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제 1165편
*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및
선시(禪詩)
오도송(悟道頌)이란 무엇인가 ?
불교(佛敎)를
공부(功夫)하는
수행자(修行者)가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가운데(中) 하나를
오도송(悟道頌)
이라고 한다.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게송(偈頌)의 하나로써
구체적으로
비교해서 설명하면
고승(高僧)이
자신만의 깨달음(覺)을
노래(歌, 句)한 것이
바로
오도송(悟道頌)이며
고승(高僧)이
자신의 임종(臨終) 전에
남겨놓고 가는 노래(歌, 句)를
열반송(涅槃訟이라고
한다.
게송(偈頌)이란
불교의 가르침(敎義)을
함축(含縮 집약)하여
표현(表現)하는
운문체(韻文體)의
짧은 시구(詩句 문자)를
말하는데
곧 선시(禪詩) 내지
또는 선어(禪語 문장)를
이르는 말이다.
본래(本來)
게(偈)와 송(頌)은
같은 의미로
《게(偈)》
라는 글자(字)는
산스크리트어(梵語)
《가타(gatha)》의
음을 빌려와(音借) 따서
만든 말이고
《송(頌)》
이라는 글자(字)는
《가타(gatha)》를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깨달음(正等覺)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게송(偈頌)
즉,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오랫동안
수련과정(修練過程)을
통해 함축된 의미로
세속(사바세계)의
사람(大衆)들에게
무엇인가를 전(傳)하고
말(說法 이야기)하고저
하는 것이며
후세(후학)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적(歷史的)
문헌 기록상(文獻記錄上)
오도송(悟道頌)을
가장 먼저 남긴 이(僧侶)는
조동종을 일으킨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禪師)
이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구분이 부질없는 일임에야
사람들은
태어남을 기뻐하고,
헤어짐은 슬퍼한다.
오랜 세월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선사(禪師) 스님들의
깨달음의 길(佛道行)이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지난(至難)하듯이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남겨진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깨달음의 노래는
다시 한번
자신(수행자)의 삶(人生)을
돌이켜보게 하고
느슨해졌던 마음을
추스리게 한다.
여기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을
올려놓으니
그 깊은 뜻이야
어찌 우리가 모두 다 헤아려
알 수 있겠는가마는
행간(行間)의
곳곳(處處)에 숨겨져 있는
깊고 깊은 심오(深奧)한 뜻을
함께 발견(發見)하고
공부(功夫)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반야 보리 광명 智慧)를
찾아보시기 바램해 본다.
본론(本論)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 祖師)
선시(禪詩)와
임종게(臨終偈) 및
오도송(悟道頌) 설해(說解)
"
푸른 허공에 올랐다가
(夢跨飛鸞上碧虛)
진국(晋國 진나라)
태부인(太婦人) 여선사(女禪師)
몽과비란상벽허
(夢跨飛鸞上碧虛)
시지신세일거려
(始知身世一遽廬)
귀래착인한탄도
(歸來錯認邯鄲道)
산조일성춘우여
(山鳥一聲春雨餘)
꿈에 난새(봉황새)를 타고
푸른 허공(壁虛)에 올랐다가
몸도 세상도 급하게 짓은
한 움막(一廬)임을 알았네.
한바탕 어긋난 꿈길에서
깨어나 인정하고 돌아오니
산새의 맑은 울음 소리
한가한 봄비 끝에 들려 온다.
"
중국 송나라 때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禪師)가
있었다.
중국
선종(禪宗)의
간화선(看話禪) 창시자요
거장(巨將)으로
당시의
사대부(四大夫)들과
교유(敎惟)하면서
서찰(書札)로
참선공부(參禪功夫)를 이끌고
지도(指導)하였다.
그(대혜종고)가 쓴(著述)
『서장(書狀)』이라는 책에는
42명의 사대부들과
주고받은 편지(書簡文)가
수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
오직 유일(唯一無二)한
한 여성(女性, 女子禪客)이
등장하는데
위(上記)에
시(詩, 게송, 禪詩)의
작자(作者, 지은 이)
태사장공(太師張公)의
부인(婦人, 아내)이었던
진국태(秦國太)라고 하는
여선사(女禪師)이다.
