다. 2021년도 세계인구 78.8억 명. 그중 본격적으로 세계일주 세일링 하는 사람들 10,000명. 그럼 전 세계 0.00013% 안에 들어간다는 거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78만8천 명 중 1명이다. 그는 전 세계와 바람과 전 세계의 바다를 보며 황혼을 맞는다. 사람이 이렇게 늙어야지.
오후 6시 존의 팀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러갔다. 가는 중에 Galle 시내에 있는 T셔츠 가게에 들렀다. 한 벌에 2,100 루피(9,024원) 이다. 나는 3벌을 샀다. 입다 버리면 된다. 거기서부터 걸어서 Fort 까지 간다. 500년 전 독일인들이 쌓은 성채 안에 한국으로 치면 압구정동이 있다. 스리랑카 사람들보다 서양인들이 더 많은 곳이다. 식사는 한 끼에 1,800~2,100 루피. 스리랑카에서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면 꿈도 못 꾸는 곳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길 잘한 순간이다. 한 끼 만원 식사는 한국에서 흔한 것 아닌가?
저녁식사 중에 G에게서 문자가 왔다. 한국서부터 아프던 디스크가 여기서 터져 한 달 전에 수술을 한 거였다. 운전도 못하고 몸을 움직이기 어렵다는 거다. 그런 거면 진작 말을 했어야지, 나는 그걸 모르고 혼자 섭섭해 했다. 어쩌지? 수술하고 몸도 아프다는데, 갑자기 미안하고 생각이 많아 졌다.
오후 11시. 내일은 오전 10시에 만나 존 일행과 다 같이 Galle 시내 관광하기로 했다.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