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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해외순회5편_워싱턴D.C] 고통받는 2500만 주민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https://youtu.be/17FbCEgE40c 7:49
법륜스님의 하루
2023. 10. 18.
2023.9.21~30 법륜 스님의 하루
미국 백악관, 의회,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만나 한반도의 평화를 호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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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D.C에서의 개별일 활동 등 ( 2023. 9. 28 - 10.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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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하루
2023.9.25 워싱턴 D.C. 1일째 NCNK 간담회
“다툼 후 남편이 말을 안 한 지 10개월이 되었습니다”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458?p=3&k=
2023.09.28.
▲ 오디오로 듣고 싶은 분은 영상을 클릭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스님은 워싱턴 D.C. 에 일주일 동안 머물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오늘은 NCNK(전미 북한위원회) 관계자들을 만나 북한 인도적 지원 사업에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새벽 4시 45분에 미주 정토회관에서 새벽 기도와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미주 정토회관을 찾아온 손님과 대화를 나눈 후 10시 20분에 워싱턴 D.C. 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워싱턴 거리를 바라보며 스님은 처음 이곳에 왔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처음 워싱턴에 온 것은 북한에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 난 후였어요. 북한 주민들의 대량 아사를 막기 위해 인도적 지원을 눈물로 호소하고 다녔었어요. 워싱턴에 도착해서 대북 인도적 지원을 호소하려는데 처음에는 말문이 막히더라고요. 이렇게 잘 사는 사람들에게 굶어 죽는다는 말이 믿어지겠어요? 무슨 증거가 있냐고 해서 중국에 가서 280여 명을 인터뷰하고 통계를 내고 번역을 해서 3개월 만에 다시 왔어요. 그랬더니 280여 명으로는 통계가 부족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500여 명을 더 인터뷰해서 자료를 만들어 다시 왔어요. 그런데 북한에서는 북한의 안 좋은 상황을 외부로 알렸다고 안 좋아했어요. 그게 벌써 30년 전 일이에요. 30년이 지나니까 지금은 늙은 저만 남고 그때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다 은퇴해 버렸네요.”
11시 30분에 NCNK(전미 북한위원회) 사무실에 도착하자 키스 루스(Keith Luse) 사무총장님이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Thank you for visiting.”(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며 그동안의 안부를 주고받은 후 12시 20부터 간담회를 시작했습니다. NCNK(The National Committee of North Korea)는 미국의 대북 전문가들과 관계자들이 모인 협의체로 북한의 사회, 경제, 행정 등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 활동을 해오고 있는 곳입니다.
오늘 간담회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하여 진행했습니다. 미국 내에서 북한 인도적 지원에 관계하는 여러 NGO 단체들이 온라인으로 참가했습니다. 먼저 키스 루스 사무총장님이 스님을 소개했습니다.
“Many years to the early 2000s when I was working for Senator Luger. And so he continues his regular visits. And I invite you to please give your perspective on the situation in North Korea at the present time. And then once you finish some of our colleagues online or myself, we will probably have some questions for you. Please go ahead.”
(저는 법륜스님과 2000년대 초반에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스님은 제가 미국의 상원의원 밑에서 일하고 있을 때 주기적으로 워싱턴을 방문해 주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현재 북한의 상황에 대한 스님의 의견을 듣고, 그 후에 저와 제 동료들이 질의응답 하는 시간을 가져 보고자 마련되었습니다. 스님께 먼저 소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이어서 스님이 하고 있는 일을 간단하게 소개했습니다.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북한에 관계해서 세 가지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평화재단에서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좋은벗들(Good Friends)이라는 단체에서 북한 인권과 북한 난민에 관한 문제에 대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JTS(Join together society)라는 단체를 통해서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키스 루스 총장님은 현재 북한의 상황이 어떠한지 스님에게 설명을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스님이 현재의 북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2019년에 식량 지원을 위해 북한을 방문한 것을 마지막으로 지난 4년간 코로나19로 인해 북한을 방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 북한과 연락이 끊겨서 현재는 연락이 안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식량난이라든지 농업 현황, 시장가격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의 소식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이 매달 모여서 검토하고 있습니다.”
“To clarify are these people based in Seoul or where are they?”
(전문가들이 모두 서울에 계시는 분들입니까?)
“네. 북한에 나름대로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얘기를 나눕니다. 그 사람들은 이전에 북한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입니다. 또는 북한 난민을 돕거나 해서 난민을 통해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까 크로스 체크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습니다. 현재 북한은 식량과 의약품의 부족 상태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은 시체를 봤다고 하는 방송 보도는 조금 지나친 감이 있다는 평가입니다.”
이어서 스님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 문제에 대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이대로 내버려 둘 건가요?
“무엇보다 현재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을 이대로 내버려 둘 것인지 여러분들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은 현재 아무런 규제 없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지속은 러시아와 북한 간의 군사적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무기가 러시아에 제공되기보다는 러시아의 무기 생산이 북한에 위탁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에 따른 대가로 북한이 필요로 하는 첨단 군사 기술이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일부 유출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에 평화를 지켜내는 일에 점점 더 많은 대가를 치르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북한과 좀 더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다리기만 하는 정책은 갈수록 북한에 유리하게 작용하게 될 뿐이지 미국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까지 북한이 쉽게 붕괴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지난 30년의 우리의 과오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봅니다. 만약 북한에 정권 붕괴의 위험이 있다고 한다면 이것은 핵 확산을 가져올 수도 있는 더 큰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지난 시기 북한이 줄기차게 요구한 것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폐였습니다. 즉 자신들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국교 정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북미 관계의 정상화가 핵 폐기를 이끌어내는 마지막 단계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정책으로는 진전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국교 정상화를 통해서 핵을 동결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일단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아야 합니다. 또 북한을 견인함으로써 북한과 중국, 러시아 3국의 결합을 늦출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반도에 긴장을 완화시켜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이나 일본, 한국의 국가 이익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이 북한 인도적 지원에 관계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현재 북한의 인도적 위기 상황이 어떠한지 궁금해했습니다.
“What is the current food crisis situation in North Korea?”
(현재 북한의 식량 위기 상황이 어떠하죠?)
“북한은 5년 전인 2018년에도 이미 식량이 매우 부족했습니다. 2018년에 식량 지원을 위해 북한과 대화를 시작했었고 2019년에 1만 톤의 옥수수를 1차 지원했습니다. 처음에는 북한 전역에 있는 고아원에 식량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북한에 직접 방문해서 식량지원이 잘 되고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고아원은 북한 정부에서도 관심을 갖기 때문에 괜찮은데, 실제로는 탄광촌에 있는 노동자들의 식량이 더 부족하다는 북한 관계자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탄광촌 노동자들의 가족 중 40%가 어린이와 청소년이기 때문에 탄광촌에 지원하는 것이 어린아이들에게 지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탄광촌과 탄광촌의 유치원을 직접 방문해 보니 북한 정부 관계자의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탄광촌 대부분이 식량 부족으로 채탄 작업이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지원한 식량 중 일부를 탄광촌에 배분했습니다. 그리고 1만 톤의 옥수수를 2차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이 와서 2020년부터 식량지원이 중단 됐습니다.
최근에 들어온 소식으로는 여전히 북한 주민의 식량부족은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팬데믹 이후에는 국경의 봉쇄로 인해 생필품 수입이 어려워 가격이 많이 상승했습니다. 식량보다 더 급박한 문제는 의약품 부족입니다. 기본적인 마취제와 항생제마저 없어 많은 주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식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부에서 식량가격이 상승되지 않게 시장을 통제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식량 가격은 비교적 안정되었다고 하지만 식량을 구입할 돈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사자가 생길 만큼 식량 부족 문제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계속해서 북한의 상황이 어떠한지 구체적인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언제쯤 국경이 개방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서로 교류를 하게 될지, NGO 단체의 인도적 지원은 언제 허용이 될지 궁금해하는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마지막으로 키스 루스 총장님이 스님에게 마무리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그동안 북한 주민들을 걱정하면서 함께 노력해 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앞으로의 활동을 당부했습니다.
2500만 주민들의 고통을 잊지 맙시다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감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라면 대북 인도적 지원은 어렵습니다. 우리는 우선적으로 인도적 지원을 목표하고 있지만, 한반도 내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 북미 간의 대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인도적 지원이 가능합니다. 북미 간의 원활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NGO단체에서 활동하는 여러분도 함께 노력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북한에 2500만 명의 주민들이 고통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고통은 지난 30년 동안 지속되고 있습니다. 미국적 가치가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라면 안보나 경제도 중요하지만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진정 미국적 가치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갈등과 관계없이 인도적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큰 박수와 함께 NCNK 간담회를 마쳤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키스 루스 사무총장님과 30분 정도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후 NCNK 직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오후 2시 30분부터는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한국학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는 임마뉴엘 킴 교수님과 워싱턴 D.C. 에 연수를 와 있는 국방대학교 김영준 교수님을 만나 대화를 했습니다.
조지워싱턴 대학교 아시안학 회의실에 도착하자 두 교수님이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가볍게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은 후 점점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의 긴장을 어떻게 하면 완화시킬 수 있을지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임마뉴엘 킴 교수님은 북한 문학을 연구하고 있는 분인데 “북한 주민들도 삶이 있고 웃음이 있고 자아실현을 하고 있다는 것을 문학을 통해 느낄 수 있다”고 하자 스님은 “아주 좋은 연구를 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더불어 김영준 교수님은 스님이 만든 평화재단이 싱크탱크 역할을 해서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향후 북미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 같은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어떤 역할이 필요한지 대화를 나눈 후 다음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이어서 김영준 교수님과 함께 걸어서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근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향후 미국 대선의 향방과 미국 조야의 분위기가 어떠한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일찍 일정을 마쳤습니다. 미주 정토회관으로 다시 돌아오니 저녁 7시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회관을 찾아온 손님과 밤 9시까지 더 많은 대화를 나눈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0일 오렌지카운티에서 열린 즉문즉설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다툼 후 남편이 말을 안 한지 10개월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다툼이 있으면 말을 안 하는 성격입니다. 처음부터 성격이 그렇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살면서 그런 일들이 계속되다 보니 처음에는 이틀, 일주일, 그러다가 드디어 얘기를 안 한지 이제 10개월이 되었습니다. 물론 남편하고 갈등을 풀려고도 해 보았어요. 주변에도 얘기를 해보니 남자도 갱년기가 있고, 그러고 싶을 때도 있으니 놔두라고 해서 그냥 놔두었어요. 저는 놔두는 것이 괜찮은데, 이런 상태가 계속 오래되다 보니까 아이들한테 영향을 많이 미쳐서 아이들이 가정을 편안하지 않게 생각하는 시기까지 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이들한테 아빠가 요즘 힘드니까 우리가 아빠를 이해하자고 얘기하면 됩니다.”
“네,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남편이 문제다’ 하고 생각하면 안 돼요. 남편이 문제라는 생각을 질문자가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고 질문자가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해도 안 됩니다. 남편이 이렇게 잘 삐져서 말을 안 한다면, 질문자가 남편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다투지 말아야죠. 성격이 그런 줄 알면서 다투었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거예요. 어리석음에 대한 과보를 지금 받고 있는 겁니다. 성격을 건드리면 삐져서 며칠 말을 안 하는 경험을 여러 번 했으면 ‘아, 이 사람은 건드리면 안 되겠구나’ 이렇게 깨달아야죠. 그렇게는 살기가 싫으면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헤어지든지요.
첫째, 지금 남편에게는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우선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남편은 상처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먼저 다가가서 ‘여보,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 풀자’ 하고 얘기를 한다고 풀릴 단계는 이미 넘어버렸어요. 왜냐하면 ‘너하고는 말해봐야 소용없다’ 이렇게 이미 단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먼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도록 해서 해소를 하든지, 이대로 놔놓고 조금 기다리든지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이 걱정이 되면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아빠가 갱년기이고 조금 어려우니 우리 같이 기다리자, 엄마가 아빠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 건드려서 그러니 우리가 잘 지내보자.’
이렇게 말해서 아이들에게 상처가 조금이라도 덜 가게 하는 방법을 취해야 해요. 당장 갈등을 풀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질문자가 석고대죄를 해야 합니다.”
“석고대죄가 하기 싫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럼 헤어져야지요. 남편은 정신적인 환자이기 때문에 갈등을 풀려면 질문자가 석고대죄를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환자에게 ‘네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요. 그렇게 갈등이 심해지면 아이들이 상처받는 것도 감수해야 하고, 헤어질 것도 감수해야 하고, 남편이 자살하는 것도 감수해야 됩니다. 순서가 그렇게 흘러갑니다. 결과는 헤어지거나 자살하거나 둘 중에 하나가 될 거예요. 스님이 이런 상담을 할 때 헤어져도 괜찮다고 쉽게 말하는 이유는 안 헤어지면 자살을 할 수가 있어서 헤어지는 것이 오히려 그 사람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아이들한테 상처가 되는 길을 선택해 놓고 또 걱정을 하고 있으니 질문자가 어리석은 거예요. 아이들한테 상처가 될 것을 걱정한다면 석고대죄를 해야 하고, 석고대죄를 하기 싫으면 아이들한테 상처가 될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석고대죄도 하기 싫고, 상처도 주기 싫고, 그런 길은 없습니다. 그런 길이 있다고 말하는 절이나 교회가 있으면 거기로 가세요. 그런 곳에는 돈만 많이 내면 그런 것을 해결해 준다고 하니까요. 사실 그런 길은 없습니다. 그러니 본인이 선택하면 됩니다. 석고대죄를 하기 싫으면 아이들이 받을 상처를 감수해야 합니다. 남편이 어느 날 이혼을 하자고 해도 감수해야 합니다. 남편이 어느 날 죽어있다고 해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다면 석고대죄를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석고대죄만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석고대죄를 해서 일단 급한 불을 끄고, 그다음에는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도 받도록 해야 어느 정도 해결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편에게 ‘당신은 왕이로소이다’ 하는 것이 뭐가 어려워요? 내 남편이 왕이 되는 것이 뭐가 그렇게 기분이 나쁜 거예요? 내 남편의 종이 되는 것이 뭐가 그렇게 기분이 나쁜 거예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남편의 종이 되는 것은 할만하잖아요. 왕국에서는 남편이 아닌 사람에게도 종이 되어서 수백 만 명이 사는데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하기 싫으면 손실을 감수하라는 것이 저의 조언입니다.”
“감사합니다.”
내일은 오전에 세계식량계획(WFP) 워싱턴 사무소를 방문하여 존 브라우스 소장님을 만나고, 점심에는 미주한인유권자연대 김동석 대표님을 만나고, 오후에는 전 국무부 정보국장을 지낸 존 메릴 박사님을 만나고, 저녁에는 Church of Holy City 교회의 리치 테이플 목사님과 ‘분열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주제로 생방송 대담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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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하루
2023.9.26. 워싱턴 D.C. 2일째, 북한 전문가 미팅, 리치 타펠 목사와 대담
“갈수록 대립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냥 침묵해야 할까요?”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460?p=3&k=
2023.09.29.
▲ 오디오로 듣고 싶은 분은 영상을 클릭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워싱턴 D.C. 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사람들을 만나는 2일째 날입니다. 스님은 미주 정토회관에서 새벽 4시 45분에 천일결사 기도와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기도 후 아침 식사를 하고 회관 인근에 페어랜드 지역 공원(Fairland regional park)을 산책했습니다. 미주 정토회관 주변에는 크고 작은 공원들이 많습니다. 스님은 오랜만에 가볍게 산책을 하며 몸을 풀었습니다.
“농사일을 안 하니까 몸을 움직일 일이 없네요.”
부슬부슬 가는 비가 내렸습니다. 우산을 쓰고 두런두런 한 시간 반을 걸었습니다.
WFP(유엔세계식량계획) 존 브라우스 미팅
산책을 하고 돌아와 곧바로 미국의 조야에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을 만나기 위해 9시 20분에 워싱턴 D.C. 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10시 30분에 WFP(유엔세계식량계획) 워싱턴 사무소에 도착해 존 브라우스(Jon Brause) 소장님을 만났습니다.
존 브라우스 소장님은 USAID(미국 국제개발처)의 북한 담당관으로서 오랫동안 북한 인도적 지원 문제에 관여를 해오고 있는 분입니다. 스님과는 오랜 기간 만남을 가져온 친구입니다. 두 분은 서로 얼굴을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이제 곧 은퇴할 겁니다.”
“북한 주민들이 많이 어려운데 소장님이 계실 때 북한 지원을 해야죠.”
가볍게 안부를 주고받은 후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 인도적 지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한반도에서 고조되고 있는 긴장이 먼저 완화가 되어야 인도적 지원이 가능할 수 있다고 설명하며 미국의 대북 정책이 크게 변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소장님은 미국이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부정적 의견을 내비쳤습니다. 스님은 식량 지원은 어렵더라도 의약품 지원은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조언을 구했습니다.
“소장님의 말씀대로 지금 식량 지원은 어쨌든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를 통한 의약품 지원은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They would take it, but it doesn't have any impacts on the people's health”
(북한이 약품을 받을 수도 있지만 일반인들의 삶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식량 지원보다는 효과가 적다고 볼 수 있지만 사실은 병의 고통도 매우 큽니다. 마취제와 항생제만 있어도 굉장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특히 북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취 없이 수술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중국에서 수입하는 물품의 대부분이 약품입니다.”
