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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갑자(선천역괘가 바꿘다)
2104년엔 화풍정괘 2160년이 시작된다.
정역은 지축이 바로 선다고 하네요. 각설하고
정괘는 솥단지를 의미하는데
물건을 삶는 솥을 말한다. 솥은 물건을 삶아 음식물을 만들어 인간의 육신을 길러주는 도구인데, 여기에서부터 성현을 길러낸다는 의미가 도출되었다.
3인의 원탁회의 모습이다. 새로운 일을 일으키기 위하여 고사(告祀)를 지내고 새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숙의를 거듭한다. 세가지 요건(주인. 손님. 그릇. 또는 사람. 돈. 기회)을 잘 구비하여 삼위일체를 이루어나아가면 크게 잘 이루어 지리라. 즉 대기(大器)를 이룰 기틀 마련을 위해 새로운 것을 취하는 것이다.
처음엔 대유 360년이다
(大有)는 크게 만족하여 즐거워하는 상태를 말한다. 하늘 위에 불(태양)이 온 천하를 밝게 비추는 상이다.
즉 해가 중천에 떠 밝게 빛나는 상이니 천하를 소유한다는 의미의 대유(大有)를 괘의 이름으로 하였다.
이 괘를 얻은 사람은 공명정대한 처신과 넓은 아량으로 천하를 포용하는 군자의 덕을 잃지 않아야
어떠한 일을 해도 크게 성공할 수 있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소인배들이 주변에 많을 수 있다. 그들까지 포용하여 배려해야 한다.
대단한 성운(盛運)으로 특히 명예나 학문에 관계된 일에 좋다.
60년운 화풍정괘이다
1744년
유럽 인구는 18세기에 급증했는데 대부분은 18세기 후반에 집중적으로 늘어났다. 당시 정확하게 인구조사를 한 나라는 없지만 추산치에 따르면 1750년경 1억 2천만 명 정도였던 유럽 인구는 1800년경에 1억 9천만 명으로 증가했다
청나라는1714년 1억2천3백만.1762년 2억명에서 1790년 3억으로 늘어난다.
아라비아반도 중부 디리야(현재의 리야드)를 지배하던 무함마드 빈 사우드(?~1765)는 와하비즘에 매력을 느낍니다. 사우드와 와합은 1744년 군사력은 사우드가, 종교적 통치 이념은 와합이 맡기로 합의하고 힘을 합칩니다. 사우디 제1왕국의 탄생이죠.
이후 사우드는 아라비아반도를 '진짜 이슬람'의 깃발 아래 통일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1780년대부터 빠른 속도로 영토를 넓힙니다. 1805년에는 이슬람교의 양대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모두 정복하고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을 손에 넣었죠.
하지만 오스만제국도 호락호락하진 않았어요. 오스만제국의 이집트 총독 무함마드 알리가 반격에 나서면서 사우드 가문은 메카를 비롯한 영토 대부분을 잃고 재기를 노리게 됩니다.
사우드 가문은 20세기 초 다시 와하비즘을 주창하며 아라비아반도를 차지합니다. 무함마드 빈 사우드의 5대 손인 압둘 아지즈 이븐 사우드(1876~1953)가 아라비아반도를 다시 통일하고 1932년 건국을 선포합니다. 사우디 제3왕국, 우리가 아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가 시작된 겁니다.
◇율법으로 다스리는 나라
사우드 가문과 와합 가문은 여러 세대에 걸쳐 혼인에 혼인을 거듭했어요. 나라는 사우드 가문에서 다스리지만, 종교 지도자는 와합의 후손이 맡는다는 원칙도 지켜지고 있고요. 이런 가운데 와하비즘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사회·교육·법의 기준이 됐습니다. 코란과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근거한 관습법이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배하게 됐고요. 여성의 자유를 제한하는 마흐람 제도도 샤리아에 따른 것입니다.
책 '와하비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쓴 데이비드 코민스 미국 디킨슨대 교수는 "종교적 사명과 정치적 힘이 결합한 1744년 협약은 2세기 반이 지나도록 지속됐다"고 했어요. 2019년 지금까지 275년 동안 현재진행형입니다.
乙운 구괘 [姤卦] 360년이 시작된다. 강한 여자를 의미하니 씩씩한 여인을 기피해야한다.
만남이 오래가지 않음을 암시합니다. 사업을 시작하지만 그 사업도 오래가지 않고, 동업자와의 만남도 오래가지 않습니다.
무엇인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좋은 것일 수도, 나쁜 것일 수도 있으나 오래가지 않으며, 흉한 일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이는 그 만남의 대상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재난일 수 있습니다.
그 구괘 [姤卦]의 초반 60년은 乾괘이다.
건괘는 잠룡의 시기. 웅거하며 기다린다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과학이 발전하기 시작.
툴롱 해전이 발발, 프랑스-스페인 연합해군이 영국 해군을 격파
예카테리나 대제가 표트르 3세와의 결혼을 위하여 러시아 정교로 개종.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프리드리히 대왕이 프라하를 함락
프리드리히 2세 (프로이센)1744년 8월 그는 군대 8만 명을 보헤미아로 진격시켜 일단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지원하는 한편, 부활을 노리는 오스트리아의 도전에 직면해 있는 프랑스의 루이 15세에게 비밀리에 사절을 보내 프랑스에 비밀협정을 제의하여 성사시킨다.
