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 3막 15장(3부)
하교길 집으로 가는 방법은 서대문 로타리까지 걸어가서 전매청 건너편에서 마포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었다.
날씨가 좋을시에는 북아현동 굴레망다리를 지나 몇 정류장을 한없이 걸어가기도 하였다.
그리고 서대문로타리 국제대학 골목길 리어커에서 팔던 군만두가 그리워 종종 사먹기도 하였다.
리어커를 개조하여 만든 철판위에 기름을 치고 세손가락 만한 만두를 구울시는 허기진 배가 요동을쳤으니 말이다.
한개에 10원 하는 군만두를 식초간장에 찍어먹을시는 왜 그렇게 맛있는지 매일 그곳을 지나며 단골이 되고 말았다.
한참 먹어야할 청소년시절 이렇다하게 군것질 거리가 없을때니 군만두는 내 평생 잊지못할 맛이었다.
모자를 푹 눌려쓴 주인아저씨는 요리솜씨가 좋은 길거리 세프같았다.
어찌 군만두를 맛있게 구웠는지 지금 어느곳에서도 그 맛을 찾을길이 없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그리고 두번째 하교길은 체력 단련의 일환으로 선택한 방법이었다.
295m의 안산을 가로질러 충현동까지 걸어가는 것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가구의 거리까지 산을 가로질러 걸어온 것이다.
안산은 지금 생각하면 동네 뒷산 같았으나 그당시에는 웅장해 보였다.
학교는 안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으니 10여분 오를시면 안산 정상에 도착되고 학교 교정이 산아래 펼쳐지고 건너편 인왕산 사이로 무악재 길이 펼쳐지고 있었다.
독립문도 또렷이 보였고 불량배들이 득실대는 대신고등학교가 보였다.
산 정상길은 평탄하게 이어졌고 나무가 없어 조망권은 좋았다.
이름없는 야생화들이 띄엄띄엄 보였고 키가 낮은 소나무들이 열심히 자라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안산의 전경이 왜 이러도 기억날까?
동네 야산같이 조그마한 산이건만 지금도 그때만 생각나면 즐겁기만 하다.
맞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정복한 산이었고, 그길에서 보인 전경이 신천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나는 뚜벅뚜벅 산길을 걸었다.
그리고 20분후 학교 반대편인 충현동 가구의 거리쪽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아현초등학교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것이다.
세상천지 서울의 중심부에서 산을 넘어 하교한 사람은 흔하지 않을 것이다.
고향의 뒷산처럼 느껴지며 포근하고 정답기만 한 안산.
볼품없는 야산이건만 무엇이 나로 하여금 수십년이 지난 오늘도 생생하게 기억나는걸까?
나는 궁금증을 풀기위해
몇년전 안산을 탐방하니 중학교시절 거닐던 오솔길은 그대로 였다.
그러나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격세지감에 아파트로 들어찬 산아래 전경은 을씨년 거렸건만, 그당시 오솔길 옆에 있던
조그마한 소나무는 어느덧 듬직한 어른 소나무가 되여 나를 반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