“Yes, I agree. I just think we can do both. Because again, you don’t just want to provide enough for the hospitals and cities, you want to be able to improve healthcare. I always think if you go in big and fair, then they say no, it’s their decision. No matter how much it costs, far achieving than a war.”
(예, 동의합니다. 의약품을 큰 병원과 도시에만 제공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의료 서비스를 향상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물량을 제공해 주면 좋겠습니다. 많은 양을 공평하게 제공하겠다는데도 북한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그들의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 돈이 들더라도, 어쨌거나 전쟁보다는 성과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약품 지원은 식량 지원보다 훨씬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다음에 식량을 지원해도 되겠죠. 현재 북한은 러시아와의 관계 속에서 답을 찾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제안 정도로는 북한 정부의 동의를 얻기가 힘들다고 봅니다.”
“To me, they are doing gamble for both North Korea and Russia, because if one doesn’t deliver, it’s going to be very interesting.”
(북한과 러시아 양 쪽 모두 도박을 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한쪽이라도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한 러시아의 군사 기술이 북한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질 것입니다. 사실 북한 정부는 이런 상황 속에서 식량이나 기름보다 군사 기술을 가장 원하고 있습니다. 만약 러시아의 군사 기술이 북한에 제공된다면 저는 굉장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위험을 막으려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빨리 끝나든지,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빨리 하든지 해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생각해서 노력을 많이 해주세요. 소장님이 오랫동안 이 일을 해 오셨으니까요.”
“I will also try harder in my position. I’m always thinking about North Korea.”
(저도 제 자리에서 더 노력을 하겠습니다. 항상 북한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상황이 매우 어렵지만 항상 북한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소장님의 말씀이 가슴 뭉클하게 들렸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지금 전 세계적으로 가장 어려운 나라가 어디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식량 사정이 가장 어려운 곳이 어디입니까? WFP에서 주로 관심을 갖고 있는 나라가 어디인지 궁금합니다.”
“Everybody. Yemen, Afghanistan, … In Afghanistan, 15 million people are suffering. And the food-aid money is the lowest in 10 years. So, Afghanistan, Yemen, Ethiopia, Somalia, …, and Sudan, of course, but you can’t get in there.”
(전부 다 어렵습니다. 예멘, 아프가니스탄 등이요. 특히 아프가니스탄은 1500만 명이 고통받고 있는데, 지난 10년 동안 예산이 가장 적게 책정되어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예멘,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 여러 나라가 어렵습니다. 수단도 어려운데 WFP에서조차 지원을 들어갈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스님은 지금 JTS에서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 피해 지역과 파키스탄 홍수 피해 지역을 돕고 있는 상황을 공유해 주었습니다. 또 로힝야 가스버너 및 수리소 지원, 미얀마 사이클론 피해 지원을 하는데 어려운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소장님은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전 세계의 기아, 질병, 문맹 퇴치를 위해 앞으로도 더 많은 노력을 함께 기울이자고 제안하고 대화를 마쳤습니다.
스님의 영어 번역 책을 선물한 후 다음을 기약하며 WFP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WFP 사무실은 백악관 바로 옆에 위치해 있습니다. 백악관 앞을 지나가며 잠깐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의 간곡한 호소가 백악관으로 바로 전달이 되면 참 좋으련만, 그게 어려우니 스님이 손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직접 설득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스님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스님의 발걸음은 힘찼습니다.
백악관을 지나 걸어서 도착한 장소는 KAGC(미주한인유권자연대) 사무실입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김동석 대표님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연달아 미팅을 하고 있는 스님을 배려해 대표님이 점심 식사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김 대표님은 미주한인유권자연대가 지금까지 해 온 일을 설명하면서 스님도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제가 미주한인유권자 운동을 시작한 지가 올해로 30년이 되었습니다. 1992년에 LA 폭동 사태를 겪으면서 이 일을 시작했거든요.”
“저는 북한 주민들의 아사 사태를 막아보려고 미국을 왕래한 지가 25년 되었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3년만 노력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25년이 지나도 끝이 안 나네요.”
“저는 AIPAC(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이라는 단체가 미국 정부의 친유대인·친이스라엘 중동정책을 위해 미 의회와 행정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고 큰 자극을 받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미국에 한인들이 거주하는 모든 지역에 커뮤니티를 형성해서 그 지역구 국회의원과 실질적인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젠다를 정해서 입법 활동까지 전개하고 있습니다.”
“아주 좋은 일을 해오고 계시네요. 사실 제가 가장 관심을 갖는 문제는 북한이 우리에게 끼칠 위험을 어떻게 막고,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어떻게 덜어줄 것인가 하는 겁니다. 북한에는 김정은 위원장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2500만 주민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의 고통을 우리가 어떻게 덜어줄 것인가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풀려면 외교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해결이 불가능해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미주유권자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주한인유권자 운동의 구체적인 상황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교류를 하기로 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존 메릴 박사 미팅
다시 차를 타고 워싱턴 D.C. 의 서쪽에 위치한 페어팩스(Fairfax)로 이동했습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존 메릴(John Merrill) 박사님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박사님은 거동이 불편해서 의자에 앉아 스님과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존 메릴 박사님은 국무부 정보국 동북아 국장을 역임했고, 퇴임 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수많은 저널 기사를 쓰고 있는 분입니다. 스님과 오랫동안 친구로서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데 최근 한반도의 긴장 상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지 현안 문제를 가지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북한이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매우 위험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북한의 군사 기술 발전에 대해서 지금처럼 계속 방치할 것 같습니까?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There is nothing the US can do.”
(미국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공격을 하든 협상을 하든 어떻게든 이 상황을 중지시킬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No, there is nothing we can do.”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왜죠?”
“We have an old song in English. It’s called “It’s all over now”. It’s all over now. The game is over. You know, we all tried, but we all failed. there is nothing I can do. It’s South Korea’s tragic fate.”
(미국에 ‘다 끝났어’라는 제목의 오래된 노래가 있습니다. 다 끝났습니다. 상황이 종료됐습니다. 게임은 끝났습니다. 저나 다른 분들, 우리 모두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남한은 비극의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했지만 존 메릴 박사님은 시종일관 부정적인 전망을 이야기했습니다. 박사님의 이야기를 충분히 경청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다시 힘을 주어 말했습니다.
“제가 성공시켜서 여러분 모두가 성공하도록 만들겠습니다!”
“I’m not going to become successful. All I can do is write for the KoreaTimes.”
(성공할 것 같지 않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코리아타임스에 기고하는 것뿐입니다.)
“저는 해결을 해야 합니다. 저는 그곳에 살고 있고, 전쟁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어떤 질문에도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박사님에게 끝까지 웃으며 희망을 이야기하는 스님의 목소리에 가슴이 숙연해졌습니다. 박사님이 앞으로도 건강을 잘 유지하시길 기원해 드리고 인사를 한 후 헤어졌습니다.
리치 타펠 목사와 대담
저녁에는 백악관 근처에 위치한 Church of the Holy City 교회에서 리치 타펠(Richard Tafel) 목사님과 생방송 대담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오후 5시에 스님이 교회에 도착하자 리치 목사님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오늘 대담의 사회자인 애나벨 박(Annabel Park)도 스님을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리치 목사님은 애나벨 박의 소개로 스님과 인연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평화운동뿐만 아니라 정책 변화를 이끌어 내어 사회가 좀 더 평화롭게 되도록 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어서 스님과 뜻이 잘 통해 2017년부터 관계를 맺어오고 있습니다.
리치 목사님, 애나벨 박과 환담을 나눈 후 봉사자들이 준비한 김밥으로 저녁 식사를 간단히 하고 저녁 7시에 생방송 대담을 시작했습니다.
유튜브 스트리밍이 시작되고 먼저 애나벨 박이 스님과 목사님 두 분을 소개했습니다.
“This is really exciting for me because these are two people I really admire and who have help me personally to find some inner peace. The thing that I find interesting is the Venerable and Reverend Rich Tafel come from very different cultures and religious traditions and of course speak different languages. But I admire them for the same reasons because they try to counsel people to ease their suffering and to live happier, freer life. And they feel a real responsibility to be public servants as well and really engage in public’s affairs and they are strong believers in democracy and human rights. And so, I’ve benefited so much from knowing them over many years now.”
(오늘 모신 두 분은 제가 정말 존경하는 분들이고, 제가 개인적으로 내면의 평화를 찾는데 큰 도움을 주신 분 들 이어서, 저는 오늘 이 자리가 굉장히 기대됩니다. 스님과 리치 타펠 목사님은 매우 다른 문화에서 자라셨고, 다른 종교적 전통을 갖고 계실 뿐만 아니라, 언어도 다릅니다. 그러나 두 분은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도록 도와주신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저는 그 점을 매우 존경합니다. 두 분 모두 진정한 책임감을 갖고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시며, 대중의 안위를 위한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계십니다. 또한 두 분 모두 민주주의와 인권을 굳게 믿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랜 시간 동안 이 두 분을 알아오면서 큰 혜택을 받았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두 분이 함께 자리한 후 본격적으로 대담을 이어갔습니다. 청중석에서 그리고 온라인에서 질문을 받기 전에 애나벨 박이 먼저 스님과 목사님 두 분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I’m going to start with questions. I would start up by asking you just to get this out of the way, because I think some of the people here are probably interested in learning about what Buddhism is really about and what Swedenborgianism is about. So maybe if you could just very briefly describe your religious philosophy.”
(제가 먼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아마도 진정한 불교란 무엇인지, 진정한 스베덴보리 주의(새 예루살렘 교)가 무엇인지 관심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질문드립니다. 먼저 각자 자신의 종교 철학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먼저 스님이 진정한 불교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답변했습니다.
“불교라고 하지만 불교 안에도 많은 섹터가 있어서 마치 모든 종교의 섹터만큼 다양하기 때문에 불교가 무엇이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불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불교는 죽어서 어디에 간다든지,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든지, 이렇게 내생이나 복을 비는 것을 가르치는 종교가 아닙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하면 괴로움 없이 살 수 있는가?’
이 주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붓다는 누가 나를 괴롭혀서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나의 무지가 괴로움의 원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스스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말하고, 깨달음을 통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고 가르칩니다. 이론, 지식, 믿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깨어있기를 실천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즉, 수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가 무슨 종교를 믿든, 어떤 사상을 갖고 있든, 관계없이 누구나 다 깨달음을 통해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어떤 괴로움이나 스트레스가 있다고 질문하면 그 괴로움이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방향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대화의 과정에서 본인이 자각을 하게 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대화를 해도 자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제가 하는 역할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모순이나 자신의 무지를 알아차리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제 삶이 불교를 통해 좀 더 행복하고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저와 같아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리치 테이플 목사님이 자신이 믿는 기독교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 답변했습니다.
“So, with what do we believe? It's a little different than a lot of traditional Christianity. It has a lot of similarities with Buddhism. D. T. Suzuki wrote a book called “Buddha of the North”, because he found in those teachings similarities with Buddhism, in particular the engagement in the world. We believe you have to be engaged in the world, which is probably why both of us are very engaged in politics and business and change and so forth. The spiritual life is not divorced from engagement. The spiritual life means you're engaged to make the world a better place. We each have a purpose and we're asked to live that out. So that would be in a nutshell our teachings.”
(제가 믿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전통적인 기독교와는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불교와 많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스즈끼는 “북방의 부처”라는 책을 썼습니다. 스즈끼는 스베덴보리와 불교의 가르침이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회 참여적인 면에서 그렇습니다. 제 신앙에서는 사회 참여를 해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저와 법륜스님은 정치적이거나 사업적인 면에서 많은 사회 참여 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적인 생활은 사회 참여와 다르지 않습니다. 영적인 생활이 바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목적을 갖고 있고 그에 따라 살아나갑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것이 제 신앙의 가르침입니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정말 공통점이 많아 보였습니다. 대화가 점점 무르익기 시작하자 애나벨 박이 꼭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며 말했습니다.
분열의 시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So, the question that I'm dying to ask is this. I admit I'm consumed by this question. So many people feel stressed right now because the world seems very divided. People often feel alone in the world and the future just seems uncertain. And it's really hard to get your bearing and figure out like how to create a path, like how to survive this. So, I was hoping you would have some advice for us.”
(제가 꼭 묻고 싶은 것은 이겁니다. 제가 이 질문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네요. 분열된 세상에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기가 이 세상에서 혼자라고 느끼고,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어떻게 내 삶의 길을 만들어갈지, 어떻게 살아남을지, 이런 것들을 알아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조언을 구합니다.)
질문에 대해 스님이 답했습니다.
“이 세상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과거에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달라져서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옛날보다 더 좋아졌다고 느끼면 아무렇지 않지만, 옛날보다 안 좋아졌다고 느끼면 혼란스럽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또 예전에는 세상의 변화를 파악할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세상이 급변해서 잘 파악할 수가 없어서 더욱 혼란스러울 수가 있습니다. 결국 세상이 혼란스러운 게 아니라 세상을 인식하는 내가 세상을 잘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겁니다.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인식의 틀을 버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면 세상은 혼란스럽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처럼 세상의 흐름에 큰 변화가 생기면 필연적으로 그로 인해 이익을 보는 사람도 생기고, 손해를 보는 사람도 생깁니다. 이때 우리는 변화로 인해 손해를 본 사람들이 그 고통을 덜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변화를 통해서 이익을 얻은 사람들은 그 이익을 주변 사람들과 나눠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이익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자각해야 나눔의 필요성을 느끼고 나눔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세상의 변화 중에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기후 변화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많이 생산해서 많이 소비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물질적인 풍요가 잘 사는 것의 척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가치관은 굉장히 위험한 가치관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지금까지 유지해 왔던 소비 수준을 낮추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적게 쓰면서도 행복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 해답은 과거 인류의 스승들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검소하게 생활하면서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붓다가 그랬고, 프란체스코 성인이 그랬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분들의 삶에 다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특히 요즘은 유튜브의 알고리즘에 의해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에 사고가 자꾸 편향되어 갑니다. 자기 생각만 옳고 다른 사람의 생각은 틀렸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지고 있습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합니다. 상대방의 믿음과 사상과 가치관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아 갈등이 극에 달하면 전쟁도 불사하게 됩니다. 자기 식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상대를 이해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극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빈부격차를 완화시키기 위한 실천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되어 행복도가 떨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겪는 혼란스러움은 어떤 절대자가 내린 벌이나 종말이 아닙니다. 그냥 세상의 변화일 뿐입니다. 이 변화로 인하여 발생한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영성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외에도 애나벨 박은 개인적인 인생의 목적이 있는지, 어떤 사랑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애나벨 박의 질문이 끝나자 청중석에서도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갈수록 대립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냥 침묵해야 할까요?
“Nowadays, if I am silencing myself, not sharing my opinion, because whenever I share my opinion about politically or socially, they think that you're the enemy. It used to be, long time ago, it was the acceptance. I accept you who you are. You live your life, I live my life. But nowadays, if I don't support you or advocate for you, you are my enemy, you are a bad person. So nowadays, I find myself, you have to refrain yourself from sharing your opinion. What can I do? Should I keep silencing myself, not sharing my opinion, and listen to other people, ‘ya, you might be right’, and just walk away. Thank you.”
(요즘 저는 제 의견을 공유하지 않고 그냥 침묵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의견을 얘기할 때마다 사람들이 저를 적으로 간주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을 살고, 너는 네 인생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내가 상대를 지지하지 않으면, 나는 곧 그 사람에게 적이 되고 나쁜 사람이 됩니다. 요즘 저는 제 의견을 나누는 것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계속 이렇게 침묵해야 할까요? 제 의견을 말하지 않고, 그냥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기만 하고 ‘그래, 그런 것 같다’ 하고만 있는 것이 좋을까요?)
"지금 질문자가 이야기한 그런 세상이라면 저는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님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웃음)
예수님은 인기에 편승하지 않고, 올바른 말을 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습니까? 뭐가 두렵습니까? 내 주장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비난을 하긴 하겠지만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을 박지는 않을 거예요. 비난이 두렵다면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비난을 두려워하면서 무슨 정의를 말하겠어요? 이것은 세상의 문제가 아니라 질문자 개인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세상은 저절로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따르는 손실이 있다면 감수해야 합니다. 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고 할까요? 돈을 부담해야 한다면 값을 치르면 됩니다.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비난을 받으면 됩니다. 감옥에 가야 한다면 기꺼이 가면 됩니다.
어떻게 해도 죽을 일은 없으니 ‘예수님보다는 낫다’ 이렇게 생각하고 당차고 적극적으로 말하고 행동하세요. (웃음) 앉아서 계속 불평만 하고 있어서는 아무 일도 못 합니다. 그렇다고 내 주장을 함부로 말해서 상대를 자극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부러 갈등을 유발할 필요는 없지만 두려워해서도 안 됩니다. 조금 적극적으로 대응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이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 아무런 행동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안일한 태도입니다. 투표조차 하지 않으면서 정치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과 같아요.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금 더 자신 있고 당당하게 실천을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모두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어떻게 키울 수 있나요?
