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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갑자
1909년 청 선통제 원년
7월 12일 - 대한제국과 일본 간에 기유각서 체결.
7월 12일 - 이란 에서 혁명 발생.
10월 26일 -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사살.
12월 4일 - 일진회, 한일 합방 조약을 요구.
프리쯔 질소비료 개발로 농업생산량 비약적증가
청일간 간도협약.
한국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해로 유명하다.
남한 대토벌 작전(南韓大討伐作戰)은 일본 제국이 1909년 9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약 2달간에 걸쳐서 대한제국내 전라남도와 그 외곽지대에서 저항을 했던 항일의병들을 진압하기 위해 세운 토벌작전이다.
1549년에 그리스도교 선교사인 프란시스코 자비엘(Fransisco Xavier)이 가고시마(鹿兒島)에 상륙하여 일본 국내 각처를 다니면서 전도한 것을 시작으로, 포르투갈과 에스파니아의 선교사들이 활동시 이언적은 회재집(晦齋集), 《대학장구보유(大學章句補遺)》(1549)지음
40년전 헨리 8세가 영국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포르투갈 함대가 믈라카에 도달하였다
50년전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아메리카 항해가 시작되었다
39년전 카를은 모친 후아나와 아버지인 미남왕 필리프 대공이 부르고뉴 공국을 다스고 있던 시절인 1500년 부르고뉴 공국의 영지인 플랑드르의 헨트(겐트, Ghent)에서 태어났다.
30년전 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즈텍 제국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에 진격하였다.
기묘사화가 일어났다.
20년전 오스만 제국이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심지인 오스트리아의 빈을 포위하며 1차 빈 공방전이 벌어졌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사라고사 조약을 맺었다.
10년전 데 소트가 미시시피 강 유역과 애팔래치아 산맥 일대를 탐사하였다.
10년후 필립2세의 부인 메리1세사망으로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엘리자베스 1세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20년후 허균탄생
30년후 네덜란드의 북부 7주가 위트레흐트 동맹을 맺었다.
- 악바르 대제가 지즈야를 폐지하였다
40년후 프랑스 왕국의 국왕. 발루아-앙굴렘 왕조의 마지막 왕 앙리3세사망
후사가 없었고 그의 뒤를 이어 매부였던 앙리 드 부르봉이 즉위해서 부르봉 왕조의 앙리 4세가 되었다
1189년 십자군 3차 원정,예루살렘 왕국 재건
1189년 7월 6일, 부왕(父王) 헨리 2세가 세상을 떠나고 리처드가 잉글랜드 국왕으로 즉위했다.
1189년(명종 19)이규보 네 번째의 응시를 앞두고 꿈에 장원할 것을 알려준 규성(奎星)의 예시에 보답한다는 뜻으로 규보(奎報)로 고쳤다
90년전 1차 십자군 1099년까지 약 3년 간. 동로마 제국령 유럽을 지나 아나톨리아를 가로지르며 튀르크인들을 격파하고 레반트로 진군, 분열 상태였던 레반트를 어렵지 않게 제압하고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60년전 금릉 함락 이후 북송의 신하 장방창이 금나라에 의해 황제로 옹립되어 괴뢰 국가인 초나라가 세워졌으나 그가 곧 남송으로 도망쳐 폐지되었다. 여담으로 그는 강제로나마 칭제한 죄로 처형되었다..
고려 인종이 금나라 조정에 (영토 할사에 대한 감사) 서표를 올려 보주성이 고려 영토로 인정받게된다
50년전중국 하남에서 남송군이 금나라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알 무크타피가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에 대한 보호를 보장해 주었다.
아폰수 1세가 즉위하며 포르투갈 왕국이 건국되었다
40년전 2차 십자군이 후퇴를 결심하였다.
- 바르셀로나 백작 라몬 베렌게르 4세의 군대가 레리다를 포위한 끝에 함락하였다.
해릉왕이 쿠데타로 금나라 황제로 즉위하였다
30년전무와히드 왕조가 시칠리아 왕국의 노르만 군대를 격파하고 튀니스를 탈환하였다.
헤이지의 난 : 일본의 부시 가문인 타이라 가문과 겐지 가문 간의 전쟁에서 타이라노 키요모리가 승리하고 미나모토 요시토모를 처형한 후 실권을 장악하였다
20년전 잉글랜드의 노르만 군대가 렌스터 백작의 요청으로 아일랜드에 상륙하였다. 잉글랜드의 아일랜드 침공의 시작.
