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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행하시는 여호와(신31장1-8)
역사학자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역사로 보았습니다. 사실 인류의 역사는 투쟁과 도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역사입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만이 아니라 동물의 역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동물들도 끊임없는 도전과 응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모든 투쟁과 응전은 헤게모니에 대한 것입니다. 누가 우두머리가 되어 지도력을 행사하는가 하는데 있습니다. 저마다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려고 치열한 투쟁과 도전을 거듭합니다.
그렇게 해서 우두머리가 되고 지도자가 됩니다. 쉽게 우두머리가 되는 법은 없습니다. 쉽게 되지 않는 많큼 무리의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일또한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탁월한 지도력으로 무리를 이끌어야하고, 모든 일들을 지혜롭게 처리해 나가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무리들이 잘 따라주고 도와주어야만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설령 지도력이 조금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밑의 사람들이 잘 보좌하고 도와주면 크게 무리 없이 지도자로서의 길을 걸어갈 수도 있습니다
. 우리 교회에서도 기관들이 여럿이 있고 기관장들이 있습니다. 투표로 뽑아서 세운 회장은 회원들이 잘 따라 주어야 합니다. 회장이 아무리 똑똑해도 회원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또한 회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회원들은 모든 일에 협력을 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삶입니다. 롬8:23절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쓰지 않았습니까?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힘드는 일입니다. 모든 것에서 모범이 되어야합니다.
조금만 잘못하면 잘못했다고 덤벼들고 비난합니다. 그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에서 광야로 나올 때 그들 앞에 어려움이 닥쳐오면 사람들은 지도자 모세를 향해 원망하고 불평하고 비난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도자는 앞장서서 나아가야 합니다. 앞장서서 나간다는 것은 무리 전체를 책임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지도자의 책임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제 모세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그들의 앞에 서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약속하신 꿈의 땅 가나안을 향해 이끌어 갔으나 이제 그도 나이가 늙고 그가 꿈꿔온 가나안 땅 정복의 가장 큰 사명을 여호수아에게 맡기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에게 그 막중한 사명을 맡기는 유언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고 가나안 거민을 두려워말도록 권면을 합니다. 그들이 가나안 원주민을 두려워아니하고 마음을 강하게 해야할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 앞서 행하시며 그들과 함께하시면서 떠나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할 것을 약속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을 보면서 험하고 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담대하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보게 됩니다.
앞서 행하시는 여호와
본문 8절을 보면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진정한 지도자는 모세나 여호수아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가나안까지 그들의 여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진행할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따라 갔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널 때는 법궤를 앞세우고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이방민족과 전쟁을 할 때도 법궤를 앞세우고 나갔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들 앞서 나아가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뒷전에서 응원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친히 그 백성들의 앞에서 그들을 인도하시고 이끌어 가셨던 분이십니다. 모세가 자기 마음대로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로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는 대로 따라간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인도자가 누구인가를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뜻이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라는 뜻인 것을 보더라도 그 민족의 지도자가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사사요 선지자로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은 왕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들이 인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사들이 하나님께서 맡겨준 직분을 잘 감당하지 못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왕을 요구해서 새워진 왕들이 그들의 기대에 크게 부응했는가 하면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윗과 솔로몬 히스기야 요시아 등 선한 왕들이 있었지만 그러나 그런 왕들은 극히 소수였고 대부분의 왕들은 우상숭배를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죄를 저지르고 간혹 처음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우상과 산당을 파괴하는 종교개혁을 하는 왕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교만하고 악을 행하는 왕들이 됨으로 결국에는 나라가 약해지고 급기야는 나라가 망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우리들의 앞에 서서 우리들을 이끌어 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앞에 서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끌어 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들의 삶이 진정으로 복된 삶이 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인도에 우리들의 삶을 맡겨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의 길을 선하게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들이 먹을 것 마실 것이 없을 때는 반석을 쪼개어서 물을 마시게도 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셔서 먹이게 하셨던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을 망하는 곳으로,
죄악의 곳으로, 점점 나빠지는 곳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형통한 곳으로, 복 받는 곳으로, 점점 좋아지는 곳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그가 아버지의 집을 떠나 타향으로 나아갔을 때 갈 곳을 알지 못하고 갔다고 합니다. 그러한 아브라함에게는 어려움도 많이 있었습니다. 고난도 있었습니다. 괴로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 더 성숙시키고 더 많은 복을 받게 만드셨습니다. 야곱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갈 때 비록 그의 형 에서에게 쫓기는 몸이 되었지만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거부가 되어 형을 만나러 올 때 그의 형 에서가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소식을 듣고 겁이 났습니다
얍복강 나루터에서 천사와 씨름하면서 하나님의 복을 구할 때 담대해졌습니다. 겁이 사라졌습니다.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한 인생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큰 복을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 12지파가 탄생되게 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사는 성도들이 되시를 축원합니다.