월요일마다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모임에 참석하고 있는데요. 정치나 종교 주제를 제외하고 무엇이든지 서로 존중하는 태도로 대화를 하자는 규칙을 만들려고 합니다. 어떨까요?
미국이 어떤 조치를 취하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될까요?
‘방어도 전쟁이다’라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거보다 현대에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나요?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일까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계가 긍정적으로 변한 점도 있습니다. 세계적인 전염병 앞에서 사람들은 삶을 성찰하고, 소비보다 경험을 중요시하게 되고, 영적으로 더 깊어지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팬데믹이 끝나자마자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시나요?
대담은 두 시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약속한 시간이 되어 밤 9시에 유튜브 스트리밍을 마쳤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스님은 목사님과 애나벨 박에게 스님의 영어 번역 책을 선물했습니다.
목사님은 스님에게 축복을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스님은 목사님의 손을 꼭 잡고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참석자 중에는 키가 아주 큰 분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웃으며 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살면서 본 사람 중에 키가 제일 크네요.”
다음에 다시 이런 자리를 마련하기로 하고 교회를 나왔습니다. 차를 타고 미주 정토회관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되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한국 시청자들을 위해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고, 점심에는 특파원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오후에는 국무부를 방문하여 줄리터너 인권대사와 한반도 평화와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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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하루
2023.9.27 워싱턴 D.C. 3일째 특파원 간담회, 미국 국무부 미팅
“남을 험담하는 사람을 보면 불쾌해요.”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461?p=3&k=
2023.09.30.
▲ 오디오로 듣고 싶은 분은 영상을 클릭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워싱턴 D.C. 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미국 정부, 의회, 싱크탱크 관계자를 만나는 3일째 날입니다.
미국 워싱턴의 아침과 저녁 날씨는 아주 서늘합니다. 가을이 어느덧 깊어 가고 있습니다. 공원에는 나뭇잎에 벌써 단풍이 들어서 떨어져 있습니다. 그렇게 무더웠던 여름날도 가고 어김없이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스님은 미주 정토회관에서 새벽 4시 45분에 천일결사 기도와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6시 30분부터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한국 시각 기준으로 저녁 7시 30분에 맞춰서 법회를 해야 해서 이른 아침 시간에 생방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생방송에 접속하자 스님은 지난 일주일 동안의 근황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저는 지난 20여 일 동안 유럽과 미국을 거쳐 캐나다까지 순회하며 23회 강연을 마쳤습니다. 현재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에서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해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한국은 지금 추석 연휴 기간인데, 저는 이곳에서 우리의 삶을 좀 더 안전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는 활동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추석 명절을 모두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어서 지난 주말에 전국 으뜸절에서 회원들이 봉사활동을 한 모습과 스님이 일주일 동안 북미 동부 지역을 순회하며 강연을 했던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 영상보기
지난 9월 1일부터 21일까지 21개 도시에서 23회 강연을 했습니다. 전 세계의 정토행자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무사히 강연을 마쳤습니다. 각 도시마다 많은 사람이 강연에 참석하여 스님의 말씀을 듣고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사전에 네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을 험담하는 사람을 보면 시비심이 일어난다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남을 험담하는 사람을 보면 시비심이 일어납니다.
“저는 험담하는 사람에게 거부반응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할 때 다른 별 생각 안 하고 가만히 무언가를 치우고 있는데 문득 가까이 다가와서는 ‘저 사람은 인간성이 나쁘다.’, ‘저 사람은 이기적이다.’, ‘저 사람은 잘난 척한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남을 험담하거나 아니면 본인 자랑을 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감정 쓰레기를 내뱉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것을 들은 날은 저의 온몸이 경직되고, 불쾌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소름까지 돋습니다. 마치 바로 앞에서 저에 대해 험담을 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험담의 주인공이 된 대상자를 변명해 주고 싶은 마음까지 일어납니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남의 험담을 툭 던지고 가는 사람에 대해서 시비심이 계속 듭니다. 저의 어머니도 남에 대해 얘기하는 것에 대해서 저와 같은 거부반응 하는 증상이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집에서 남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정말 싫어합니다. 남 얘기를 험담하듯 잘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남의 험담을 안 하고 사는 것이 좋은 것은 이 세상 사람들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모든 사람이 다 한국말을 하면 좋을 것 같지만 세상 사람들은 영어도 하고, 일본어도 하고, 독일어도 하는 것처럼 각 나라말을 제각각 사용하며 살고 있습니다. 또한 불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사람이 다 불교를 믿으면 좋을 것 같죠.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각각 본인의 종교를 믿습니다. 지구환경의 측면에서 보면 모든 사람이 지구환경을 생각해서 검소하게 살면 정말 좋겠지만 우리 주위에는 사치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 만물이 서로 화합해서 오순도순 살아가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부부지간에도 싸우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싸우고, 지역 간에도 싸우고, 정당 간에도 싸우고, 나라 간에도 싸웁니다. 서로 싸우지 않고 전쟁을 안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지금 일부 지역에서는 전쟁까지 하고 있습니다. 남한 입장에서 보면 북한에서 핵무기를 안 만들면 참 좋겠지요. 그런데 북한은 지금 핵무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독도는 우리 땅이다’ 이렇게 우기지 않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독도는 본인들의 땅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것이 세상입니다. 그런 것에 비하면 남을 험담하는 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닙니다.
북한은 ‘남한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라고 하고, 남한은 ‘평양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하고, 이렇게 위험한 발언도 뉴스에서 듣고 살면서 ‘저 사람은 말이 많다.’, ‘저 사람은 이기적이다.’ 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라고 생각합니까? 물론 그런 말을 안 하면 좋겠지요. 하지만 저는 그런 험담이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험담이 사회에 끼치는 피해도 별로 없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격이나 말버릇 같은 것을 어떻게 다 고치겠습니까? 질문자가 너무 좁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작은 일을 갖고 마치 큰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난리를 피우고 있는 겁니다. 지금 침소봉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살다 보면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화가 나고 잠을 못 이루고 욕을 해주고 싶다면, 질문자가 너무 민감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도 남에 대해 험담하는 사람과 이야기하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분명 험담은 좋은 게 아니에요.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험담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에 대해 시비해서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싸우기까지 한다면 내 인생이 피곤해집니다. 수행은 ‘이런 속에서도 내가 어떻게 하면 편안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에게 거슬리는 일들을 모두 내 마음대로 고칠 수는 없습니다. 고치려면 오히려 더 큰 걸 고쳐야지 사회에 별로 피해도 주지 않는 소소한 것들을 무엇 때문에 자꾸 고치려 들어요? 방 안에 큰 쓰레기가 있으면 그것부터 먼저 치우고 난 뒤에 때가 낀 정도는 나중에 닦으면 돼요. 먼지 하나 남아 있다고 손가락에 묻혀서 ‘이거 봐라. 아직도 먼지가 남아 있지 않으냐’ 하고 시비를 하면 그것은 결벽증이에요. 먼지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병을 가진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질문자가 너무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험담을 해도 괜찮다는 말이 아닙니다. 험담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세상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법으로 규제할 수 있는 일도 아니잖아요. 그만한 일에 형사처벌을 할 수도 없고요. 그런 정도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봐야 합니다.
지금 한국에 비가 너무 내려서 열매를 맺는 수확 철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과일값과 채솟값이 마구 오르고 있죠.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돈을 좀 더 주고 사 먹든지, 아니면 먹는 걸 줄이든지 이렇게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남을 험담하는 것을 잘하는 행동이라고 하거나, 또는 그런 사람을 무조건 포용하라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겨울이 되면 찬 바람이 불고, 여름이 되면 더운 바람이 불 듯이 세상에는 내가 원하지 않는 그런 일들이 늘 일어납니다. 별일이 아닙니다. 질문자가 시비해서 큰일이 되는 겁니다.
첫째, 우리의 습관이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시작하면 정치인이나 종교인의 험담부터 시작해서 친구나 시어머니 등 주변 사람에 대한 험담이 나옵니다. 만약에 세상 사람들이 일상에서 하는 말을 모두 녹음해서 들어본다고 합시다. 이야기의 절반 이상은 남을 험담하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보통은 사는 것 자체가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의 말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수행자라면 ‘그러려니’ 하고 지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둘째, 질문자가 너무 민감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니’ 하는 자세가 잘 안 된다면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것을 권합니다. 동시에 스스로 수행을 좀 더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남을 험담하는 것은 안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남을 험담하는 것을 내가 어떻게 합니까? 남의 험담을 듣는 일은 그보다 훨씬 더한 일을 겪는 것에 비하면 소소한 일입니다. 그런 정도는 그냥 두는 것이 낫습니다. 마당을 아무리 깨끗하게 쓸어놓아도 돌아서면 나뭇잎 하나가 떨어집니다. 다시 쓸고 돌아서면 또 나뭇잎이 떨어져 있습니다. 나뭇잎 한두 개 떨어졌다고 마당 쓸기를 반복하면 종일 마당만 쓸게 됩니다. 나뭇잎이 많으면 가끔 한 번씩 쓸고, 한두 개 떨어지는 정도는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많이 쌓이면 그때 또 쓸면 됩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제가 조금 민감했던 것 같습니다. 험담을 들으면 온몸이 아파서 걱정했는데, 스님 말씀 들으니 큰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티끌 같은 것을 태산같이 생각했습니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좀 편안해졌습니다. 저도 안 그러고 싶은데, 몸이 이렇게 반응하니까 힘이 듭니다.”
“그렇다면 병원에 가야 합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에 제가 시골 친구들을 만나면 시골 친구들은 술과 담배 이야기, 노는 이야기를 합니다. 제가 그런 이야기가 듣기 싫다고 친구들과 의절할 수는 없잖아요?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야죠. ‘세상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저런 고민이 있구나’, ‘지금 저런 스트레스가 쌓여 있구나’ 하고 그냥 봐야죠. 사소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시비하면 혼자 살아야지 누구하고 같이 살겠어요?
질문자처럼 험담을 듣고 몸이 아플 정도라고 하면 치료가 필요합니다. 신경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니까 필요하다면 안정제를 좀 먹고 긴장을 풀어야 해요. 남이 험담하는 것을 무심히 흘려듣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한 시간 동안 즉문즉설을 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스님이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추석 연휴 동안 어떤 마음으로 지내면 좋은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추석이 되면 가족들이 오랜만에 만납니다. 명절에는 오랜만에 서로 만나는 것에 대한 기대가 크고, 이로 인해 갈등도 생깁니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뵈러 갔다가 생각지 못한 부모님의 말씀과 요구에 속상해지기도 하고요. 특히 시댁에 가면 시댁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에 대한 남편과 아내의 관점이 서로 달라 갈등이 더 커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추석 후에는 이혼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부부 갈등도 더 커지는 일이 생깁니다.
추석에는 이런 마음으로 지내보세요
그러니 명절이라고 너무 욕심을 내지 마시고 가볍게 다녀오셨으면 합니다. 이왕지사 가는 것인데 어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어른들의 얘기를 들으며 ‘저런 마음의 어려움이 있구나’ 하고 이해심을 내야지, 그걸 시비해서 ‘나는 이렇게 정성을 들였는데 내 정성을 몰라줘서 서운하다’ 하고 갈등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합니다.
명절에는 차 사고 건수도 많아집니다.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안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술을 마시면 운전을 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음주운전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큰 피해를 주는 일입니다. 부처님의 계율에도 어긋나는 일이니 결코 해서는 안 됩니다.
추석에는 평소 가졌던 마음의 긴장을 풀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가족과 친구를 위하는 넓은 마음을 내보았으면 합니다. 이웃을 둘러보고 외로워하는 사람들에게도 작은 위로를 건넬 수 있도록 나의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차례를 지내며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차례상에 올리는 곡물이 있기까지 요리를 한 나의 수고로움도 있지만, 이 곡물을 생산한 수많은 농민과 자연의 노고가 있습니다. 자연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주까지 미국에서 활동할 예정입니다. 오늘부터는 국무부, 국방부, 백악관을 찾아가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눌 계획입니다. 한반도 평화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우리의 일입니다. 여러분도 추석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생방송을 마친 후 8시에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오늘도 연달아 미팅 약속이 잡혀 있어서 서둘러 정토회관을 나섰습니다.
11시부터 버지니아주 애난데일(Annandale)에 있는 한인 식당에서 워싱턴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기자들도 반갑게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스님, 20년 전과 똑같으시네요.”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은 후 함께 식사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각 신문사에서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에 특파원을 파견해서 각종 소식을 취재하도록 하는데요. 특파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주제는 북미 관계입니다. 스님에게도 북미 관계에 관한 질문들을 많이 했습니다.
스님은 며칠 동안 미국 의회, 정부, 싱크탱크 전문가들을 만나서 했던 이야기들을 특파원들에게 자세하게 공유해 주었습니다.
“일본에 과거를 묻지 않고 획기적으로 한일 관계를 풀었듯이 남북문제도 획기적으로 풀어버리면,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일본에 편중된 외교 정책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 과감한 외교 정책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될 것입니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가 30년 전보다 위험해졌지만 아무 제약 없이 방치돼 있습니다. 러시아 군사기술이 북한에 유입되는 게 가장 큰 위험입니다. 북·러 군사협력이 2~3년 지속되면 북한의 군사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이를 막기가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국제적 왕따였던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분열로 인해 중국과 러시아라는 뒷배를 갖게 되었기 때문에 북한이 조만간 비핵화 대화 테이블로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그만큼 북한의 외교적 입지가 넓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가장 큰 위험 요소입니다. 당장 북한의 핵 역량을 동결이라도 시켜야 합니다. 북한 핵 동결을 조건으로 북미 관계를 정상화해서 핵 위험을 우선 막는 게 중요합니다.
북·중·러에서 핵심 연결고리인 북한을 빼낼 수 있으면 3국 공조를 늦추게 되어 거꾸로 한미일 협력관계를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신냉전 구도 속에서도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스님은 미국 조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미국이 북미 국교 정상화와 북핵 동결을 협의하는 과감한 빅딜 정책을 펼칠 것을 설득하고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 주민 2,500만 명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파원들은 한국 사회 안에서 첨예해지고 있는 갈등에 대해서도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권력이 지나치게 독점되어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양극화로 인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인정하고 통합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연구해야 합니다. 남남갈등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권력이 독점되어 있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국무위원에게 분산하고, 지방분권을 강화하고, 선거구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대안입니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개인적인 고민도 질문이 나왔습니다. 약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간담회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특파원들에게 영어로 번역한 희망 편지를 한 권씩 선물했습니다. 특파원들은 아내가 스님의 팬이라며 자신의 이름이 아닌 아내의 이름으로 책에 사인을 요청했습니다.
특파원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워싱턴 D.C.로 향했습니다. 미국 연방정부 건물에 도착하니 국무부에서 근무하는 손민서 박사님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국무부로 들어가서 손민서 박사님을 비롯한 정보국 직원들과 한반도 평화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줄리 터너(Julie Turner) 북한 인권특사를 비롯한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한국/북한과 직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지난 1월에 5년간 공석이었던 북한 인권특사를 새로 임명하면서 북한 인권 문제를 중요하게 다룰 것을 시사했었는데요. 스님은 터너 특사에게 북한 인권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풀어나가야 하는지를 두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지금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겠다고 해도 북한에서는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북한 정부의 책임이지 우리에게 책임이 없다고 외면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거절하는 사람과 고통받는 사람이 같지 않습니다. 결정권을 가진 사람은 자신들의 체제를 지켜야 한다는 안보적인 이유를 우선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해결해주지 않고서는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을 도울 수가 없습니다. 북한 주민들을 돕는 일은 저와 같은 사람이 할 수 있지만, 안보 문제는 저와 같은 사람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에 ‘현재의 상태를 방치하지 말고 북한과 대화를 해서 인도적 지원이 가능하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하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1차적인 인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밥을 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밥을 먹을 수 있게 해 준 다음에 정치적 자유를 얘기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정치적 자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북한 정부를 비난하는 것 외에는 다른 할 일이 없어집니다. 인권을 탄압하는 것도 북한 정부이지만 인권을 개선하는 것도 북한 정부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부터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정부가 만든 헌법에 보장된 인권이라도 지키도록 우리가 충분히 압력을 넣어야 합니다. 즉,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인권 문제들을 제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권 문제가 너무 정치적인 비판에만 치우치면 북한 밖에서만 인권 문제가 얘기될 뿐입니다.”
“스님의 통찰력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도 인권을 정치적인 사안에 국한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접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도부와 고통받는 사람을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잘 들었습니다. 스님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다양한 고민을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0월에 대사님이 서울을 방문하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고 대화를 마쳤습니다.
국무부를 나와 저녁에는 비공개 미팅을 했습니다. 다시 버지니아주로 이동하여 미국 의회 관계자를 만나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화를 나눈 후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제이슨(Jason Lim) 님의 댁으로 이동했습니다.
제이슨 님은 2006년 1월에 하버드 대학 케네디 스쿨을 다니던 대학생 시절부터 스님의 영어 통역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졸업 후 워싱턴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거의 전적으로 스님 일정에 맞춰 휴가를 받아 가며 18년째 통역 자원봉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이번 스님의 워싱턴 D.C. 일정에서도 스님의 입이 되어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제이슨 님의 아내가 정성껏 차려준 저녁 식사를 함께 먹고 나서 스님은 제이슨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기념사진도 함께 찍었습니다.
