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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넘게 그림을 그리면서 불태우는 예술혼
현대미술의 다양한 표현 방법과 조형상의 실험을 부단히 병행
이미지와 색채가 공존함으로써 파생되는 강렬한 대비가 역동적
단 하루도 붓을 놓지 않고 작품에 영혼을 불어 넣는 작가
어린시절 유난히 뛰어난 그림 솜씨로 학생 공모전에서 여러차례 수상을 했던 최영조(崔英造·77) 작가는 중앙대 회화과를 다니면서 2학년 때 미술부장에 당선될 만큼 실력이 뛰어났다. 당시 한국 미술계에 이름을 떨쳤던 정영렬 교수가 가장 아끼던 제자이기도 했다. 동국대학교 교수 및 인문대학장으로 많은 후학들을 양성하면서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우뚝 선 최 화백의 화실을 찾았다.
-출생 및 성장 과정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1943년 3월 1일 전형적인 시골 마을인 경북 의성군 안계면 안정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교촌국민학교와 안계중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어린 시절 학생 공모전에서 여러 차례 수상을 하였지요. 1961년 중앙대학교 회화과에 다니면서 현대회화의 흐름을 접하게 되었는데, 구상회화는 장리석 선생님께 배웠으며, 특히 당시 젊은 교수인 정영렬 선생님과의 교분으로 추상화에 대한 관심은 더욱 활발해질 수 있었습니다. 억눌리고 찌든 현실에서 추상미술이 보여주는 자유분방함과 내면적인 정신성은 젊은 감성을 매료시켰습니다.
이러한 추상에 대한 경도는 저의 문학적 감성으로도 이어져 신춘문예의 시(詩) 부문에 몇 차례 응모하기도 하면서 1980년대 문예지를 통해 정식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당시 같은 대학의 연극영화과 학생들과의 교류를 통해 영상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게 쌓을 수 있었습니다.
저의 대학시절은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피곤하고 가난한 시기였지만 정신적으로는 저의 생애를 통해 가장 풍요로운 시기였습니다. 1965년 군복무 중 부대장의 후원으로 부산 공보관에서 제1회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군 재대 후 복학하여 1966년 중앙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후, 저는 8남매 장남인 관계로 부모님의 요청에 의해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그해 3월 안계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이어 대구여고 등에서 근무하였습니다. 1976년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석사를 취득하였으며, 1977년 제2회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1981년에 동국대(경주캠퍼스) 교수로 전직하여 1982년 대구 맥향화랑에서 제3회, 1986년 제4회 개인전을 개최하였습니다. 1990년도 5회 개인전, 1991년 서울 경인 미술관에서 6회 개인전, 1996년 서울, 부산, 울산, 대구의 5개 화랑에서 동시에 진행된 7회 개인전 등 지금까지 34회 개인전을 개최하였습니다.
항상 언행에 일치하는 삶을 추구하는 작가의 정신세계는 예술성에 승화되어 녹아 흐르는 듯하다. 장희자 기자
그리고 문학 활동도 쉬지 않아 1992년 문예한국 ‘시와의식’ 신인상을 수상하고, 1998년 10월 ‘아름다운 이별’과 2001년 10월 ‘아름다운 만남’ 제하의 시집을 출간하는 등 지금까지 꾸준히 계속하여 있습니다. 2003년 2월 동국대 경주 캠퍼스의 인문과학대 학장을 2년 지내면서 많은 후진을 양성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신조회, 그룹80, 예동인, 대구수채화동인 등을 통해 작품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최 화백이 자신의 화실에서 작업하고 있다. 장희자 기자
-그림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시골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미술선생님이 이중섭 씨와 함께 작업을 하였던 양동환이란 분으로, 그분이 그린 교장 선생님의 인물화를 보고 너무 좋아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림을 시작하게 되어 군(郡)이나 도(道)에서 개최하는 미술실기 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게 되면서 자연히 미술가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작가에게 있어 고향은 작품의 근원이 되고 그의 욕구와 본질을 엿볼 수 있는 특정한 장소이다. 장희자 기자
-최 화백님을 구상과 비구상을 넘나들며 현대미술의 다양한 표현 방법과 조형상의 실험을 부단히 병행해온 작가라고 소개를 많이 하는데, 구상과 비구상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구상이란 사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으로 사실주의 기법이라고 하며, 추상이란 사물의 형상을 완전히 해체해서 다양한 형태로 묘사합니다. 비구상은 그 중간단계의 그림으로 예를 들면 자신의 마음 속 감정상태나 이념들을 형태와 색채로 표현하는 경우 등으로 요즘은 추상도 비구상에 포괄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비구상이란 말을 많이 씁니다. 비구상 미술은 그 표현 주제가 무엇인지 알수 없는 암호화되고 기호화된 표현방식으로서 미술이 자연주제를 다루었던 시대에서, 인간의 감정 즉 작가 스스로의 고뇌 등이 중시되면서 예전에는 표현의 수단에 불과하였던 붓터치 하나의 가치가 존중되기 시작합니다.