잉글랜드 국왕 헨리 2세와 프랑스 국왕 루이 7세가 평화에 합의하며 12세의 리처드와 9세인 벡셍 여백작이자 루이의 딸인 앨리스를 약혼시켰다.
- 시칠리아에서 지진이 일어나 약 1만 5천명이 사망하였다.
다음해 무신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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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후 교황 인노첸시오 3세가 잉글랜드의 존 왕을 파문하였다.
천산 위구르 왕국이 몽골 제국에 스스로 복속하였다.
더블린으로 이주한 브리스톨 출신의 5백여명의 잉글랜드 인들이 아일랜드 인들에게 학살되는 암흑의 월요일 사건이 일어났다.
조지아 왕국의 군대가 이란 북부 일대를 습격하였다
- 케임브리지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30년후 가마쿠라 막부의 쇼군 미나모토노 사네토모가 가마쿠라 한복판에서 조카 구교에게 살해되며 겐지 가문의 적통이 끊겼고, 막부의 쇼군 직이 공석이 되었다. (~1226년)
강동성 전투에서 고려, 몽골, 동진의 연합군이 거란족을 항복시켰다. (대요수국의 멸망)
몽골 제국의 호라즘 왕조 침공이 시작되었다.
호조 가문이 가마쿠라 막부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칭기즈칸이 장춘진인을 초대하여 조언을 들었다
40년후 -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 알카밀과 평화조약을 맺어 6차 십자군 원정이 끝났다.
- 학생들의 준동으로 2년에 걸친 파리 대학의 파업이 시작되었다.
50년후남송의 명장 맹공이 몽골군으로부터 양양을 탈환하였다.
프리드리히 2세의 신성 로마 제국군이 구엘프를 상대로 승리하고 파엔자를 점령하였다.
60년후루이 9세의 7차 십자군이 이집트의 다미에타에 입성하였다.
- 알렉산더 3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829년 에그버트 왕가 앵글로 색슨 왕국 성립, 나일강이 얼다. 이후 온난화로 감
북위 헌문제 469년에 친정을 개시하고, 장남 탁발굉(효문제)을 태자로 정했다. 삼등 구품의 제를 규정 국내의 통치를 정비하여 다음의 효문제의 전성기의 주춧돌을 쌓아 올렸다.
김우징이 기존의 신라 왕이었던 민애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라 신라 제 45대 왕인 신무왕이 되었다
60년전 경주에서 규모 7.0으로 추정되는 지진이 났다.
- 당덕종이 당나라 제 9대 황제가 되었다
50년전 베르무도 1세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이 되었다.
40년전 바이킹이 프랑스 서부의 루아르 강 하류에 당도, 누아르뮤티에와 낭트 시를 습격하였다
30년전 알아민이 아바스 왕조의 제 6대 칼리프가 되었다.
- 크룸이 이끄는 불가르족이 세르디카를 점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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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오스티아 해전에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연합 함대가 사라센족 함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20년후 바이킹이 이베리아 북부 해안을 약탈하고 나바라 왕국의 국왕을 사로잡은 후 몸값을 요구하였다.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오르도뇨 1세가 피레네 산맥 중서부에서 무사 이븐 무사가 이끄는 후우마이야 왕조군대를 무찔렀다. (알벨다 전투)
30년후 궁예탄생
40년후 루이2세사망.3세즉위
50년후사벌주(지금의 상주시)에서 정부의 과도한 세금 독촉으로 농민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일어난 반란인 원종과 애노의 난이 발발하였다.
야소바르만 1세가 크메르 제국의 왕이 되었다
469년 백제 개로왕은 신라의 지원군을 빌릴 수 있다는 상황에 자신감이 생겼는지 469년에는 고구려를 공격했는데 이는 광개토대왕 이후 처음으로 백제가 고구려를 공격한 사건이다
60년전 북위의 초대 황제 탁발규가 그의 아들 탁발소의 손에 살해당했다. 이후 장남 탁발사가 북위 제 2대 황제가 되었다.
50년전 사마덕문이 동진 15대 황제가 되었다
40년전 가이세리크가 이끄는 반달족이 북아프리카를 공격하였다.
30년전 반달족이 카르타고를 점령한 뒤 이곳을 수도로 삼고 반달 왕국을 건국하였다.
