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조명운 심상사성(改造命運 心想事成) / 석정공
(운명을 바꾸어 마음먹은 일을 이룬다)
성현의 도는 오직 성(誠)과 명(明)이다.
우주와 인생의 참모습과 인연과 과보의 도리를 통달하여 훤히 알고 있는 사람을
바로 성인(聖人)이라고 합니다.
불교 공부가 이렇게 사리를 명백하게 아는 사람이 되려는 공부인만큼,
절대 어리석고 멍청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부모가 나를 낳기 이전의 본래 면목을 참구하라.
범인이 성자가 될 수 없는 까닭은 오직 하나,
망령된 생각이 계속하여 얽어매기 때문이다.
매일처럼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며, 말로 만들어 내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정해진 운수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나의 생각마저도 내려놓고, 철저하게 법의 근원과 바닥까지 사무쳐서
진심과 본성을 회복한 다음에야 비로소 우주와 인생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한 사람의 길흉화복은 자기 자신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언어 때문에 만들어지는 과보입니다.
운명을 바꾸는 방법은 일단 깨달은 다음에는 다시는 악한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생각 하나 마음 하나 움직일 때마다 남을 위해 생각하고, 사회를 위해 생각하고,
중생을 위해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하는 생각은 하지 않아야지요.
50년 간 수행하고 공부하면서 체득한 것들을 종합하여, 이렇게 스무 글자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성실, 청정, 평등, 정각, 자비,
간파, 놓아버림(放下), 자재, 수연(隨緣), 염불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참회입니다.
업장이 정말로 소멸되었다면, 구하면 반드시 감응이 있습니다.
료범선생은 몇 십 년 세월을 업장 소멸하는 데 사용하였다고 말하고,
저도 역시 2,3십 년의 시간을 업장 소멸에 썼습니다.
만약 자신의 몸을 돌이켜 안으로 반성해 보지 않고서
한갖 밖으로만 치달려 구하기만 한다고 하자.
구하는 데는 도리가 있고 얻는 데에는 명이 있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팎으로 모두 잃게 될 뿐, 아무런 이익이 없다.
세간에서 천금의 재산을 누리는 사람은 분명 천금을 누릴 만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만약 願力이 크고도 강해서 업력을 초월할 수 있다면,
이것이 곧 불문에서 말하는 승원재래(乘願再來), 즉 원을 타고 다시 온 몸이 됩니다.
망령된 생각이 적어지면 음식도 적어집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됩니다.
수행자는 청정한 마음에 망령된 생각이 적어서 소모하는 열량이 적기 때문입니다.
경전을 외는 것이 주문을 외는 것만 못하다.
주문을 외는 것이 부처님의 이름을 외는 것만 못하다.
무릇 하늘에 기도하여 운명을 결정짓는 일은 모두
아무 생각도 없는 자리에서부터 감응에 이르는 길이다.
염불 공부는
의심하지 않고, 복잡하게 뒤섞이지 않고,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소중한 공부입니다.
마음의 도량이 크다면 작은 선행도 커다란 선행으로 변합니다.
<역경>에서 육효(六爻)가 다 길한 괘는 오직 '겸(謙)'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서경> '가득찬 것은 덜어냄을 당하고, 덜 찬 것은 더함을 받게 된다.'
복을 얻고 화를 멀리하고 싶다면, 선을 행하겠다는 말을 하기 전에
먼저 허물부터 고치도록 하여라.
(허물고치는 데 필요한 3요소-수치심, 두려운 마음, 용맹심)
사람, 사물, 물건을 대할 때에는 일체의 경계 안에서
항상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생각을 움직이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예로부터 후덕하고 성실하여 선행을 쌓는 사람은 그 후대가 잘 되는 일이 많습니다.
도량이 크면 복도 크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보통 타고난 성질이 좋고 마음도 아주 착합니다.
그런데 너무나 애석하게도 지혜와 견식이 모자라서
이론과 방법에 있어서 조금 편차가 생기고,
그래서 가끔씩 선을 닦아 얻는 과보가 원만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선을 행하면서 마음을 그 선에 집착하지 않으면
성취하는 바에 따라 모든 것이 원만하게 이루어진다.
자신의 경계를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야 합니다.
경계가 높아질수록 복을 닦는 일은 더욱 쉬워지니까요.
경계를 끌어올리고 싶다면 반드시 꼭 악을 끊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악을 깨끗하게 끊어버리면 과보는 수승하고 원만해집니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누리는 재물의 원인은 재물의 보시에서 오고,
법보시를 하면 총명한 지혜를 얻게 될 것이고,
무외보시를 하면 건강하게 장수할 것입니다.
자신의 재능과 지혜를 잘 갈무리하여 마치 아무 것도 없이 텅 빈듯이 하여야 한다.
남의 과실을 보아도 너그럽게 포용하여 덮어주고 감싸주어야 한다.
군자가 일반 사람과 다른 까닭은 그 마음가짐 때문이다.
군자가 갖는 마음은 단지 사람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 그것뿐이다.
관음보살을 보더라도 절대로 우리를 자비로 보살펴 달라고 빌어서는 안 됩니다.
조소나 목각이나 그림으로 만들어진 보살상이 어떻게 우리를 보호해 준단 말입니까?
<흙으로 빚은 보살상이 강을 건너니, 제 몸 하나도 지키기 어렵구나>라는 말 그대로이지요.
'관음보살의 심행을 배우고 본받아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바로 불교 교육의 바른 이치입니다.
어떤 사람이 장차 크게 뻗어 나가려면,
그 복의 과보가 나타나기 전에 지혜가 먼저 드러나 보이는 법입니다.
또 지혜가 드러나기 전에 벌써 사람 됨됨이가 저절로 성실해져서
방자했던 태도는 거두어지게 되지요.
이것은 하늘이 그 사람을 계발해 주어서 그 사람의 지혜가 열리는 것입니다.
마음을 겸허하게 비우고 자신을 낮추는 일이 복을 받는 기초가 된다.
기세가 등등한(남을 깔보고 오만하고 잘난 척 하는)사람은
절대 원대한 일을 이룩할 그릇은 못 된다.
공명에 뜻을 두고 구하는 사람은 기필코 공명을 얻을 것이고
부귀에 뜻을 둔 사람은 기필코 부귀를 얻는다-맹자.
사람에게 뜻이 있다는 것은 나무에 뿌리가 있는 것과도 같습니다.
추구하는 목적이 사회, 중생을 위해서 추구하는 것이면
이 마음의 소원은 천지 귀신도 모두 다 찬성하고 칭찬할 만한 일이므로
모두들 도와줄 것입니다.
한마음으로 선을 향해 나아간다면 여러 부처님과 보살님들과
그 외 좋은 신들이 자진해서 보호해 줄 것입니다.
첫댓글 - 선을 행하겠다는 말을 하기 전에
먼저 허물부터 고치도록 하여라. -
명심 하겠습니다. 여여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