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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입
강 수니니 suni719@hanmail.net
봄이 오는 함평 나비 축제장. 색색의 나비춤이 현란하다. 저 나비들은 한겨울 추위를 견디고 번데기 집을 빠져나온 나의 춤사위인가.
‘동백 아가씨’ 테이프가 반복되며 끝도 없이 돌아간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곳은 종합병원 이비인후과 입원실. 중년인 그녀는 설암 말기로 이미 혀를 잘라낸 자리에 대장 한 부분을 이식했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여러 장기에 암이 전이된 중증 환자였다.
여자 2인 병실, 간병하는 그녀의 남편과 한 공간에서 24시간 함께 있었다. 투병생활로 예민해진 나는 여간 곤욕스럽지 않았다. 목에 호스를 꽂고 유동식을 넘기는 그녀는 수시로 구강을 청소해야했다. 가래 뽑아내는 기계소리와 시도 때도 없이 틀어대는 ‘동백아가씨’ 노래는 고문이었다. 앞뒤 가리지 않는 남편의 투박한 목소리, 밤새 코고는 소리는 내 잠을 흔들어놓았다.
더는 견딜 수 없어 딴 병실로 옮길 차례만 기다리고 있는 중에 창밖을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고향은 어디쯤일까. 동백꽃이 피고 지는 어느 외딴섬일까. 핏빛보다 더 붉은 그녀의 목숨은 지금 동백의 모가지처럼 뚝뚝 지고 있는 것인가.
문득, 나 역시 그 동백꽃이었다. 지난달, 아무도 몰랐던 남편의 황퇴. 충격이 가시기 전에 남편이 가족 몰래 친구에게 집 담보 보증을 섰던 일로 졸지에 집이 없어졌다. 우리는 악담을 독화살로 쏘아 보냈고 되돌아오는 화살에 가슴을 찔리며 피를 흘렸다. 그 쇼크로 갑자기 얼굴 한 쪽이 마비되었고 입과 눈이 흉하게 비틀어져 말을 하거나 웃으면 괴물로 변했다. 바람이 새는 입은 말의 기능을 닫고 폭포수 같았던 원망의 악담은 출구를 잃었다. 한 쪽 눈물샘까지 마비되어 아무리 울어도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마른 울음만 토했다. 급기야 안구까지 말라 약으로 봉해버린 애꾸눈에는 반으로 조각난 세상만 보였다.
거침없이 달려오던 아스팔트길이 눈앞에서 뚝 끓어져버린 순간이었다. 낙서 같은 생의 후반부 그림을 용납할 수가 없어 세상의 끈을 풀고 저 아래로 뛰어 내리려던 그날, 골똘히 아래를 보고 있는데 왁자지껄 그 남자 사투리가 눈앞까지 날아왔다.
그녀를 질질 끌고 와 패대기를 치며 큰소리로 야단을 치고 있었다. 또 옥상에서 투신하려는 그녀를 붙잡아 온 모양이다. 혐오와 짜증으로 뭉친 그들에게 처음으로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한 병실의 환자 두 사람이 같은 시간에 같은 세상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다는 동질감이 그동안의 불신을 걷어내고 측은지심의 마음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날 밤 그 사내는 울고 있는 그녀를 달래며
“임자! 의사선상님이 그러는데 맨들어 붙인 쌧바닥도 신경만 통하몬 노래도 할 수 있당게 빨리 나아서 집에 가소! 이번 참에 전국 노래자랑에 나감세.”
한밤중 칸막이 커튼 위를 우렁우렁 건너오는 그 남자의 거짓말이, 절망의 늪 속에서 아무것도 안 들리던 내 귓속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매일 다른 병실로 옮겨달라고 졸랐던 요청을 거둬들인 것은 그날 이후이다.
우린 서로 말은 할 수 없어도 눈빛으로 관심이 오고 가다 필담을 나누는 사이로 변해갔다. 예전에 그녀는 노래를 잘 불러 별명이 동백아가씨였단다. 통증이 올 때마다 녹음된 그 노래를 들으면서 참는다 했다. ‘진통제 값도 아낄 겸’이라고 손바닥에 쓰고 웃었다.
꿈속에서 큰 소리로 부르다가 꿈 깨면 사라지는 입, 기막혀 통곡도 하지만 눈으로 더 많은 이야기 할 수 있다며 또 웃는다. 소리 없는 웃음, 미소美笑가 그토록 아름다운 것을 그때 알았다.