작업을 하시면서 정진하시는 모습이 우리들에게 본받으라고 귀감이 되어 다가오는 듯하다. 장희자 기자
대부분의 추상미술은 두가지의 틀안에서 변형이 이루어지는데 유기체의 변형작업과 기하형태의 변형작업입니다. 현대에 와서 비구상 회화가 주류를 이룬 것은 사진기의 발명으로 이전에 손으로 하던 현실에 대한 재현을 사진기가 대신하게 되었고, 화가는 사진기가 하지 못하는 영역을 개척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 그리고 환상 따위를 그리게 된 것입니다.
예술가는 항상 시대의 앞자리에 서서 새로운 세계를 열어 가야 한다는 예술가의 책무를 말하고 있는듯하다. 장희자 기자
-그림 속에 푸른색을 많이 쓰시는 이유는 있습니까?
▶ 푸른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입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바다를 볼 수 있었는데 바다는 나를 정말 황홀하게 만들었죠. 점점이 떠있는 돛단배, 저 멀리까지 뻗어있는 모래사장, 빤짝이는 바다빛, 그리고 바다의 낙조는 바다를 처음보는 나에게는 너무도 강렬한 그 무엇이었습니다. 어쩌면 처음 본 바다의 그 강렬함이 나를 그림으로 들어서게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땅까지도 푸른색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본 푸른 바다의 아름다움을 지울 수가 없으며 그 후 나는 푸른 하늘과 바다가 이어지는 아득한 푸르름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유년시절 처음 본 바다의 강렬함이 나를 그림으로 들어서게 했다는 그의 바다세계 작품. 장희자 기자
-초창기의 작업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색채의 변화는 어떠하였습니까?
▶1960년대의 어둠에서, 70년대는 반구상을 시도하여 색채가 어둠을 뚫고 해쳐 나오는 것 같았고, 80년대의 색채는 에머럴드색과 광채가 나는 색채로 이어 오면서, 90년대는 밝고 맑게 제작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이는 색채를 이용한 추상작업에서 현재는 이미지를 추상화 시키는 것으로 변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삼원색을 많이 쓰다가 예전에 비하여 무채색을 더 많이 화면 속에 넣고 있으며, 검은색을 삼원색과 겸해서 사용하다가, 최근에는 불교의 단청의 색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청의 색은 청, 적, 황,백, 흑색이며 오방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역동적인 화면을 만듭니다.
최영조 작가의 초창기 검은색을 삼원색과 겸해서 사용하는 1980년 작품. 장희자 기자
-지금까지 34회 개인전을 주최하셨는데 시기별로 작품의 흐름과 경향, 특징, 주제, 분류(구상,비구상) 등을 간략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자화자찬 하기는 좀 그렇고, 지금까지 국내 유명 미술평론가들이 저의 화풍에 대하여 평해 놓은 것을 보면, 정점식교수는 “ 최 작가의 화력은 처음 체온을 느끼는 서정적인 자연에서 그 다음 검은 단색조의 수묵화와 같은 화면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80년대에 이르면 기하학적인 면의 조직에로 변신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90년대에 이르면 찢어지고 흩어지면서 불규칙적인 다면체의 공간이 나타난다. 그야말로 이들 과정은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넓고 먼 탐험에 이르고 있으며 마지막의 이 복잡한 Postism 속에 여인의 얼굴같은 모습이 나타난다.” 고 평해 주셨습니다.