제이슨 님의 댁을 출발하여 다시 미주 정토회관으로 돌아오니 밤 10시가 되었습니다.
추석을 맞이하여 미국 워싱턴 D.C. 의 밤하늘에도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애나벨 박과 생방송 대담을 하고, 점심에는 미국 국방성으로 이동하여 핵과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담당하는 책임자와 미팅하고, 오후에는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강연하고, 저녁에는 하버드대학교 의대 박기범 교수와 북한 주민들의 의료 문제에 관해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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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하루
2023.9.28 워싱턴 D.C. 4일째, 애나벨 박과 인터뷰, 미국 국방부 미팅
"한국 안에서도 통일에 무관심한데 스님의 호소가 어떤 의미가 있나요?"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462?p=3&k=
2023.10.01.
▲ 오디오로 듣고 싶은 분은 영상을 클릭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워싱턴 D.C. 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미국 정부, 싱크탱크 관계자를 만나는 4일째 날입니다.
스님은 미주 정토회관에서 새벽 4시 45분에 천일결사 기도와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아침 식사를 하고 곧바로 워싱턴 D.C.로 나갔습니다.
오늘은 엊그제 리치 타펠 목사님과 대담을 했던 스웨덴보리 교회(Church of the Holy City)에서 애나벨 박과 생방송 인터뷰를 하기로 했습니다.
애나벨 박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예배당 2층에 생방송 스튜디오를 꾸미고 8시 10분부터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추석 명절에 한국에서도 많은 시청자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먼저 애나벨 박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엊그제 대담에 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When we had a conversation two days ago, what you said about the need for people to understand North Korea left an impression on me. Can you tell us specifically what we don’t understand about North Korea?”
(이틀 전에 대담을 나눌 때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 저에게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무엇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릴 때 핵, 미사일, 독재 이런 것들을 주로 떠올립니다. 그런데 동시에 북한에는 2500만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아울러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며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그들 나름대로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UN에 가입한 하나의 독립된 국가이기도 하고요.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북한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북한 사람들도 우리처럼 밥을 먹고, 아프기도 하고, 즐거울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고 해서 북한을 악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북한은 민주적인 가치와 자본주의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보면 분명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는 관점에서 북한을 바라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어요. 그런데 북한만 그런 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하여 중동 국가의 왕국들도 우리와 많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중동의 여러 나라와 교류와 협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돌아봐야 합니다.
북한 문제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은 강대국들의 이런 태도에 불만을 갖고 있다 보니 계속 대외적으로 저항과 도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북한을 바라볼 때는 세 가지로 구분해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국가로서의 북한을 뜻할 때가 있습니다. 북한은 UN에 가입된 국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존중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북한 정부를 뜻할 때도 있습니다. 북한은 1인 독재 국가입니다. 북한 정부에 대해서는 우리가 가진 가치관과 다르기 때문에 비판을 할 수가 있습니다.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가 있고요.
셋째, 북한 주민을 뜻할 때도 있습니다. 북한 주민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식량과 약품이 부족하고 생활이 어렵다면 차별 없이 인도주의적 지원의 대상이 됩니다. 정치 체제, 종교, 이념과 관계없이 위기에 처했다면 지원을 하는 것이 인도주의입니다. 북한 정부를 비판적 시선으로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정부를 비판적으로 본다고 해서 북한 주민들이 인도적 지원을 받을 권리조차 없는 것처럼 '나쁜 놈들을 왜 지원해 주느냐' 하고 말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이렇게 북한을 이야기할 때는 세 가지 관점이 뒤섞여 있어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것입니다. 북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북한 주민을 외면하거나 북한이라는 국가를 부정하는 쪽으로 함께 쓰일 때가 많은 거죠. 만약 북한 정부가 바뀐다 해도 북한 주민은 그대로 있고, 북한이라는 국가는 그대로 있습니다. ‘북한’이라고 하면 북한 정부만 국한되어 떠오르기 때문에 북한이라는 국가와 북한 주민들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로 인해 북한에 대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킵니다. 북한 정부의 행동에 대해서는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비판조차도 북한이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북한을 악마화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의 답변을 경청한 후 애나벨 박은 현재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지금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현재 북한 주민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나요?
“Can you explain in detail the situation that residents in North Korea are currently experiencing?”
(현재 북한에서 주민들이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줄 수 있으신가요?)
“북한은 북한 정부의 미사일, 핵무기 개발과 관련하여 유엔의 제재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핵무기 개발을 멈추도록 권유해도 북한 정부가 멈추지 않으니까 경제적 제재를 가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제 제재는 북한 정부도 어렵게 하지만, 특히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는 분야에 대해서 제재를 가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생활에 고통을 가져오는 생필품에 대한 제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첫째, 북한 주민들이 외국에 가서 경제 활동이나 노동을 하는 것도 전부 못하게 하니까 주민들의 이동의 자유가 제재를 받게 됩니다. 세계의 가난한 나라들은 주민들이 해외에 나가서 노동을 해서 벌어온 돈이 그 나라가 유지되는 중요한 수입원이 됩니다. 그걸 제재하니까 주민들이 생활이 매우 어렵게 되죠.
둘째, 물고기나 조개를 잡아 중국이나 다른 외국에 수출하는 것을 못하게 해서 주민들의 생활을 곤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산에 가서 캔 고사리, 잣 같은 것마저도 판매하지 못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설탕, 조미료를 수입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의 생활이 궁핍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식량과 생필품의 수입은 금지되어 있지 않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무역에서는 그것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셋째, 물건을 옮기려면 자동차가 필요하고, 자동차를 이용하려면 휘발유가 필요한데, 그것마저도 수입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민 생활이 매우 곤궁해졌습니다.
게다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번지면서 국경을 완전히 봉쇄하게 되면서 더욱더 생활이 어려워졌습니다. 예전에는 그나마도 수입과 수출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졌는데 국경이 완전히 봉쇄되니까 생필품과 의약품의 부족으로 주민들의 생활이 더 궁핍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겪는 고통은 북한 자체의 통제에 의해서 바깥으로 알려지지도 않고, 우리 역시 그것을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고통은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고통의 소리를 들을 수도 볼 수도 없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제가 이렇게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호소하기 위해 미국까지 온 것은 북한의 주민들이 그들의 고통을 알릴 수가 없기 때문에 제가 대신해서 그들의 고통을 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이미 25년 전 고난의 행군 시기에 200만 명 이상이 식량과 의약품 부족으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넘어가서 난민이 되어 떠돌고 있습니다. 그들 중의 일부는 현재 한국이나 세계 여러 곳에 가서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숫자는 보이지 않게 중국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들 중 대다수는 불법적으로 국경을 이탈했다는 죄목으로 북한으로 다시 되돌려 보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은 많은 고통을 겪었고 많은 인권 침해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북한 난민의 구호 문제와 북한의 인권 문제가 국제 사회에 이슈가 됐습니다. 이들의 고통은 정치적인 것이 근본적인 원인일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저는 인권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생존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의 인도적인 위기 상황이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후에 그들에게 정치적인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민들에게 정치적인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아직도 많습니다. 그 문제는 점차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고통은 정치적인 고통과 함께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과 정치적인 고통을 해방하는 모든 것이 북한에서는 국가 안보라고 하는 이슈에 전부 종속되어 있습니다. 국가 안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도저히 인도적 지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속적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서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 주민의 고통이 누구의 책임이냐’, ‘북한 정부의 잘못으로 인해 이런 고통이 발생했다’ 이렇게 주장하면서 이 문제를 북한 정부의 책임으로 규정한다고 해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외면해도 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원인이 북한 정부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북한 정부가 해결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책임은 우리에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굶주리고 있고 우리가 배부르다면 우리가 가진 음식의 일부를 그들에게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들이 나와 종교, 국가, 인종, 이념이 다르더라도 일단 배고프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도움을 주는 것이 오늘날 유엔에서 말하는 인도주의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 제재로 인해 북한 주민들이 이미 고통을 겪고 있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국경 봉쇄로 그 고통은 더욱더 가중되었습니다. 그러나 국경 봉쇄로 인해 북한 주민들이 겪는 고통을 파악하기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 보니까 우리 모두가 지금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말 못 하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대변하기 위해서 미국까지 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는 스님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애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애나벨 박의 질문은 계속되었습니다.
미국 시민들이 북한 주민들을 돕기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나요?
미국과 북한의 직접적인 대화가 안보 위험을 줄이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까요?
북한 문제를 볼 때마다 끝이 안 보여서 답답한 마음이 들고, 마치 지뢰밭을 보는 기분이 듭니다. 지뢰를 안 터트리고 지뢰밭을 건너갈 수 있는 방향을 스님이 제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스님은 질문마다 막힘없이 대답을 이어나갔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대화를 나눈 후 마지막으로 애나벨 박이 스님에게 한국 시청자들을 위해 추석 메시지를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스님은 한국 사람들이 추석을 어떤 마음으로 보냈으면 좋겠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번 추석에는 이런 마음으로 지내면 좋겠습니다
“Today is Chuseok, the Korean Thanksgiving Day. Is there a particular message you want to convey to people today?”
(오늘이 한국에서는 추석인데요. 추석을 맞이하여 스님이 특별히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요?)
“추석에 차례를 지내는 첫 번째 의미는 조상에 대한 감사입니다. 우리들의 노력뿐 아니라 조상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평화롭고 풍요롭게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의 평화와 풍요는 조상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는 것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것을 지켜내고 확산해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행복할 때 나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직도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주변의 이웃들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을 비롯하여 세계의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과 내가 가진 것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추석을 기해서 작은 돈이라도 기부를 하거나 편지 한 장을 쓰는 등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눔은 그들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나의 행복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 가는 공덕이 됩니다.
추석에 차례를 지내는 두 번째 의미는 우리의 삶을 있게 한 자연에 대한 감사입니다. 오늘날 환경 위기를 초래한 이유는 우리가 자연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연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이 있다면 소비 수준을 줄이는 자세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추석’하면 가장 먼저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다. 2005년 9월 19일은 북핵 6자 회담 결과 9.19 공동성명이 발표된 날입니다. 추석날 아침에 북경에서 6자 회담이 타결이 되어 북미 간 대화를 통해 북한은 핵을 동결하고,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쪽으로 나아가기로 포괄적 합의를 했었습니다. 북한과 미국이 그때처럼 서로 양보하고 합의를 이룬 정신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북미 간의 정상회담을 통해서 싱가포르에서 관계 개선을 하기로 합의한 정신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남북 간에도 7.4 남북 공동 성명과 남북 정상 회담을 통해 서로 합의한 것을 이행해 가는 관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추석의 의미를 살려서 함께 평화와 협력의 길을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제 북한으로 넘어간 미군 병사를 북한은 조건 없이 석방했습니다. 미군 병사가 고국으로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도 반가운 일이지만 북한이 오랜만에 아무런 조건 없이 석방했다는 것도 북미 간 관계 개선에 있어서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이 우리에게 추석 선물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Thank you for your valuable information and good message.”
(소중한 정보와 좋은 메시지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의 추석 메시지를 듣고 나서 9시 30분에 생방송을 종료했습니다. 간단하게 간식을 먹은 후 사용한 예배당을 원래 모습 대로 정리정돈했습니다.
고풍스러운 교회 예배당을 배경으로 애나벨 박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작별 인사를 하고 교회를 나왔습니다.
인터뷰 내용은 아래 영상에서 전체 보기 하실 수 있습니다.
애나벨 박과 인터뷰, 영상으로 전체 보기 (클릭)
▲ 애나벨 박과 인터뷰, 영상으로 전체 보기 (클릭)
다음 미팅까지 잠시 시간 여유가 생겨서 워싱턴 기념탑 건너편 내셔널 몰의 서쪽 끝에 위치한 링컨 기념관을 방문해 보았습니다. 건물 외부가 마치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과 흡사해 보였고, 가까이서 보니 아주 거대한 규모였습니다.
건물의 내부에는 대형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의 좌상 동상과 함께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문과 그의 두 번째 취임식 연설문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특히 이곳은 1963년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이 일자리와 자유를 위한 워싱턴 인권 궐기 대회의 마지막 날에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를 연설한 장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곳입니다. 베트남전 반전 시위, 인종차별 반대 집회 등 주옥같은 행사들이 많이 열렸던 미국 인권 운동의 상징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적 가치가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것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국적 가치에 부합하도록 지금 미국이 고통 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에도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면서 링컨 기념관을 나왔습니다.
이어서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 공원을 둘러본 후 미국 국방부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위치한 펜타곤 건물로 향했습니다.
12시부터 1시간 20분 동안 미국 국방부에서 핵과 대량 살상 무기 대응에 대한 업무를 관할하고 있는 책임자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스님은 국방부 책임자들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변화된 국제 정세로 인해 북한의 입지가 예전과 달라졌음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어떤 군사 전략을 취해야 북한의 핵과 대량 살상 무기 개발을 동결시켜 나갈 수 있는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북한과 미국의 관계를 어떻게 개선해 나가면 좋을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펜타곤을 나와 다시 워싱턴 D.C. 도심에 위치한 조지 워싱턴 대학교로 향했습니다. 오후 3시부터는 조지 워싱턴 대학교 엘리엇 국제대학원 아시안학과 회의실에서 한국에서 온 외교, 국방, 한국학, 언론 관계자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먼저 조지 워싱턴 대학교 한국학 연구소 김지수 소장께서 오늘 모임을 마련한 취지를 이야기한 후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국방대학교에서 연수를 오신 분, SBS, 동아일보, 서울신문 등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하시는 분,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한국학을 연구하는 분 등 다양한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국방대학교 김영준 교수께서 스님에게 워싱턴 D.C. 를 방문한 이유를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이곳에서 만난 미국 정부, 의회, 싱크탱크 관계자들과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하는지 스님의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북미 관계에 있어서 북한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사항은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폐였습니다. 북한이 주장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의 핵심적인 문제는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유엔에 가입한 하나의 국가로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국가로서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는 것이 목표가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요?
현재 북한은 핵 개발에 대해 대량 생산 체제로 돌입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미국이 먼저 북미 관계 정상화라는 카드를 던져 북한 핵을 동결시켜서 최소한 핵의 확산이라도 막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북한의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원래 북미 관계 정상화는 6자 회담(2003년~2007년)에서 논의할 때 핵 폐기 단계에서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북한은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황이었고, 핵을 개발하기 전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라는 배후 세력을 갖게 되었고, 미국과의 대화에 목을 매는 형편도 아닙니다. 그래서 미국이 정말로 북한의 대량 살상 무기 개발을 억제하기 위해 적극적인 개입을 하려면 먼저 북미 관계 정상화의 카드를 던져서 북한 핵을 동결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과감한 빅딜 정책을 취하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는 동시에 미국이 추구하는 동아시아 정책을 매우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 간의 협력 관계를 원했지만 한일 간의 과거사가 늘 걸림돌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한국 정부가 일본의 과거사를 문제시하지 않고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미국의 목표가 달성된 것처럼 표면적으로는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 내에서는 한일 관계 정상화 정책을 국민의 다수가 지지하지 않고, 오히려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만약 한국 정권이 다시 바뀌게 되면 일본과의 정책은 또다시 논란이 될 소지가 있고, 이 정책의 지속 가능성은 불안정해집니다.
이 상황에서 남북 관계의 개선은 현 정부가 추구하는 한일 관계 정상화 정책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한국 내에서는 일본의 과거를 묻지 않는 현 정부의 대일 정책이 다소 편중되었다는 비판적인 여론이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현 정부가 대북 정책에 관해서도 북한의 과거를 묻지 않고 문제를 풀어나간다면, 이는 편중된 외교 정책이 아닌 미래를 향한 과감한 외교 정책이라는 관점으로 평가 받을 수 있습니다.
일본이든 북한이든 관계없이 ‘과거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자’ 하는 일관된 잣대를 적용하여 관계를 개선해 나간다면, 현 정부에게도 유리한 상황이 되는 것이죠. 결국 미국과 일본으로서도 한미일 협력 관계가 안정적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의 한·미·일 협력은 북한을 자극해서 북·중·러 협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게 되면 북·중·러 협력 관계를 다소 느슨하게 할 수 있고, 한·미·일 협력 관계는 더욱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 협력이 누그러지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북한의 역할도 줄어듭니다. 이런 면에서 지금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적극적인 외교 안보 정책을 취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봅니다.