북위가 화북 지방을 통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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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후 489년 9월 고구려가 또다시 신라 북쪽을 공격해 호산성을 빼앗는다
테오도리쿠스 대왕이 동고트군을 이끌고 북부 이탈리아를 공격하여 이곳을 방어하던 게피드족 군대를 판노니아에서 섬멸하였고, 파비아와 밀라노를 정령하였다.
30년후 선무제가 북위 8대 황제가 되었다.
40년후 신라에서 서라벌의 상설 시장 동시를 관리하기 위한 관청인 동시전이 설치되었다.
109년 파사이사금 신라에 풍년이 들었다. 이해에 황충(蝗蟲)이 곡식을 해치므로 왕이 산천에 두루 제사지내어 비니, 황충이 없어지고 그 해에 드디어 풍년이 들었다.
BC 252년 안티오커스 2세는 이집트의톨레미의 딸 베레니케(Berenice)와 혼인하여 이 두 왕조간에 평화 협정이 체결되었다
신바빌로니아는 메디아와 동맹을 맺어 아시리아를 공격한 끝에 BC 612년에 이르러 아시리아 제국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서아시아 지역은 이집트, 신바빌로니아, 메디아, 리디아 네 나라가 지배하게됨
솔로몬 왕의 등극이 BC972년이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 왕이 40년을 통치하고 BC932년에 사망
상원갑자
1729년 11월 9일 - 스페인, 프랑스와 영국이 세비야 조약에 서명하다.
영조 북관의 군병에게 조총 훈련을 실시하고, 1729년 화차를 제작하여 이듬해 수어청에 총의 제작을 명하고 진(鎭)을 설치하여 각 보진(堡鎭)의 토성(土城)을 개수하는 등 국방 대책에 힘썼다. 오가작통법을 부활
60년전 기유
에트나 화산이 폭발하여 근처 도시 시민 2만명이 사망하였다.
벵골 지방에서 기근이 발생하여 300만명이 사망하였다.
50년전 기미
영국에서 인신보호법을 공포하였다.
무굴제국 제 6대 황제 아우랑제브가 지즈야를 부활시켰다.
40년전 기사년 메리 2세와 윌리엄 3세가 영국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이 대거 실각하였다.
영국이 권리장전을 발표하였다
30년전 워싱턴주 태평양 연안의 캐스케디아 섭입대에서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10년후 기미 건륭제의 명에 의해 흠정만주원류고가 간행되었다
20년후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오라토리오 솔로몬이 초연되다.
- 영국인들이 핼리팩스로 이주하기 시작
30년후 기묘년
7년 전쟁: 영불 양국이 캐나다 지역의 지배권을 두고 아브라함 평원 전투를 벌였고, 영국이 승리하여 퀘벡이 함락된다.
덴마크 령 인도 식민지가 영국에게 매각되었다
40년후 영국에서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에 대한 특허를 획득하다.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다.
프랑스 왕국이 코르시카를 점령하다
7년 전쟁의 후폭풍으로 프랑스가 인도에서 완전히 철수하였고, 동인도 회사가 파산하였다.
벵갈에서 대가뭄이 들어 1770년의 대기근으로 이어진다.
제임스 쿡이 뉴질랜드에 상륙하였다.
50년후 - 미국 독립 전쟁: 스페인이 영국을 상대로 선전포고하다.
바이에른 왕위 계승 전쟁: 프랑스와 러시아의 중재로, 바이에른 왕국 / 오스트리아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 사이의 강화조약이 체결되다.
1369년 원나라 토곤 테무르의 제2황후인 기황후가 죽음
홍무제는 . 학자들을 관리로 훈련시키기 위해 홍무제는 1369년 직접 칙령을 내려 각 지방 행정 구역에 학교를 설립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행정 학교의 학생들에게는 국가의 교육보조금이 지급되었고 이 중 실력이 우수한 학생들은 과거 제도를 거치지 않고도 중앙의 한림원에 입학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60년전 기유 아비뇽 유수 : 교황권의 추락과 중세의 쇠퇴
카스티야 왕국의 페르난도 5세가 그라나다 토후국으로부터 지브롤터를 함락하였다
50년전 기미
스웨덴이 3세의 마그누스 에릭손을 왕으로 모시며 양국간의 동군연합이 이루어졌다. 그의 모친 잉게보르그가 양국의 섭정이 되었다.
키오스 해전에서 로도스 기사단이 아이딘토후국의 해군을 격파하였다.