삼원색(빨강 초록 파랑)을 많이 쓰고 있는 1985년 작품. 장희자 기자
장미진 미술평론가는 “ 최 작가는 인간과 자연의 융화를 꿈꾸면서 그에 대한 명상을 일관되게 그림으로 풀어내어온 작가이다. 구상과 비구상을 넘나드는 양식적 변용을 감수하면서도 그가 추구해온 조형의 세계와 그 예술의지의 방향은 자연과의 융화를 통한 인간성 회복이라는 면에서 일관성을 보인다. 경북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자연의 물기와 섭리를 직접 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작업의 한 계기가 되지만, 나아가 작가는 동양의 삼재(三才)사상을 바탕으로 대자연을 해석함으로써 일상 삶의 편린과 그 이미지들을 우주적인 천지간(天地間) 삶의 노래로 풀어내 놓고 있다. 역시 삶의 언어가 곧 미술의 언어가 되는 지점에서, 작가는 잃어버린 현대인의 고향, 그 실낙원을 환기시킨다. 요컨대 그의 그림들은 붓길에 실린 형태와 색채의 리듬이면서 현실을 관통하되 현실을 넘어서 영원한 유토피아를 꿈꾸는 시적 상상력을 담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그의 작품세계는 조형과 음악과 시를 아우르는 예술의 높은 경계, 곧 그림이 음악이 되고 시가 되는 지점을 향해 정진해온 작가의 창작 여정을 잘 반영하고 있다.” 고 함축하고 있습니다.
삼원색에서 점차 광채가 나는 색채로 밝아지는 1988년대 작품.
-평상시 작업하시는 스타일은 어떠하십니까?
▶ 작가들은 자기 세계가 어느 정도 형성된 이후에는 구상이나 추상으로 자신의 작업이 굳어져서 진행되는데 나는 이러한 방법적인 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계속적인 변화와 모색으로 작업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리고 혼자 여행을 하거나 작업구상을 하다가 한 번 작업장에 들어가면 모든 것을 잊은 체, 소낙비처럼 그림을 그려대곤 합니다.
색채를 이용한 추상작업에서 점차 이미지를 추상화시키는 것으로 변화되고 있는 2000년대 작품.
-2017년 팔공산 시인의거리에 시비제막식을 하였는데, 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신게 언제 입니까?
▶ 대학시절엔 매일 시를 100편 정도 읽었습니다. 그때부터 신춘문예에 출품하기 시작한 나는 82년에 월간지를 통하여 등단하게 되었으며, 그 후에도 계속해서 시를 써왔습니다. 그러나 모아두었던 시를 홍수로 인하여 모두 잃어버리게 되어 나는 그 후 10년 정도를 시를 쓰지 않다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에 대한 느낌을 가지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대학 다닐 때 썼던 시들을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그것으로 1집을 출간했을 겁니다. 그림을 그리다 지루하거나 잘 안될 때 쓴 시들입니다. 1998년 부모님을 떠나보내면서 ‘아름다운 이별’ 이라는 시집을 발간한 데 이어 2001년 아내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아름다운 만남’ 이라는 시집을 발간했습니다.
이미지를 추상화시키는 과정에서 여인의 얼굴같은 모습들이 작품 세계에 나타나는 2001년 그림. 장희자 기자
-작가님은 평소 많은 후진을 양성하시면서, 시비 제막식에 많은 지역유지분들이 참석하였는데 우동기 교육감과는 어떤 관계인지 궁금한데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우교육감과 나는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교촌국민학교와 안계중학교를 졸업한 동네 선후배이고 제자 관계입니다. 제가 1996년 3월 처음으로 안계중학교에 미술교사로 부임하여 당시 교내백일장에서 시부문에서 장원을 하여 경상북도학생백일장에 학교대표로 출전하던 그에게 습작을 지도하면서, 졸업무렵에는 문예진흥원의 문화상을 수상하게 되었으며, 고등학교 계단문학동인회 동아리 활동시, 대학 진학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영남대교수 재직 및 사회활동하는 현재까지도 변함없는 친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의 31회 개인전에는 “ 선생님의 작품은 늘 새롭다. 낯설게 다가와 잠든 의식을 마구 흔들어 깨워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자고 외치는 것 같다.” 며 응원해 주었습니다.
