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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이미지를 읽어내기
성경의 이미지 01.
하나님의 형상: 인간의 본질
https://youtu.be/5TNbZ5lPhOA?feature=shared
성경에는 여러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 이미지들이 표현하는 주제는 성경 전체 이야기를 관통합니다. 우리는 이 이미지들을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지들을 통해서 우리는 성경 전체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이미지를 읽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는 런던을 잘 몰랐습니다. 제가 사는 나라의 수도 말입니다. 저는 종종 길을 잘못 들기도 했습니다. 20대가 되었을 때에도 저는 주로 도서관에 다니거나 어떤 극장에 가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때 우리가 이동할 때면 기차를 탔고 기차역에서 나와서 지하도를 지나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지하도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잘 몰랐습니다. 런던이 도시로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말입니다. 그것은 좀 실망스러운 일입니다. 제가 사는 곳을 잘 알지 못하니까요.
마침내 우리 가족이 런던에 거주하기 위해서 이사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제가 50대가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제가 기뻤던 일은 걸어서 런던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런던의 거리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그 거리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길로 내려가면 여기로 연결되는 구나! 그리고 저리로 가면 거기가 나오는구나!’
제가 생각해보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성경은 참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의 삶의 방향을 정합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은 마치 저에게 런던과 같습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여기도 조금 알고 저기도 조금 압니다. 어떤 부분은 한 장 전체를 알고 다른 곳은 한두 구절 정도 압니다. 하지만 이 전체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성경의 진면목은 그 이야기들이 서로 연결될 때 드러납니다. 예수께서는 끊임없이 암시를 주셨고 때로는 분명하게 설명하셨습니다. 성경 이야기가 모두 어떻게 연결되는지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글과 다른 서신들을 보면 성경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모든 이야기가 예수님에게로 귀결됩니다. 제가 이 짧은 영상 시리즈를 통하여 탐구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주제가 성경을 관통하여 그 모든 이야기를 서로 연결시켜 주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경 전체를 알게 되고 여기저기 조금 아는데서 향상될 것입니다.
가장 먼저 살펴볼 이미지는 ‘이미지’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의 이미지 즉, 하나님의 형상은 창조 이야기에 나옵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창세기 1장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이미지)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은 자기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자기 형상대로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창세기 1장 26절부터 28절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형상'은 무슨 뜻일까요? 초기 교회에서 많은 신학자들은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질문이 철학자들이 주로 다루는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알고자 한 것은 형상이 의미하는 바가 ‘나의 일부분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뜻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나의 생각이나 나의 상상력 또는 나의 기억 또는 나의 의지 같은 것이 하나님을 닮았다는 뜻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핵심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창세기 이야기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 ‘하늘과 땅이 하나로 엮인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 사이, 곧 그 중심에 형상(이미지)을 두셨습니다. 고대 세계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세상은 하늘과 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그 중심에 형상 즉 성전이 있음을 알 것입니다. 성전은 신의 거주지로서 거룩한 분이 계시는 곳입니다. 오늘날과는 다르게 성전은 마을 바깥에 별도로 있는 어떤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은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곳이었습니다. 성전은 세계를 압축해 놓은 모형이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였습니다. 성전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성전에는 형상이 있어서 예배자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보여주었고, 그 형상을 통해 세상의 경배를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바로 그곳 성전에, 즉 주님이 늘 바라시던 처소에 형상을 두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형상이었습니다. 그 형상은 남성과 여성으로 된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책임을 위임하셨습니다. 그 책임은 동물과 새들과 같은 것들을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시편 8편에 잘 나타납니다. 흥미로운 점은 구약성경에 형상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자주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형상이 주로 사용되는 경우는 이방인들의 형상을 비난할 때입니다. 형상을 깎아서 만들어 그들은 신전에 두었습니다. 그들의 형상의 재료는 금이나 은, 돌이나 진귀한 금속 그리고 나무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형상에 대하여 말할 때는 종종 그런 형상을 섬기지 말라고 말할 때였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자손은 어떤 형상이든지 광야의 성막에 있게 하지 말라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이유는 오직 숨 쉬며 살아있는 인간만이 진정으로 참 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세상에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죽어있고 생명이 없는 형상은 죽은 신을 나타내며 그런 신은 거짓이며 가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선한 세상에서는 인간이 이 역할을 합니다.
흥미롭게도 고대 세계에서는 특별한 한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 사람은 왕입니다. 왕은 권세를 가지고 있으므로 왕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나타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의 형상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습니다. 이제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모든 인간은 계급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세상에 나타내라는 부름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세상에 나타내는 이 일에 대하여 저는 그것을 ‘기울어진 거울’(an angled mirror) 모양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울어진 거울은 하나님을 반사하여 세상에 보여주며, 동시에 세상을 하나님께 비추어 보여 드립니다. 인간이 지음받은 것은 바로 그 목적을 위함입니다.