카톨릭으로 개종한 신자들이 풍습을 유지할 수 있던 관행을 금지시키고 1744년(건륭 9년) 다시 또다른 칙서 〈옴니움 솔리키투디눔〉(Omnium solicitudinum)를 내려 이를 재확인하였다. 교황의 칙령이 내린 후로는 가톨릭 신자의 수가 늘어나지 않았고 예수회 선교사들도 제대로 선교 활동을 펴지 못하였다
- 툴롱 해전이 발발, 프랑스-스페인 연합해군이 영국 해군을 격파(!
- 예카테리나 대제가 표트르 3세와의 결혼을 위하여 러시아 정교로 개종.
-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프리드리히 대왕이 프라하를 함락
60년전 갑자교황 인노첸시오 11세가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여 신성 동맹을 창설하였다.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가 토성의 위성인 테티스를 발견하였다.
50년전 - 메리 2세 : 제임스 2세의 딸이자 잉글랜드 왕국의 여왕사망
월리엄3세 즉위
40년전 벨레즈-말라가 해전이 일어났다
30년전 영국에서 앤 여왕이 서거하고 조지 1세가 즉위함으로써 스튜어트 왕조가 끝나고 하노버 왕조가 시작되었다.
20년전 영조가 조선의 21번째 임금으로 즉위하였다.
10년전 프로이센 왕국의 작곡가 바흐에 의해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가 작곡되었다.
대영제국의 시인 포프가 인간론을 출판하였다.
10년후 프렌치 인디언 전쟁
영국군과 프랑스군 사이에 주먼빌 글렌 전투가 발생하였다.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영국군이 프랑스군에게 항복하다. 프랑스군은 기사도에 입각하여 영국군을 석방시키다.
- 영국에서 총선이 진행되어 휘그당이 토리당을 상대로 압승하다.
- 오스만 3세가 새로운 술탄으로 등극하다
20년후 조선 통신사를 통하여 고구마가 일본에서 조선으로 전래되다.
영국의 하그리브스가 제니 방적기를 발명하였다
대영제국이 7년전쟁으로 인한 국채를 해소하는 한편으로 서인도제도의 설탕 농업을 보호하고자 13개 식민지에서 설탕 수출입에 과세를 매기는 설탕법을 실시하다.
스타니스와프 2세 아우구스트 포니아토프스키가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마지막 국왕으로 즉위하다
30년후 - 루이 16세가 프랑스 왕국의 왕으로 즉위하다.
.제임스 쿡 선장이 뉴 칼레도니아를 최초로 발견하다.
- 북아메리카의 13주 대표들이 대륙회의
독일에서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출간하다.
- 부르봉 왕조의 화학자 라부아지에가 질량 보존의 법칙을 확인하였다.
56년후 노론벽파 집권
50년후 이란 카자르왕조 개창
60년후 이운규탄생.120년후 최제우 탄생
1384년
恒卦가 지배하는 360년이다.부부관계에서는 일시적인 감정보다 변하지 않는 항덕(恒德)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상전(大象傳)」에서 “뇌풍(雷風)이 항괘이니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써서 주체성을 확립하여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라고 한 것은 바로 불변성을 강조한 것이다.
첫번째 60년은 大壯卦이다.
대단한 성운(盛運)으로 매사에 의욕이 있고 체력도 강하여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한다.
그러나 의욕이 지나쳐 실패할 수도 있으므로 자신을 억제하는 것이 좋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실속 있게 일을 추진하면 성공하는데 재주나 힘만 믿고 자만에 빠지거나 허세를 부리면 빈 수레가 요란하듯이 실속이 없다.
명이 이미 건국하고 몽고대신 조선이 곧 개국하며 서양은 백년전쟁 중반 왕권이 강화된다.폴란드 강성
홍무제 1384년 봄 자신의 외조카이자 건국 1등 공신인 조국공 이문충을 독살했다. 이문충은 무재와 지략 외에 문재도 출중했으나 외숙부에게 고언을 자주 하다가 죽음을 당했다.
폴란드는 1382년 루드빅이 사망하고 1384년 루드빅의 둘째 딸 야드비가가 10세의 나이로 폴란드 여왕이 되었다.
본래는 루드빅의 첫째 딸 마리아가 폴란드 여왕에 즉위할 예정이었으나, 그녀가 헝가리 여왕이 되었기 때문에 야드비가가 폴란드 여왕이 되었다. 야드비가는 이후 폴란드 귀족들의 바람에 따라 1385년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야기에오와 결혼하여 야기에우워 왕조를 열였다.
무예도감이 설치되었다.
명나라에서 서안종루가 건립되었다
서양 위클리프 사망.
명.고려 철령위문제로 대립하지만 외교관계수립, 영토를 내어준 느낌이다
60년전 일본에서 쇼추의 변이 일어났다. (고다이고 덴노의 가마쿠라 막부 타도 계획이 호조씨에게 들통나 덴노의 측근이 사도 섬으로 유배되었다.)
