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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연구
김동권(용인송담대학교수)
1. 들어가기
문학과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한 방법이 있다. 작가나 작품 연구에 있어서나, 문학사 고찰에 있어서도 장르간의 연관성 문제는 중요한 사안이라 하겠다. 여러 장르를 섭렵한 작가의 경우에 작가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탈장르적인 연구가 필요하듯이, 같은 제재가 다양한 장르의 형태로 나타났을 경우에도 이에 대한 연구는 장르간의 연관성을 가지고 접근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땅에 연극이 들어와 토착화되던 시기에 이입과정에서 나타나는 신극과 신파라 불리우던 대중극의 문제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용어의 문제가 아닌 양식의 문제로서 시대적 상황과 연관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아직 완벽한 1920-30년대 대중극에 대한 작품 발굴과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이를 단정하기보다는 폭넓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시기에 신파라고 하는 대중적인 양식이 연극과 영화, 그리고 가극과 문학 등의 다양한 장르의 형태로 나타나 일제 식민지하를 겪은 농민의 정서를 대변해 주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장르의 다양성 뿐만아니라 그 자체가 지니는 상징적인 면모도 있다. 아리랑은 전통 민요인 아리랑을 매개로 하고 있으면서, 이를 바탕으로 가극과 연극, 영화 등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전통 민요인 아리랑이 상황에 따라 가변적인 모습으로 연극과 영화에 모티프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1920년대 말과 1930년대 초반이다. 그리고 30년대 중반 이후에는 국내에서 대중극의 모습에서 직접 나타나지 않는다. 이때부터는 중국 등 국외에서 다양한 장르형태로 항일의 수단으로 나타남을 볼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1926년에 시작된 나운규원작 영화 「아리랑」에서부터 1932년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희곡 「눈물젖은 아리랑 고개」 (부제; 향토극 아리랑 고개)을 대상으로 연극과 영화 사이에 나타나는 내용의 상관관계와 아리랑과 아리랑고개의 상징적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텍스트로 삼고자하는 자료는 다음과 같다.
1. 「아리랑」 ; 나운규 원작, 문일 편, 영화소설 ‘아리랑’ (1929년, 박문서관), 1926년 나운규 원작임
2. 영화설명, 「아리랑」 (Regal C107 A-B) 나운규 원작, 한동호 설명, 유성기음반
3. 「아리랑 고개」 , 박승희 작 , 박진 구성, 1929년 , 1막
4. 극 :「아리랑 고개」(Columbia 40251 AB, 이백수, 석금성, 1931. 10, ) ,유성기 음반
5. 「눈물젖은 아리랑 고개」 (부제; 향토극 아리랑 고개) 2막 *이 작품은 아단문화재단 소장본이다. 강의영작으로 되어 있고, 1932년 1월 28일 쓰여진 것으로 추정.
6. 극 : 「지나간 그날」 ; 영화 아리랑에서(Polydor 19091 AB, 왕평, 신일선, 박제행, 1933. 10), 유성기 음반
여기에서 유성기음반이라는 것은 김만수와 최동현이 유성기 음반에서 발취한 자료를 모아 만든 자료집에 수록된 것을 말한다.(김만수, 최동현, 「일제강점기 유성기음반속의 극 영화」, 태학사) 연극 「아리랑고개」는 박승희 원작으로 박진이 재구성한 것이고, 나운규의 「아리랑」은 문일 편집한 것이다. 이들 작품의 특성은 원작이기보다는 재구성한 것으로 원작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눈물젖은 아리랑 고개」 (부제; 향토극 아리랑 고개)는 강의영작으로, 이 작품은 아단문화재단에 소장되어 있으며 필자가 필사해 온 것이다.
이들 작품은 민요인 아리랑을 바탕으로 영화에 관련된 것 3편과 연극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는 3편이고, 유성기 음반에 기초한 작품이 3편이다.
본고는 이들 작품을 대상으로 연극과 영화의 내용상의 문제로 등장인물과 내용 구성의 상호 연관성을 살펴보고, 작품상에 나타나는 아리랑과 아리랑고개의 상징성 문제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2. 작품상의 등장인물
연구 대상 작품 중에 나운규 원작의 「아리랑」이 연도상 1926년으로 선행작품이기 때문에 먼저 영화 속의 작중인물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영화소설「아리랑」에 나오는 주요인물은 다음과 같다.