거울 앞에서 힘주며 울어도 물고기의 눈처럼 깜빡도 않고 빤히 나를 보고 있는 눈, 웃으면 휙 틀어져 올라가는 괴물 같은, 아무도 보지 못하게 면회도 사절하는 얼굴을 그녀와 마주보며 오랜만에 웃어보았다. 정지된 모습을 살아서 보는 고통을 함께 나누며 위로랍시고 “아줌마 혀가 없는 것을 너무 슬퍼마세요. 사람은 태어날 때 입에 도끼 하나씩 물고 나와 남도 찍고 나도 찍는 데요. 아줌마는 나와 남을 찍을 일이 없잖아요.”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하는 위로 같지 않은 위로였다. 이제는 동백아가씨 노래로는 진통 효과도 바닥이 나고 고통으로 혼절하는 그녀의 팔에 쉴 새 없이 모르핀 같은 진통제가 꽂히던 날 휴게실에서 만난 그 남자는 새까만 주먹으로 굵은 눈물을 쓱쓱 훔치며
“아줌씨도 남편 미워 하지마소! 부부라는 거이 참말로 나비 같은 기라요. 양 날개 두 짝중 한나라도 상하면 지 아무리 잘나도 못 날아 가제잉! 내 날개가 이렇코롬 부러져 뻔지면 나가 인제는 한 발짝도 못 날고 벌레거치 땅에 꼬꾸라져 퍼드득 거리다 죽어 갈 꺼인데…”
가슴이 먹먹해 왔다. 이미 소생 불가능의 진단을 받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병원이 어디냐고 동네 이장에게 물어보니 서울 그 일원동 병원, 죽기 전에 제일 좋다는 그 병원에서 등짝이라도 눕혀 주고파 이러고 있다고, 여자 병실에 남자간병인이라 미안한 줄은 알지만 간병비가 없어 어쩔 수 없었다고 말끝을 흐린다.
애들 넷과 오랜 병 바라지로 먹고 살 것은 있냐고 물으니 아직도 소가 한 마리 남았는데 봄에 새끼 낳으면 두 마리나 된다고, 손가락 둘을 들어 보인다.
살아 있는 식구는 소 없어도 살지만 저 사람은 죽어갈 사람이라 다 해 주고 싶다며
“아 만날 때 잘 만났으니 보낼 때도 자알 보내야 쓰지 안것소. 안 그러요?” 하며 손등으로 쓱 눈물을 훔친다.
전라도 낙도에서 죽어가는 아내를 제일 좋다는 곳에 눕히려 불원천리 달려온 저 남자, 땀내가 진동하는 꾀죄죄한 이 촌부가 그 순간, 게리쿠퍼 보다도 더 근사한미남자였다. 슬픔에 젖은 빨간 그의 눈동자에 전염되어 나도 눈물 콧물이 마구 쏟아졌다. 그 순간, 마비되었던 나의 한 쪽 눈물샘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남의 눈물이 나의 마비된 눈물샘을 뚫어주고 있었다.
며칠 후, 그녀는 그렇게 부르고 싶던 노래를 한 입 가득 담은 채 고요히 날개를 접고 흰 시트에 덮였다. 마치 흰 고치 속으로 번데기가 나비가 될 꿈을 꾸러 들어가듯이…
아내를 눕힌 침대를 보조사와 함께 복도 저만큼 영안실로 밀고 가는데 남자의 등에 부챗살이 부러진 부채처럼 덜렁덜렁 날개가 흔들리고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환자복에 가린 나의 어깻죽지가 몹시 가려웠다. 등을 긁다가 더듬어보니 두 가닥의 날개가 뾰족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사물함에 내쳤던 전화기를 찾아들고 남편의 번호를 눌렀다.
“지독한 겨울이 다 갔나 봐요. 봄이 오면 나비가 나올 때 나도 당신에게로 날아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게 날개 같은 것이 막 나오고 있거든요.”
입술근육이 제자리로 바로 돌아왔는지 발음이 정확하다.