남아시아 일대에 흑사병이 유행하였다
50년전원나라의 하북 지방에서 흑사병이 발생하였다
- 피렌체 주교가 피렌체 대성당의 초석을 놓아 공사가 시작되었다
40년전 마그누스 4세가 스웨덴의 국왕 선거제를 무시하고 장남 에릭 (5세)을 후계자로 선언하였다.
원나라 중국에서 기근이 발생하였다.
30년전 오스만 제국이 갈리폴리 (겔리볼루) 를 점령하며, 유럽 대륙에 역사적인 첫 발을 내딛었다.
라오스에 란쌍 왕국이 세워졌다.
왈라키아 공국이 헝가리 왕국의 속국이 되었다
20년전 스웨덴의 왕 마그누스 4세와 하콘이 페위되고 메클렌부르크 공작 알베르트가 왕으로 즉위하였다.
샤를 5세가 프랑스 왕으로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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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후 토리노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용담공 필리프 : 부르고뉴 공작사망
30년후 지기스문트가 제창하여 대립 교황 요한 23세가 남독일 보덴 호반의 콘스탄츠에 소집한 기독교의 공의회인 콘스탄츠 공의회가 시작되었다
40년후 영락제 : 명나라 제3대 황제사망
50년후 -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 등이 해시계 앙부일구를 제작하였다.장영실이 자동 물시계 자격루를 제작하였다.
60년후 오스만 제국과 헝가리, 폴란드군 간에 바르나 전투가 발발하였다.
역서 칠정산이 편찬되었다.
전세제도인 공법이 실시되었다.
1024년
井괘가 지배하는 360년이다
우물은 만물의 생명을 길러주는 물, 즉 생명수의 무한한 원천이다. 정괘의 우물은 47번째 괘인 곤괘(困卦)에서 돌뿌리에 넘어지고 가시덩쿨에 살이 찢긴 자가 마실 생명수를 말하는 것이며, 이 생명수는 인간의 영혼을 위로하고 길러주는 진리를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다.
괘상은 나무를 상징하는 손괘 위에 물을 상징하는 감괘가 있는 형상인데, 이것은 우물속으로 나무로 만든 두레박을 넣어 물을 길러올리는 모습을 표상한 것이다.
수(需)괘이다.60년을 지배하는운이다.
아래는 하늘(乾, ☰)이고 위는 물(坎, ☵)이 있어 '수천수(水天需)'괘라 이른다.
한바탕 소나기라도 쏟아질 형세다.운무가 자욱한 상으로 물러서서 기다려야 할 때를 의미한다
독일은 콘라드2세이 즉위 잘리어왕조시작.작센가가 끝남.
프랑스 앙리1세 카페왕조초기.
영국은 덴마크왕조 초기 크누트왕 10년차
비잔틴은 투르크와 전쟁 심해짐
현종 1024년에 개경을 확장하여 5부(部) 35방(坊) 314리(里)로 정했다. 또한 그동안 폐지되었던 연등회와 팔관회를 부활시켰으며, 최초로 문묘종사(文廟從祀)의 선례를 만들었다.
콘라트 2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되며 잘리어 왕조가 열리게 되었다.
렘노스 섬 전투에서 비잔틴 군대가 에게 해로 쇄도하던 키예프 루스 군대를 격파하였다.
중국 송나라의 사천 일대에서 세계 최초의 지폐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가즈니의 마흐무드가 북인도의 힌두교 성지인 솜나스를 파괴하고 5만여 명을 학살하였다. 엄청난 양의 보물이 약탈되었다.
60년전 베네딕토 5세가 폐위되고 레오 8세가 132대 로마 교황이 되었다
50년전 후우마이야 왕조, 마그라와 부족 동맹군과 모로코의 이드리시 왕조를 멸망시키고 페스 일대 점령.
세비야에서 일어난 반 우마이야 봉기가 진압되었다
40년전 알 만수르가 이끄는 후우마이야 왕조 군이 바르셀로나를 습격하고 레온 인근의 아스토르가를 공격하였다.
30년전 파티마 왕조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20년전 하인리히 2세가 이탈리아의 왕이 되었다.폴란드 왕국이 보헤미아를 상실하였다
요나라군이 송나라로 진격하였다.
10년전 스벤 1세가 급사하자, 그의 아들 크누트가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20년후 고려에서 북방 민족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건설하기 시작한 천리장성을 완공하였다.
송과 서하 간에 경력의 화의가 성립되었다
30년후 모르테메르 전투에서 노르망디 공 기욤 (윌리엄 1세) 가 프랑스 국왕 앙리 1세에게 승리하였다.
- 송나라에서 초신성 1054의 폭발이 관측되었다.
교황 레오 9세의 대사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미카엘 케룰라리오스 사이의 상호 파문 사건. 흔히 이 사건을 가톨릭과 정교회가 분열된 시점으로 파악한다
40년후 토스카나의 피사 대성당 두오모 건축이 시작되었다
잉글랜드의 왕이되는 해럴드 고드윈슨의 배가 노르망디에 난파하였고, 공작 기욤 (윌리엄 1세)에게 충성 서약을 한 후 풀려났다. 이는 이후 윌리엄의 잉글랜드 침공의 명분 중 하나가 된다
50년후 동로마 제국의 황제 미카일 7세가 정교와 가톨릭 간의 통합을 약속하며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였다.