40년전 기사
펠레카논 전투 (말테페 전투)에서 오스만군대가 비잔틴 제국군을 격파하였다.
- 원명종이 암살되었다. (천력의 변)
원문종이 복위하였다.
30년전 기묘 라우펜 전투에서 베른 칸톤으로 쳐들어온 합스부르크 가문 (오스트리아) 군대, 부르고뉴 공국, 프라이부르크 군대를 스위스 연맹군이 격파하였다.
- 고무라카미 덴노가 일본 남조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모스크바의 크렘린이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중세 유럽 도시로는 최초로 피렌체의 모든 도로가 포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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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후안 1세가 카스티야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오스트리아 공작 알브레히트 3세와 그의 형제 레오폴트 3세 간 영토 문제로 노이베르크 협정이 체결되었다.
20년후 코소보 전투에서 무라드 1세가 지휘한 오스만 제국군이 라자르 공의 세르비아 군을 격파하였다. 다만 양측 지휘관이 모두 전사한 피로스의 승리였다
이성계에 의해서 창왕이 폐위되고 공양왕이 왕위에 올랐다.
30년후 - 정종이 조선의 수도를 개성으로 천도하였다.
건문제가 즉위한 그해 연왕 주체가 반란을 일으켜, 정난의 변이 일어났다.
40년후 피사 공의회가 열렸고 여기서 교황 그레고리오 12세와 아비뇽의 대립 교황 베네딕토 13세의 폐위가 결정되었다.
- 라이프치히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권근사망
50년후 조선의 대마도 원정군, 거제도로 철수
- 후스 전쟁 발발
1009년
강조의 정변이 발발.
강조의 정변으로 고려 목종이 폐위되고 고려 현종이 즉위.
베트남 리 왕조가 수립되었다
60년전 정종죽고 광종즉위
50년전 에드거 1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콘스탄티누스 7세 :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사망
40년전 니케포루스 2세 :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사망.
30년전 후우마이야 왕조, 레온 왕국 침공하여 수도 레온 포위
10년후 - 북인도의 프라티하라 왕조가 가즈니 제국에게 공격받아 멸망하였다.
모로코의 네코르 왕국이 멸망하였다
강감찬이 귀주에서 거란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20년후 발해의 황족인 대연림이 발해 부흥 운동의 일환으로 흥요국을 건국하였다.
30년후 - 독일왕 하인리히 3세가 이탈리아와 부르군디의 왕이 되었다.
보헤미아 왕국의 브레티슬라브 1세가 폴란드를 공격하여 슐레지엔을 점령하고 그니에즈노에 있던 성 보이테흐의 유골을 프라하로 옮겼다.
40년후 비잔틴 제국과 셀주크 제국이 휴전에 합의하였다.
파티마 왕조가 힐랄 부족을 마그레브로 파견, 이집트에 대한 종주권을 저버린 지리 왕조를 응징케 하였다
50년후 로베르 기스카르와 교황 니콜라오 2세간의 멜피 조약이 맺어져, 노르만의 남부 이탈리아 정복이 인정되고 시칠리아의 정복을 권장되었다.
- 이사키오스 1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위에서 퇴위하였다.
649년
당 태종의 '정관의 치'라는 태평성대가 종식되다.
이세민의 황자인 이치(李治, 당 고종)가 황위를 승계한다.
7월 - 교황 마르티노 1세, 74대 로마 교황으로 취임.
이슬람, 동로마 제국의 이집트 전역을 점령하다.
이슬람, 동로마 제국의 키프로스를 공격했으나 실패하다.
60년전 수나라가 진(육조)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하면서 남북조시대가 끝났다.
50년전 금산사가 창건되었다.
신라의 고승 원광이 흥국사를 창건하였다.
백제계왕죽고 법왕즉위
40년전 양쯔강과 황하를 잇는 수양제의 대운하가 완성되었다.
판테온이 교황 보니파시오 4세에 의해 기독교 교회가 되었다.
20년전 다고베르트 1세 프랑크 재통일
이복동생 카리베르트2세 초대 아키텐왕이 됨.
11년전 이연이 황제로 즉위하며 당나라가 건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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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백제 - 왕도 서남쪽의 사비하에서 큰 물고기가 나와 죽다. 길이가 3장에 달하다.
여자 시체가 떠내려 왔는데 그 길이가 무려 18척이었다.