우리교회 BBC 성경 공부반이 있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분들에게 숙제를 내어 주었는데 숙제가 기도문을 적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기도훈련을 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익명으로 기도문을 적어 내게 했는데 기도문을 보면서 제가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기도문에 들어있는 간절함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들과 신앙으로 삶속에 일어나는 사건과 어려움을 이기고자하는 마음들이 가슴에 깊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 모든 기도문들이 모두 은혜가 되지만 그 중에 한 기도문은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 자신은 좀더 잘나지 못하고 남보다 더 가지지 못하고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하나 준게 없다고 하나님께 불평과 불만과 원망의 날을 보내었는데 지금 단란한 가정과 가족들의 건강 먹고 살만큼의 경제능력, 그리고 하나님께 간절히 바랐던 것들 모두 다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당장은 보여 주지 않았을 때도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 어느 순간 돌아보면 모든 것이 이루어져 있었다"는 감사의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삶을 이끄시며 궁극적으로 복을 주시는 분이심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자신의 잘남과 능력과 가진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재능과 능력보다도 더 놀라운 일들을 우리들에게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부족하고 연약하고 어리석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인도에 우리들의 길을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앞서가신다는 것은 무리를 책임져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혼자서 갈 때 앞서간다고 하지 않습니다. 여러 명이 같이 갈 때 앞장서서 가는 것을 앞서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서서 가시는 것은 그들의 길과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요즘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인데 저는 여러분들에게 "주책 되세요"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옆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 봅시다. "축하합니다. 주책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니... 로 시작되는 시편 23편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목자는 양의 인도자입니다. 양은 목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야합니다. 꼴이 있는 곳도 목자에게 맡겨야하고 물이 있는 곳도 목자에게 맡겨야 합니다. 자기들이 꼴을 찾겠다고 물을 찾겠다고 나서면 먹을 것을 찾지도 못하고 마실 물도 찾지 못하는 것은 고사하고 사나운 맹수의 밥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니 양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어리석은 동물입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해서 양들이 모두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양들도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삽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그 비밀은 양은 목자만 바라보고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목자를 따라가기만 하면 물이 있고 꼴이 있고 쉴 곳이 있습니다. 바로 목자가 책임을 져 주는 것입니다. 목자의 책임은 양을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고 맹수로부터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양은 목자가 책임을 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들입니다. 우리는 양들처럼 어리석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무조건 주님만 따라가면 됩니다. 거기에 물이 있고, 꼴이 있고, 구원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조금만 힘이 있으면 자기가 제일인줄 알고 뻐기고 으시댑니다. 쥐꼬리만한 지식이 있으면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뻐깁니다. 조금만 무엇을 가지고 있으면 안하무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인간은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울산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 어떤 건물인지 잘 모르나 롯데 백화점의 둥그런 구조물은 열차를 타고 밤에 보면 정말 절경입니다. 땅에서 보면 엄청납니다. 그러나 조금만 높이 올라가서 보면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좀더 높이 올라가면 차이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다 고만고만합니다. 어떤 것이 크고 어떤 것이 작은지 구분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아무리 크고 잘나고 힘이 세고 똑똑하다고 해도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오십보 백보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우리들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우리들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앞서가신다는 것은 우리와 함께 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8절에 보면 "하나님은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앞서 행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하면서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들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해 주시는 것이 복중에 가장 큰 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모든 것에서 형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창39장에는 요셉이 형들의 손에 팔려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할 때의 기록이 있습니다. 39:2절에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중인 애굽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치 않음으로 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옥 속에서도 39:21절"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 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3절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고 쓰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자에게는 범사에 형통한 복을 받게 됨을 증명하는 말씀입니다. 형통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대입을 앞두고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도록 하나님께서 형통케 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을 안 하시는 분은 자녀들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형통을 원하지 않던지 대학 입시를 앞둔 자녀가 없든지 둘 중에 하나인가 보군요.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시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때 여러분들이 꿈꾸고 계획하는 일들이 형통케 될 것입니다. 아멘.