60년후 셀주크 제국이 안티오크를 점령하였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대립교황 클레멘스 3세의 주관으로 대관식을 치렀다.
664년
困괘 360년연못 아래에 있는 물이 빠지는 모습이니 물이 부족한 대지의 만물이 곤궁에 처하게 되므로 곤(困)을 괘 이름으로 하였다.
사람은 사방이 곽 막힌 상태로 생계조차도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곤궁에 처해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가 없으니 힘만 들뿐이다.
兌괘 60년
입이 두 개 겹쳐있으니 남달리 뛰어난 화술(話術)을 구사한다.
입은 화(禍)의 근원이기도 하므로 이 점을 조심해야 한다.
겉보기에는 즐거운 같아도 내면으로는 괴로움을 겪고 있고 무익한 일로 바쁘고 무어라 단정 지을 수 없는 난처한 일에 봉착해 있다.
파벌적인 대립이나 쟁론에 말려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기후가 최저를 찍고난 시점이라 점점 북방으로 향하지만 아직 추운 시점이다.
이슬람과 티벳발흥기.중앙아시아 기반세력들 강화
문무왕 4년(664년) 2월에 각간 김인문, 이찬 천존을 보내어 당의 칙사 유인원과 새로 웅진도독이 된 옛 백제의 왕자 부여융과 웅진에서 동맹을 맺었다. 백제 흥복군은 문무왕 4년(664년) 3월에 사비산성에서 최후의 저항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가면서 백제 흥복은 사실상 종말을 고한다.
60년전 갑자 수나라의 태자 양광이 장안 인수궁 대보전에서 부황 수문제 양견을 시해하였다.
에드원왕자 에설피리스왕에게 가족이 참극을 당한다.
50년전 영국 노섬브리아 에설피리스왕은 에드윈왕자 에드워드왕 찾아온것을 빌미로 전투
40년전 바드르 전투에서 무함마드의 메디나 무슬림군이 메카 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문수사가 창건되었다.
서고트 왕국, 이베리아 동남 해안의 비잔틴 세력 일소하고 이베리아 반도 통일
30년전 피라즈 전투에서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가 이끄는 이슬람군이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군의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1년전 야즈데게르드 3세가 651년 메르브에서 살해당하면서 사산 왕조는 완전히 멸망했다
9년후 김유신사망
10년후 이슬람,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하다.
동로마 제국의 해군, 그리스의 불을 이용하여 이슬람의 대함대를 물리치다
20년후 당중종이 측천무후에게 폐위되고 그를 대신해서 당예종이 황위에 올랐다. 당중종은 폐위된 뒤 연금되었다.
- 쿠파에서 반 우마이야 왕조 봉기가 일어나 총독 우바이둘라를 축출하였다
30년후 묵철가한이 돌궐 제 2제국의 가한이 되었다.
일본이 후지와라쿄로 천도하였다
40년후 시시움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원정군이 우마이야 왕조군을 섬멸하였다.
압둘라 이븐 아브드 알 말리크가 지휘하는 이슬람군이 아르메니아를 공격하였다
50년후 우마이야 왕조 군대가 에브로 강까지 도달하였다. 아브드 알 아지즈는 에보라, 산타렘, 코임브라를 함락하며 포르투갈 중심부 (타호 강 유역) 를 점령하였다
60년후 무슬림 세력이 비잔티움 제국이 다스리는 발레아레스 제도, 사르데냐, 코르시카를 습격하였다
304년
咸卦 360년 이론과 논리를 따지는 것보다는 육감과 정감을 가지고 움직이면 남의 공감을 얻어
매사가 순조롭게 진행된다. 무슨 일이나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고 머지않아 뜻밖의 좋은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너무 감상적인 것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을 수가 있으므로 연애 사건 등에 조심해야 한다.
革괘 60년시작한다
연못아래 불이 있으니 물이 끊어 증발하여 큰 변화를 하므로 혁(革)을 괘 이름으로 하였다.
혁(革)은 짐승 가죽이라는 뜻으로 가죽의 털을 벗기면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하기 때문에 혁명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괘를 얻은 사람은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취하려는 상으로서 커다란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잘못 된 것을 바로잡고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데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
개혁은 신뢰성과 박력 그리고 결단성이 있어야 성공한다.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나서는 안되므로 지속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5호16국시대. 게르만민족의 반격이 시작.
5호 16국 개막을 알리는
남흉노의 좌부수(左部帥) 유연은
서진 황족의 권력쟁탈에 용병으로 개입하면서 독립을 모의하게 되었다.
사마영의 몰락이 가시화되자 사마영을 속이고 업에서 빠져나와 흉노의 거주지인 병주(并州)로 향했다.
병주의 이석(離石)에서 거병한 유연은 304년 10월에 한(漢)을 건국하였다.
유연은 아들 유총(劉聰)과 친족인 유요(劉曜),갈족(羯族)의 석륵 등을 거느리고 병주 중남부를 점령하고 서진의 수도 낙양(洛陽)을 압박하였다.
