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녹색당 정책위 브리핑]
자동차가 지하로 다니면, 도시와 우리는 행복해질까?
서울녹색당 정책위원회
싱크홀. 여러 원인으로 지하에 생긴 빈 공간에 의해 땅이 갑자기 꺼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초미세먼지, 기후변화와 같이 최근 몇 년 사이에 익숙해진 단어 중에 하나입니다. 2010년 435건, 2011년 573건, 2012년 689건, 2013년 854건, 2014년(상반기) 568건의 싱크홀이 발생했다고 서울시는 발표한 바 있습니다. 도로함몰의 관리기준이 바뀐 2014년 7월 이후, 표면적으로 드러난 싱크홀 건수는 줄어든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2015년 발생한 싱크홀은 56건입니다. 서울시의 관리기준에 들어가는 공동의 크기가 4㎡ 이상인 싱크홀이 1년 사이에 56건 집계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내용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568건이 7건으로? 서울시의 수상한 싱크홀 통계” http://www.opengirok.or.kr/4411)
공개된 자료에서 싱크홀 발생 건수가 서울시 총 25개 자치구 중에서 월등히 많은 자치구가 있습니다. 바로 송파구입니다. 2010년부터 2014년 7월까지 발생한 싱크홀 2,626건 중 860건이 바로 송파구에서 발생한 도로함몰입니다. 전체의 32% 이상을 차지합니다. 서울 전역에서 일어난 싱크홀 중 1/3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전문가들은 싱크홀의 주 원인으로 노후 하수관을 지목합니다. 서울시 지하에는 10,000km에 가까운 하수관이 매설되어 있는데, 이 중 3,000km는 50년이 넘은 노후 하수관입니다. 30년 이상 된 하수관은 5,030km로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합니다. 그렇다면, 유독 송파구에 노후한 하수관이 많기 때문에 서울에서 발생한 싱크홀의 1/3이 송파구에서 발생한 것일까요? 전문가들은 9호선 공사와 제2롯데월드 공사를 송파구에서 싱크홀이 집중적으로 발생할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상수와 변수, 그리고 결과를 논리적으로 나열하면 충분히 개연성 있는 설명입니다. 언급한대로 서울에는 10,000km가 넘는 하수관이 매설되어 있고, 도시가스와 지하철 등 다양한 기반시설이 지하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심 도로 안의 지반 상황, 상하수도의 위치 등에 대한 체계적인 지하구조물 지도가 없다는 것이 서울시의 현주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설사들을 지하공사 시 일단 굴착을 하고 본다는 것이 업계의 관행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조심히 굴착해서 매설된 기반시설을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들, 그러한 시공의 결과가 5년 뒤, 10년 뒤 지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며, 주변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도 우리에게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매년 제2롯데월드 시공 이후 석촌호수에서 15톤 이상의 물이 추가로 사라지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그 누구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천붕지괴(天崩地壞)”,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는 의미의 이 말은 쓸데없는 걱정을 은유적으로 칭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땅이 꺼진다는 것이 쓸데없는 걱정을 비유할 수 있는 현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도시는 도처에서 땅이 꺼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와중에도 서울시는 지하공간을 활용해서 도로를 확장하는 계획을 만들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서부간선도로, 동부간선도로 등 서울의 규모 있는 간선도로들을 지하화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며, 신월동과 여의도동을 잇는 구간에 제물포터널을 만들어 기존 상부공간을 친환경공간으로 조성하겠다는 모순적인 계획 역시 추진 중입니다. 이미 9개 노선의 지하철이 종횡으로 관통하고 있는 서울의 지하에 추가로 간선도로 역시 지하화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일단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서부간선도로의 경우 성산대교 남단에서 금천IC까지 10.33km 구간, 동부간선도로의 경우 월릉IC에서 삼성동까지 13.9km의 구간입니다. 게다가 대심도(터널공법으로 지하 50m 이하의 위치에 도로나 철도를 건설하는 방식)입니다. 서부간선도로는 80m 깊이에, 동부간선도로는 60m 깊이에 도로를 만들 예정이라고 합니다. 80m는 30층 건물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대심도는 이미 알려진대로 안정성이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화재 등 재난에 매우 취약하며, 지진 등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재난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거의 없습니다. 그 뿐 아니라 다수의 환기시설이 필요한 것도 큰 단점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 해 착공해 들어간 서부간선도로와 제물포터널의 경우, 인근 주민들과의 소통 없이 공사를 진행하다가 환기구 공사를 통해 공사의 실체가 알려지며 논란이 된바 있습니다. (관련하여 한겨레 칼럼 “박원순표 매연굴뚝/홍은전”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3375.html 을 함께 읽어보시죠.) 심지어 그렇게 만들어진 도로는 민자사업으로 건설되기 때문에 통행료를 받는 유료도로가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동부간선도로의 경우, 가장 깊은 위치에 민자사업으로 유료도로를 만들고, 그 위에 공공의 재정을 투입한 재정사업도로를 추가로 만들겠다는 계획입니다.
왜 그 깊은 지하에, 심지어 기본적으로 환기구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자동차 도로를 만들겠다는 것일까요? 그 도로의 건설로 야기될 주변 지대의 안전문제, 사람들의 삶의 질 문제, 생태계의 변화 문제에 대한 검토도 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서울시는 이와 같은 사업의 가장 큰 명분으로 당연히 ‘교통체증’의 해결을 꼽습니다. 그리고 덩달아 친환경적이지 않은 자동차를 지하로 보내면서 지상공간을 ‘친환경적’으로 만들겠다는 부수효과까지 노리는 듯 합니다.
독일의 수학자 디트리히 브라에스는 새로운 도로건설이 오히려 교통정체를 악화시킨다는 내용을 주장한바 있습니다. 이 주장을 우리는 ‘브라에스의 역설’이라고 부릅니다. 이 주장의 구체적인 검증과 주장의 성립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우리의 경험 속에서 검토해봤을 때도 도로의 증가가 서울이라는 도시의 교통체증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우리는 지난 정책위원회 브리핑을 통해 서울의 도시계획시설 중 도로의 집행률이 공원이나 녹지 등의 집행률에 비해 월등히 높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도 있습니다.
서울녹색당 정책위원회는 앞으로 서울의 지하를 더 유심히 관찰하고, 서울시의 각종 지하관련 계획을 모니터링하며, 정책적 대안을 만드는 작업을 해보려고 합니다. ‘차가 너무 밀린다.’, ‘도로의 소음이 시끄럽다.’, ‘도로가 지역사회를 분리시킨다.’ 등의 불편을 해소시키는 방식이 ‘지하에 도로를 건설한다.’만 있을리 없기 때문입니다.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의 복잡한 생태계와 기후의 변화를 상수로 두고, 그런 상황에서 가장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생태사회주의자 앙드레 고르스의 책 한 구절을 인용하며, 이번 서울녹색당 정책위 브리핑을 마무리합니다.
“무엇보다도 교통문제만 따로 떼어놓고 제기해서는 절대 안 된다. 언제나 교통문제를 도시문제, 노동의 사회적 분할 문제, 그리고 노동의 사회적 분할이 존재의 다양한 차원에 도입한 구획화-첫째, 일할 장소, 둘째, ‘거주할’ 장소, 셋째, 생필품 마련의 장소, 넷째, 학습할 장소, 다섯째, 오락을 위한 장소, 이런식의 구획을 짓는 것-의 문제와 연결시켜야 한다.” (앙드레 고르스, 「에콜로지카」, ‘3장 자동차의 사회적 이데올로기’ 中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