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 (千字文) 61 _ 杜槀鐘隸 漆書壁經
두고종례 칠서벽경
杜槀鐘隸 漆書壁經
<杜 막을 두 / 槀(稿)볓짚 고 / 鐘 쇠북 종 / 隸 서체(종) 예
漆 옻칠 칠 / 書 글 서 / 壁 벽 벽 / 經 날실(경서) 경>
두조(杜)의 초서(槀)와 종요(鐘)의 예서(隸)가 있고,
옻칠(漆)한 죽간 글(書)의 경전(經)이 벽 속(壁)에서 발견되었다.
▶ 한자공
杜 : 나무 목木과 흙 토土(흙덩이가 그득히 쌓인 모습)가 결합. 나무로 막는다는 데서 ‘막다’.
槀 : 높을 고高 나무목木. 나무가 높이 올라가면 얇아지고 '마르다'. 초서도 글체도 얇다. 稿 : 벼화禾로 볏짚을 높이 쌓았다는 데서 ‘볏짚’. 볏짚이 쌓인 것에 비유하여 ‘초고’.
鐘 : 쇠 금金과 아이 동童. 마을에 서 있는 쇠로 된 종이라는 데서 ‘쇠북’을 뜻한다. 쇠북 종鍾과 같은 자. 쇠북은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기도 했다. 시간에 맞춰 종소리를 울려 현재 시각을 알려줬던 것이다. 중국어로 시간을 물어볼 때 ‘現在几點鐘?(지금 종을 몇 번 쳤습니까?)’이라고 물어본다.
隸 : 나무 목木, 보일 시示, 미칠 이隶. 손으로 나무(땔감)를 들고 있는 모습에서 ‘종’.
漆 : 물 수氵와 옻 칠桼(가지가 뻗어있는 옻나무). 옻은 색이 어두워 ‘검다’.
書 : 붓 율聿(손으로 붓을 쥔 모습)과 가로 왈曰. 말을 글로 적어낸다는 데서 ‘글’.
壁 : 임금 벽辟과 흙 토土. 흙을 쌓아 올려 안과 밖을 구별한다는 ‘벽’.
經 : 실 사糸와 물줄기 경巠(베틀 사이로 날실이 지나가는 모습). 베틀 사이로 날실이 지나간다는 데서 ‘지나다’. 베 짜듯이 기초를 닦는다는 데서 ‘다스리다.글’.
▶ 해설
서적은 글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한자 글자는 황제때 창힐이 새 발자국 모양을 보고 만들었다는 설과 은나라 갑골문자가 한자의 기원이라는 설이 있다.
한자 서체로는 후한 초기의 두조杜操가 초서草書를 만들었고, 진秦나라의 예인隷人(하급관리) 정막程邈이 예서隷書를 만들었다 한다.
영어 알파벳의 필기체처럼 흘려쓰는 글자를 초서라 한다. 초서는 빨리 쓰기위해 글자 모양을 간략화했는데 현대 중국 간체자도 초서에서 많이 따왔다.
장기판의 초(楚)나라 장기알 글자가 초서체로 쓰여 있기 때문에 초서체를 '초나라의 글자체'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게 아니다. 오히려 초나라보다 후대인 후한대 당시에 유행하던 예서(隸書)를 속기로 흘려 쓰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즉, 초서는 행서보다 추상화된 형태이나 성립시기는 행서보다 오히려 빠르다.
한자는 획수 하나 하나 똑바로 적은 것을 해서라 하는데, 해서는 느릿한 걸음, 행서는 일반적인 걸음, 초서는 빠른 걸음이라는 표현이 있다.
예서(隷書)는 전서 즉 소전체를 편하게 쓰기 위하여 다시 간추린 서체이다. 현재 한자체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는 서체로, 예서에서 본격적으로 해서, 행서, 초서의 모체가 나왔다.
진시황 시대에 정막(程邈)이라는 인물이 예서 3천 자를 만들어 진시황에게 진상했다고 사서에 나온다. '노예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쉬운 서체' 라는 뜻에서 예서라고 이름 붙였다는 설도 있고, 정막이 죄수 신분일 적에 만든 서체라 예서라고 이름 붙였다는 설도 있다. 예서는 특유의 반듯하고 고풍스러운 디자인 덕분에 서예가들에게 인기가 많은 서체이다.
진시황때 유학 서적을 모두 불태우고 유학자를 생매장한 분서갱유(焚書坑儒) 사건으로 일반인들은 서적을 보관할 수 없었다. 이후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 노魯나라 공왕恭王이 공자孔子의 사당을 수리하다가 옛 벽을 헐어『서경書經』를 얻었는데, 죽간竹簡에 옻칠하여 쓴 것이다. 벽 속에서 얻었으므로 벽경壁經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