과거 미국은 한반도의 긴장을 유지하는 것을 하나의 전략으로 삼았습니다. 남북 관계의 긴장이 고조되어야 한국이 과거사를 뒤로 하고 일본과 협력하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미국의 요구한 대로 한일 간의 협력이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서 좀 더 과감한 정책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모임 참석자들은 스님의 설명에 대해 올바른 해법이라고 모두 공감했습니다. 이어서 즉문즉설 방식으로 누구든지 자유롭게 궁금한 점에 대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전쟁을 예방하는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궁금해하면서 스님은 전쟁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이 전쟁을 막기 위한 활동을 하니까 이질감을 느껴져요
“전쟁을 예방하는 종교의 사회적 역할이 궁금합니다. 스님께서는 전쟁을 어떻게 보시나요? 불교 신자가 아닌 저의 입장에서는 스님께서 전쟁과 관련한 여러 사회 활동을 하시는 것들에 대해서 이질감을 느낍니다”
“전쟁을 막기 위한 저의 모든 사회 활동은 불교라는 종교의 신념에서만 기인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한국에 실제로 살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보았듯이 전쟁이 일어나면 어떤 피해가 있을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현대사회에서 전쟁이란 일부 중동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국지전에 불과하다고 보는 경향이 컸습니다. 다소 안일하게 생각한 거죠. 하지만 실제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현대사회에서도 전쟁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더 한반도 전쟁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일주일이면 끝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전쟁의 큰 피해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전쟁은 절대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전쟁은 엄청난 손실을 가져다줍니다. 지난 70여 년 간 남한이 일구어 온 모든 것들을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서 한국이 그런 위험을 감수하느냐는 겁니다. 북한으로서는 ‘없는 판에 이판사판이다’ 하면서 도박을 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남한이 그것에 맞대응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이기느냐, 내가 이기느냐?’ 하고 따질 문제가 아닙니다. 설사 이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손실을 보면서 갈등을 빚을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북한을 대단한 ‘위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위험’하다고는 생각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엄청난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위험 관리의 차원에서 북한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처님이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는 점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제가 전쟁을 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제가 한반도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얻는 것은 적고 잃는 것은 매우 큽니다. 제가 한반도에 살고 있으니까 당연히 전쟁을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현재 남북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남한 정부가 앞으로 남북 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풀어나가야 할까요?
북한과 협상을 하려면 북한이 받아들일 만한 아이템이 있어야 할 텐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기 위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나라는 어디인가요?
세계 정세를 내다볼 때 가장 빨리 가장 적은 피해를 입으면서 남북이 통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님은 평화 운동 외에 어떤 활동들을 더 하고 있나요?
죽음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요?
한국 불교는 정말 다양한데 누가 어떤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불교를 통합하여 재정립할 수 있을까요?
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각 종교에서는 어떤 목적으로 북한이탈주민들을 돕고 있나요?
20년 전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분은 요즘 젊은 세대들의 특징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한국 안에서도 통일에 대한 관심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스님의 간곡한 호소가 과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한국 안에서도 통일에 무관심한데 스님의 호소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사회문제에 대해서 개인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국제사회에서도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관심이 없는 것 같고요. 저는 젊은 세대를 만날 일이 많은데 ‘통일을 원하냐?’ 하고 물어보면 학생들은 ‘나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하고 말하는 비중이 굉장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족이나 고향이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분들이 자꾸 돌아가시고 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국제사회에 이야기하기 전에 한국 안에서조차 통일에 대한 관심이 아주 적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님의 호소가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스님조차 약간 무기력함을 느끼실 것 같거든요. 현재 상황에서 스님이 통일과 북한 문제에 대해 호소하는 행동이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시대의 흐름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반드시 좋다 나쁘다 할 수 없고, 시대가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니까요. 여야의 정치 대립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그 대립의 정도가 조금 더 하느냐 덜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과거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일단 받아들여야 합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사람들은 크게 반성했습니다. 전쟁의 고통을 겪은 후 대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세대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지금은 편안한 시대에서 자신만 생각하고 자란 세대들이 나타났습니다. 새로운 세대들은 남에 대한 특별한 증오심도 없지만 남에 대한 자비심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위해 모금 운동을 하면 기성세대는 책상을 뒤엎고 빨갱이라고 욕을 하지만 모금도 해줍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반대하지도 않지만 모금도 안 해주고 관심도 갖지 않습니다. 반대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점이지만 관심이 없다는 측면에서는 매우 큰 문제입니다. 젊은 세대는 통일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통일에 대한 젊은 세대의 무관심이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성세대로서는 하나의 나라에서 살다가 나라가 두 개로 쪼개졌으니까 불편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 가족이 여기저기 흩어져 살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젊은 세대는 부모조차 전후 세대(戰後世代)입니다. 북한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나의 문제가 될 수 있는데, 그렇지도 않다는 거죠. 젊은 세대는 이미 '분단'이라는 조건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오히려 통일되는 것이 자기 삶에 혼란을 가져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과 같이 살아야 하는데, 그런 상황이 더 복잡한 문제로 다가오는 것이죠. 그러므로 통일에 대한 젊은 세대의 무관심을 애국심이 없다고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음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통일은 인도주의적이고 민족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이익을 먼저 따질만한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에게는 그런 전제가 없어서 이익을 따져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얼마나 큰 손해가 오는지, 통일이 되어 북한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이익이 생길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통일이 젊은 세대에게 실질적으로 어떤 이익을 주는지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불교는 이익을 버리라고 하는데, 스님은 통일을 너무 이익 중심으로 설명하는 것 아니냐?’ 하고 반론을 제기합니다. 제 얘기는 통일을 이익 중심으로만 보자는 것이 아니라 통일을 이익으로 따진다고 해도 큰 이익이 되는 일이라는 점을 설명하는 겁니다.
북한에 대해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젊은 세대를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내버려 두어 전쟁이 일어나면 얼마나 큰 손실이 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젊은 세대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전쟁 위험이 지금 높아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인지해야 합니다. 사실은 2017년에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매우 컸습니다. 당시에 갈등이 굉장히 고조되었지만 안팎으로 보이지 않는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의 위험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모르는 일반인들은 ‘봐라, 전쟁이 난다더니 안 나지 않느냐’ 하고 이야기하거든요. 하지만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큰 손실이 발생하게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젊은 세대를 나무라는 것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서 전쟁에 대한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대해 무관심한 추세로 흘러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결국 2차 세계 대전처럼 고통을 다 겪고 난 뒤에 반성을 하게 되겠지요. 그렇게 된다면 달리 방법이 없어요. 하지만 그 위험을 알고 있는 저로서는 최선을 다해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님의 답변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들 개인적인 고민에 대한 질문들도 더 하고 싶어 했지만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모임을 마쳤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인사를 나눈 후 조지워싱턴대학교를 나왔습니다.
근처 식당으로 이동하여 오후 5시 30분부터는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박기범 교수와 저녁 식사를 하며 한반도 평화와 북한의 의료 문제 개선을 위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박 교수께서는 북한을 20여 차례 방문하며 북한의 열악한 의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분입니다. 의약품을 비롯한 인도적 지원이 가능하려면 우선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하여 스님의 조언을 구하고, 스님의 생각을 경청했습니다.
앞으로도 북한의 열악한 의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함께 기울이기로 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습니다.
저녁 8시 20분에 다시 미주 정토회관으로 돌아와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전 세계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설립된 NED(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를 방문하여 대화를 나누고, 점심에는 미국 의회에 '한반도평화법안'을 발의한 브랜드 셔먼 미국 연방 하원의원과 미팅을 하고, 오후에는 백악관을 방문하여 관계자들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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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하루
2023.9.29. 워싱턴 D.C. 5일째, 미국 백악관과 의회 관계자 미팅
“금전적인 피해를 주는 남동생과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464?p=3&k=
2023.10.02.
▲ 오디오로 듣고 싶은 분은 영상을 클릭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워싱턴 D.C. 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미국 백악관과 의회 관계자를 만나는 5일째 날입니다.
스님은 미주 정토회관에서 새벽 4시 45분에 천일결사 기도와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 아침 식사를 하고 8시에 워싱턴 D.C.로 출발했습니다.
오전 9시에 약속 장소인 NED(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 기금) 사무실에 도착하자 린 리(Lynn Lee) 부국장이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린 리(Lynn Lee) 님은 2008년 좋은벗들에서 오늘의 북한 소식을 발행할 때 꼬박 1년 동안 영어 번역을 감수해 주는 일을 도와주었던 인연이 있는 분입니다. 린 부국장과 티베트, 북한을 담당하는 페마(Pema)님도 동석했습니다.
그동안의 안부를 주고받은 후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을 비롯하여 궁금한 점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부탄을 방문하고 온 것과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소개하고, 린 리 박사님이 NED가 베트남, 인도, 대만, 중국, 티베트 등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스님은 NED가 진정으로 각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활동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실질적으로 북한 인권을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You visited many countries and talked with young people and many people. Is there a lesson you can give us?”
(스님께서는 여러 나라를 방문하시고 청년이나 많은 사람과 대화하셨는데요. 저희에게 주실 만한 교훈이 있을까요?)
“교훈이라고 한다면 NED의 자금이 정말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 쓰였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동안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내세워서 상대국의 내정에 간섭하든지 정권의 변화를 추구한 적도 있습니다.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단기적인 지원을 하는 것보다는 좀 더 길게 보고 지원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나라 국민들에게 ‘미국이 정말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 지원하는구나!’ 하는 것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좀 더 장기적인 목표를 세워서 시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쪽으로 자금을 운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Thank you.”
(감사합니다.)
그리고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접근 방법이 달라져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가령 북한에도 법이 있고, 그 법에는 인권에 관한 조항도 들어 있습니다. 북한 정부가 그걸 지키지 않을 뿐이죠. 그들에게 우리 기준의 인권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북한 법에 보장되어 있는 인권을 북한 국민들에게 제대로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전에 저는 북한의 헌법을 인쇄한 후 그걸 북한에 보내는 방법을 생각해 보기도 했어요. 그러면 북한 주민들 중 누군가가 그 헌법을 가지고 있더라도 경찰이 문제 삼지는 못할 겁니다. 나중에 부당한 피해를 보더라도 법에 이런 내용이 있다면서 항의할 수도 있고, 두려움도 덜 느끼게 될 겁니다. ‘공화국의 헌법을 보라’ 하고 말하도록 해서 북한 정부가 주민을 폭행하거나 감옥에 보내지 않도록 하면 북한 주민들 스스로 인권 의식을 일깨워 나갈 수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처음부터 박정희 정부를 타도하려고 노동운동을 한 게 아니잖아요? 노동 삼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노동운동을 이어서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도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어떨까요? 만약 북한 법에 문제가 있다면 유엔 인권 헌장과 비교해서 그와 어긋나는 것을 개선하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북한이 제일 큰 거부반응을 보이는 단어가 ‘인권’입니다. 북한 정부를 비난하면서 인권을 주장하게 되면 북한 정부는 상대가 인권을 내세워서 자기들을 없애려고 한다고 오해하게 됩니다. 미국도 이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조금 달리해야 합니다. 북한 정부와 대화하면서 조금이라도 북한 주민의 인권이 개선되도록 만들어 가야 합니다. 북한을 비난하는 성명만 발표해서는 주민들의 인권이 개선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이런 기금들이 인권 운동가들의 회의와 집회에 다 사용될 뿐 북한 주민들의 인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데에는 사용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은 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기적으로 보면 법을 집행하는 관리들에 대한 교육훈련도 필요합니다. 북한에서는 법을 다루는 경찰이나 검사들이 굉장히 폭력적이거든요. 무슨 혐의가 있어서 잡히면 먼저 무조건 두들겨 패는 식입니다. 우리의 법을 지키라는 게 아니라 그들의 법을 좀 지키도록 교육훈련을 하는 게 제일 먼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 법에 관련해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신들부터 먼저 법을 지키도록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I think if we do what you say, it will actually have the effect of improving human rights.”
(스님의 말씀대로 하면 실질적으로 인권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북한의 관리소(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식으로 재판받고 수용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충성심이 부족한 간부들을 잡아 가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치범 수용소를 철폐하라고 하기보다는 북한 법에 입각해 정식으로 재판을 해서 그에 따라 처벌하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중에 90퍼센트는 관리소에서 나오게 될 거예요.”
“We will try to approach it that way too. Thank you.”
(저희도 그런 방식으로 접근해 보도록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린 리 박사님은 스님의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켜 보겠다고 하며 스님이 직접 찾아와 준 것에 대해 무척 고마워했습니다. 스님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대해서도 NED가 많은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하며 미팅을 마쳤습니다.
곧바로 다음 미팅을 위해 미국 국회의사당으로 향했습니다. '한반도 평화법안'을 발의한 미 하원 외교위원회 소속 브래드 셔먼(Brad Sherman) 의원을 만나기 위해 국회의사당 옆 의원 사무실(Rayburn House Office Building)로 갔습니다. 11시 30분에 셔먼 의원을 만나기로 했지만 미국 의회가 비상사태에 돌입해 있었습니다. 새 회계연도 예산안 처리 시한을 이틀 남겨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접점을 좁히지 못하고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 사태로 접어들 위험에 처하면서 임시 예산 통과를 위해 투표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셔먼 의원도 투표 때문에 미팅에 참석을 못한다고 갑자기 연락이 왔습니다. 대신에 동아시아 담당 보좌관이 나와서 스님의 뜻을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의원님께서 스님을 뵈려고 했지만 의회에서 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 못 오셨습니다. 일단 동아시아를 담당하는 보좌관을 만나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님은 보좌관에게 셔먼 의원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내용을 자세하게 이야기했습니다.
“먼저 셔먼 의원님께서 한반도 평화법안을 발의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이 법안이 몇 년 동안 계속 시도되었지만 결국 통과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애써 주신 점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한반도에 평화가 긴요합니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나날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위협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입니다. 지금 미국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멈추게 하지 않고 그냥 방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이든 정부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적극적인 개입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은 매우 실망스러운 상황입니다.
북한 문제에 대해 계속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건가요?
저는 지난 20여 일 동안 미국의 17개 도시를 순회하면서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 중 민주당을 지지했던 미주 한인들이 바이든 정부의 한반도 평화 정책에 대해 매우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평생 민주당을 지지했던 분들도 ‘이제 트럼프 후보에게 투표를 해야 하나?’ 하고 고민을 할 정도입니다. 미국 정부는 더욱 적극적으로 북한 문제에 개입해서 대량 살상무기의 확산을 멈추게 해야 됩니다. 가장 먼저 북한 핵을 동결시켜야합니다.
현재와 같은 소극적인 자세로는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북한의 처지가 옛날과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전까지만 해도 북한은 전 세계적으로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들이 생존하려면 미국과의 대화가 꼭 필요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와 러시아가 대립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이라고 하는 배후가 생겼습니다. 그로 인해 국제적 고립에서 오히려 벗어나게 됐습니다.
지금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에 크게 목매달지 않고 있습니다. 대량 살상무기의 확산이 그냥 내팽개쳐져 있는 상태입니다. 어제 북한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앞으로 핵을 대량 생산하는 체제로 돌입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더구나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통해 러시아의 앞선 군사 기술이 북한에 유입된다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확산이 될 것입니다. 북한의 행동을 비난하거나 한·미·일 군사 협력을 강화한다고 해서 확산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미국이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멈추게 해야 합니다.”
“What should we suggest to make it stop?”
(멈추게 하려면 어떤 제안이 필요할까요?)
“북한이 미국에게 줄곧 요구한 것은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폐하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폐는 곧 북미 관계의 정상화를 의미합니다. 북한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하고 관계 정상화를 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너희를 붕괴시킬 의향이 없다’ 하고 말하는 것은 북한으로서는 믿기가 어렵습니다.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북한에게 핵 동결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보다 더 소극적입니다. 샤먼 의원님께서 많은 노력을 하고 계시지만 현재 바이든 정부가 너무 소극적이기 때문에 북미 관계 정상화가 전혀 진척이 안 되고 있습니다.”
“Okay, that's a very interesting and useful perspective.”
(매우 흥미롭고 유용한 관점입니다.)
스님의 제안에 매우 고무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북한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어떡하죠?
"Yeah, okay. I still think the concern would be that what would be seen is the perception because that's definitely something that they would want. So I think that in order for something like this to happen, they would have to make a concession. The question is, what would that concession be, and could we trust them to implement whatever they promise?"
(만약 북한이 원하는 것을 해주면 그것이 하나의 타협이나 약점으로 비칠까 봐 그게 걱정입니다. 그들도 무슨 타협이나 우리한테 줘야 되는 것이 있는데 그걸 준다 해도 그들이 그걸 이행할지 그것이 미지수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일단 약속을 하고 나서 그 약속을 이행하라고 압박하는 것이 그냥 내버려두는 것보다 쉽지 않을까요?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됩니다. 약속이라는 것은 지킬 수도 있고 지키지 않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약속을 해놓고 약속을 지킬 것을 계속 요구해야 상대보다 더 우위에 설 수 있습니다.”
"Okay, well, that's a lot of very cogent argumentation."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다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도 결국 성공하지 못했잖아요?
“I have a question for you. so the previous korean administration was president moon was more he was more interested in engagement and diplomacy with North Korea. Do you assess that was a good approach that it was worth while that didn't have that approach?”
(스님께 여쭤보고 싶은 것은 문재인 정권은 약간 더 유화적이고 좀 대화로 나가고자 하는 대북 정책을 썼지 않습니까? 그것이 좋은 접근 방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스님의 판단에는 문재인 정권의 대북 정책이 어떻습니까?)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So I ask you a question. In what ways is the policy you proposed different from the policy attempted and failed by the Moon Jae-in administration?"