계간 에세이피아 2015년 가을호
강수니 시인
계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한쪽 젖으로 뜨는 달』『실꾸리 경전』
시적 발상의 산문적 형상화
송복련
강수니의 <꿈꾸는 입>은 곳곳에 시적인 비유가 넘친다. 부부는 ‘나비의 양 날개와 같다’는 시적 상징을 비롯하여 ‘추위를 견디고 번데기 집을 빠져나온 나의 춤사위’라고 표현했으며 죽음을 의미하는 ‘동백꽃’이나, 영안실로 실려 가는 그녀를 ’흰 고치 속으로 번데기가 나비가 될 꿈을 꾸러 들어가듯이‘라고 하는 등 비유적 묘사와 서사를 잘 버무려서 부부의 상을 형상화시켰다. 이는 창작 문예수필의 창작 개념인 시적 발상의 산문적 형상화가 잘 된 작품이라고 하겠다.
평자는 시인이 쓴 수필을 읽고 시적문장과 아름다운 부부의 사랑에 감동했다. 작품 속에는 설암을 앓고 있는 그녀에 대한 남편의 지극한 정성이 순애보처럼 절절하게 이어진다. 화자가 짐짓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는 관찰자의 입장으로 표현하고는 있지만 자신도 지독한 갈등 끝에 '구안와사'라는 병이 몸을 다치게 했고 생을 포기하려는 지경에 이른다. 처음에는 그녀부부를 바라보는 것이 매우 불편해서 입원실을 바꾸려고 했을 정도이다. 이런 생각이 바뀌는 계기는 비슷한 시간에 옥상에서 뛰어내리려고 한 점이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방향전환을 한다. 두 사람은 고통으로 죽음을 결심할 만큼 절박한 처지였기 때문에 서로 대화를 할 수는 없어도 동질감을 느껴 필담을 주고받으며 소통하고 위로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서두에서 화자의 입장을 요약적으로 암시하여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깔끔하다. 곳곳에서 함축적인 언어들로 시적정서에 젖어드는 아름다운 문장과 만나게 된다. 그녀와 화자를 한순간에 꽃송이 째로 툭 떨어지는 ‘동백꽃’으로 비유한 것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생을 포기하려는 두 인물을 잘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동병상련이라는 연결고리를 만들어 긴밀하여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
노래를 부르고 싶은 꿈을 가져 별명이 동백아가씨였을 만큼 노래를 잘 불렀던 그녀와 남편의 아내를 향한 사랑이 주제다. 비유적으로 표현한 나비의 날개는 주제를 내포한 중심 소재가 되고 있다. 죽는 줄 알면서도 아낌없이 잘 해주고 싶은 남편의 간병에도 그녀는 노래를 한 입 가득 문 채 날개를 접고 떠난다. 날개 한쪽을 잃은 남편의 모습이 흔들리는 순간이다. 여기서 반전이 되면서 화자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난다. ‘느닷없이 자신의 어깨죽지가 가렵다.’ 했고 ‘날개가 올라오고 있다’는 등 상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비로소 화자는 말문이 열려 ‘당신에게로 날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화를 하는데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날개의 상징성은 부부의 사랑과 관계회복이라는 주제를 담았다. ‘꿈꾸는 입’은 현재 진행형으로, 노래를 부르고 싶은 꿈을 꾸던 그녀는 이제 고인이 되었다. 화자가 남편과 화해하려는 마음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면 보조관념인 날개가 제목으로 적당하다. 그렇게 되었을 때 떠나보낸 사랑을 그린 부부와 불화를 회복하고 사랑을 찾는 화자 부부 둘 다 포용하게 된다. 덧붙여 ‘어깨죽지가 가렵다거나 날개가 뾰족이 올라오고 있었다.’부분은 이상의 날개를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수필에서는 무리한 비약보다는 언어를 달리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언어사용에서 시적정서가 넘치고 비유를 통해 두 화제의 대상을 나란히 끌고 가는 구성법을 취했다. 결말에서 화자가 주인공으로 전환되면서 변화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급강하되면서 독자는 정서적 안정감을 되찾는다. 솜씨 좋은 창작문예수필을 감상할 수 있었다.
첫댓글 공부할 거리가 많은 작품인데 한 점 한 점 놓치지 않고 잘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표절문제로 떠들썩한 분위기인데 잘 써 놓고도 의심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 문학이라는 점을 일깨울 수 있는 문학교실 강의용으로 적당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작품평론을 하지 않고, 작품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선별하는 일이 앞섰어야 하는데 급한나머지 평론부터 했는데 제자리로 돌아가 작품보는 눈부터 훈련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잘 따라하지 않습니다. 김경옥 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