백제 비류왕즉위로 초고왕계가 득세함
60년전 244년 낙곡대전 : 위나라의 조상이 촉나라 한중을 공격했으나 왕평, 비의의 반격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고 후퇴하였다.
위나라의 유주자사 관구검이 위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로마군이 반란을 일으켜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를 유프라테스 강 근처에서 살해하고 필리푸스 아라부스를 로마 제국의 새 황제로 옹립시켰다. 황제가 된 필리푸스는 즉시 사산조 페르시아와 평화 조약을 맺었다
55년전 고평릉 사변.사마의의 세상
50년전 스테파노 1세가 23대 로마 교황이 되었다.명림어수사망
40년전 강유와 종회가 촉한을 부흥시키고자 위나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죽임을 당했다.
손호가 오나라 4대 황제가 되었다
30년전 로마 제국이 갈리아 제국, 팔미라 제국을 멸망시키고 제국을 다시 통합했다.
20년전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기독교 박해로 유명
유례 이사금이 신라 14대 국왕이 되었다.
10년전 왜군이 신라의 장봉성을 공격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하였다.
10년후 전량 건국자 장궤사망
로마 제국의 내전 중 하나로서, 키발라이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군이 리키니우스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대방군이 고구려에 의해 멸망하였다.
20년후 크리소폴리스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의 군대가 리키니우스의 군대를 완전히 격퇴하고 여세를 몰아 니코메디아에서 항복을 받았다. 이로써 모든 경쟁자를 꺾은 콘스탄티누스 1세는 단독으로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장준이 전량 제 4대 국왕이 되었다
30년후 석호가 후조 제 2대 황제 석홍을 천왕의 지위에 올라 섭정을 시작하였다. 이후 폐위된 석홍은 해양왕에 봉해졌으며, 숭훈궁에 유폐되었다가 살해당했다.
이반이 성한 제 2대 황제가 되었으나, 얼마 못 가 이월과 이기에게 살해당하였다. 이후 이기가 성한 제 3대 황제가 되었다
40년후 흘해이사금 왜국의 혼인은 거절하자 국교가 끊기고 2년후 전쟁에 돌입
50년후 동진의 환온이 은호를 탄핵시키고 군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전진을 공격하였으나 군량 부족으로 퇴각했다.
52년후 석씨대신 김씨 내물왕등극
60년후 발렌티니아누스 1세가 동생인 발렌스에게 로마 제국 동부의 통치권을 위임하였다.
왜가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공격하였다.
bc57년
갑자년 - 선천역학 구괘에서 大過卦로 바귀는 시점 새로운 2,160년이 시작된다
대과는 기둥이 휘는 것이니, 행하는 것이 이로워 형통할 것이다”라고하여 기둥이 휘는 것으로 상징한다. 이와 같이 과도한 양의 세력을 적절하게 절제하여 중용을 얻을 때 형통하게 된다는 것이 괘사의 뜻
夬卦(360년)
결단을 내릴 때다. 우유부단한 마음은 중요한 일을 놓치기 쉽다.
끊고 맺는 것을 확실히 하여 뒷날에 후회가 없도록 하여야 한다. 인생에는 연습이 없다.
순간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므로 전체적인 합의하에 명분을 쌓고 일을 추진하면 반드시 성공한다.
사업은 비록 위험이 따르더라도 결행할 일은 단호하게 결행해야 한다. 미루다가는 후일에 큰 우환이 된다
大過卦(60년) 夬世(10년) 시작된다,大過 갑자년이다.
10년운은 아래 다섯 양효(陽爻)가 위에 있는 하나의 음효(陰爻)를 밀어내고 있는 상이니 쾌(?)를 괘 이름으로 하였다.
소인배인 음효 하나가 군자인 다섯 양효 위에 군림하고 있으니 전체를 위해 소인을 물리칠 결단을 내릴 때다.
또 하늘 위에 큰물이 있으니 홍수가 날 것이며 홍수는 만물을 휩쓸고 나간다.
한반도와 갈리아 전역에 기존문명이 지배하기 시작한다.
6월 8일 - 신라 건국. (음력 4월 28일)갈리아 전쟁 2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벨가이를 정벌하다
60년후 남해 차차웅이 신라 제 2대 왕이 되었다. 혁거세 시체가 4군데로 피살된 것으로 본다.
기원전 417년 알키비아데스와 니키아스의 정적인 히페르볼루스가 아테네에서 추방당했다
60년후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 필리포스 2세가 올림피아스와 결혼하였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장군 파르메니온이 일리리아군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중원갑자(오)
1924년 손괘
손은 형통한 것이 적다. 가는 것이 이로우며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라고 되어 있는데, ‘형통한 것이 적다’라는 것은 손괘가 초육과 육사 두 개의 효를 주효로하여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며,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라는 구절은 음효가 양효를 따르는 것처럼 유순한 성격을 가진 자는 양강(陽剛)한 대인의 지도와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음양원리에 입각한 것이다.
