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는 내 두 귀를 열어주셨습니다.
주님은 제사나 예물도 기뻐하지 아니합니다.
번제나 속죄제도 원하지 않습니다.
[시편 40:6]
시편 40편 6절의 말씀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제대로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올리고 싶다면, 먼저 잘 듣는 일이 중요하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두 귀를 열어 주셨다.'고 고백한다.
주님께서 열어주신 두 귀로 들은 말씀은,
'주님은 제사나 예물, 번제나 속죄제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로마서 10장 7절의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는 말씀과도 연결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어떻게 들려주시는가?
잠언 1장에 따르면 누구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고 핑계하는 일이 없도록 성문에서, 큰 길가에서 외친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셨다.
단지,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있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순종과 불순종의 기준은 그 분이 들려주신 말씀을 제대로 듣고 삶으로 살기 위해 힘쓰는지 여부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면 제대로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상태가 바로 '귀 먹은 것'이다.
문제는,
귀 먹은 이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 듣고 있다고 착각하고 열심을 낸다는 것이다.
조금의 머뭇거림이나 고민도 없이 무조건 "아멘!"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망령되게 한다.
이런 현상은 성경을 문자로 보는 근본주의자들에게서 많이 보인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상과 거짓 신들을 섬기는(4)'는 저주받은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가 내 머리털보다도 더 많기에, 나는 희망을 잃어버렸습니다(12)." 자복할 줄 모르고, 어디서 기인한지도 모르는 구원의 확신에 가득차서 다른 이들의 신앙과 믿음을 판단하는 자리에 서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의 판단은 한결 같지 않다.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편 40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그의 말씀을 들을 두 귀가 열렸는가?' 돌아본다.
주님, 나의 눈과 귀를 열어주십시오.
제대로 보고 듣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제대로 말하게 하십시오.
제대로 보고, 듣고, 말할 때 조롱하는 이들이 수모를 당하게 해주십시오(14).
시인은 아직도 고난 중에 있다.
그래서 "빨리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22)"라고 간구한다.
그 구원의 길에 서는 자는 복되다.
그 길에 서려면 들어야 한다. 한결같은 그분의 신비스러운 말씀을 들어야 한다.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건만,
다 듣고 본 것처럼 말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이들이 거꾸러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