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9-23
남편은 딸애의 성정이 자신을 닮았다고 흐뭇해 한다 하지만 어릴 적 모습부터 그 애는 외모가 어미인 날 빼 닮았다. 그 점 때문인지 같은 여자라서 그런지
딸애를 보면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찡해지곤 한다
그 애를 출산하던 날 공주라는 말에 인생 선배들에게 익히 들어온
딸 낳으면 애 낳는 고통을 겪게 될 것이 안쓰럽다…. 라는 이야기가
산후의 경황 중에도 마음에 스쳐 지나갔다
먼저 본 아들애가 태어났을 때는 축하 인사가 그저 좋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딸애는 그 애 오빠와 다른 마음이 들었다
내가 뿌리 깊게 남아 선호사상에 젖어있기 때문인지
뭐든 아들애가 먼저여서 나갔다 들어오면 언제나 벌떡 일어나 맞고
보약은 아들애를 생각해 지었고 밥상 위 생선도 가운데 토막 튼실한 것은 그 애에게 밀어주며 먹이려 했었다
무심코 나는 그렇게 하고 딸에게는 '오빠 밥 챙겨줬니?' 했다
그래서 아들만 편애한다며 '엄만 아들만 이뻐해….'라는 투정을 딸애로 부터 듣곤 했다
그러나 내가 몸이 아파 큰 수술을 해야 하는데
심각하게 걱정이 되었던 것은 내가 세상에 없을 때의 딸애였다
남편은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아내가 없어 불편하면 화장실에서 웃는다는 새 장가 들면 되고
아들도 결혼하면 제 색시가 어련히 엄마처럼 챙겨줄 터인데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딸아이였다
시집 보내 아이 낳을 때도 곁에서 지켜 줘야 하고
김치나 반찬도 만들어주고 싶고
살아있는 꽃게도 바둥거려 못 만질 텐데 어떻게 하나 걱정이었다
친정엄마의 세심한 손길이 미처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
오랫동안 곁에서 살펴주는 어미가 되고 싶었다
돌아가신 친정엄마의 빈자리가 서러워 해산한 날 펑펑 울던 동서가 가엾기만 했었다
엄마가 살아계신다는 것만으로도 기를 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내가 살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딸애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몇 년이 지난 후 아픈 곳이 재발해 또다시 수술을 받게 되어 입원한 날
다 커 처녀가 된 딸아이가 엄마가 아프다니 철이 들어버렸는지
제 아버지가 엄마와 있겠다며 집에 가라고 등을 떠밀어도
불편한 병실에서 가지 않고 굳이 남겠다고 한다
짐짓 태연한 척 하지만 겁먹은 얼굴로 엄마를 만져보기도 하면서
잠을 못 이루는 눈치다
수술 날 새벽 뜻하지 않게
내게 달 마다하는 행사가 찾아온 것을 알았다
하필 몸도 운신하기 불편하도록 링거병에다 각종 주사약을 맞고 있는지라
속옷 처리하기 어려운데 딸애가 얼른 매점에 내려가 생리대를 사 오더니
속옷 처리하기 어려운데 딸애가 얼른 매점에 내려가 생리대를 사 오더니
엄마처럼 화장실에 함께 들어가 의젓하게 해결해주었다
누구에게도 맡기기가 민망한 일인데 그 애가 있어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딸애가 아무 허물없이 내가 무안할까 봐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아기일 때 내가 그 애에게 해준 것처럼 척척 그렇게 해주었다
얼마나 어른스러운 지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수술 대기하는 동안 침대에 누워 있는 나의 머리 위로
딸애의 창백한 얼굴이 걱정스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애 눈에 그만 그렁그렁 눈물이 고이더니
얼른 다른 곳으로 가 숨는 것이었다
엄마가 가엾은지 어린것이 무얼 생각하며 우는 걸까?
나 몰래 얼마나 마음 졸였을지 누구보다 애가 타는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평소 딸애에게 칭찬에 인색하고 곰살맞은 데 없는
엄마에게 배웠는지 감정 표현을 한다는 것이
<엄마 이뻐?> 그렇게 물으면 <아우~! 또 고문당하네> 했다
서로 흉이나 지적하고 평소에 살가운 말을 하지 않았던 탓에 쑥스러워
<엄마 어서 나아> 하는 말도 못 하고
속으로 애가 타서 울어 부은 눈으로 침대 위에 나를 지키고 있었다.
애달파 하는 그 애 모습에 난 그만 의젓하게 참지 못하고
숨죽여 울며 모녀가 서로에게 아픈 마음만 지니고 있었다
내가 수술 받는 동안에도 그 애는 오신 친척들에게 인사하고
보호자 노릇을 톡톡히 하더라고 친정엄마가 신 통행하셨다
제 엄마 걱정되어 오신 친척들이 제 딴에는 고마워서인가 싶었다
딸애가 입원실에서도 야무지게 나의 병간호를 도맡아 해주었다
제방도 치워줘야 하고 설거지는 셀 수 있을 정도만 했던 아이인데
엄마 걱정에 초인적인 능력이 나오는지 살뜰하게 어른스럽게 날 돌보았다
회복되는 내 모습에 그 누구보다도 안도하며 편안해지는 것은 그애였다
내게 엄마 같고 이모 같고 언니 같고 친구 같은 보호자였다
서로 라이벌처럼 자기가 더 날씬하다 하고
삐죽거리며 퉁명스럽기도 한 딸이지만
어느 날 우연히 그 애 지갑에서 커다란 내사 진을 발견했다
그 애가 그러는 것처럼 나도 하늘이 주신 딸애를 언제나 내 가슴에 품고 다닌다
우리는 그렇듯 서로 품고 사는 애틋한 모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