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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벧전2:4-8)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우리 주이시며 우리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산돌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본문뿐 아니라 구약에서도 예수님을 돌로 비유하기도 하였습니다. 다니엘서 2장을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이상한 꿈을 꿉니다.
그런데 꿈을 꾼 왕이 그 꿈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꿈이 아주 심각했다는 것은 아는데, 그 꿈이 어떤 꿈이었는지를 알지 못하니 고민을 합니다. 그때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을 다 보여 주시고, 해석까지 알게 하십니다. 그 해석을 들은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을 하나님으로 알고 엎드려 절을 합니다. 왕이 소년에게 엎드려 절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총리로 세웁니다.
느부갓네살이 꿈에 본 그 거대한 신상은 찬란한 빛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신상의 머리는 정금이고, 가슴과 팔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고, 종아리는 철이고, 발은 얼마는 진흙이고 얼마는 철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뜨인 돌이 날아와 그 우상의 발을 치므로 그 우상이 부숴져서 산산조각이 나고 바람에 날리는 겨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신상은 거대한 세상 왕국을 뜻하고, 뜨인 돌은 산돌 되시는 예수님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산돌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세상왕국을 무너트리고 정복할 것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수천 년 전 다니엘 시대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산돌로 오실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민수기 20장을 보면, 신 광야 가데스에서 물이 없어 죽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이 가득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지않는 사람들은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사방에 우겨쌈을 당할지라도 결코 원망하지 않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야고보서 5장 13절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이처럼 우리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찬송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엎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한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 고맙게도 우리 교회 성도들은 제가 너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저를 위해 늘 기도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아껴 주시고, 사랑해주시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이런 마음이 변함 없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만 생기면 모세를 찾아와 괴롭혔습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 그러면 생수가 솟아날 것이니 이 백성으로 마시게 하라." 모세가 온 회중 앞에서 반석, 그 메마른 반석을 지팡이로 치니 생수가 솟아 나왔습니다. 백성들이 그것을 마시고 죽음에서 위기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반석을,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예수님을 생수가 솟아나는 반석이라고 비유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7장 37절, 38절에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지금도 예수님께서는 생수가 솟아나는 반석처럼 교회마다 계셔서 목마른 우리의 영혼들을 만족하게 해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을 산 돌, 살아 있는 돌(living Stone), 모퉁이 돌(corner stone), 혹은 반석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4절,"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와" 예수님께서는 산돌, the living Stone, 살아 있는 돌,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생명의 돌로 살아 계시고, 그 생명의 돌에게 나오는 자에게도 생명을 주시는 신비한 돌이십니다.보배로운 돌이십니다.예수님께서 생명의 돌로 오신 것은 모든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산돌이란 죽은 자나 죽은 사건을 기념하는 기념비나 추모비가 아니라 부활하사 살아 계시면서 생명을 주시는 산돌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신다는 개념은 "예수께 나아와"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께 나아오면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와 생명을 얻었습니다.
(사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도 요 10:10절에서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시려고 생명의 돌로 오셨는데도 불구하고, 당시 유대의 최고 권력 기관인 산헤드린과 바리새인, 서기관,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예수님을 성문 밖으로 몰아 내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래서 산 돌이신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것 같고 끝난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시어 더 빛나는 보배로운 돌로 삼으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아무리 버리고 배척해도 하나님께서 잡아 주시면 문제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창세기 37장 이하에 보면, 요셉이 친형들에게 배척을 당하고, 보디발 장군에게 배척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 배척하지 않으시니 결국 그는 총리가 되고 빛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배척 당하고 자기 아내에게서 까지도 배척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배척하지 않으시니 갑절의 축복을 누리고, 빛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장인에게 배척당하고, 군사들에게 배척당하고, 온 국민에게 빵 한 조각 얻어먹지못하고 10년간 배척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니, 결국은 빛나는 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과 저에게 힘이 되는 줄 믿습니다. 이 세상의 친구들이 다 나를 버릴지라도 주님께서 버리지 않으시면 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이 나를 버릴지라도 주님께서 버리지 않으시면 문제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15:16)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사람이 우리를 버릴지라도 우리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49장 15절에도 말씀하십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잊지 않으시고 끝까지 책임져 주십니다. 든든한 마음으로 미래를 향하여 전진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도 산 돌이라는 사실입니다.