본문은 함께 하시면서 떠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그들의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은 그들을 떠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구원받아 상급을 받을 때까지 우리들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들이 어렵다고 하나님이 떠나시고, 내가 힘들다고 하나님께서 떠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을 끝까지 믿는 한 하나님도 그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사야49장15-16절을 보면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은 혹시 잊을 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느니라"
우리를 끝까지 잊지도 않고 떠나시지도 않으시면서 우리들과 함께 하시면서 우리들의 앞에 서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우리들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오늘 우리들이 찬양하면서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따라 갑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앞길을 책임져 주십니다. 함께 하시면서 형통케 해 주십니다. 우리들이 병들고 힘들고 괴로울 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으시면서 우리들을 도와주시는 그 도움의 손길을 바라보면서 앞서가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따라 감으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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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며 묵상하며:결별을 준비하는 모세와 새로운 지도자(신31:1-13)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벧브올 맞은 편 골짜기’에 당도하여 그곳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더 이상 큰 일을 맡을 수 없음을 이야기합니다.
결별의 말
모세의 주된 임무는 그 백성이 정착할 땅에서 지침이 될 적절한 율법의 법전을 마련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미래에 자기 백성을 인도할 새 지도자로 여호수아를 세우셨습니다. 백성들 앞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택하여 그 일을 맡기셨음을 상기시킵니다(3절). 여호와를 섬기고자 하는 사람에게 분명하고 강력한 소명 의식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지도자가 되어 그 일을 성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네 앞서 건너가사”(3절).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전위대가 되심을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멸하신…것과 같이…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붙이시리니”(4-5절)는 하나님께서 과거에도 그러하셨듯이 앞으로도 승리케 하실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능력뿐 아니라, 마치 친구처럼 ‘함께하시리라’는 약속을 하고 계십니다. 모세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와 함께 이스라엘이 이러한 하나님을 신앙하며 담대한 마음으로 가나안 정복에 임할 것을 격려했습니다.
율법서의 전수
모세는 율법 법전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일이 중요한 유업인 것을 알고 율법의 관리자로서 언약궤를 메는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율법을 써 주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의식으로서 칠 년 끝 곧 면제년의 초막절에 신명기의 율법을 모든 백성 앞에서 낭독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듣고 배우며, 지켜 행하게 하고 자녀들에게도 교육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알도록 하였습니다.
묵상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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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앞서 행하시는 하나님
지난 번 서산, 당진모임을 방문하기 전 몇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날씨는 계속 추워진다고 하고 서해안 지방과 제주도에는 대설주의보까지 내려서 3~10cm 가량의 눈이 온다고도 했습니다.
또 작년에 방문했을 때 목이 잠겨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경험이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목이 잠기는 증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아내 윤 자매 또한 허리 부근 통증이 있어서 앉고 일어서는데 불편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가기로 결정된 일이었기 때문에 서둘러 출발했습니다.
먼저 번에는 5시간이 넘게 걸려서 아주 지친 상태로 도착했는데 이번에는 도로가 막히지 않아 2시간 반 정도의 시간으로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당진에서 서산으로 가는 구간에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쳐서 정말 본격적으로 눈이 오려나 보다 했지만 조금 지나가자 거짓말 같이 눈이 그치고 하늘이 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는 길을 따라 강한 바람으로 눈구름을 다른 곳으로 밀어내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뭏든 돌아오는 순간까지 도로 위에는 눈이 없었습니다.
조심하긴 했지만 목소리 또한 이상이 없어 말씀 전하는데 지장을 받지 않았습니다.
윤 자매는 대산 김 형제님 집에서 쉬는 밤에 형제님의 한 시간여에 걸친 등마사지로 통증이 갈아 앉았습니다.
곁들여, 알러지 증상으로 등이 가려워서 밤에 잠을 잘 못 자던 나였는데 그 따뜻한 방에서 자면서도 가려움증이 사라졌습니다.
또 한 가지, 주일 아침 교회에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Y셔츠와 조끼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에서는 분명이 챙겨 가져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만약 미해 자매님이 김 형제님에게 누가 선물을 했지만 작아서 입지 못하던 Y셔츠와 가디건을 주지 않았다면 황당했을 것입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하여 과연 우리 하나님은 앞서 가시며 우리 길을 예비하시고 필요를 준비하시는 분이시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자시하신 자니라'(신 1:33)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 가리라~'(출 32:24)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수 3:11)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히 6:26)
자기의 양 된 백성들을 위하여 항상 앞서 가시며 길을 인도하시고 모든 것을 예비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기 양들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요 10:4)
옮겨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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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며 적용하며
1. 이스라엘의 역사적 전환기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준비하게 하셨습니까?
2. 여호수아는 어떠한 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부르심을 받은 여호수아에게는 어떠한 용기와 격려가 필요했습니까?(6-7절)
3. 하나님의 준비하심과 인도 가운데 우리가 듣고 지켜 행하며 배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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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하며 간구하며 :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주소서."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앉히셨습니다. 그 넓고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 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찌하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洋鬼子)라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만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 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지켜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언더우드의 기도문(1885년 부활주일 아침)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