성경 이야기가 전개되어 나가는 과정을 보면 성경 이야기가 형상이라는 단어를 바로 이런 맥락으로 사용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스라엘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음을 압니다. 왕 같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세상에 나타내는 역할을 의미하며, 제사장이라는 의미는 피조물의 찬양을 모아 하나님께 올려 돌려드리는 역할을 의미합니다. 그런 이유로 성막에서나 성전에서나 그 안에는 제사장이 있습니다. 그 중에 대제사장은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성막 안에서나 성전 안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시간이 그렇게 흘렀습니다. 이제 왕은 제사장의 역할까지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는 유일하시고 참 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세상에서 어떻게 일하기를 원하시는지 그리고 모든 피조물이 어떻게 하나님을 합당하게 예배하기를 원하시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주제 ‘왕 같은 제사장’이 신약성경에까지 이어지는 것을 봅니다. 신약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보면 이제 모든 일들이 더 넓은 세계에서 일어납니다. 제가 고대 역사를 공부할 때 여기 옥스퍼드에서 학부생이었습니다. 저는 공부하고 있던 곳 근처에 있는 큰 박물관을 자주 찾아갔습니다. 제가 흥미롭게 본 것은 황제를 나타내는 다양한 모습의 동상이 전시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동상에 달린 라벨을 보니 어떤 동상은 스페인에서 온 것이었고, 시리아나 이집트에서 온 것들도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져온 로마 황제의 동상들이었습니다.
로마에서 가져온 동상은 아예 없거나 거의 없는 것이 명백해 보였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황제는 당시에는 시저였는데요, 그는 자신에 대한 형상을 만들어 속주의 여러 곳에 세워 두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속주민들에게 통치자가 누구인지 알리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형상은 통치권을 더 넓은 세계로 투사하여 보여주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도 하나님이 여기 계신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고안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시저가 한 일은 마치 하나님의 진정한 형상을 흉내 내는 패러디와 같습니다.
그런 일은 동전에도 일어납니다. 당시의 동전에는 시저가 새겨져 있었고 세계 왕들과 통치자들의 얼굴도 동전에 새겨졌습니다. 우리가 가진 동전에는 보통 시저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시저는 바울의 시대에 제국의 어떤 지역에서는 신으로 숭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통치를 받는 사람들은 화폐을 사용하면서 어떻게 보면 시저를 숭배하는 셈이 됩니다. 같은 방식으로 예수께서도 동전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께 보여드린 동전은 세금을 받칠 때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형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시저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동전에 새겨진 글에 대하여 생각해보면 그 동전이 누구의 것인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시저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참된 대제사장이다라’고 씌어 있습니다. 그 내용이 놀랍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예수님이 들고 계시던 동전에 그런 내용이 새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이를 달리 말하면, ‘너희 유대인들은 성경을 읽어서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지 않았느냐? 너희들은 자기 전체를 하나님께 받쳐야 한다!’
물론 그 말씀에는 물론 더 많은 의미가 있지만 그 말씀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생각해 볼 점은 ‘형상’이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시대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 자신은 기름부음을 받아 참된 왕이시며 참된 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의 역할을 함께 성취하셨습니다. 이것이 놀랍지 않은 이유는 바울이 몇몇 곳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을 보면,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주님은 진정으로 인간이시며, 동시에 주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현존을 그 안에 구현하시는 분입니다. 바울이 그 다음 세구 절 이후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모든 신성한 충만이 기쁨으로 깃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형상입니다. 그것은 돌로 깎아서 만든 로마의 숙주에서 발견된 형상들과 다릅니다. 예수님 자신은 살아계셔서 하나님 아버지를 세상에 나타내시며 그리고 세상의 경배와 찬양을 아버지 하나님께 돌려 드리십니다.
같은 방식으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에서 말하기를, 예수님이 하나님의 형상이시라고 했으며,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빛이 세상에 비친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형상으로서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십니다. 이런 이야기는 앞으로 계속 다른 영상에서 다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자기 몸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이 그곳에 그런 방식으로 계심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창조주의 현존을 나타내셨습니다. 이것이 형상을 닮는다는 말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들, 예수님을 따르라고 부르심을 받은 인간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변화됩니다. 그것은 바울이 갈라디아서 3장에서 말한 것처럼 지식에까지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조각상의 살아 있는 형태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살아 있는 유일한 조각상이 되어 더 넓은 세상에 참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베드로전서 2장에서 베드로는 말합니다: ‘너희는 왕같은 제사장이다!’ 이제 우리가 받은 소명은 더 넓은 세상에 나가서 우리의 존재와 행동으로 예수님이 독특하게 행하신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의 이야기와 이스라엘의 이야기에 수놓아져 있으며 또한 창세기 전체와 출애굽기 이야기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이야기는 세상에 나타나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은 참 신이신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부름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참 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지혜와 통치가 세상에 드러날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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