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병실에 누워
여산 / 홍성도
4대 삭신 6천 마디라고 했나
올올이 병이 들어가는 것인지
죽음과의 조우를 위한 것인지
아픈 것도 같고
괜찮은 것 같기도 하지만
가운 입은 닥터의 안경 속 동공은 두렵기만 하다
링거에서 떨어지는 눈물은
차가운 별이 되어 앙금으로 남고
살아온 시간은 뭇별들의 푸념으로 남는 것인가
간병사의 투덜거리는 볼멘소리가 자장가가 되기까지
누워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공포의 내습
살자!
살아 내야 한다
업신여김 받은 시간도 보상받아야 하고
완성하지 못한 시구(詩句)의 마지막 연도 채워야 한다
누구도 가야 할 그 길
천천히 가도 될 일 아니던가
병실 벽에 걸린 TV의 자막에는
죽어서는 안 될 이유로 죽은 사람들의
죽은 이유가 너절하다
벌떡 일어나 병실 문을 나설 때는
햇빛보다 더 환하게 웃자
2. 정말로 사랑한다면
여산 / 홍성도
정말로 사랑하시나요
꿈에도
생시에도
나만을 사랑하셨나요
임종을 눈앞에 둔 남편을 향한
아내의 절규 앞에
고개를 주억거리고 떠난 사람
저세상에서 만난 남편
그 일기장의 찬란한 엽색 행각
정말로 사랑한다면
완전 범죄에 익숙해야 하는 것
3. 소나무의 송진은
여산 / 홍성도
상처 난 육신의 구원을 향한
험한 절규
소진되지 않는 오지랖
딱지 앉은 자리에 머물며
하늘을 본다
밀려오는 새 떼
딱따구리의 주둥이에
쪼아질 운명
살려야 한다
하늘을 향한 기상과
푸르기만 한 이상에
상처를 덧내서는 안 된다
4. 삼림욕의 비밀
여산 / 홍성도
숲으로 가자
하늬바람에 흔들리는
숲의 이야기를 듣자
사랑은 언어가 아니라
침묵이라고 가르치는
숲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자
온몸의 살갗이 유연한
바람에 윤색되고
폐부에 스며드는
산자락의 언어가 약이 되는
숲의 비밀스러운 속삭임
너와 내가 하나 되는 삼림 속에
아무도 모르는 내밀한 창
창틀에 얼굴을 고이고
나무들의 비밀스러운 대화를 엿듣는다
그 속에 안식이 있다
5. 생(生)과 사(死)
여산 / 홍성도
유체를 이탈한 영혼의 길목
위치란 서 있는 사람의 부표
생각은 어제를 맴돌고
육체는 고뇌를 넘나 든다
산다는 것이 별거란 것을
알아차릴 즈음
먼 곳에서 들리는 소리
세상은 별거란다
별 게 아니란다
유혹의 고개 위에 선
충혈된 눈빛의 저승사자
조여 오는 그리움에
경련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
아직은 빛을 보아야 한다
아직은 안 갈 거다
※ 폐렴 치료 중에 병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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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향문학 15호 원고방
덕향문학 15호 홍성도 시인 원고 / 5편
영원 김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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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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