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과학] 청룡이 실제 나타난다면
비늘 섬세해야 푸른빛… 몸길이 100배 '뛰는' 뱀도 있어
입력 : 2024.02.06 03:30 조선일보
청룡이 실제 나타난다면
▲ /그래픽=진봉기
2024년은 푸른 용의 해입니다. 우리 전통에서 한 해를 상징하는 열두 동물 중 용은 유일하게 상상 속 존재예요. 그렇지만 눈앞에 푸른 용이 나타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공룡 화석에서 용을 상상한 옛사람들
옛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느꼈을지 따라가 보면, 상상 속 용의 모습을 보다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죠. 역사와 신화에 등장하는 상상 속 동물은 결국 그들의 눈에 비친 자연 현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을 테니까요. 용은 실제 동물 중에서 파충류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동양 용은 뱀처럼 기다란 몸을 지녔습니다. 서양 용은 네 발 달린 도마뱀처럼 생겼죠. 용의 모델이 파충류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조선 시대 역사 기록을 담고 있는 조선왕조실록에는 무엇이 용을 상상하게 했는지 더 직접적인 근거가 나옵니다. 세종 32년에는 명나라 사신 예겸에게 용골(龍骨·용의 뼈)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용골은 중국 북쪽에서 가끔 나오는 귀한 약재로 알려져 있었죠. 드물게 발견되는 거대한 파충류의 뼈라면, 왠지 익숙하지 않나요? 당시에는 공룡 화석을 용 뼈로 보고 약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또 공룡 뼈가 뱀이나 도마뱀의 뼈를 닮았으니 용도 그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상상 속 용은 털 없이 도마뱀처럼 매끈하거나 뱀처럼 비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동물 피부엔 푸른 색소가 없어
올해를 상징하는 푸른 용은 용 중에서도 특별한 취급을 받곤 합니다. 푸른색이 상징하는 동쪽을 수호하는 수호신이라고 생각하죠. 용의 푸른 비늘은 실제로 존재할 수 있을까요?
동물이 다양한 색을 띠는 것은 피부에 있는 색소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척추동물은 대부분 '멜라닌'이라는 갈색 계열 색소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색소들이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비율에 있어, 동물 몸에 색과 무늬가 나타나는 거죠. 호랑이의 노란 바탕색에는 적색과 황색을 내는 '페오멜라닌'이, 어두운 줄무늬에는 흑색과 갈색을 내는 '유멜라닌'이 많습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파란색이나 초록색을 띄는 동물 피부 색소를 아직 못 찾았습니다. 식물은 광합성을 하는 엽록소로 초록색을 만드는데도, 정작 초록색 색소는 동물에게서 찾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파란색이나 초록색 털이나 깃털을 가진 동물은 어떻게 색을 만드는 걸까요? 우리 눈에 보이는 색은 물체가 반사하는 색입니다. 빨간 색소는 다른 빛은 흡수하고 빨간빛만 반사하는 물질인 거죠. 그러나 색소가 아니더라도 원하는 색깔의 빛만 남길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해당 색을 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아름다운 파란 날개를 지닌 '몰포(Morpho) 나비'를 보면 푸른 빛을 만드는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나비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푸른 빛이 특징이에요. 몰포나비 날개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아주 작은 비늘이 겹겹이 겹쳐서 마치 기와를 얹은 것 같은 독특한 구조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조는 파란색 빛은 강화해 반사하고, 다른 빛은 상쇄해 소멸시킵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강화되는 정도가 달라지기에 파란색이 변하는 것처럼 보이죠. 이런 색을 '구조색'이라고 부릅니다.
이 외에도 파란 깃털을 가진 새나 파란 비늘의 도마뱀도 볼 수 있습니다. 색은 비슷해도 종마다 갖고 있는 구조는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푸른색을 내는 다양한 구조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2022년 연세대 연구진은 까마귓과에 속하는 새인 '어치'의 푸른 깃털을 아주 작은 크기인 나노 단위까지 분석한 결과, 깃털의 구조를 이루는 물질이 두꺼워질수록 푸른색을 잃고 흰색이 된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섬세한 비늘 구조를 지닌 용은 푸른빛을 띨 수도 있겠네요.
뱀이 뛸 때는 '좌우로 꿈틀꿈틀'
용이 어떻게 움직일지도 상상해 봅시다. 공룡을 비롯해 악어나 코모도왕도마뱀 덕에 거대한 파충류가 어떻게 움직일지는 예상할 수 있을 겁니다. 서양 용은 커다란 날개가 있습니다. 익룡이나 박쥐, 날도마뱀처럼 날개를 퍼덕이거나 글라이더처럼 날개를 쭉 펴고 바람을 탈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다란 몸체뿐인 동양 용은 대체 어떻게 날 수 있을까요? 놀랍게도 하늘을 나는 뱀을 통해 용이 날아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 사는 파라다이스나무뱀(Chrysopelea paradisi)이 주인공이죠. 날개나 팔다리가 없는 척추동물 중 유일하게 하늘을 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평범한 뱀처럼 긴 몸뚱이만 지니고 있는데도 몸 길이의 100배 거리인 수십m를 '멀리뛰기'합니다. 이 정도면 분명 '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용이 공중에서 몸을 좌우로 흔들 수 있다면 비행도 가능합니다. 파라다이스나무뱀이 이렇게 하늘을 날거든요. 이 사실은 제이크 소차 미국 버지니아공대 교수가 2020년 알아냈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이 뱀이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해 3차원 모델을 만들어 분석했는데요, 꼬리와 머리를 움츠렸다가 펴는 반동을 이용해 몸을 공중에 띄운 뒤 좌우로 물결을 치듯 빠르게 흔들어 비행기 날개처럼 만들어 멀리 날아간다고 합니다.
또 비행을 마치고 안전하게 착지하려면 파충류의 상징과 같은 날렵한 꼬리가 필요합니다. 게코도마뱀은 포식자를 만나 급하게 도망가야 할 때는 수m씩 날기도 하는데요, 착륙할 때 속도를 줄이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벽에 착 붙습니다. 앞발부터 꼬리 끝까지 순차적으로 천천히 몸을 붙이면서 충격을 분산시키기 때문에 다치지 않고 착지할 수 있죠. 반면 꼬리가 없는 도마뱀은 제대로 착륙하지 못하고 추락했다고 해요. 아르디안 유수피 독일 막스 플랑크 지능 시스템 연구소 연구원이 2021년 이런 사실을 발견했다고 하네요.
오가희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장근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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