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김재산(金在珊) - 민족의 제물이 되어
3. 8·15와 6·25를 예견하고
1 내가 교회에 나간 것은 스물한 살 되던 해 정월부터였다. 그때 나는 교회에 가서 얻어지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교회에 바치는 성미나 십일조 생활은 철저히 했다. 이로 인하여 한번은 남편에게 모진 매를 맞고 빈사상태에서 입신(入神)한 일이 있었다.
2 천사들의 인도로 영계에 이르니 3층 집이 있는데,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성경을 보고 계시고, 후원에는 하늘폭을 주름잡아 놓았는데, 하나씩 보여주는 꽃 세계가 비할 데 없는 황홀경이었다. 그 세계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는 기쁨만의 세계였다. 내가 깨어났을 때는 입신 4일째였다.
3 그 당시 나의 관심은 이 나라 이 민족은 너무나 불쌍하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밤이면 12시부터 목욕하고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배고프고 고생하는 이 민족에게 이 고난을 면하게 해달라고 밤낮 기도생활을 하는데, 한번은 내 손에서 지구가 돌아가고 세계지도가 환상으로 보였다.
4 우리나라가 언제 해방이 되어 독립을 할 수 있는지 하나님께 물으니 먼저 독일 지도에서 회오리바람이 일어나고 바람은 다시 중국 쪽으로 가서 한참 돌더니 일본으로 가는 환상을 보여주셨다.
5 다시 하나님에게 “우리나라의 해방은 언제쯤 됩니까?” 하고 물으니 8월이라고 응답해 주셨다. 또 우리나라의 임금은 어디서 어떻게 준비되었는지를 물으니, 동쪽 하늘에서 서광이 서울의 대궐로 비추면서 거기에는 눈부신 하얀 구름이 있고 그 밑에는 내가 존경하는 정 장로님이 단장을 짚고 대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또 임금이 다른 나라에서 있다가 오지만 그분은 한국인이라고 했다.
6 해방을 맞이한 이 나라가 온통 떠들썩하고 있을 때 나는 또 6.25 사변이 일어나리라는 계시를 받게 되었다.
7 하늘에서 3년을 두고 그리스도요 반석으로 상징하는 돌이 3분의 1씩 우리 집으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 집에는 연자맷돌 밑돌이 있었는데 그곳에 예수님이 계시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오셔서 전쟁이 나게 되면 피난처는 부산이니 그곳으로 가라고 세 번씩이나 말씀하셨다.
8 그 후 나는 이 민족의 갈 길이 걱정이 되어 밤낮없이 기도를 했다. 남편에게는 집을 팔아 가지고 부산으로 이사 가자고 했지만, 나의 말은 아예 아랑곳하지 않았다.
9 드디어 6·25 사변이 발발했다. 동두천과 부평으로 적들이 쳐들어오는 데도 하늘 법은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주일예배를 위해 교회에 갔다. 교인들이 2천여 명이 모였는데, 스탈린이 창문으로 들어오더니 강대상에 버티고 서는 환상을 또 보았다.
10 그날은 목사의 설교가 또 왜 그렇게 길까. 예배는 보고 있었지만 마음은 안절부절못하였다. 예배가 끝난 후 제직회가 있었다. 대지를 사서 좁은 교회를 넓히기 위해 계약을 한다는 것이다. 전쟁이 나는 판국에 무슨 교회를 새로 넓힐까 하는 생각에 그 계약이 무효화되기를 기도하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11 집에 돌아와 보니 벌써 피난민이 우리 집에 가득했다. 우리 집이 피난처인 줄 알고 친정과 남편의 부모 친구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우리 집은 피난처가 아니고 부산이 피난처이니 빨리 돌아가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왔다.
12 그는 이제 다 죽었느니 망했느니 하면서 허둥지둥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신랑이지만 ‘사탄아 네가 죽을 짓 밖에 더 했더냐, 내가 부산으로 이사 가자고 할 때, 그때 나에게 비양심적이니 뭐니 해놓고 이제 와서는 살겠다고 차에다 물건을 싣고 야단이냐’ 하며 중얼거렸다.
13 옥수동 강가까지 가니 한강 다리는 이미 끊겼고 나룻배가 왕래하는데 온통 피바다였다. 집에 돌아오니 온 집 온 살림은 쓸어가고 온 동네가 불덩이가 되었는데 우리 집만 남아 있었다. 남편은 성동구청에서 나오라고 하여 가고 없고, 교회에 다니는 아기와 국민학교 3학년짜리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
아ㅡㅡ주ㅡㅡㅡ
감사합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