20년후 순다 왕국이 건국되었다
30년후 다고베르트 2세가 피핀에 암살당하고 테우데리히 3세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면서 프랑크왕 유명무실
40년후 네덜란드 지방이 다시 프랑스의 땅이 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2세가 불가르족을 격퇴하고 테살로니카를 되찾았다.
측천무후가 측천문자를 창제, 반포하였다
50년후 699년, 티벳토번의 치둑송첸은 다른 귀족들과 연합해 가르(喝爾) 가문에 대한 전면적 숙청을 단행하였다. 가르친링이 바깥에 있을 때 사냥을 빌미로 군사를 모은 다음 가르친링의 수하 2000여 명을 죽이고 가르친링 등을 소환. 자살케함
289년 유례이사금 289년 음력 6월 왜인이 다시 쳐들어 온다는 소문이 돌자 선박과 병기를 수리하고 전쟁 준비를 했는데, 이 해 왜인이 쳐들어 오지는 않았다
60년전 손권이 스스로를 오나라의 황제로 칭하고 건업에 도읍을 정하였다.
말갈인들이 백제의 우곡 지역에 침입하여 사람과 재물을 약탈하였고, 이에 백제 구수왕이 300명의 군대를 보내었으나 패하였다.
촉나라의 제갈량이 위나라에 대한 3차 북벌을 전개하였다
50년전 조방이 위나라 제3대 황제가 되었다
40년전 고평릉 사변 : 사마의가 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고 있던 자신의 정적인 조상과 그 일당을 처형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위나라 집권 세력은 조씨 정권에서 사마씨 정권이 된다.
로마 제국의 황제 필리푸스 아라부스가 데키우스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후 데키우스가 직접 로마 황제에 올랐다.
30년전 갈리아에서 포스투무스가 로마 제국을 상대로 한 반란을 일으켰다.
밀라노에서 갈리에누스가 이끄는 로마 제국군이 게르만족 침략군을 격퇴하였다
259년 위나라 장수 울지해(尉遲楷)가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 오자 왕이 기병 5천 명을 이끌고 태자하(太子河) 상류로 추정되는 양맥(梁貊)에서 싸워서 이들을 무찌르고 8천여 명을 목베었다.
20년전 게르만족 군대가 보스포루스 해협 근방에 있는 로마의 도시를 공격하여 로마 제국의 황제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가 게르만족 침략군을 무찔렀다.
팔미라 제국의 제노비아 여왕이 시리아, 팔레스타인, 레바논, 이집트 지방을 정복하였다
20년후
로마 제국이 사산조 페르시아와 40년간의 평화 조약을 맺었다.
20년후 로마 제국에 전염병이 퍼져 많은 제국의 시민들이 사망하였다.
샤푸르 2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30년후 미천왕은 칼끝을 요동으로 돌리지만, 요동은 지리적 요충지라 요동을 노리는 세력이 고구려뿐은 아니었다. 그 중 모용선비가 가장 강해 보였기에 319년 진나라 평주 자사 최비의 아이디어로 우문선비, 단선비와 짜고 모용선비를 분할 점령하는 작전에 고구려군도 참가하게 된다. 작전은 실행에 옮겨저 고구려군은 모용선비의 수도인 극성을 포위했으나 모용선비의 군주 모용외의 계략에 걸려들어 물말아먹고 끝났다. 고구려가 요동 진출을 100년 앞서 실현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이 작전이 실패한 덕분에 모용선비는 전연을 건국해 요동은 물론 화북까지 석권하는 강대국이 되어 이후로도 고구려를 괴롭혔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노예를 불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사마보가 동진의 황제인 사마예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진왕이라 칭하였다.
40년후 후조의 공격으로 전조가 멸망하고, 황제 유희와 고관들이 모두 처형당하였다.
50년후 339년, 고국원왕은 전연과 직접 붙기보다는 일단은 동맹을 맺고 340년 태자를 전연에 보내 조회하도록 했다
61년후 후조멸망
63년후 염민멸망
BC 72년 크랏수스 스파르타쿠스반란을 토벌하고, BC 70년 폼페이우스와 함께 콘술(집정관)로 취임하였다.
bc432년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완성432년경 -그리스의 메톤(Meton) 19태음년(太陰年) 7윤법(閏法)을 정함
bc792년 유다 왕 4대는 BC 792년부터 즉위.이스라엘 왕 여로보암2세는(BC 793-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