「아리랑」등장인물 ;
최영진 (나운규) ; 사립학교 2학년 퇴학하고 집에 와서 철학 공부하다가 미쳤음.
최영희(신일선) ; 영진 동생, 영진 친구 현구를 좋아함.
그의 아버지(이규호)
윤현구(남궁운) ; 영진 친구, 대학생
오기호(주인규) ; 고리대금업자 천상민의 청지기
천상민(홍명선) ; 돈많고 세력많고 호랑영감이라 불리는 대지주
박선생(김갑식) ; 마을에서 야학인 학교를 운영함
영화 속의 인물을 보면 최영진이라는 철학공부하다 미친 청년과 천상민이라는 지주를 배경으로 하는 오기호와의 대립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최영진의 여동생 영희와 친구 윤현구의 사랑에 오기호가 등장하여 남녀간의 애정의 삼각관계를 보여주지만 이 역시 에피소드에 그치고 주된 인물간의 대립은 대지주인 천상민의 대리인인 오기호와 최영진이다. 대립에 있어서 구체적인 내용은 표출되지 않지만 이면에 나타나는 바는 최영진이 미친 이유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민요 아리랑의 상징적 의미와 관계 있음을 보여준다,
박선생과 윤현구는 막연하게 동네사람들이 존경하고 좋아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으며, 이들이 구체적인 활동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당시의 계몽소설에 나타나는 대학생의 농촌계몽이나 박선생의 야학의 계몽성 등이 나타나지 않는다.
인물간의 대립구조가 복합적인 듯하나 실상은 하나의 단일한 구조로 나타난다. 고리대금업자이자 지주인 천상민의 대리인인 오기호와 윤현구의 갈등을 보여준다.
영화설명, 「아리랑」 나운규 원작, 한동호 설명 유성기음반, 등장인물 ;
박선생, 현구, 영진, 영희 , 기호, 천상민, 천재일, 해신
유성기 영화 해설에서는 오기호를 살해한 영진이 예심에서 풀려나 천상민으로 인해 고향을 떠난 아버지와 누이동생 영희를 찾아떠난 1년후의 상황까지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인물간의 관계를 보면 일년전이나 일년 후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영진 애인인 해신이 경관에게 잡혀가는데 이는 천상민의 양아들 천재일 때문이다. 그래서 영진이 천상만을 죽이고 피신하다 누이동생을 만난다. 그런데 아버지가 바로 영진이 나타나기 직전에 임종을 하셨단다. 영진은 다시 도망을 가다 돌맹이에 부딪겨서 정신 흐려진다. 이것 역시 인물간의 대립은 천상민의 대리인 천재일과 영진으로 되어있다. 영진의 애인 해신의 등장은 갈등구조의 연장을 위한 매개체로서 하나의 상황설정에 따른 도구일뿐 다른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겠다. 다음은 영화 아리랑의 일부 장면을 회상하는 내용을 보기로 하겠다.
극 : 「지나간 그날」 ; 영화 아리랑에서; 1933. 10 유성기 음반, 왕평, 신일선, 박제행, 등장인물;
영진, 박선생, 영순
이 작품은 전체 내용이 아니라 영화 속의 1 -2 장면을 회상하는 수준이다. 카츄샤의 7년만에 재회하는 장면을 영진이 7년만에 고향에 돌아오는 장면으로 두 장면의 내용상의 7년만의 방문이라는 동질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여기에서 영진은 영순과 결혼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으며, 아내로부터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 아버지는 죽고, 여동생은 행방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미쳤다고 부르짖는다.
이들 영화 속의 등장인물을 보면 원작인 나운규의 「아리랑」에 가까운 영화소설 「아리랑」의 등장인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유성기 음반 속에 나오는 아리랑과 해설 속의 인물들은 내용상 같은 인물이 등장하고 있으며 상호간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유성기 음반 속에서는 오기호를 살해한 후에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상황이 이어져서 영진이 출옥한 이후의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인물간의 갈등관계도 영진과 천상민의 대리인으로 나타난다. 이는 천상민이 지주이고 악덕사채업자라는 전형적인 인물이고, 대립되는 인물인 영진이 힘없는 농민의 자식이라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는 아리랑과 아리랑 고개의 상징적 의미와 함께 식민지하의 무기력한 농민의 삶과 이에 대해 분연히 맞서는 저항의식이 내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연극 속에 나타나는 등장인물에 대해 특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1929년에 공연된 박승희의 「아리랑 고개」를 보겠다.