1924년 6월 26일 임시정부로부터 정식 인준을 받은 참의부는 집안(集安)·무송(撫松)·장백(長白)·안도(安圖)·통화(通化)·유화(柳化)의 각 현에 거주하는 동포 사회를 관할하며 항일전을 전개하였다.
10월 - 장학엽, 진로 설립.
- 펑위샹, 반대파인 장작림과 짜고 베이징 정변을 일으키다.
이후 장작림의 시대가 1927년까지 지속.
11월 26일 - 몽골, 중국으로부터 독립
북경에서 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 설립
간토 대지진(일본어: 関東大震災)은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 32초(일본 표준시)에 일본 가나가와현 사가미 만을 진앙지로 발생했던 큰 지진이다.
1564년
升괘 60년이다.
승(升)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의미하는 승(昇)과 통용되는 문자로서 ‘위로 올라간다’는 뜻을 갖는다. 승괘는 곤괘(坤卦)와 손괘(巽卦)로 구성된다. 여기에서 곤괘는 ‘땅’, 손괘는 ‘나무’를 상징한다.
泰괘 10년도 시작
사람은 만사가 형통하는 시점에 놓여있기 때문에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는 것이 최선이다.
정상에 오르면 그 다음은 내리막길이므로 지금의 호운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미켈란젤로 이탈리아의 화가
장 칼뱅 : 프랑스의 신학자
페르디난트 1세 :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사망
막시밀리안 2세 즉위
근대과학의 태동기.
갈릴레오 갈릴레이 - 세익스피어 탄생
60년전 갑자사화가 일어났다.
콜럼버스의 마지막 항해인 4차 항해가 종결되었다
50년전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제국 사이에서 찰디란 전투가 발발하였다.
40년전 - 독일 농민전쟁이 발발하였다
30년전 로마 가톨릭 수도회인 예수회가 설립되었다.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가 퀘벡 식민지를 개척하였다
20년전 중종 : 조선 제 11대 국왕사망
8년전 스페인 펠리페2세 즉위
10년후 네덜란드 독립운동.메이데이시민 빵과 청어지급.
10년후 샤를 9세 사망.
발루아왕조의 마지막 왕 앙리 3세 즉위
12년후 스페인 안트베르펜 군인들 반란
20년후 이이 : 조선 중기의 문신탄생
이반 4세 : 러시아의 군주탄생
25년후 스페인 남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인구 절반이 준다.화란으로 이동.
30년후 1594년. 브루노(지오르다노. 1548-1600)의 <무한, 우주와 여러 세계에 관하여>가 출판됨.
40년후 정인홍 1604년 여름 공조참판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퇴했다. 북인이 선조 말년에 소북·대북으로 분열
50년후 1614년 이수광이 《지봉유설》쓴다
영창대군 사망.
60년후 1624년 이괄의 난이 발생하다.
네덜란드가 에스파냐의 저항을 물리치고 타이완 섬남부에 거점을 마련하였다.
1204년
大過卦로 60년이 시작된다
대과는 기둥이 휘는 것이니, 행하는 것이 이로워 형통할 것이다”라고하여 기둥이 휘는 것으로 상징한다. 이와 같이 과도한 양의 세력을 적절하게 절제하여 중용을 얻을 때 형통하게 된다는 것이 괘사의 뜻
십년씩은 은 쾌,咸,困,井.恒,구괘가 지배한다
몽고군 본격 가동기이며 유럽왕권의 강화
- 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다.
- 플랑드르의 백작 보두앵 1세가 황제로 선출되며 라틴 제국을 건국되었다.
나코 절벽 전투에서 몽골군이 나이만 - 자다란 군대를 대파하고 구르베수를 사로잡았다
고려 희종즉위,최충헌 암살 미수사건이 발생한다
60년전 장기 왕조의 아미드 앗 딘 장기에 의하여 에데사가 함락되며 에데사 백국이 멸망하였다.
무라비트 왕조의 모로코 방면 사령관이자 카탈루냐출신의 용병인 로베르테르가 사망하여 무와히드 왕조의 마그레브 정복이 가속화된다.
50년전 헨리 2세의 대관식이 치러졌다.
무와히드 왕조 군대가 6년여간의 포위 끝에 그라나다를 함락, 알 안달루스의 2차 타이파 시대를 끝냈다.
40년전 셀주크 제국 군대가 아르메니아의 수도 아니를 점령하고 아나톨리아로 진군, 카이세리를 점령하였다.
- 카스티야 왕국의 왕 페르난도 1세가 바다호스 토후국을 격파하고 코임브라를 점령하였다
후에 잉글랜드의 왕이되는 해럴드 고드윈슨의 배가 노르망디에 난파하였고, 공작 기욤 (윌리엄 1세)에게 충성 서약을 한 후 풀려났다. 이는 이후 윌리엄의 잉글랜드 침공의 명분 중 하나가 된다.
10년후 몽골 제국이 4차 금나라 원정을 하여 만리장성 일대를 손쉽게 점령하고 중도를 포위하였다.
요동에서 반란을 일으킨 야율유가의 거란족을 금나라 군대가 공격하였으나 패하였다.
- 앙리 1세가 카스티야 왕국의 왕이 되었다
20년후 몽골 제국 군대가 5차 탕구트 원정을 감행하여 서하의 수도인 흥경 (인촨)을 포위하였다.