(그래서 질문드립니다. 지금 스님이 제안한 정책과 문재인 정권이 시도했다가 실패한 정책이 어떤 점에서 다릅니까?)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까지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이 되어 있었습니다. 북한의 행보는 러시아와 중국을 부담스럽게 하였습니다. 북한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대화가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북한은 을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북한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두 가지의 견해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북한을 더 압박을 하면 굴복을 할 것이라는 강경 정책입니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 곤궁하니 잘 달래면 자신들의 강경 정책을 포기한다는 유화 정책입니다. 그러나 지나 놓고 보면 두 정책 모두 실패했습니다. 과거에 실패한 이 두 가지 정책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지금은 북한의 위상이 바뀌었다는 걸 전제로 해야 합니다. 달라진 현실을 반영해서 이제 새로 접근해야 합니다. 북한이 핵을 폐기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협상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단 중지를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북한의 핵 동결을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북한의 핵 폐기가 북미 수교의 전제 조건이었지만 그것을 계속 고집하면 아무런 진전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Right. interesting.”
(맞습니다. 매우 흥미롭습니다.)
“과연 북한이 대화에 나올 것인가 하는 우려도 하고 있을 겁니다. 옛날 같으면 북한에게 굉장히 좋은 조건이지만 지금은 북한이 썩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 북한의 외교적 입지는 좋아졌지만 경제적 어려움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인도적인 관점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다소 완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생필품의 수출입을 허용한다거나, 북한의 수입원이 되는 석탄의 수출을 허용한다거나, 화물의 운반을 위한 기름의 수입을 허용하는 식으로 주민 생활과 관계되는 경제 제재를 완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조치는 오래전부터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하기 위해 제시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대화가 중단된 것입니다. 사실 이 정도의 제재 완화는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 개발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또한 북한의 노동자들이 해외에 가서 일하는 것 역시 인도적인 차원에서 허용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인도주의 차원에서 약간의 제재 완화 조치만 취해도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많이 개선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된다면 북한 정부도 구미가 당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내용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이미 어느 정도는 합의가 된 사항이니까요. 그러나 인도주의 차원이 아닌 경제적 지원에 대해서는 핵물질을 반출하는 조건과 교환하면서 점진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경제적 지원은 상호 이익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북미 관계 정상화와 북핵 동결 협상은 출발하는 측면에서 어느 누구도 경제적 부담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북한도 핵이 자기 나라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뢰를 굳혀가면서 점진적으로 의논해 나가면 됩니다.”
“Your proposal is much more persuasive because it details the benefits for each country. I will make sure to convey your message well. Clearly there is a role for the U.S. Congress to play.”
(스님의 제안은 각 나라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기 때문에 훨씬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스님의 뜻을 잘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분명 미국 의회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습니다.)
보좌관은 스님의 명쾌한 해법에 연달아 감탄을 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질문들을 스님에게 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보좌관은 스님의 설명이 너무나 구체적이고 참신해서 집중을 해서 듣느라 기록을 하지 못했다며 그 내용을 문서로 정리해서 다시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스님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언제든 교류하고 소통하자고 한 후 의원실을 나왔습니다.
30분 뒤에 다음 약속이 잡혀 있었습니다. 차 안에서 간단히 빵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다음 약속 장소인 백악관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1시 30분에 백악관 옆 아이젠하워 행정동에 도착하자 아시아·태평양계(AAPI)를 담당하는 부보좌관인 에리카((Erika Moritsugu) 님이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안보 관계 담당자(NSC)와 종교 문화 관계 담당자도 동석했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한반도의 평화와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도 미국의 대북 정책이 변화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또 스님은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과 남북 이산가족 상봉, 그리고 살아서 만나지 못하면 죽어서 뼈라도 고향에 묻을 수 있게 해주는 평양 수목장 사업 추진 등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달랠 수 있는 일들이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스님의 뜻을 충분히 설명하자 백악관 관계자들도 스님의 뜻이 반영될 수 있게 노력해 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백악관 관계자 미팅을 끝으로 워싱턴 D.C. 에서 진행된 스님의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여정이 모두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스님은 미국 싱크탱크 전문가부터 시작해서 미국 의회, 미국 정부 각 부서 관계자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똑같은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조금도 지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스님의 노력으로 인해 북한 주민들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어지고,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고, 나아가 동북아시아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워싱턴 D.C 일정을 모두 마치고 오후 5시에 다시 미주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스님은 찾아온 손님과 저녁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눈 후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스님이 미국에 머무는 마지막 날입니다. 오전에는 지난 20여 일 동안 해외순회강연을 준비했던 북미유럽 지회 임원단과 온라인으로 간담회를 하고, 오후에는 국제지부 영어 정토불교대학 학생들과 온라인으로 간담회를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주 뉴욕에서 열린 즉문즉설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금전적인 피해를 주는 남동생과 어떻게 지내야 할까요?
“저와 부모님에게 금전적인 피해를 주는 혈육과의 관계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형제예요, 친척이에요?”
“남동생입니다. 저는 뉴욕에 와서 일해 번 돈을 한국에 있는 제 방에 차곡차곡 모아두었는데 남동생이 그 돈을 훔쳐 가서 자기 빚을 갚는 데 다 써버렸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됐습니다. 그전에도 부모님께서 남동생의 빚을 이미 여러 번 갚아준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제 달러를 훔쳐 간 죄로 집에서 쫓겨나 살고 있습니다. 남동생과 남처럼 살아야 할지, 그래도 혈육인데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남처럼 살아도 되고, 형제로 살아도 되고, 어떻게 살아도 됩니다. 혈육이라도 성인이기 때문에 독립해서 각각 남처럼 살아도 되고, 또 혈육이니까 좀 잘못했다 하더라도 서로 사정을 봐주고 형제로 지내도 됩니다. 어떻게 할지는 질문자의 선택이에요. 어떻게 해야 된다고 정해진 법은 없어요. 어느 쪽을 선택해도 다 법도에 맞습니다. 질문자가 더 나은 쪽을 선택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질문을 한다는 것은 질문자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 망설이고 있다는 거겠죠. 남동생이 내 돈을 가져간 것이 괘씸하니까 정을 끊고 싶은데, 정을 끊으려니까 부모님도 계시고 형제간에 어릴 때 우정도 있으니까 아쉬운 거예요. 그렇다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려니까 괘씸한 겁니다.
첫째, 질문자는 내 돈을 동생이 가져갔다고 생각하지만, 동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형제간에는 네 돈 내 돈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자기가 어렵기 때문에 네 돈이 내 돈이고 내 돈이 네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갖고 잘잘못을 따지려 들면 질문자만 속이 뒤집어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돈을 가져간 남동생은 약간 미안한 정도이지 죄의식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너무 화를 내면 오히려 거꾸로 동생이 실망해서 ‘누나가 미국 가서 살더니 사람이 변했다’ 하는 소리를 듣기가 쉽습니다.
둘째, 동생이 훔쳐간 돈을 실제로 받을 수 있는지를 확인해 봐야 합니다. 훔쳐 간 증거가 있는지 살펴보고, 고소를 하면 그 돈을 받을 수 있겠는지를 계산해봐야 해요. 증거가 있어서 고소했다고 하더라도 남동생이 아무 돈이 없으면 못 받습니다. 우선 남동생이 돈을 갖고 있는지를 봐야 해요. 그리고 남동생이 돈이 있다 하더라도 내 돈을 돌려받으려면 남동생이 내 돈을 훔쳐 갔다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증거가 없으면 동생 아니라 부모 아니라 친구 아니라 누구라도 돈을 못 받아요. 어떤 것도 질문자가 증명해 낼 길이 없다면 받을 수가 없습니다. 증명을 한다고 하더라도 남동생이 돈이 없으면 못 받습니다.
그런데 이 일에 자꾸 정신을 뺏기면 질문자의 현재 생활에 지장이 생깁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제가 보기에는 없었던 일로 생각하고 포기하는 게 좋아요. 그리고 지금부터는 동생이 돈을 훔쳐갈 수 없는 곳에 돈을 두면 됩니다.”
“그래서 금고를 새로 샀습니다.”
“금고를 사더라도 미국에서 번 돈을 미국에 두지 무엇 때문에 한국에 가져다 둡니까?”
“저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미국에 두었다가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갈 때 가져가면 되잖아요. 지금 은행 이율도 한국보다 미국이 더 높아서 미국에 저축하는 것이 훨씬 더 이익입니다. 그래서 한국 돈을 미국으로 가져와서 저축하는 사람도 있어요. 바보가 아닌 이상 미국에서 번 돈을 무엇 때문에 한국에 가져다 둡니까? 잃어버릴 확률만 높아지는 거죠.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지금 상황은 질문자가 가슴을 세 번 치면서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이렇게 해야 할 일이지 동생을 미워해 봐야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그리고 엄마 돈을 동생이 가져갔다고 문제 삼는데 그건 질문자가 간섭할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모 자식 간에 자식은 부모 돈을 다 자기 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질문자가 부모의 돈을 두고 동생과 경쟁하는 관계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엄마 돈을 자기 자식이 가져간 것은 엄마가 고발하지 않는 이상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런 지나간 일에 미련을 갖는 것은 바보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내 돈을 부모에게조차 맡기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는 돈을 잘 버는 자식한테 마음이 더 갈까요, 돈을 못 버는 자식한테 마음이 더 갈까요?”
“돈을 못 버는 동생한테 마음이 더 갈 것 같습니다.”
“맞아요. 왜냐하면 부모는 자식들이 모두 한 식구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누나의 돈을 동생한테 줘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형제의 입장에서는 다른 살림이라고 생각하지만 부모의 입장에서는 한 살림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건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기 돈을 자기가 지킨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제 말은 이기주의적으로 살라는 뜻이 아니에요. 내가 내 돈을 보관하더라도 100퍼센트 지킬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잃어버릴 확률이 있어요. 이 일을 계기로 해서 ‘내 돈은 내가 잘 지켜야겠다’ 하는 교훈을 얻으면 됩니다. 만약 이런 일이 더 나중에 생겼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더 큰 손해를 입었을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전화위복이라고 합니다. 작은 손실이 계기가 되어 큰 손실을 미리 막았기 때문에 지금 일어난 일은 하나도 손해가 아니에요. 학습비를 냈다고 생각하고 지나간 일은 털어버리세요. 앞으로 동생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는 질문자의 자유입니다. 안 만나고 살 때 내가 더 섭섭하다면 더 이상 동생을 문제 삼지 말고 그냥 형제로 지내는 게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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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하루
2023.9.30 워싱턴 D.C. 6일째, 북미유럽지회 간담회, 국제지부 영어 간담회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로 비난을 받을 때 어떡하죠?"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465?p=3&k=
2023.10.03.
▲ 오디오로 듣고 싶은 분은 영상을 클릭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북미 유럽 지역 순회강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워싱턴 D.C. 일정을 모두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지난 30일 동안의 여정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기 위해 오전과 오후 연속해서 온라인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오늘도 새벽 4시 45분에 천일결사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아침식사를 한 후 곧바로 북미 유럽 지회 간담회를 준비했습니다.
원래는 이곳 미주 정토회관에서 1박 2일 수련을 하면 좋겠다는 계획이 있었는데 강연회 준비와 수련 준비로 바쁘고, 또 1박 2일로 수련을 하려면 비행기로 오고 가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서 경비도 많이 든다고 해서 온라인 간담회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북미 유럽 지회 온라인 간담회
북미 유럽 지역에 살고 있는 해외지부, 국제지부, 행복본부, 청년지부 활동가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오전 9시 30분에 간담회를 시작했습니다.
참가자 소개를 한 후 지난 해외 순회강연 결과를 함께 공유하고 다 함께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세계 곳곳에서 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애써준 활동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해외순회 강연이 무사히 잘 끝났습니다. 여러분들께서 곳곳에서 수고를 해주셨기 때문에 무사히 잘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지난봄에는 해외순회 강연이 주목적이 아니었고 동남아시아 구호 활동을 주목적으로 방문했지만, 호치민, 델리, 방콕, 자카르타, 4개의 도시에서 교민을 대상으로 오프라인 강연을 처음 했습니다. 하지만 해외순회 강연을 목적으로 진행된 것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 해외 방문 일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부탄을 방문하여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해 부탄 왕실과 의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둘째, 해외순회강연을 했습니다. 이번 순회강연은 유럽, 북미서부, 북미동부 지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또한 교민들을 위한 강연과 외국인들을 위한 강연, 이렇게도 나눌 수 있습니다. 셋째, 워싱턴 D.C. 에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미국 조야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미국 워싱턴 D.C. 에 있는 미국 정부, 의회, 싱크탱크 전문가들을 만나는 일정도 어제 오후에 백악관을 방문하는 것을 끝으로 전부 마쳤습니다.
오늘 간담회가 끝나면 내일 새벽에 저도 한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온라인 상이긴 하지만 이렇게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강연을 끝낸 소감도 나누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의논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누구든지 자유롭게 건의사항이나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는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강연을 통해 모인 봉사자들이 앞으로 지역 실천 활동도 계속 이어서 해보면 어떨까요? 봉사자들이 지역 실천 활동을 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점들이 있을까요?
프랑스에서 온라인 불교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오프라인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어 합니다. 유럽은 으뜸절이 없으니까 한 달에 한 번씩 저희 집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해 봐도 될까요?
아이디어와 제안도 많이 나왔습니다.
해외지부와 국제지부의 업무가 조금 더 통합적으로 진행되면 좋겠습니다.
영어 정토불교대학도 포스터를 만들어서 정토불교대학을 홍보할 때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세계 전법의 주체가 외국인 배우자와 사는 분, 외국계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 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 이런 분들이 세계 전법의 주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해외도 국내처럼 실천 활동을 할 수 있는 으뜸절 공간을 마련해 주면 좋겠습니다.
특히 오프라인에서 모임을 가질 수 있게 공간을 마련해 달라는 요청이 많았는데요. 스님은 해외의 경우 회원 수가 적어서 자원봉사 방식으로 운영하려면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현재 수준에서는 해외의 경우 오히려 지역 실천을 적극적으로 해보면 좋겠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이번에 해외순회강연을 하기 위해 국제지부와 해외지부가 함께 협력을 했고, 또한 청년지부와 행복운동본부에서도 소수이지만 힘을 합해 준 덕분에 21개 도시에서 23회 강연을 모두 잘 마쳤습니다. 여러분들도 강연장에서 직접 보셨다시피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사람들이 아닌 낯선 사람들이 강연장에 많이 참석했습니다. 또한 강연에 참석하는 연령층이 많이 젊어졌습니다. 외국인 즉문즉설에서는 교민 2세들이 많이 참여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꼭 서양 사람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계 2세들 중에도 한국말을 못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도 세계 전법의 대상이 될 수 있겠죠.
지난 상반기에는 동남아를 답사하면서 동남아에서도 현지어로 전법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특히 동남아는 불교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불교 교리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부처님의 일생과 실천적 불교 사상을 현지어로 번역해서 콘텐츠를 공급하는 방식이 전법의 기본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현장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문제들을 수렴하고 정리해서 앞으로 여러분들이 활동하는 데에 좀 더 효율을 기하도록 합시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두 화면을 향해 얼굴을 내밀고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북미유럽지회 온라인 간담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워싱턴 D.C. 정토회 회원들과 미팅
곧바로 12시부터는 미주 정토회관 1층 법당에서 워싱턴 D.C. 근교인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에 살고 있는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점심 식사를 함께 하며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삼배로 스님에게 인사를 한 후 상을 펴고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회원들은 추석을 맞이하여 각자 음식을 한 두 가지씩 준비해 왔습니다. 모아 놓으니 푸짐한 한상이 되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 명씩 돌아가며 소개를 하는데, 마지막에는 나이가 80이 넘은 노보살님 한 분이 일어나 아주 재미있게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스님께서 나이 80이 넘으면 귀신이라고 농담을 하셨는데요. 여러분들은 오늘 이 날짜를 기억하셔야 해요, 왜냐하면 살아서 귀신을 만나신 날이니까요. (웃음)
법륜 스님과 저는 띠동갑입니다. 앞으로 긴 시간이 남아 있는 여러분들이 계속해서 많은 수행을 하셔서 복도 많이 지으시길 바랍니다. 스님께서도 바쁘신 일정 가운데 끼니를 거르지 마시고, 주무실 때는 너무 푹신푹신한 침대는 치우고 바닥에서 주무셔서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12살 위니까 선배로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웃음)
크게 웃으며 자기소개를 마친 후 스님과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여는 인사를 했습니다.
“정토회가 온라인으로 모두 전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수행하고 법문 듣는 것은 온라인으로 하더라도 주말마다 정토회관에 오셔서 봉사하고 기도하는 실천 활동을 틈나는 대로 해주십사 하는 요청을 드립니다. 불교대학을 진행하는 전법회원들은 너무 바빠서 이런 실천 활동을 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니 회원 여러분들이 가능하면 시간을 많이 내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정토회는 자원봉사자에 의해서만 유지가 된다는 사실을 다 아시지 않습니까? 자원봉사자가 없으면 정토회는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오늘 오랜만에 만난 것을 계기로 다시 회원 여러분들의 왕래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부탁 말씀을 드립니다.”
이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분은 스님이 연세가 많으신데 건강을 고려하지 않고 왜 저가 항공을 계속 타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왜 스님은 저가항공을 계속 타고 다니는 거죠?
