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 요
천보산(423m)칠봉산(506m)
7개봉 거느린 능선과 천년고찰 회암사 품은 천보산
칠봉산(七峰山506.1m)과 천보산(天寶山423m)은 수도권에서 가까운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북동쪽을
에워싸고 있는 산릉이다. 칠봉산 북으로는 동두천시 탑동,천보산 동으로는 포천시 동교동과 경계를
이룬다.칠봉산은 단풍으로 물든 풍광이 비단병풍과 같다 해서 일명 금병산(錦屛山)으로도 불렸다.
또 조선조때 세조가 말년에 이 산에 올라 수렵했다는 기록도 있어 어등산(於等山)이라는 이름도
얻었다. 세조후 약400년이 지나 나온 대동여지도에는 어등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칠봉산을 두고 양주군지에는 발치봉(發稚峯),응봉(應峰)깃대봉(旗臺峯),투구봉(鬪具峯),솔치봉
(率稚峯),돌봉(突峯)석봉(石峯)으로 이뤄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산세는 북쪽은 완만한 육산이고 남쪽은 급경사 바위절벽들로 이뤄져 있다.칠봉산과 천보산은
산행기점까지 서울에서 시내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산이나 도봉산처럼 시간에 쫓기지 않고 당일산행을 즐길수 있다.
코스는 산 북서쪽인 송내동에서 대도사(大度寺)를 경유 정상에 오른다음 동쪽 석봉을 지나 남동릉
고개마루턱을 경유해 남쪽회암동 30번버스종점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다음으로는 남동릉 고개마루턱에서 계속 남동릉을 타고 천보산까지 오른 다음 남쪽 회암사로
하산하는 칠봉산~천보산 종주코스가 있다
[회암사지]
동국 제일이자 중국에도 드문 대사찰
천보산 남쪽 기슭에 있는 회암사지(檜岩寺址)는 창건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아직 발견된 것이 없다.
고려 명종4년(1174년) 금나라 사신이 이 절에 들렀다는 기록은 남아 있어 12세기 중엽 이전에
창건된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유명한 고승들과 왕실의 지원이 각별했던 회암사는 충숙왕 15년(1328년)
원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온 인도의 승려 지공(指空·1300?-1363)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인도의
나란다사(羅難陀寺)를 본떠 중창에 깊은 관심을 가졌었다고 전해진다.
회암사는 지공의 제자로써 중국에서 돌아온 나옹(懶翁)이 본격적인 중건불사를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후 그의 제자들이 계속 중건한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초에는 무학(無學)이 주지로
재임했고, 이성계도 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회암사에서 기거했다.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도 이곳에서 불도를 닦았다. 이런 이유로 조선조 건국이념인 숭유억불
속에서도 회암사는 왕실의 비호 아래 명목을 유지할수 있었다.
고려말 대학자인 목은 이색(牧隱 李穡)이 지은 목은집(牧隱集)에 3천여 명의 승려가 머무르는
대사찰로건물은 모두 262칸이며 높이16척의 불상 7구와 10척 관음상이 있다.
건물들이 크고 화려하기가 동국(東國) 제일이며 중국에서도 이렇게 큰 사찰을 찾기 힘들 것’
이라고 기록했다. 회암사는 지공 이후로 보우가 거처하던 때까지 약 200년 가량 번창하다가 문정왕후
사후인 명종 21년(1566년)부터 1595년 사이 유생들에 의해 폐사된것으로 보고 있다.
절터 주변에는 회암사지 선각왕사비(보물 제387호),회암사지 부도(보물 제388호)쌍사자석등(보물
제389호)지공선사 부도및 석등(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9호)나옹선사부도 및 석등(유형문화재 제50호)
무학대사비(유형문화재 제51호)화암사지 부도탑(유형문화재 제52호) 등이 있다.
회암사지는 사적 제128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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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
저까지 3명신청이요.
신청합니다.
림보형님신청합니다
저도 델꼬가 주세여
2명 추가. 총5명갑니다. 낼 뵐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