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 2: 9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 - 살전 2: 10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살전 2: 9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 -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
본 절 초두에 '왜냐하면'이란 이유 접속사가 있기 때문에 본 절은 윗말(바울이 그들을 사랑한다는 말)의 이유 해설이다.
그의 사랑은 그들에게 물질적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고 극력 힘쓴 것으로도 알려진다. 이 구절에 증거한 대로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손으로 일하면서 사랑의 수고를 달게 받은 사실은 그가 앞 절에서 말한 모성애(母性愛)의 증거이다.
사도 바울은 한 번 더 자신의 복음 증거의 사역에 대해 말한다. 그는 자신의 수고와 애쓴 것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기억할 것이라고 말하며 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한 사실을 언급한다.
이런 사실들은 그의 말씀 전파의 사역이 순수한 동기에서 이루어졌음을 증거 한다. 그의 말씀 전파의 동기가 순수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사도의 이름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누를 끼쳤을 것이고 일하지 않고 편안히 섬김을 받는 자가 되려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1]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여기서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는 동안 자신들이 많은 고생과 고난을 겪어가며 자활(自活) 생활을 한 것을 회상하고 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의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에 바울이 목숨까지 주기를 기뻐하였다(8절). 물론 목숨을 준다는 것은 크고도 먼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증거로 가깝고도 쉬운 문제에서부터 사랑을 실천하였다.
'수고와 애쓴 것'(*, 톤코폰 카이 톤 모크돈)은 자신들을 희생함으로써 초래한 피로와 그러한 수고를 하는 과정에서 직면한 외적인 많은 고난들을 강조한다.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는 동안 밤낮으로 손수 노동을 하여 자급전도를 하였으니, 그의 일은 장막 만드는 것이었다.
* 행 18: 3 -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바울의 이러한 솔선수범하는 자세는 교인들에게도 정당한 근로를 가르칠 수 있었던 모범이 되었다(4: 11).
2]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이것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증거 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장애도 받지 않으려 한 사실과 그의 사역에 추호의 이기심이나 탐심도 개입되어 있지 않음을 나타낸다.
바울은 데살로니가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처럼 자급 전도하였다.
* 행 20: 34-35 - 34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 고전 4: 12 -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 고후 11: 8 - 어떠한 까닭이냐?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바울은 전도자가 교회에서 생활비를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고 말한다.
* 고전 9: 14 -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그는 결코 전도함에 있어서 이 권리를 요구하지 않았다. 때로는 회심자들로부터 선물을 받기도 했다.
* 고후 11: 8 - 어떠한 까닭이냐? 내가 너희를 사랑하지 아니함이냐?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는 빌립보의 형제들에게서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 빌 4: 16 -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그러나 그는 어떤 선물이든지 복음의 확장에 도움이 될 때에만 받아야 함을 중요시하였다. 종일토록 복음을 전파한 바울은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남은 시간을 손수 노동함으로써 그의 회심자들이 자신의 생활비를 보조하는 부담을 갖지 않게 하였다.
3]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전하였노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케뤽사멘'(*)은 전달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말을 가감(加減)없이 그대로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메시지를 최선을 다해 그대로 전달하였다.
여기에 복음전도자로서의 바울의 확고한 사명 의식이 깃들어 있다.
3. 교훈자의 자격 ( 2: 10 - 12 )
10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11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12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살전 2: 10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 일행의 순수성을 이해하고 그들이 들은 복음에 계속 확고히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바울은 본 절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노력과 실라와 디모데의 수고를 말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다시 간추려 말하기를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것이라고 한다. 사도 바울의 말씀 사역은 한마디로 바르고 흠 없이 행한 사역이었다. 이것에 대해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증인이요 하나님께서도 증인이 되신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신의 말씀 사역에 대해 담대히 증거 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의 뒤를 따를 교회의 많은 하나님의 말씀 사역자들이 본받을 만한 일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 사역자들은 범사에 거룩하게 행하고 바르고 흠 없이 행하는 사역자들이 되어야 한다.
1]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호시오스 카이 디카이오스 카이 아멤프토스)의 해석에 대하여는 여러 견해가 있다.
Ⓐ '거룩하고'는 하나님을, '옳고'는 사람을, '흠 없이'는 양자를 대상으로 하는 소극적 언급이다(Findlay, Frame, Clarkem, Gloag).
Ⓑ '거룩하고'는 하나님을, '옳고'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한 바울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흠 없이'는 그들 자신의 행동 자체를 의미한다(Bengel).
이와 갈은 해석들은 커다란 차이를 지니지 않으나 가장 유력한 지지를 받는 것은 Ⓐ의 견해이다(F. F. Bruce).
이렇게 볼 때 '거룩함'이란 하나님을 향한 자세를, '옳음'이란 사람에 대한 올바른 행위를 가리키며, '흠 없이'란 이 두 가지의 소극적 측면으로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책망할 바 없는 단정한 생활을 가리킨다.
2]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바울은 자신들의 선교 사역의 순수성과 진실성에 대한 확고한 증인으로서 데살로니가 교인들과 하나님을 내세운다.
즉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 일행의 외적 행동의 증인이요 하나님은 그들의 행동의 내적 동기의 증인이 되심을 밝힌다(Lightfoot).
실제로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의 진실 된 전도의 모습을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목격한 바이며,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복음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명령을 받아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신실하게 복음만을 증거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