서하의 헌종 이덕왕이 몽골에 항복하고 인질을
바치는 대가로 국가를 보전하였다.
남송과 금나라가 화의에 합의하였고, 연공의 완전한 폐지와 상호간의 사신 교환의 중단이 이루어졌다
30년후 금나라멸망, 몽고 3 차침입
40년후 최우는 전체적으로는 몽골군의 침공에 대비하지 않고 성대한 잔치나 연회만 계속 하였다.
1244년에 사사로이 짠 노란 비단으로 강안전 후벽의 장지문을 장식하면서 임환에게 무일편을 쓰게 하였으며, 고종으로부터 매우 많은 상을 받았다
50년후 몽골의 6차 고려 침공으로 20만명이 학살되었다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테오도루스 2세 라스카리스가 이끄는 니케아 제국군이 아센 1세가 이끄는 제2 불가리아 제국군을를 격파하였다.
60년후 몽골 제국군이 사할린을 침공하였다.
독일의 튀링겐 계승 전쟁이 종결되었고 헤센 주가 튀링겐으로부터 분리되어 자유주가 되었다
844년 바이킹 이슬람공격
坎괘 60년이다
악운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실패, 좌절, 파산, 병고 등의 어려운 일이 계속 발생한다.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깊은 고통으로 빠져드니 비장한 각오로 배수진을 치고 힘껏 노력해야만 한다.
철저한 자기 반성과 굳은 의지만이 난관을 타개하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소외되던 바이킹. 동부유럽국가 정립.
루트비히 2세는844년 6월 15일 로마에서 교황 세르지오 2세에 의해 롬바르디아의 왕으로 정식 대관식을 치렀다. 사라센과 전쟁多
루트비히 2세가 이탈리아의 왕이 되었다.
바이킹이 갈리시아를 약탈하였으나,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라미로 1세가 이를 격퇴하였다.
바이킹군이 세비야, 니에블라, 베자, 리스본을 약탈하였으나 후우마이야 왕조의 구원병에게 격퇴되었다
60년전 간무 천황이 일본의 수도를 나가오카로 천도하였다.
50년전 교토가 일본의 새로운 수도가 되었다. 나라 시대가 끝나고 헤이안 시대가 시작되었다.
발해가 상경용천부로 다시 수도를 옮겼다.
카롤루스 대제가 독일 북서부의 아헨에 궁정과 왕실 교회를 짓고, 이곳을 프랑크 왕국의 사실상의 수도로 정했다.
40년전 카롤루스 대제가 작센을 완전히 복속시켰다.
크라소스에서 비잔티움 제국이 아바스 왕조군의 급습으로 대패하였다.
30년전 프랑크 군대, 안도라 일대 점령, 피레네 산맥 지역 평정. 마르크 (변경백) 설치
불가르족의 칸인 크룸이 비잔티움 제국 원정을 위한 군대를 모았으나 콘스탄티노플으로 진격하기 이전에 숨을 거두었고 그의 아들인 오무르타크가 불가르족의 칸 자리를 계승한다
20년전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포티우스가 로마 헌법을 발표하며 로마 교황이 비잔틴 제국의 황제에게 충성 서약할 것을 주장하였다.
바스크 인들이 2차 론세스바예스 전투에서 카롤링거 (프랑크) 군대를 격파하여 팜플로나 왕국(나바라 왕국)이 건국되었고, 이니고 아리스타가 초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선암사 창건
10년전 신흥사가 창건되었다.
10년후 용주사가 창건되었다
20년후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차르 보리스가 비잔틴 제국의 황제 미카일 3세를 대부로 삼고 세례를 받으며 그리스 정교로 개종하였다
30년후 노르웨이인 잉골프 아르나르손이 최초로 아이슬란드에 정착하였고 이들 정착민들에 의해서 레이캬비크가 건설되었다
40년후 황소의 난을 겨우 잠재우나 907년 멸망한다.
50년후 894년 궁예독립
60년후 후고구려의 왕 궁예가 국호를 후고구려에서 마진으로 변경하였다.
484년 건괘60년
산 위에 물이 있으니 산을 넘으면 다시 물이 앞길을 막고 있어 나아가기가 불편하니 절름발이라는 뜻을 가진 건(蹇)을 괘 이름으로 하였다.
운세가 완전히 쇠운(衰運)으로 접어들고 있다.
작은 산을 건너면 큰산이 기다리고, 작은 내를 건너면 큰 강이 앞을 가로막는다.
험난한 일들을 많이 당한다.
이 때는 부질없이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수양과 사색에 힘쓰는 것이 현명하다.
서로마.부여멸망과 선비족과 프랑크의 정립.
소지마립간 6년(484년) 7월 고구려(장수왕)가 다시 북쪽을 침공, 백제군과 함께 모산성 아래에서 크게 쳐부쉈다.
1년후 동부여가 고구려에 합병되었다.
룽먼 석굴이 착공되었다.