「아리랑 고개」 , 박승희 작 , 박진 구성, 1929년 11월 1일, 1막, 등장인물 ;
길용(총각) , 길용부 , 봉이(처녀), 봉이부, 일인 (고리대금업자), 거간 (일인에 붙어사는 사람), 동네사람, 서사자(해설자)
극중에 등장인물은 길용이와 길용 아버지, 봉이와 봉이 아버지, 그리고 고리대금업자 일본인과 일본인에 붙어서 먹고사는 거간 등이다. 길용과 봉이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이다. 이제 길용이네는 고리대금업자 일본인에게 땅을 빼앗기고 북간도로 떠난다. 여기에서는 일본인의 토지 수탈과정이 엿보인다. 돈이 필요하면 가져다 쓰라고 권하는 일본인 사채업자의 말을 통해 돈을 빌려주고 갚을 능력이 없는 경우에 땅을 빼앗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물간의 갈등구조가 길용이네로 표상되는 이 땅의 힘없는 농민과 고리대금업자인 일본인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대립구조는 유성기 음반의 아리랑고개에서도 볼 수 있다.
극 :「아리랑 고개」( 이백수, 석금성, 1931. 10, ) ,유성기 음반 ; 등장인물
길남 부친, 길남, 복례
사랑하는 사이인 길남과 복례가 헤어져야 한다. 길남네가 고향을 떠나려고 세간을 판다. 같은 마을의 종수네는 함경도로 떠난다고 한다. 춘삼월에 다시 만나자며 헤어진다. 이 작품의 인물간의 대립 상황은 고향을 떠나야하는 길남네와 길남네를 떠나게 만든 세력간의 구조로 되어 있다. 길남네를 떠나게 만든 인물은 등장하지 않지만 같은 마을에 사는 종수네도 떠난다는 배경 설정을 통해 고향을 등지는 일이 동시대의 공통된 문제임을 반증해 준다.
다음은 「눈물젖은 아리랑 고개」 (부제; 향토극 아리랑 고개) 에 나오는 인물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 작품은 아단문화재단 소장본으로 필자가 필사해 온 것이다.
「눈물젖은 아리랑 고개」 (부제; 향토극 아리랑 고개) 2막, 강의영작, 1932년 1월 28일 쓰여진 것으로 추정 , 등장인물 ;
영진 ; 미친사람, 25세, 영감 ; 그의 아버지 57세, 영희 ; 그의 동생 17세, 현구 ; 서울 대학생 23세 , 오기호 ; 재산 가차인 31세
이 작품은 2막으로 되어있다. 등장인물을 보면 영화소설 아리랑에 나오는 인물과 구성이 거의 같다. 다만 영화 소설이 무성 영화의 변사가 해설하듯이 구성되어 있는 반면에, 이 작품은 희곡적 형식을 갖추고 있어서 연극으로 공연하기에 적합하게 되어 있다. 인물간의 대립 상황을 보면 미친사람인 영진이와 오기호가 갈등하는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영화소설 아리랑에 나오던 악덕고리대금업자이자 지주인 천상민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들의 대립구도가 약화된 형태를 보여준다.
이들 작품은 제작연도로 보았을 때 나운규 원작의 영화「 아리랑」과 강의영작으로 추정되는「눈물젖은 아리랑 고개」 (부제; 향토극 아리랑 고개)는 내용상 동일한 작품을 바탕으로 장르 형식이 다르게 표현된 것임을 등장인물의 대립구조를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러면 박승희 원작의 연극 「아리랑 고개」와 유성기 음반에 등장하는 것은 다른 아리랑고개와 상이한 작품이냐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이는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아야 하는 점이고, 나아가 작품상에 나타나는 아리랑과 아리랑고개의 상징성과도 연관된 사항으로 볼 수 있다.
3. 작품의 내용 구성과 주제
먼저 나운규 원작 영화소설 「아리랑」에 나타나는 내용 구성과 주제를 보기로 하겠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작품을 몇 개의 장면 단위로 나누어서 보겠다.