5절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따라합시다. "우리도 산돌이다"
돌- 길가에 쌓여 있는 것이 흔한 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버려진 돌이 조각가의 손에 붙들리면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거듭납니다. 또 건축가의 손에 붙잡히면 훌륭한 건축물로 쓰임받게 됩니다. 이처럼 산돌이 우리가 그대로 있으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예수님의 손에 붙잡히면 산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쇠가 전기에 닿으면 쇠에도 전기가 통하듯이, 생명의 능력이 흐르는 산 돌이신 예수 앞에 나오면 우리에게도 생명이 들어와 우리도 산 돌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6장 1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친히 산 돌, 반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과 저는 반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신령한 집은 여러분의 집이 아니고, 회사가 아니고, 국회 의사당이 아니고, 청와대도 아니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신령한 교회,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신령한 예수님, 산 돌이신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을 믿으면 개인적으로 신령한 집이 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성령을 모신 하나님의 신령한 집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나는 걸어다니는 교회, 걸어다니는 양문교회, 걸어다니는 신령한 집'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교회같이 성결하게, 빛나게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거룩해야 되듯이, 우리는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거룩하지 못한 것은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갈 때 가장 무서운 적은 우리 안에 있는 적입니다. 사탄이 무섭지만 사탄보다 더 무서운 강한 적은 결국은 우리 자신입니다. 자기 자신과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실패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프로이드는 근대 정신의학계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예리하게 분석해서 근대 정신의학계의 아버지라 불리지만, 그는 자기 자신은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정신은 분석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은 분석했지만, 그는 자기와의 싸움에서는 져서 패망했습니다. 심장이 좋지 않은 그에게 주치의가 담배를 끊으라고 심각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심한 골초였는데, 주치의의 말을 듣고 담배를 끊었습니다.
그러나 몇 달 후에 다시 담배를 피웠습니다. 결국 담배의 독으로 턱에 암이 걸려 35번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할 때마다 의사가 담배를 끊으라고 했지만, 끊지 못해 마지막 수술 후에는 턱을 잘라내었습니다. 그 똑똑한 사람의 턱이 없어졌습니다. 그래도 담배를 끊지 못하고 결국 담배에게 삼킴을 당했습니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똑똑한 사람도 담배를 끊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신을 이기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데 관계없는 것, 좋지 않은 것은 버려야 되는데,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우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완성 성전입니다. 우리 모두 날마다 우리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복하여 벽돌로 잘 쌓아서 하나님의 성전을 아름답게 지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는 또 하나의 뜻이 있습니다. 이 신령한 집은 혼자 짓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하나님 나라 백성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15,16,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데 까지 이르리니"(엡4:13) 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연결되고 결합하여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나 혼자 아무리 잘해도 안됩니다. 가정도 나 혼자 잘하면 행복합니까? 함께 마음을 나누고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각 지체가 분량대로 충성하고 교회를 섬길 때 건강한 교회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는 작고 미미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거기에 진정한 기적과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모퉁이 돌은 아니지만 이 모퉁이돌이 되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작은 벽돌같은 우리가 세워질 때 하나님의 성전이 이루어집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 하나님의 가족이 형상됩니다. 교회의 기초이며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교회를 형성하는 하나 하나의 지체들은 우리 성도들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은 아니지만 세상의 빛되신 그리스도를 소유했으므로 하나의 작은 빛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반석은 아니지만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연결하여 하나님의 집을 지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신령한 집을 짓고 있는 하나의 산돌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산돌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는 거룩한 성전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우리는 다른 돌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퉁이돌 되신 주님 없이는 살수 없으며 또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를 의존하지 않고는 우리의 삶이 정상적일 수 없습니다. 마치 성전의 벽돌 하나하나가 모퉁이 돌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다른 돌들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성전의 한 부분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손을 잡아야 합니다. 옆 사람에게 이렇게 말합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하나입니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나됨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교회로서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때 진정한 생명이 있고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모퉁이돌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깨트리는 심판의 돌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교회의 한 지체가 되어 구원받는 거룩한 역사가 있지만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가 연결된 산 돌입니까? 