2017년 팔공산 시인의 거리에 조성되어 있는 최영조 화백의 시비. 장희자 기자
-향후 계획은 어떻습니까?
▶저의 남은 마지막 과제는 세상에 남겨놓을 그림을 연구하고 있고, 2020년 11월 초순경 제35회 최영조 회고전 흔적 전시회 개최를 위하여 100호짜리 30점을 열심히 작업하면서 준비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 『내 그리움은 정처가 없다』 제하로 저의 3번째 시집을 발간하여 생일선물로 아내에게 바칠 계획입니다. 아울러 제가 좋아하는 바다도 계속 가서 철석이는 파도를 음미하면서 그림을 계속 그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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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제작한 가장 작은 싸이즈의 작품 3점. 장희자 기자
작가가 추구하는 조형의 세계와 그 예술의지 방향은 자연과의 융화를 통한 인간성 회복이라는 2018년 작품. 장희자 기자
작가가 추구하는 조형의 세계와 그 예술의지 방향은 자연과의 융화를 통한 인간성 회복이라는 2019년 작품. 장희자 기자
삶의 언어가 미술의 언어가 되는 붓길에서 현실을 넘어서는 영원한 유토피아를 꿈꾸는 시적 상상력을 담지하고 있는 듯하다.
조형과 음악과 시를 아우르는 그림이 음악이 되고 시가 되는 예술의 높은 지점을 향해 항상 정진하는 가장 큰 사이즈 2019년 100호 작품. 장희자 기자
▶프로필
중앙대 회화과 계명대 교육대학원 미학박사
무등미술대전 운영심사 초대작가
신라미술대전 운영심사 초대작가
신조형미술대전 운영심사 초대작가
경북미술대전 운영심사 초대작가
대구미술대전 운영심사 초대작가
대구미술대전 운영심사 초대작가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 심사위원
대한민국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
동국대학교 인문과학대학장 및 명예교수 등
▶개인전 34회
2019. 제34회 최영조 초대전 삶이야기(대구 박물관 휴르)
2018. 제33회 최영조 초대전 흔적에서(대구 봄갤러리)
2017. 제32회 최영조 개관초대전(대구 인슈바빙갤러리), 제31회(대구 봄갤러리)
2014. 제30회, 제29회 최영조 전(대구 갤러리아르페지오네)
2010. 제28회 최영조 초대전(서울 리서스갤러리)
2008. 제27회(뉴욕 스페이스월드), 제26회(동제미술관) 제25회(북경 명흥예술센터) 제24회(북경 항공대학미술관)
2007. 제23회(일본 컨벤션센터), 제22회(LA 아스트갤러리) 제21회(갤러리본기획) 등 입니다.
▶수상
2008. 대한민국 홍조근정훈장
2012. 제33회 신라미술대전 초대작가상 수상
2009. 제16회 의성군민상(예술부문)수상
2005. 제26회 대구미술대전 초대작가상 수상
2002. 제17회 한국교육미술협회 미술교육상(예술부문) 수상
2002. 제14회 경주시문화상(예술부문) 수상
1996. 제27회 경상북도 문화상(조형예술) 수상
1992. 문예한국(시와 의식) 시부문 신인상 수상
1979. 제5회 경상북도 미술대전 특선(대구시민회관)
1978. 제4회 경상북도미술대전 특선(대구시민회관)
1977. 제2회 창작미술협회전(서울 국립현대미술관)
1976. 제3회 경상북도 미술대전 특선(대구 시립도서관)
1975. 제2회 경상북도 미술대전(대구 시립도서관)
1965. 제1회 대한민국 민전(부산 동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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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자 기자
janghj7080@naver.com다른기사 보기
간과 자연의 융화를 꿈구면서 그에 대한 명상을 일관되게 그림으로 풀어내어오고 있는 2010년 작품. 장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