장면 단위 내용 ;
장면1 ; 영진을 무서워하는 기호가 영진을 피해 집으로 들어가면서 하인에게 잡으라 한다. 영진 천가네 하인에게 잡혀옴.
장면2 ; 우편배달부가 아리랑고개를 넘어온다. 박선생 등장 편지받음. 5년전 떠난 대학생 윤현구 온다는 소식.
장면3 ; 천가네 하인에게 결박당해 온 영진을 부친이 때리고 영희가 이를 말림. 박선생 나타나 영진에게 현구가 온다는 사실을 알림.
장면4 ; 박선생은 현구 환영 준비함. 영진아버지는 천가에게 끌려가 모욕을 당함.
장면5 ; 영진아버지에게 현금 300원을 내일안으로 갚지 못하면 차압하겠다고 함. 기호가 영희와 혼인을 조건으로 돈문제 해결할 수 있음을 말함.
장면6 ; 현구 돌아옴. 연진이 미친 것을 보고 실망함. 기호 동네사람에게 화풀이함.
장면7 ; 저녁때 저녁상을 받으면서 영희와 현구 만남. 현구가 사온 선물을 영희에게 준다.
영희와 현구를 놓고 영진이 진시황이야기를 함. 영진이 영희와 현구가 껴안게 만든 후에 너의 세계로 가라고 한 후에 나감.
장면8 ; 현구가 영희에게 카츄샤 이야기를 함. 기호가 등장하여 동네아이를 시켜 영진아버지를 불러내어 빚 상환과 영희와의 결혼문제를 놓고 협박하지만 거절당함.
장면9 ; 현진과 현구, 영희가 아리랑 타령 노래를 부름. 모두가 즐겁게 뛰노는 날이다. 영진아버지 밖으로 외출.
장면10 ; 영진의 집에 영희만 남고 모두다 외출했다. 마을 사람들이 줄겁게 노래하고 춤추며 즐겁게 뛰노는 날. 기호는 사람이 없는 틈을 이용해 영희를 납치하려함. 현구가 돌아와 기호와 싸운다. 현구가 위험에 빠졌을 때 영진이 이를 보고 살인을 함. 경관에게 붙잡힌다.
장면11 ; 죽음의 길을 가는 영진이 잡혀가면서 보내는 사람인 현구와 영희 등에게 아리랑 노래를 불러달라고 한다.
이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면 등장인물에서 언급했듯이 박선생과 대학생 현구 등의 등장을 통해 자칫 농촌계몽소설에 나타나는 상투적인 계몽적인 문제로 화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염려도 있으나 이러한 점은 이들에 대한 성격을 규정할 구체적인 묘사가 배제되고 있다. 그리고 카츄샤의 이야기를 통해 대학생 현구와 영희의 사랑이야기가 오기호와의 삼각관계로 인해 주갈등을 형성하여 통속적인 사랑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도 진시황 이야기와 전통민요 아리랑의 상징적인 요소로 주 갈등이 형성되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하는 주제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은 유성기음반에 나타나는 영화 「아리랑」에서도 엿볼 수 있는 사항이다.
장면단위 내용
장면1 ; 박선생 등장, 현구 돌아온다는 사실을 영진과 영희에게 알림.
장면2 ; 현구가 박선생과 마을사람들과 함께 영진네 도착. 현구, 영진이 미친 것을 한탄. 영희와 현구 서로 좋아함.
장면3 ; 기호가 집안에 사람이 없는 틈을 이용해 영희를 범하려 할 때 현구가 돌아와 싸움. 영진이 이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기호와 그의 부하와 싸우다 살해하고 잡혀감.
장면4 ; 예심에서 출옥한 영진이 고향에 돌아왔다가 천상민 때문에 고향을 떠난 아버지와 누이동생을 찾아 떠남.
장면5 ; 1년후, 영진이 사랑하는 해신이 경관에게 잡혀감. 이는 천상민의 양자인 천재일의 간계 때문임을 안다.
장면6 ; 천재일을 죽이고 쫒기던 영진이 피신한 집에서 영희를 만남. 아버지가 방금 전에 돌아가셨음을 안다. 영진 다시 도망가다 돌맹이에 부딪쳐 정신흐려짐.