북위의 효문제가 다퉁에서 뤄양으로 수도를 옮겼다
60년전 유송의 황제 유의부가 서선지와 단도제 등에 의하여 폐위되었다. 유의부는 폐위된 이후 오군(呉郡)의 금창정(金昌亭)에 유폐되고 영양왕으로 봉해졌다
424년에 눌지왕 사신을 보내 비록 복호를 빼내왔어도 고구려와 척지고 싶지는 않다는 의사를 표현해 정상 외교 관계를 유지하였다
50년전 비잔티움 제국이 훈족에게 공물을 바쳤다
434년 백제에서 신라로 좋은 말과 흰 매를 선물로 보내고, 답례로 신라는 야광주와 황금을 보내는 등 친교를 쌓는다. 당시 장수왕은 남방보다는 서쪽 중원의 급박한 정세에 집중하고 있어서 그랬는지 나제동맹의 체결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는 않았다
아틸라 훈족지도자 등극
40년전 444년에는 서라벌까지 왜가 쳐들어와 10일간 포위했다가 식량이 떨어지자 퇴각하는데,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눌지 마립간은 군사를 이끌고 왜군의 뒤를 무리하게 쫓았다가 대패한다. 절반의 군사를 잃고 산으로 도망갔으나 왜군들에게 포위당하는데, 다행히도 짙은 안개가 끼어 포위망을 탈출하고 왜군들은 물러간다
38년전 메로비치의 메로빙거 왕조시작
33년전 아틸라 훈족과 전투로 승리
4년전 프랑크 힐데리히가 로마에 대적하기 시작
21년전 프랑크 힐데리히가 로마와 협력하여 서고트 공략시작..
13년전 481년 힐데리히 사망.
동유럽피가 흐르는 클로비스황제 등장
5년후 프랑크 수아송공략하자 로마는 중유럽에서 쇠퇴.
7년후 491년 클로비스 라인지역 지게베르트와 협력
12년후 496년 클로비스는 현재독일땅의 알라만족 처치에 계시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
20년후 동고트 왕국군이 베오그라드를 약탈하였다
22년후 프랑크 앙브와즈에서 서고트의 알라리크를 죽이고 몰아내고 갈리아차지.54년후 로마집정관에 임명.
지게베르트 암살 등 경쟁자제거하고 갈리아통일
27년 클로비스 사망
30년후 법흥왕이 신라 제 23대 국왕이 되었다.
40년후 북쪽은 6진의 반란이 북위의 전 국토에 확산된 것도 주에 소속된 군대,성민이 동조했기 때문이다.
북위는 33년 과도기를 거쳐 북주, 북제로 바뀌게된다.
50년후 파푸아 산에서 저항하던 겔리메르가 비잔틴 제국에게 항복하며 반달 왕국이 멸망하였다
톨레도가 서고트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60년후 베트남에서 이남제에 의해서 전 레 왕조가 세워졌다.
비잔티움 제국의 베살리우스 장군이 오트란토를 공격하던 토틸라 왕의 동고트 왕국군을 격퇴하였다.
124년
수괘60년
운무가 자욱한 상으로 물러서서 기다려야 할 때를 의미한다.
이 괘를 얻은 사람은 매사에 막힘이 많고 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조급하기 쉬운데
이런 때일수록 침착하게 몸과 마음을 가다듬으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축적된 힘이 크면 클수록 나중에 얻을 수 있는 성공 또한 크다.
후한과 로마 방어.내치
하드리아누스 네르바 제3대 황제이다.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건립,팽창주의 노선을 폐기하고 현실적인 판단을 토대로 변경 안정화로 전환하였다.
60년전 -다루왕의 백제가 탈해의 신라의 구양성을 공격하였다.
로마 황제 네로가 기독교 박해를 실시하였다
50년전 반초가 흉노를 격퇴하고 서역의 지배권을 확보하였다
40년전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가 로마군의 봉급을 올렸다
30년전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가 철학자 추방령을 발표하였다.
반초가 서역의 50개국을 후한에 편입시켰다.
20년전 다뉴브 강을 가로지르는 트라야누스 다리가 건설되었다.
로마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10년전 트라야누스 개선문이 완공되었다
1년전 123년 3월에 결국 일본과 화친해 이 때부터는 거의 80년 가까이 일본군이 신라에 쳐들어오는 기록이 없어진다
10년후 빌라 아드리아나가 완공되었다.
지마이사금죽고
일성 이사금이 신라 7대 왕이 되었다
20년후 충제(후한)가 2살의 나이로 후한 제9대 황제가 되었다.
30년후 박씨 마지막 아달라 이사금이 신라 제8대 왕이 되었다.
41년후 길선의 백제도주후 백제와의 평화가 깨짐.
50년후 엘레우테리오가 13대 로마 교황이 되었다
60년후 황건적의 난
시황제은 여불위를 승상의 자리에서 내치고, 자결을 강요하였다. 이듬해인 기원전 237년에 여불위는 결국 자결하였으며 시황제은 비로소 친정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60년후 로마의 도로 Via Aemilia가 완공되었다.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가 셀레우코스 제국의 왕이 되었다.
기원전 597년에 여호야긴 왕이 폐위되면서 일족이 바빌론으로 끌려간 바빌론 유수
bc957년 솔로몬왕이 유대의 첫번째 사원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