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부모의 파산 선고와 십자가의 은혜
제1강. 부르심 (Calling): 소유권의 포기, '대사(Ambassador)'로서의 위대한 위탁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시편 127:3)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Ambassadors)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고린도후서 5:20)
기독교 부모 교육의 첫 단추는 육아의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내 가정의 심장부에 똬리를 틀고 있는 가장 거대하고도 은밀한 우상, 바로 '자녀에 대한 소유권(Ownership)'을 십자가의 단두대 위에 올려놓고 무참히 처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첫째, '내 아이'라는 거대한 착각과 교만을 회개하십시오.
우리는 무의식중에 "이 아이는 내 자식이다"라고 착각합니다. 내가 낳았고, 내가 먹여 살리며, 내가 희생하여 키우고 있으니 아이의 인생은 내 소유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편 127편은 이 교만을 단번에 박살 냅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여호와의 기업(Heritage)'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그분의 거룩한 소유물을, 잠시 당신의 가정에 '위탁(Entrust)'하신 것뿐입니다!
아이가 부모의 소유가 될 때 어떤 끔찍한 비극이 일어납니까? 부모는 아이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 들고, 아이의 성공을 나의 트로피로 삼으며, 아이의 실패를 내 인생의 수치로 여깁니다. 이것은 자녀를 부모의 자아실현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극악한 우상숭배입니다! 오늘 이 시간, 아이의 생명과 미래에 대한 모든 소유권을 창조주 하나님께 전면적으로 반환하십시오!
둘째, 부모의 진짜 정체성: '주권자'가 아니라 '대사(Ambassador)'입니다.
자녀가 내 소유가 아니라면, 부모인 나는 대체 누구입니까? 고린도후서 5장 20절은 우리를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대사(Ambassador)'라고 명명합니다.
대사는 어떤 존재입니까? 대사는 자신이 파견된 나라에서 자기 자신의 뜻을 펼치거나 자기 왕국을 세우지 않습니다. 대사는 오직 자신을 파송한 '왕의 뜻'만을 완벽하게 대언하고 집행해야 하는 거룩한 심부름꾼입니다. 대사에게는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 개인적인 야망,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될 권리가 단 1퍼센트도 없습니다!
우리가 대사라면, 우리의 자녀 양육은 완전히 뒤집어져야 합니다.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모는 "네가 감히 내 말을 어겨? 네가 내 체면을 깎아내려?"라며 개인적인 모욕감으로 분노해서는 안 됩니다. 대사는 타국의 백성이 무례하게 군다고 해서 사사로운 혈기를 부리지 않습니다. 오직 '왕의 법'에 따라 엄위하고도 냉철하게 진리를 집행할 뿐입니다. 부모의 훈계는 철저히 왕이신 하나님의 율법과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달하는 '대언'의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부모의 부르심: 찰나의 성공이 아닌 '영원한 영혼'을 빚어내는 도구.
폴 데이비드 트립은 묻습니다. "당신의 인생에서 한 인간의 영혼을 형성하는 도구로 쓰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위대한 일이 대체 무엇입니까?"
세상 부모들의 부르심은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고, 돈을 많이 버는 직장인으로 만들고, 남들에게 박수받는 시민으로 키우는 데서 끝납니다. 그러나 거룩한 대사로 부름받은 기독교 부모의 사명은 그런 얄팍하고 썩어 없어질 세상의 트로피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사명은 이 아이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발견하게 하며, 마침내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예배자로 빚어지도록 돕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기독교 부모 여러분!
내가 이 아이의 창조주요 구원자라는 무서운 오만함을 당장 내려놓으십시오. 여러분은 아이의 영혼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에 들린 작고 연약한 도구가 되어, 십자가의 은혜만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되십시오.
"주님, 이 아이는 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능력이 없는 연약한 대사일 뿐입니다. 오직 성령께서 이 아이의 영혼을 빚어 주시옵소서!"
이 처절한 자기 포기와 영광스러운 대사로서의 사명 승복이야말로, 무너진 우리 가정을 다시 살려내는 위대한 복음적 양육의 첫출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