유성기음반에 아리랑 내용은 영화소설보다 시간상 길이가 늘어나 있다. 영진이 오기호를 살해하고 경관에 붙잡히는 장면이 영화소설이라면 유성기 음반은 여기에서 나아가 다시 풀려난 영진의 1년후의 삶까지 보여준다. 그러나 내용상의 길이의 연장은 이야기는 다를다할 수 있으나 내용상 1년전에 있었던 살인사건에서 나타난 바와 동일하게 영진과 천상민으로 대표되는 인물의 반복되는 갈등구조를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1년전에 천상민의 대리인이 오기호였다면, 1년후의 대리인은 양아들 천재일로 바뀌었다는 상황설정과 영진의 애인의 등장으로 인해 천재일과 영진의 갈등이 표출된다는 동기설정이 바뀌었을 뿐이다. 실제 내용상의 주 갈등은 영진과 천상민으로 대표되는 계층간의 갈등으로 이는 식민지하의 우리 농민들의 삶과 지배계층간의 대립임을 영진의 몽상적인 마지막 장면의 상황 설정을 통해 보여준다.
희곡과 연극상에 나타난 내용구성과 주제를 보기로 하겠다. 먼저 박승희 원작 「아리랑 고개」를 대상으로 하겠다.
장면단위 내용
장면1 ; 서사자(해설자)의 연극 아리랑고개와 아리랑고개에 대한 설명
장면2 ; 길용과 봉이 만남. 둘은 좋아하는 사이임. 길용이 땅을 빼앗기고 북간도로 가야함을 말함.
장면3 ; 일인과 거간 등장. 일인은 고리 사채놀이를 통해 땅을 빼앗음.
장면4 ; 봉이부와 일인 지나다 만남. 일인이 봉이부에게 돈 필요하면 주겠다며 쓰라함.
장면5 ; 봉이, 봉이부에게 길용네를 가보라함.
장면6 ; 봉이, 길용을 만나 자신의 집에서 같이 살자함. 길용 인연 있으면 만나자면서 부친과 떠남. 봉이부 동네사람과 배웅하면서 몸 성하고 고향을 잊지말라함.
장면7 ; 서사자 등장. 광주학생의거 이후 아라랑 금지되었음 해설.
내용 구성을 보면 봉이와 길용이의 사랑 이야기 같지만 이는 표면적인 구조이고 실상은 땅을 빼앗기고 북간도로 떠나야하는 길용네로 대표되는 농민과 고리의 사채놀이를 하는 일본인과의 갈등구조로 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 구성은 1931년에 나타나는 유성기음반의 「아리랑 고개」에서는 변형된 형태로 나타난다.
장면단위 내용 구성
장면1 ; 길남이네가 떠나려고 세간을 팔음. 서로 좋아하는 복례와 길남이 헤어져야함. 같은 마을의 종수네는 함경도로 떠난다고함. 춘삼월에 다시 만나자면서 헤어짐.
농촌의 처녀 총각의 사랑이야기 설정은 내용상 변한 것이 없지만 길남이네가 세간을 팔고 떠나야한다는 상황설정에서 동기부여가 미흡하다. 왜 떠나야되는지 이유가 나타나지않고 있다. 다만 같은 마을의 종수네도 함경도로 떠난다는 상황설정을 통해 이러한 이주가 성행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내용상의 상황변화는 박승희 원작의 박진구성 아리랑고개에 있는 내용을 통해 당시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이 연극은 첫날부터 우름바다가 되어 객석은 벌통쑤신 소리가 나고 종로경찰서에서 경비나왔던 형사까지 울었지요 그러자 11월 3일 광주사건이 이러나자 4일에는 장내장외에 철통같은 경계를 했었는데 이연극이 우름속에서 끝나자 단시 신한회라는 민족주의노선의 단체의 젊은 간부 김모씨가 무대에 뛰여올라와 광주의 사실을 보아라 하고 한마디 외치고는 삐라를 확 뿌렸습니다. 그러자 이구석 저구석에서 호각소리가 나고 극장문은 잠그고 야단법석 그야말로 아비규환 수라장이되고 극단간부는 잡혀가고 갇히고 경찰은 전국에 통보를 내려 ‘아리랑’노래는 못부르게 금지 연극은 상연중단 이런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올들어 40년전 감사합니다.(박승희 원작 박진 구성,「아리랑 고개」중에서)
이러한 연극 내용의 변화는 1929년 토월회의 아리랑 공연이후에 아리랑이 금지시 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으로 1931년에 제작된 유성기음반에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결과가 이주민의 실상은 표출시킬 수가 있어도 이에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영향을 준 악덕지주계층이나 고리대금업자에 대한 언급은 회피해야만 되는 상황이 아닌가 한다. 그럼 1932에 쓰여진 강의영작 「눈물젖은 아리랑 고개」(부제; 향토극 아리랑고개)의 내용을 보기로 하겠다.