“스님의 하루에 나온 것을 보니까 스님이 저가항공을 타고 다니시더라고요. 저도 그 회사의 비행기를 타봤는데 굉장히 불편하고 불친절했습니다. 그래서 도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미국 속담에 ‘Penny wise and pound foolish’(푼돈을 아끼려다가 천 냥을 잃는다) 하는 말이 있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스님께서 이제 나이도 많으시고, 스님이 건강하셔야 정토회가 더 발전할 수 있고, 저희들도 더 많은 지도를 받을 수가 있을 텐데요. 그래서 이제는 직항을 타고 다니시면 좋겠다는 제안을 드립니다. 항공료 비용을 조금만 더 쓰시면 더 많은 일을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굳이 저가항공을 계속 고집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걱정해 주시는 것에 대해 먼저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정토회의 원칙에 ‘식사는 얼마 이상 사 먹지 못한다’, ‘이동 경비는 최저가로 해야 한다’ 하는 규정들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부터 그 규정을 어기고 다니면 모범이 안 됩니다. 그러면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직위가 낮을 때는 규정을 철저히 지키다가 직위가 올라가면 규정을 안 지켜도 된다는 관습이 생기게 돼요.
식사 초대에 응해도 되지만 대부분 제가 거절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식사 초대에 응해보니까 처음에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뒷사람이 앞사람한테 물어보는 일이 생겼습니다. ‘스님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던가?’ 이렇게 물어서 음식을 하나 추가하고, 또 추가하고, 이런 식으로 뒤로 갈수록 점점 가지 수가 많아졌어요. 된장하고 밥만 주면 아무런 부담이 안 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음식의 종류가 늘어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뒤로 갈수록 점점 부담이 가중되는 거예요. 그래서 식사 초대를 없애도록 한 겁니다.
그래서 몇몇 분들은 ‘스님이 너무 깐깐하지 않으냐’ 이런 생각을 하는데, 오래도록 원칙이 유지되는 정토회를 만들려면 저부터 조금의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정토회의 원칙이 오래도록 지켜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금 당장 편안한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물론 앞에서 소개한 노보살님처럼 저도 나이 80이 넘은 귀신이 되면 예외로 인정을 받든지 해야겠지만 아직은 그럴 만한 상태가 아닙니다. 시간이 많이 들긴 하지만, 가는 동안 오는 동안에 앉아서 연구도 하고 풍경도 보고 하면 좋잖아요. (웃음)
지난봄에는 베트남에 갔는데 베트남 스님들이 저를 국빈 대우하려고 공항에 마중을 나왔는데 제가 저가항공을 타고 온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했습니다. 그런데 저가항공이라고 해서 비행기가 더 나쁜 것도 아니에요. 똑같은 회사에서 만든 비행기인데 간판만 다르게 붙였을 뿐이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약간 불편이 있다고 하면 저가항공 중에서도 최저가로 끊으니까 항상 맨 뒷자리에 앉는 겁니다. 맨 뒷자리가 화장실 옆이라서 편리하긴 해요. 그런데 시간이 급할 때는 내릴 때 빨리 내릴 수가 없습니다. 지난번에 토론토에 갈 때는 강연 시간에 늦어서 사람들한테 양해를 구하고 비행기가 서자마자 뒤에서 앞으로 달려 나갔는데, 그것도 쉽지 않아서 겨우 뚫고 나왔어요. 그럴 때 약간 불편함을 느끼지 그 외에는 특별히 불편한 점이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남이 나를 더 아껴 줄까요? 자기가 자기를 더 아낄까요?”
“자기가 자기를 더 아끼죠.”
“그러니 걱정 안 해도 됩니다. 도저히 불편하면 제가 알아서 조정을 할 거예요. 그 정도가 되면 아예 해외를 안 나가든지 하겠죠.” (웃음)
“그럼 건강이 조금 더 안 좋아지시면 직항을 타시는 걸로 하면 좋겠습니다.”
“예, 그러겠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번역 봉사가 힘들어서 그만두었는데 이번 영어 통역 강연을 보면서 다시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미국에는 어렵게 사는 유색 인종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전법을 하고 싶은데 스님의 전법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곧이어 다음 일정이 있어서 여기까지 대화를 나누고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모임을 마쳤습니다.
국제지부 영어권 간담회
곧이어 오후 2시부터는 국제지부 영어권 회원들과 온라인 간담회를 시작했습니다. 영어 정토불교대학 코스 1을 수료하였고, 수행법회와 천일결사에 동참하고 있는 외국인 정토회 회원 17명이 화상회의 방에 참석했습니다.
라파엘 님의 기타 연주를 시작으로 각자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서 누구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은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1분 스피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인도 출신의 프린스(Prince) 님이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발언을 했습니다.
“저는 인도 사람인데 이탈리아에서 자랐고 지금 베네치아에 살고 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3년간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로 제 성격이 많이 변했고,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불교를 공부하면서 제가 태어난 곳이 불교가 시작된 역사적인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불교가 매우 실용적인 종교라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몇 년 동안 분노하고 화를 잘 내는 성격으로 힘들었고, 그것을 해결하고 싶었는데 명상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 어머니가 개인적인 고민으로 힘들어하셨는데 어머니에게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하면서 스님의 법문을 전해 주었습니다. 한국어를 모르지만 여러 봉사자들 덕분에 지난 1년간 불교를 배울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언젠가는 스님을 직접 만나 뵙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밀라노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요. 그때 베네치아에서 밀라노로 오세요.” (웃음)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지난 20일 동안 진행된 영어 통역 강연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모두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과 함께 외국인 수행자들에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동안 늘 온라인으로만 보다가 이번에는 각 도시마다 제가 직접 방문해서 오프라인으로 여러분들을 직접 뵙고 나서 다시 온라인으로 뵈니깐 더욱 반갑네요. 파리, 런던, 시애틀, LA, 보스턴, 미니애폴리스에서 여러분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스위스, 이탈리아, 함부르크에 계시는 몇몇 분을 빼고는 다 뵌 것 같네요. 반갑습니다.”
이어서 지금 배우고 있는 영어 정토불교대학 코스 1과 코스 2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이번 영어 통역 강연을 하고 나서 스님이 느낀 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지금 불교대학 코스 1을 공부하고 있는 분도 계시고, 코스 1을 마치고 코스 2를 배우는 분들도 계십니다. 코스 1은 주로 불교의 근본 가르침에 대한 공부이고, 코스 2는 부처님의 일생에 관한 공부입니다. 불교를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이 코스 1이라면, 코스 2는 부처님이 구체적인 사회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그 삶을 배웁니다. 여러 가지 사회 문제와 사회 정의에 대해서 붓다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실천했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그냥 단순히 한 사람의 삶을 조명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불교는 사회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는지 알아 나가는 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한 뒤에는 여러분들도 인도 성지순례에 참여해서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현장 학습을 하면 더욱더 감동이 클 겁니다. 나중에 그런 시간도 꼭 가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제가 미국에서 영어 통역으로 진행한 강연이 여덟 번 있었습니다. 강연을 해보니 나라, 인종, 문화가 달라도 인간이 고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문제를 갖고 대화하는 것은 모두 똑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동안 서양에서는 개인의 고민은 사생활에 해당하기 때문에 남에게 공유하기 어렵고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담마 토크를 해보면서 사회적인 이슈나 지식적인 것뿐만 아니라 개인의 고민에 대해서도 가볍게 내어놓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참가한 사람들의 소감, 견해, 질문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누구든지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여러 명이 질문을 했는데요. 그중 한 명은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 대해 남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로 비난을 받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죠?
“제가 잘못하지 않은 일로 인해 남들에게 비난을 받았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사람들이 왜 그런 비난을 하는지 이해는 되는데, 어떤 경우에는 공격처럼 느껴져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화 중에 주제를 바꾸거나, 갑자기 대화를 끊어버릴 수도 없습니다. 제가 해명을 하면 변명하는 것처럼 들리거나 화가 났다는 것처럼 보일 것 같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하는 게 좋을까요?”
“큰일이 아니면 그냥 잊어버리세요. 그것을 계속 생각하면 나만 손해입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될 것 같아서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해명을 하세요. 상대가 변명을 한다고 느끼면 또 어떻습니까? 좀 오해를 받으면 됩니다. 어차피 상대방은 오해를 하고 있는데, 거기서 오해가 하나 더해진다고 해서 뭐가 큰 문제일까요? 상대가 나를 알아주길 바라기 때문에 괴로워지는 겁니다. 상대가 나를 알아주길 바라면 내가 상대에게 속박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가 나를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그것은 그의 일입니다. 내가 계속 상대의 권리에 간섭하는 거예요. 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고 그냥 두세요. 그리고 질문자가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냥 해명을 하면 됩니다.”
“그 사람이 저에게 ‘지난번에 이렇게 해준다고 하지 않았냐?’라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이렇게 말하면 돼요.
‘당신은 그렇게 이해했나요? 저는 그렇게 이해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이 문제에 대해 서로 이해한 게 다르네요.’
누구의 잘못이라고 따지지 말고 그냥 객관적으로 서로 이해한 것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면 됩니다. 질문자는 지금 본인은 제대로 이해했고, 상대방은 잘못 이해했다는 것을 붙들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질문자가 괴로운 겁니다. 서로 다를 뿐이에요. 누가 옳고 그르다는 것을 따지지 말고 ‘서로 다르게 이해했구나’ 하고 끝내세요.
믿음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서로 다를 때도 ‘너는 그렇게 믿는구나. 나는 이렇게 믿어’ 이렇게 얘기하고 끝내면 됩니다. ‘너는 그렇게 이해했니? 나는 이렇게 이해했는데, 서로 다르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지금 질문자는 ‘내가 옳다’ 하는 생각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이런 번뇌가 생기는 것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스님이 말씀하신 게 너무 좋고, 그렇게 한번 해보겠습니다.”
대화를 다 마치고 나니 약속한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닫는 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지금 워싱턴 D.C. 에 있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미국 정부, 의회, 싱크탱크에서 일하는 전문가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한반도가 평화로 나아가기보다 긴장이 고조될 확률이 더 높네요. 그러나 저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계속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한반도에 살고 있고 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노력하는 것이 평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보스턴에서 토론토로 갈 때 항공편이 결항되어 갑작스럽게 수백 킬로미터를 운전해 준 리(Lee) 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당신 덕분에 토론토에서 제 강연을 기다리던 400여 명이 행복해졌어요. 감사합니다.”
사홍서원과 함께 오후 4시에 국제지부 영어권 간담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저녁에는 미주 정토회관에 상주하는 활동가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그동안 일정을 짜고, 각 담당자와 연락해 약속을 잡고, 운전을 하고, 식사를 준비해 주고, 미팅한 결과를 정리하고 공유하는 등 실무적으로 수고가 많았던 미주 정토회관 상근 활동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모두 수고 많았어요.”
“스님께서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로써 지난 8월 28일부터 시작한 스님의 해외 순회 대장정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 5시 20분에 미주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공항으로 이동한 후 아침 9시에 워싱턴 공항을 출발하여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할 예정입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비행기 안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네요. 한국에 도착해서 다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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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하루
2023.10.1 워싱턴 D.C. 출발 ▶ 한국으로
“암 진단을 받고 나니 지난 인생이 후회됩니다.”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466?p=3&k=
2023.10.04.
▲ 오디오로 듣고 싶은 분은 영상을 클릭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한 달 동안의 유럽과 미국 순회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4시에 기도와 명상을 한 후 미주 정토회관에 상주하며 이번 해외 순회 일정을 총괄하고 준비한 김순영 기획위원장, 김지현 국제지부장, 민덕홍 미국 JTS 사무국장과 악수를 나누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5시 20분에 미주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스님의 미국 방문 기간 동안 영어 통역 봉사를 전담해 준 제이슨 님의 집에 들러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아침 6시 30분에 워싱턴 D.C. 로날드 레이건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탑승 수속을 했습니다.
9시에 워싱턴 D.C. 를 출발한 비행기는 2시간을 비행하여 11시에 중간 경유지인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서 대기하며 잠시 업무를 보다가 12시에 드디어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애틀랜타 공항을 12시 3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15시간 동안 비행하여 한국 시간으로 내일 오후 5시에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스님은 비행기 안에서 원고 교정을 보고, 휴식을 취했습니다.
이로써 지난 8월 28일부터 시작한 부탄, 유럽, 미국 순회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부탄에서는 국왕과 왕실 관계자들을 만나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의논을 했고, 유럽에서는 6개 도시를 순회하며 즉문즉설 강연을 했고, 미국에서는 15개 도시를 순회하며 한국 교민들과 미국인들에게 즉문즉설 강연을 17회 진행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워싱턴 D.C. 에서는 미국 정부, 의회, 싱크탱크 관계자들을 만나 한반도 평화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길고 긴 대장정이었습니다.
세계 곳곳의 정토행자들, 강연을 홍보하고 준비해 준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스님이 가는 곳마다 운전, 식사, 숙소를 제공해 준 활동가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해 준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이번 세계 전법 여정이 가능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내일은 한국 시간으로 오후 5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후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이동하여 서울 공동체 대중에게 귀국 인사를 하고, 곧바로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주에 뉴욕에서 열린 즉문즉설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암 진단을 받고 나니 지난 인생이 후회됩니다
“저는 불교를 접한 지 30년이 되었습니다. 직장을 퇴직할 때가 가까워 오면서 사회참여와 봉사를 생각하던 중 작년에 암을 진단받고 항암 치료 중입니다. 두렵고 공포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간절하게 108배를 시작하였는데 그때 제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숨 돌릴 틈 없이 열심히 살아오느라고 저 자신을 돌보지 못한 어리석음에 화도 났습니다. 지금은 그 마음이 가라앉아 가족관계도 회복이 되었고, 시간 여유가 생기면 걷기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고 있는데, 이렇게 생활해도 되는 걸까요? 두려운 마음이 들 때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요? 기도문을 하나 주시면 좋겠습니다.”
“질문자가 암에 걸려서 지금 많이 힘들다고 하니까 모두 격려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모두 박수)
격려의 박수를 크게 보낸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질문자의 지금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예를 들어, 술을 많이 먹어서 간경화가 생겼다고 할 때 이것은 개인이 좀 부주의해서 생긴 문제입니다. 그리고 위생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결핵에 걸렸다면 이것 또한 개인의 부주의로 인해 생긴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암에 걸린 것과 질문자가 젊었을 때 ‘인생을 잘못 살았다’ 하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문제입니다.
첫째, 암에 걸린 것과 인생살이의 관계는 질문자가 자의적으로 연결지은 것 같아요. 질문자가 직장생활을 열심히 했다든지, 가정밖에 몰랐다든지, 종교생활을 열심히 했다든지, 이런 것과 암에 걸리는 것은 아무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본인 스스로 ‘내가 잘못 살아서 암에 걸렸다’ 하고 생각하는 것이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암에 걸린 사실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암은 유전자의 변이가 생겨서 주로 발생합니다. 어떤 이유로 유전자 변형이 일어난다든지, 암을 일으키는 발암물질을 섭취했다든지, 자외선과 방사선 같은 것이 유전자 질서를 교란시켰다든지, 이런 원인으로 인해 암에 걸린 것입니다.
또한 암은 아주 급성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금 암이 발견되었다면 이미 5년이나 10년 전에 암이 생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질문자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해서 오늘 당장 암에 걸린 것도 아니고, 일 년 전에 잘못한 일 때문에 오늘 암에 걸린 것도 아닙니다. 이곳 강연장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미 암세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우리 몸 안에서 유전자 변형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열성일 경우에는 대부분 사라지는데, 어떤 조건에서는 그것이 우성이 되면서 증식을 하기 시작하면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고, 넷이 여덟이 되는 과정으로 확대되면서 깨알만큼 커지게 되는데 그럴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 뒤 깨알만 한 크기에서 콩알만 한 크기로 커지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콩알만 한 크기에서 주먹 만한 크기로 되는 데에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암세포 덩어리는 이렇게 분열해서 커지기 때문에 질문자가 삶을 어떻게 살았다는 것과 암에 걸리는 것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연결 지을 상관관계가 없는데 질문자는 자신이 살아온 삶과 연결을 짓고 있는 거예요.
둘째, 암이 작을 때는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암세포가 일정하게 커지게 되면 그것이 몸의 다른 작용을 방해하기 때문에 증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때 의사에게 가서 암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나쁜 일이 아니고 좋은 일입니다. 예를 들어, 법륜 스님이 오늘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암세포가 있습니다’ 하고 알려주면 좋은 일이에요? 나쁜 일이에요?”
“글쎄요.”
