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방은 목회자가 신자 가정을 방문하여 위로와 권면을 하는 행위로 목회실무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심방은 목회자와 신자 간의 인간적 만남이며 인격적 사귐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보편적으로 성직자에 대한 기대가 높이 때문에 평신도가 목회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높다. 따라서 목회자는 심방할 때 몇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첫째, 자신의 무력감을 보이지 말라. 둘째, 자기 신분의 신성감을 유지하라. 셋째, 신자의 말을 많이 들어주라. 넷째, 어떤 사건에 대해서 과장해서 말하지 말라. 다섯째, 모든 일에 믿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라. 여섯째, 항상 겸손하라. 일곱째, 언제나 미소를 잃지 말라. 여덟째, 예의를 갖추라.
심방을 잘하면 상호 유익이 있으나 잘못하면 오히려 상처를 주게 된다. 그러므로 심방은 목회의 일환으로 그 중요함을 인식하고 성령의 인도함에 따라 많이 기도하고 준비해야 한다.
가정은 교회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현장이다. 이는 교회와 가정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정이 평안하고 모든 일이 잘 될 때, 필연적으로 교회도 평온하고 형통하게 된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심방의 중요성을 생각하여 봄과 가을로 나누어 대심방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심방이 자칫하면 요식행위로 별 성과를 내지 못하는 수도 많다. 심방을 기계처럼 교회의 목회 프로그램의 하나로 생각하여 무의미한 방문으로 행한다면 심방의 본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이며 실패한 심방이 될 것이다.
나는 강릉교회에서 목회할 때 심방에 역점을 두었다. 가정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가정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모든 가정을 한번 방문하는 것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 당시엔 버스도 없었고 승용차는 더구나 볼 수 없는 때였다. 그래서 순전히 걸어서 심방을 해야 했다. 보통 오전 10시에 교회를 출발하면 오후 4시경에 돌아오는데, 3-4가정 방문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전 교인의 집을 방문하려면 발이 부르틀 정도로 돌아다녀야 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심방대원은 박신정 집사와 박인정 집사다. 이들은 하루종일 걸어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열심히 같이 심방했다. 심방을 해도 대접하는 집이 거의 없어 나중에는 심하게 허기가 졌다. 그래서 한 번은 같이 다니는 집사에게 물었다. “멀리서 자기들 집을 찾아가 심방을 하는데, 주의 종들에게 대접하는 분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에 계시던 목사님이 부임하셔서 심방할 때 성도들 가정에 부담을 주거나 폐를 끼치면 안 되니 대접을 받지도 말고 하지도 말라고 교회 앞에서 선언하셔서 그 후는 대접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간 궁금해하던 것이 풀어졌다. 하지만 이것은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직접적으로 지적하면 선임자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 되어 조용히 깨닫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뒤 심방을 하고 나오면서 물을 청해 받아들고는 간절히 축복기도를 해주었다. 그리고 대접에 대한 설교를 했다. 그다음부터 교인들의 태도가 바뀌면서 심방을 하면 정성을 다해 대접하기를 즐겨했다.
또 심방을 하면서 주님의 기적도 함께 일어났다. 회갑이 지난 박신정 집사는 해수병으로 겨울이 되면 항상 수건을 몇 겹 두르고 지내야 했다. 그런데 심방을 열심히 오랫동안 다니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건을 다 벗고도 바닷바람이 혹독하게 부는 겨울 심방도 넉넉하게 해냈다. 그는 어느 날 수건을 걸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고 해수병이 다 없어진 것을 확신했다. 그는 물론 가족들과 교인들도 모두 기뻐했다. 이때부터 심방을 같이 다니기를 원하는 성도들이 많아졌다. 그동안 목사에게 끌려다니던 성도들이 이제는 목사를 끌고 다니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목회와 심방은 동질인 것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는 굳게 믿고 있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믿음을 가지면 전 가족이 믿고 구원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심방은 이러한 구원사역에 촉매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목회자는 심방을 절대로 소홀히 하지 말고 유의하여 유익한 심방을 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