장면단위 내용
1막
장면1 ; 영감인 영진부친이 딸 영희를 부른다. 철학 연구하다 미친 영진이 나간 것을 걱정한다. 기호가 동네사람과 같이 영진을 결박하여 끌고옴. 그러나 영진 다시 나감.
장면2 ; 영진부친, 영진이 다시 집밖으로 나간 것으로 인해 속상함. 현구 등장 수년만에 친구인 영진 찾아옴. 현구와 영희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임.
장면3 ; 오기호 등장하여 영희와 결혼하겠다고 함. 부친이 정혼한 곳이 있다고 거절하자 돈을 갚던지 영희를 주던지 선택하라함.
2막
장면4 ; 영희 집에 있고, 현구와 영진부친은 들에 마을사람들 노는 것을 구경하러 나감. 영진이 풍악소리를 듣고 대야와 낫을 들고 춤을 추며 나감.
장면5 ; 집에 사람들이 들에 나간 틈을 타서 기호가 영희를 납치하려고 함. 현구가 나타나 기호와 싸움. 영진이 위기에 처한 현구를 구하고 기호와 농민과 싸우다 이들을 살해함.
장면6 ; 영진 경관에게 잡혀감. 온전한 정신일 때 범죄인이 됨. 이는 모든 불평을 찌트리려는 병임. 영진 자신이 좋아하는 아리랑을 청해 들음.
2막으로 구성된 아리랑은 어디에서나 쉽게 공연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눈물젖은 아리랑 고개」의 내용은 영화소설 「아리랑」과 내용 구성상 큰 차이점이 없는 듯하다. 다만 박선생과 대지주이자 고리대금업자인 천상민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는 어찌보면 단순한 사항으로 내용 구성상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갈등구조상 대립되는 전형적인 성격의 인물인 천상민의 부재는 공연시 대립적 구조 속에서 내용을 이해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 공연시 전형적인 인물간의 대립을 통해 쉽게 전하고자하는, 주제와 내용을 전파하고 대중에게 쉽게 이해시킨다는 전달면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전형적이고 유형화된 야학선생 박선생과 농민 수탈계층의 전형적 인물인 천상민의 부재는 대중적인 이해에 제약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영진과 오기호로 표상되는 농민과 지주계층의 고리대금업자의 내용상의 갈등구조가 대학생 현구와 영희의 사랑이야기에 기호가 개입하여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통속적인 사랑이야기로 전락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구조와 내용의 약화는 앞에서 언급한 시대적 상황에 의해 아리랑에 대한 금지라는 일제의 행동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의 약화 속에서도 영진이 미친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음과 아리랑을 즐겨부른다는 상황 설정을 통해 소극적이지만 일제와 대립되는 갈등구조를 표출하여 주고 있다.