“저는 이것을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몸속에 암이 있는 데도 발견이 안 되면 암이 없는 줄 알잖아요. 그럴 때 ‘모르는 것이 약이다’ 하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모르면 괴롭지는 않지만 건강에는 훨씬 더 위험합니다. 암이 있던 것을 모르고 있다가 오늘 갑자기 발견하게 되면 놀랄지는 몰라도 지금 발견된 건 잘된 일이에요. 이미 오래 전부터 있던 것을 의사가 발견해 주었으니까 기쁜 일이죠. 그러니 의사에게 ‘암을 발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 자세를 갖는 것이 스스로에게 이롭습니다. 울고 있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암이 있다는 것을 발견해야 수술을 하든지, 항암 치료를 하든지 해서 인생 계획을 새로 세울 것 아닙니까? 암을 조기에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응급실로 실려 가서 암을 발견하게 되면 그때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에 손을 쓸 여지도 없이 곧 죽게 됩니다. 그러니 암이 발견되었다고 하면 기뻐할 일이지 결코 슬퍼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질문자에게 지금 일어난 일은 아무 문제도 없는 일입니다. 대신 암이 발견되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암이 너무 늦게 발견되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항암치료를 받으며 몸부림이라도 쳐 보고 죽음을 맞을 것인지, 아니면 남은 인생을 넉 달이든, 다섯 달이든, 일 년이든, 자연 속에서 사는 것이 항암치료받다가 죽는 것보다는 낫겠는지, 둘 중에 선택을 하면 됩니다.
그러나 만약 암의 진행 상황이 2기이거나 3기밖에 안 되어서 수술만 해도 10년은 살 수 있다고 하면 수술을 하면 되겠죠. 그게 아니라 암이 1기밖에 진행이 안 되었다면 간단하게 방사선 치료만 하면 아무런 이상 없이 남은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아주 특이한 급성이 아니면 요즘 대부분의 암은 치료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암에 걸렸다 하면 집 한 채 값을 날렸지만, 요즘은 암에 걸려서 수술을 하더라도 많은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저와 공동체에서 함께 사는 사람은 어느 날 밭일을 하다가 호미로 손가락 하나를 내리쳐서 힘줄이 끊어졌는데 병원비가 260만 원이 나왔습니다. 그것보다 암에 걸렸을 때 치료비가 더 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의 병은 큰 병이 아니라는 거예요. 괜히 마음 아파하면서 울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곧 있으면 죽을 것 같다고 느끼기 때문에 눈물이 나는 거예요. 그것도 다 암에 대한 선입견에 불과합니다. 심각하게 받아들일 일은 아닙니다.
암 환자가 점점 많아지는 이유는, 첫째,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기 때문이고, 둘째, 우리가 먹는 인스턴트 음식에 발암물질이 많기 때문이고, 셋째, 공기와 물이 오염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사망 원인에 암의 비율이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오래 살면 혈액순환에 문제가 많이 생깁니다. 먹는 음식에도 콜레스테롤이 많기 때문에 혈관에 문제가 생겨서 사망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이 모든 것이 사람이 오래 살기 때문에 생긴 문제입니다. 오래 사는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오래 살기 때문에 병의 주종이 달라질 수가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앞으로 1년밖에 살지 못한다면 그 1년을 울다가 죽는 것이 나을까요? 건강한 사람들은 남은 시간이 많으니까 괴로워하는데 시간을 좀 보내도 상관없지만, 나는 1년 밖에 못 사니까 울 시간도 슬퍼할 시간도 남과 싸울 시간도 없잖아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훨씬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조건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남은 시간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요.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굳이 기도문을 받을 필요가 있을까요?”
“그래도 스님이 기도문 하나 주시면 열심히 기도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살아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걸 기도문으로 해서 기도해 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살아 있어서 감사합니다!”
“제가 에피소드를 하나 얘기해 드릴게요. 제가 아는 분 중에 젊어서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고, 나이 마흔이 넘어서 겨우 살만해졌는데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암이라고 했어요. 암이 요즘은 큰 병이 아니지만 옛날에는 큰 병이었어요. 암에 걸리면 대부분이 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게 된 거죠. 몇 개월 못 산다고 해서 병원에 누워 있었는데, 주위 친구들이 가슴 아파하면서 병문안을 왔습니다. 그런데 병문안을 와서 위로해 주고 갔던 사람 중에 삼 일 후 교통사고가 나서 죽은 사람이 생겼어요. 삼일밖에 못 살 사람이 1년 살 사람을 위로해 주고 간 겁니다. 이 모순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가 이 사람을 1년밖에 못 산다고 불쌍히 여겨 위로를 했는데, 나는 삼일밖에 못 살았던 겁니다. 어떻게 삼일밖에 못 사는 사람이 1년 사는 사람을 위로할 수가 있나요? 그것처럼 질문자가 1년밖에 못 산다고 하더라도 여기 강연장 안에는 질문자보다 먼저 죽을 사람이 여러 명 있습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요. 그러니 1년밖에 못 살기 때문에 인생이 슬프거나 괴로운 것이 아닙니다. 1년밖에 못 산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 1년을 괴롭게 살다가 죽는 겁니다.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요?
1년밖에 못 살기 때문에 오히려 더 기쁘고 마음 편하게 살아야 합니다. 어지간한 일에는 싸울 일이 없어요. 다른 사람들은 오래 사니까 싸울 수도 있지만, 나는 얼마 못 사니까 싸울 시간이 없어요. 오히려 남들보다 인생을 더욱더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오래 산다고 꼭 좋은 것이 아닙니다. 삼일밖에 못 살 사람이 1년 사는 사람을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이 삼일밖에 못 산다는 생각을 안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질문자도 병원에 누워있는 동안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거꾸로 위로해주어야 합니다.
‘아이고, 당신들은 남은 생을 힘들어서 어떻게 살래요? 나는 조금만 살면 되니까 별문제가 없거든요.’
이렇게 위로해 주어야 해요. 경전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마 거사가 병든 몸으로 누워 있으니까 많은 수행자들이 위로를 하러 찾아 왔어요. ‘왜 거사는 몸이 아픕니까?’ 하고 사람들이 물으니까 유마 거사가 ‘중생이 아프기 때문에 내가 아프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언제 병이 낫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중생의 병이 나으면 내 병도 낫는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픈 몸을 갖고 있었지만 병문안을 온 사람들에게 오히려 병을 소재로 법문을 해준 겁니다.
이렇게 자신의 처지를 소재로 진리에 대해 논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서 곧 죽을 상황이 되었는데,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을 향해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지은 죄를 모르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주여,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 두 인간은 지옥에 쳐 넣어 주세요’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처지를 이해함으로 해서 하느님의 아들을 넘어서서 그가 곧 하느님이 되었습니다. 이런 경지까지 이르게 된 것은 자기를 죽인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죄를 용서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한 겁니다.
긴 시간을 사는 것보다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 순간순간을 살아갈 것이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그러니 슬픈 티 그만 내시고, 동정 받으려고도 하지 마시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울다가 죽으면 누구만 손해일까요? 자기만 손해입니다.”
“알겠습니다.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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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하루
2023.10.2 한국 도착, 귀국 인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어요”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4467?p=3&k=
202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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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한 달 동안의 유럽과 미국 순회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어제 애틀랜타 공항을 낮 12시 3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15시간 동안 비행하여 한국 시각으로 오늘 오후 5시 50분에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 마중을 나온 수행팀과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녁 8시에 스님이 정토사회문화회관에 도착하자 서울 공동체 대중 모두가 먼 길을 다녀온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했습니다.
이어서 서울 공동체를 대표해서 상향 법사님이 스님에게 꽃다발을 선물했습니다.
“먼 길을 다녀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꽃다발을 불단에 올려놓은 후 스님이 대중에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부탄, 유럽, 미국 순회 일정을 잘 마치고 왔습니다. 현지에 계시는 분들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4년 만에 강연을 준비하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스님의 하루 제작팀에서 생방송과 촬영, 원고 작성까지 하느라 고생이 많았고요. 스님의 하루에 자세히 내용이 나갔으니까 따로 설명해 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 궁금한 점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대중이 전체가 모인 김에 짧게나마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누구든지 손을 들고 궁금한 점을 질문했습니다. 긴 해외 일정을 마치고 온 터라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즉문즉설 강연장을 찾는 젊은 세대가 많아졌나요?
외국인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을 직접 만나보니 어떠셨나요?
한반도 평화를 위해 많은 분을 만나셨는데 스님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나요? 앞으로 한반도의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고 계시나요?
해외에서 초창기에 정토회를 개척한 분들의 노고를 격려하시는 모습이 참 따뜻했습니다. 내년에 그분들을 한국에 초청할 계획이신가요?
자메이카를 비롯하여 중남미 지역에 JTS 사업을 개척할 계획이 있으신가요?
이후 해외 순회강연 계획이 궁금합니다. 앞으로 세계 전법을 할 때 무엇을 핵심 메시지로 하실 건가요?
부탄 국왕을 만나고 오셨는데 지속 가능한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과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워싱턴 D.C. 에서 스님의 미국 정부, 의회, 싱크탱크 전문가들을 만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며 한국에 사는 우리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하면 좋을지 질문했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한국 국민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요?
“이번에 스님이 워싱턴에 가셔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많은 이야기를 하신 것을 스님의 하루를 통해서 봤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정말 이렇게 그대로 두면 안 되겠다.’, ‘우리가 무엇이라도 행동을 해야 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사는 우리는 통일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요?”
“아무리 농사를 짓고 싶어도 땅이 녹고 봄이 와야 밭을 갈고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양식이 없어 다급하다고 해도 겨울에 농사를 지을 수는 없어요. 그것처럼 현재 상황은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 외교적 지형에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우리가 길거리에 나선다고 해결될 일은 아닙니다.
미국은 처음 북한이 핵 개발을 한다고 했을 때는 적극적으로 제재를 해왔습니다. 그러더니 지금은 태도가 달라져서 아주 소극적인 반응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미국 정부, 의회 관계자들을 만나서 반문했습니다.
‘당신들은 북한이 핵을 개발하기 전에는 큰 난리가 날 듯이 제재를 가하다가 그들이 핵무기 양산 체제에 들어간다는 이 시점에는 이렇게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의 북한 핵 기술이 별 게 아니라면 옛날에는 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말이 되잖아요. 그럼 옛날에 난리를 피운 건 생쇼였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옛날에 북한 핵이 위험하다고 했던 말이 맞다면 지금은 그때보다 열 배 더 위험하기 때문에 더욱더 긴급하게 대응해야 하는 거잖아요.
제가 이렇게 문제를 제기했지만 지금 미국 국무부는 한미일 협력이 이루어진 것에 대해 무척 고무되어 있었어요. 미국 정부와 의회 관계자들조차 ‘대화의 문을 열어 놓았다’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만약 바이든 정부에서도 북한 핵 문제가 선거 전략으로 사용할 만큼 매력적이라고 판단되면 선거 전에 협상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선거 전략으로 쓸모가 없다고 판단하면 그다음 정부가 들어와서 북한 문제를 다루게 될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계속 미국 정부를 설득해 나갈 생각입니다.
미국이 계속 소극적이라면 일본을 설득해 보는 길이 있습니다. 북·러 간의 군사협력이 일본에는 굉장히 위협이 되고 있고, 현재 일본과 북한이 물밑 접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바이든 정부는 동맹을 굉장히 중요시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강하게 주장하면 그것을 거스르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과거 트럼프 정부는 동맹을 그렇게 중요시하지 않으니까 주한미군 철수와 주둔비 문제를 과감하게 이야기했던 반면에 북한 문제는 한국 정부를 신경 쓰지 않고 풀어나간 측면이 있어요. 그러나 바이든 정부는 동맹을 중요시하고 한국 정부의 입장을 고려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먼저 대북 정책을 바꾸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워싱턴 D.C. 에서 만난 미국 전문가는 ‘이제 끝났다.’ 하면서 단정적으로 얘기를 했습니다. 1년 뒤에 북한이 지금보다 비약적으로 무기 체계를 갖추고 나서야 다시 협상이 시작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상황을 막아 보려고 저도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지만, 미국의 필요에 부합하지 않으면 협상이 시작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는 전선이 고착화되고 있어서 지금 선에서 휴전하고 전쟁이 마무리되어야 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드는데, 현재 상황은 전쟁이 더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만약 종전되지 않으면 북한과 러시아 간 군사협력은 더욱 긴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빨리 끝나면 북한과 러시아 간 군사협력은 자연스럽게 늦추어질 겁니다. 또 북·중·러 삼각 동맹에서 북한만 떼어낼 수 있어도 미국에 유리합니다.
북한과 러시아 간 군사협력을 통해서 북한의 무기가 러시아에 팔리는 건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러시아의 군수 공장에 북한 노동자들이 가서 생산량을 증대시키거나, 러시아의 군사 부품을 북한으로 가져와서 조립하거나, 북한과 러시아 간 군수 협력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위험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의견을 종합해 봤을 때 우크라이나 전쟁이 빨리 끝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고, 긴장 상태는 계속 유지될 것 같습니다. 연말이 되면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은 양측이 계속 밀어붙이는 형국입니다.
한국 내 변수는 내년 4월에 있을 국회의원 선거이고, 미국 내 변수는 내년 11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입니다. 향후 1년이 넘는 시간은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 전개될 것 같아요.
2017년에 정토회가 대대적으로 전쟁 반대 운동을 했을 때도 결과적으로는 전쟁이 안 일어났기 때문에 ‘결국 전쟁은 없었는데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이 아니냐?’ 하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그때처럼 당장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각성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나눈 후 부족한 내용은 다음 주에 공동체 지부 공청회 시간에 더 이야기하기로 하고 밤 9시가 넘어서 모임을 마쳤습니다.
원래는 밤에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할 예정이었으나 밤이 깊어서 내일 새벽에 이동하기로 하고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 4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한 후 그동안 밀린 농사일을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주에 미국 버지니아에서 열린 즉문즉설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눌 사람이 없어요.
“고향을 떠나 이곳 버지니아에 와서 혼자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행동과 생각에 피드백을 받을 기회가 적어지고, 제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사고방식이나 생각이 점점 굳어지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점점 고집불통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듭니다. 이런 모습을 바꾸고 싶은데요, 혼자 살면서도 열린 생각을 유지하는 좋은 습관이 있을까요?”
“질문자는 그린란드에 살아요, 알래스카에 살아요?”
“예? 여기 버지니아에 살고 있습니다.”
“버지니아에는 사람이 살지 않습니까?”
“사람은 많은데 직장이나 교회에 가도 저한테 다가와서 허심탄회하게 ‘너는 이런 사람인 것 같다’, ‘너는 이런 점을 고치면 좋겠다.’ 하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지더라고요.”
“질문자는 인물이 아주 잘난 영화배우입니까?”
“아닙니다.”
“BTS처럼 인기가 많은 가수입니까?”
“아닙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무엇 때문에 질문자를 찾아와서 잘 보이려고 할까요? 질문자가 유명 인사가 아닌 이상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서 말을 걸 일이 없잖아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과 말을 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찾아가서 말을 걸어야 합니다.”
“그렇죠! 질문자가 먼저 다가가서 ‘어떻게 지내세요?’ 이렇게 말을 걸어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먼저 찾아오기만을 바라면 어떡합니까? 회사에서도 먼저 동료들에게 말을 걸고, 커피도 타 주고, 사탕이 있으면 하나 주고, 청소할 일이 있으면 해 줘야죠. 교회에 가서도 먼저 말도 걸고, 청소도 해주고, 심부름도 해야죠. 그러면 사람들이 ‘저 청년 참 착실하다.’ 하면서 ‘밥이라도 먹고 가세요’, ‘차라도 한잔하세요’ 하고 말을 걸게 됩니다. 이렇게 인간관계가 시작되는 겁니다.
그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당신은 다 좋은데 말이 너무 없다.’, ‘당신은 다 좋은데 고집이 세다.’ 이런 얘기를 해줄 거예요. 좀 친해져야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모르는 사람이 내 관상만 보고 얘기해 주지는 않습니다. 상대가 다가와 주기를 원한다면 질문자부터 뭐든지 적극적으로 하면 됩니다. 정토회에 왔을 때도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지만 말고, 의자를 세팅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어디에서 오셨어요?’, ‘누구세요?’, ‘정토회 회원이세요?’하고 물어보겠죠. ‘오늘 강의를 듣고 기분이 좋아서 이렇게 봉사합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사람들이 ‘청년이 참 호의적이네’ 하면서 ‘내일 이런 일이 있으니까 여기로 오세요.’라고 할 겁니다. 이렇게 하면서 점차 인간관계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질문자가 먼저 마음을 오픈해야죠.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부부가 한 침대에 있어도 구만리장천 떨어져 있다’ 이런 말을 하잖아요.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절벽이 무엇인 줄 알아요? 남편이나 아내가 뒤돌아선 등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절망적인 절벽은 없습니다.
그러나 혼자 산속에 살아도 오픈 마인드로 있으면 새소리, 바람 소리가 들리고 자연조차 모두 친구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다 마음의 문을 닫고 있기 때문에 ‘군중 속의 고독’이라 부릅니다. 누가 나를 왕따 시켰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고, 자신이 마음의 문을 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들 공주병과 왕자병에 걸려서 사람들이 먼저 나한테 찾아와서 사랑한다고 말해주든지, 말을 붙여준다든지, 어떻게 해주지 않겠나 하면서 가만히 앉아있는 거예요.
저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미국이 조금 더 영향력을 행사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미국까지 찾아와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눕니다. 지위가 높든 낮든, 한반도의 평화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찾아가서 얘기도 들어보고, 의견도 교환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한반도의 평화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입니다. 공익을 위한 일도 필요하면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개인적인 일이야 당장 나한테 이익이 되는 것인데 왜 그렇게 소극적으로 대응을 하나요? 제가 말씀드린 대로 하면 저절로 해결된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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