30세(30歲)에
미망인(未亡人)이 되어
40여년(40餘年)을
불교수행(佛敎修行)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아들이
크게 출세(出世)하여
차남(次男 둘째)은
승상(丞相, 정승)이 되고
큰아들(長子 첫째)도
요즈음 법무부 고위 관직인
제형(提刑, 판사, 검사)이
되었다.
본래
속가 성씨(性氏)는
허(許)씨였는데
고귀高貴)한
신분(身分)이라서
나라(國家)에서 내려 준(命)
진국태부인(秦國太, 婦人)
이라는 호칭(號稱)을 썼다.
어느 날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大禪師)
스님(僧, 大沙門)이
이러한
귀부인(진국태부인)의
한통에 편지(編紙)를 받고
깜짝 놀랐다.
그 것은
부인(秦國太, 婦人)이
정말
위 시(詩, 게송, 禪詩)와 같은
경지(修行境地)에 올라
참으로
명상(瞑想) 참선(參禪)
수행정진(修行精進)
부처님 법(佛法)의
공부(功夫)가 된 사람인가 ?
의심(疑究心)을
하였다.
대혜종고(大慧宗杲)의
제자인 도겸(道謙禪師)이라는
스님(僧, 沙門)으로 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서야
비로소 의심(疑究心)이 풀려서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大禪師) 스님 자신이
기쁨(歡喜心)을 감추거나
이기지 못한다.
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유보학(劉寶學)
이참정(李參政)과 함께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大禪師)
스님(僧, 大沙門)으로 부터
수행인가(修行認可)를 받는
42명(42名 弟子) 가운데(中)의
3인(3人)이 된다.
시(詩, 게송, 禪詩)의
내용(內用) 가운데(中)
"
꿈 속(夢中)에
난새(鸞, 즉, 봉황새)라는
새(鳥, 비익조)를 타고
푸른 허공(壁虛)에 올랐다.
"
라는 말은
깊고 묘(奧妙)한
상징성(象徵性)이 담겨있는
말(禪語)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세상은 더욱 작게 보이고
스스로
나(自己自身) 라는
존재(存在, 물질 공색)가
커진 것 같으면서
왠지
집착(執着)하던 일에서
쉽게 초월(超越)하여 뛰어넘고
고정(固定)되어 머물지 않으며
떠나짐(무상함)을
느낀다.
바로
그러한 것이야말로
나의 이 몸과 세상도 또한
급하게 짓은 한 움막(一廬)과도
같은 것이다.
견고하지 못하고
잠시 임시(臨時)로 머무는(住)
거적대기(똥막대기, 마삼척)를
빌려서 얽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일찍이
서산대사(西山大師)
청허 휴정(淸虛 休靜,
1520~1604) 스님께서도
"
만국도성(萬國都城,
모든 나라의 도시와 성곽)이
개미집(蟻宅) 같다.
"
말씀(法說)하였다.
그렇게
조금 떨어져서보거나
멀리서 살피고 헤아려 보면
세상(사바세상)은
결코
안주(安住)하여 머물거나
집착(集着)할 데가
없어진다.
프랑스의
사상가요 철학자였던
에르네스트 르낭
(Ernest Renan)은
“
별의 세계에서
지상의 사물을 관찰하라.
”
하였다.
꿈을 깨고 나면
몽경(夢景)은 없는 것이고
또한 없었던 것이다.
한단몽이라는 설화는
여생이라는 사람이
여옹이라는 도사를 만나
자기의 빈곤을 탄식하니
여옹이 주머니에서
베개(枕)를 꺼내주며
이 것을 베고 자면
부귀영화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했다.
여생이 베개를 베고 자다
꿈 속에 30여년의 부귀영화를
누렸는데
깨어보니
부엌에서 짓던 밥이
아직 익지도 않았더라는
설화로
한바탕 꿈과 같은
허망한 일을 비유하는
말이다.
마지막 구절의
“
깨고 보니 봄비 끝에
산새의 울음소리 들린다.
”
는 말이
너무나 생생한 여운을
남긴다.
※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 선사(大禪師)는
12세기 중국의 스님으로
화두(話頭)를
관(觀)하는 명상법인
간화선(看話禪)을
만들었다.
※
ㅡㅡㅡㅡㅡ
※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언제든지
글 내용 가운데
잘못 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指摘)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ㅡㅡㅡㅡㅡㅡㅡㅡ
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