4. 작품상의 전통민요 아리랑과 아리랑 고개의 상징성 문제
나운규원작 영화 「아리랑」과 박승희원작 「아리랑고개」, 그리고 강의영작으로 되어있는 「눈물젖은 아리랑고개」에 나오는 아리랑의 의미와 아리랑고개의 상징성 문제는 작품이 표출하고자한 주제와 깊은 상관성을 지니고 있다. 1926년에 나운규의 영화아리랑이 상연된 이후 중국 등지에 있던 조선인에게 아리랑은 주인공 영진이 낫으로 오기호를 죽이는 장면에 대한 의미가 “아리랑고개를 넘으면서 겨레의 슬픔이자 염원인 독립에 대한 의지를 아리랑을 부르며 활화산처럼 폭발케했다”(진용선,중국조선족의 아리랑, 수문출판사,82)그래서 이러한 것이 가능성을 가지고 가극 또는 연극의 형태로 나타나 항일을 주제로 한 연극활동이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이러한 것이 1929년에 공연된 연극 아리랑고개 이후에 금지된다. 이러한 아리랑고개의 의미는 식민지치하의 뿌리뽑힌 삶을 살아가는 민족의 상징적 존재인 것이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이노래는 언제 누가 어디서 부르기 시작했는지 모르면서 우리는 불러왔다 아리랑고개는 이별고개요 아리랑고개는 설음의 고개다. 그럼 이 아리랑고개는 어데메있느냐? 아무도 아는이가 없고 사실 있지도 않다. 그러면 이 아리랑고개는 어디있느냐? 삼천리강산 구비구비고갯길이 아리랑고개요 삼천만 가슴마다 얽히고 섫긴 서러운 구걸구걸에 아리랑고개는 있는 것이다. 불같이 사랑하던 총각처녀가 애끓이는 이별의 단장곡을 부르는거도 이 아리랑고개를 조상이 물려준 땅조각을 지니지못하여 남의 손에 빼았기고 쪽박을 차고 넘어가는 원한의 고개도 이 아리랑고개다. 이 아리랑고개는 지금이 삼천리강토 구석구석에 없는곳이 없다(박승희작 , 박진 구성 , 아리랑고개 작품 중에서)
강영희는 「일제강점기 신파양식에 대한 연구」에서 나운규원작 문일편 영화소설 「아리랑」과 박승희 원작 박진구성「아리랑 고개」를 다루면서, 영화소설에 나오는 영진의 광증과 아리랑노래가 상징하는 바와 아리랑고개가 의미하는 바가 “민족사의 수난기(특히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개인이 경험하는 ’소망과 꺽임‘, ’의지와 절망‘간의 ’엇갈림‘이며, 이는 저항과 체념간의 이율배반을 의미하는 영진의 광증과 동일한 본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영진의 광증과 아리랑노래가 상징하는 의미는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김만수는 유성기음반 속에 드러나는 아리랑과 아리랑고개의 상징성에 대해서 남녀간의 이별의 문제로 고향을 떠나는 감상주의적인 면모가 있음을 지적했다.
아리랑을 소재로 한 <아리랑 고개>와 <아리랑>은 유랑민들의 사연을 들려줌으로써 당대의 궁핍한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는 음반극이다. 아주 오랜 기간 불려져왔으며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는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슬픔과 한이 담겨 있는 대표적인 민요였다. 그러나 일제 시기의 아리랑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삶의 곤궁함과 슬픔이 드러나 있다. 현진건의 단편 <고향>에서부터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에 이르기까지 아리랑의 비애는 일제 시기의 모든 작품 속에 깔려 있다. <아리랑 고개>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는 사람들, 즉 고향을 떠나 북간도나 함경도로 유랑의 길을 떠나는 당시 민중들의 한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극의 해설자는 “청천 하늘에 별도 많고/이내 가슴에 수심도 많어”라는 아리랑의 곡조를 배면에 깔고 “옛날로부터 아니 영원토록 넘어갈 아리랑 고개”의 애환을 미리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 실린 ‘아리랑의 노래’는 다분히 세속화되고 센티멘탈한 감정으로 채색된 아리랑이다. 유랑민의 슬픔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못하고 배우들의 막연한 흐느낌으로 절제없이 표출하고 있는 점, 고향을 떠나는 슬픔을 남녀 간의 이별의 슬픔으로 대치시키고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김만수,일제강점기 SP음반에 나타난 대중극에 대한 연구, 한국극예술연구 8집, 132)
이러한 아리랑에 대한 평가와 지적은 일견 타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일련의 작품을 영화와 연극으로 제작되어 지는 과정에서 일정한 원형을 지니고 있던 것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 내용의 첨삭과 함께 개작된 상황을 보여주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20년대 중반에서 30년대 초반까지 식민지하라는 한계상황을 살아온 삶의 뿌리가 뽑혀나가는 나약한 농민들의 현실태와 정서적인 측면을 반영한 작품들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 내용과 갈등구조가 변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때문에 이러한 내용의 변화는 아리랑과 아리랑고개라는 상징적의미가 지니고 있는 민족적 정서에 보다 절실하게 호소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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