그리스도와 관계가 끊어진 죽은 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사람에게는 구세주이시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5절 하반절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거룩한 제사장이란 하나님의 선택받은 구별된 제사장이란 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서 어린양을 끌고 제사장에게 나아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천주교에서는 신부들에게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고 있던 휘장을 찢으시고 새롭고 산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히 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휘장이 찢어졌다는 말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막혔던 담이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뿐 만 아니라 이제 다시는 제사장을 통해서 나아가지 않고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누리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자신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실 것도 목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리라 믿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 배후에는 목사는 제사장이고, 나는 아니라는 생각이 짙게 깔려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가 거룩한 제사장입니다. 그것도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예수님의 피를 힙입어 담대하게 하나님앞에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신약의 성도들은 누구나 하나님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중보자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앞에 나아가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릴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신약의 제물은 양의 피가 아니라 우리의 몸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늘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로렌스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얼굴만 보아도 사람들이 마음의 평안을 얻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분이 어떤 일을 하는 분이었는지 아십니까?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분이었습니다. 신학자도 아니요, 목사님도 아니요, 교회 지도자도 아니었습니다. 55세에 수도원에 들어가서 80세로 죽을 때까지 부엌에서 접시를 닦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일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접시를 닦으려 합니다. 접시를 닦을 때도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늘 예배드리는 마음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니 그분을 보는 사람들 눈에는 그분이 성찬식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평신도이지만, 거룩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처럼 사니 사람들이 그분을 통해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얼굴을 보는 사람이 평안해지고, 우리의 얼굴을 보는 사람이 마음에 쉼을 얻고 용기를 얻도록 우리 모두 은혜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제사장 같이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사람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중보자입니다. 우리 각사람이 제사장으로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의 관심에 따라 보는 것이 다릅니다. 치과의사 선생님은 사람을 대하면 먼저 이를 봅니다. 미장원을 경영하는 분은 사람의 머리를 봅니다. 구둣방을 경영하는 아저씨는 구두를 봅니다. 안경점을 경영하는 분은 안경을 봅니다. 옷을 파는 분은 옷을 봅니다.
우리가 참으로 신령한 제사장이라면 사람을 만날 때, 영혼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를 보게 됩니다. 그 사람의 영혼을 보고 그 사람을 위해 축복하고 기도하고 그 사람을 세워주는 사람입니다. 누가? 우리가 그렇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귀한 제사장을 사명을 감당하여 생명을 주님께로 인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6-8절,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는 데 이 시온은 바로 하나님의 교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우리 주님을 산 돌로, 모퉁이 돌로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산돌이신 주님과 붙어있으면 성전이 되어 갑니다. 거룩한 성전을 이루어갑니다. 그러므로 산돌인 예수님께 나아와 믿고 순종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영원히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돌을 배척하고 믿지 않으면, 자기가 쓰지 못할 돌이라고 버린 돌이 어느 날 아름다운 성전의 모퉁이 돌이 되어 있는 것을 보는 것처럼 깜짝 놀라게 되고, 다니엘서 2장의 우상이 떨어진 돌에 의해 가루가 된 것처럼 산 돌이신 예수님께 심판 당하여 멸망하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주님은 보배로운 산돌이십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그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산돌입니다. 그러므로 모퉁이 돌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성전, 하나님 나라 백성공동체를 이루는 그날까지 우리는 서로 연결하여 교제하고 형제 자매의식을 가지고 서로 섬기고 서로 사랑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누리며 이 산돌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고 생명을 살리는 이 놀라운 구원사역에 저와 여러분이 쓰임받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보배로운 모퉁이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히 부끄럽지 않고 영광스러운 산 돌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지만 산돌 되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영원히 멸망하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이 산돌이 거치는,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도 산돌되시는 보배로운 예수님 앞에 나아와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명을 얻는 역사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