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이참설(誡以讒說)-거짓으로 꾸며 남을 헐뜯으며 고하는 일을 경계하라(2) 이상호(소소감리더십연구소 소장) 1. 끝없는 참설(讒說)의 시대 참설(讒說)이란 거짓으로 꾸며 남을 헐뜯으며 윗사람에게 고하여 바침으로 그를 곤경에 빠뜨리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이다. 여기서 참(讒)은 ‘참소할 참’으로 ‘참소하다, 해치다, 중상하다, 거짓말하다, 큰 소리치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설(說)은 ‘말씀 설’로 ‘말씀, 말, 도(道), 도리(道理), 말하다, 이야기하다, 서술하다, 논하다, 해석하다, 타이르다, 교육하다, 변명하다’의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옛말에 ‘죄지은 놈이 큰 소리친다’고 하듯이 참설하는 자들은 진실을 말하고 정의를 부르짖는 자들 앞에서 더 크게 소리치며 더 당당하게 위세를 부리며 집요한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야 자기들 주장의 정당성을 인정을 받으며 거짓을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참설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역사가 왜곡되었다. 한 나그네가 사막을 여행하다가 눈을 아래로 내리감고 있는 한 여인을 만났다. 나그네가 여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시오?” “나는 진실(알레테시아)입니다.”하고 여인이 대답했다. 나그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마을을 떠나서 사막에 살고 있습니까?” 여인이 다시 대답했다. “제가 이 사막에 있는 이유는 처음에는 마을에 거짓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몇 명 안 되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자 거짓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많아져서 어디를 가든 거짓말하는 사람들만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말을 나누었던 마을 사람들도 모두 거짓말쟁이들이랍니다.” -이솝 우화의 <나그네와 진실>-
세상에는 온통 거짓말쟁이가 넘치고 있다는 처참한 현실을 대변하는 우화다. 거짓말은 권력과 이익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그 거짓말로 사람들을 농락하고 죽이고 곤경에 빠뜨린다. 우리가 사는 오늘의 현실이 그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연일 외쳐대는 정치적 구호들, 매일 날아드는 유튜브 영상들, 특히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각색되는 사건들에 진실은 얼마나 담겨 있을까? 거짓말을 창조하는 참설 자들은 각자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진실을 감추고 거짓을 부풀리고 축소하기를 반복한다. 그들은 거짓을 얼마나 부풀리고 얼마나 축소하고 있을까? 그 정치적 구호들에 사람들은 편을 갈라 거품을 물고 비난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정치적으로 갈라져 서로 비난과 공격을 일삼는다. 이러한 현실에서 진실한 세상을 바라는 사람은 이솝 우화의 그 여인처럼 사람들이 전혀 없는 사막에서 눈을 내리감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비애도 느껴진다. 참설은 옛날에는 윗사람인 왕이나 상관에게 가하므로 정적이나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을 탄핵하는 도구가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오늘날은 특정 정치 집단과 세력을 강하게 비방하므로 국민이 그들을 경멸하게 함으로 그들에 대한 지지 기반을 흔드는데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선 그것을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활용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면서도 무엇이 어디까지 진실인가를 감당하게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런 일들은 옛날에도 심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옛 성현들도 늘 입과 혀를 조심하라 하였으며 특히 참설을 멀리하고 참설하는 자를 경계하라 하였다. 홍만종도 <순오지>에서 청참시(聽讒詩)를 예로 들며 참소하는 것을 경계할 것을 주문하였다. 2. 홍만종이 청참시(聽讒詩)에서 강조하는 계이참설(誡以讒說) 홍만종은 사람을 타락시키고 사람을 버려 놓은 것은 참설보다 더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홍만종이 말하는 청참시(聽讒詩)를 보자. 讒說愼莫聽(참설신막청) 참소로 하는 말은 아예 듣지도 마라 聽之禍殃結(청지화앙결) 그 말을 들으면 재앙으로 결론이 나느니 君聽臣當誅(군청신당주) 임금이 그 말을 들으면 신하를 반드시 죽이게 되고 父聽子當訣(부청자당결) 아비가 그 말을 들으면 아들과도 반드시 영결(永訣)하게 되네 夫妻聽之離(부처청지리) 부부간에 그 말을 들으면 서로 간에 영원한 이별이 생기고 兄弟聽之別(형제청지별) 형제간에도 그 말을 들으면 헤어지게 되네 朋友聽之疏(붕우청지소) 친구 간에 그 말을 들으면 서로 소원(疏遠)하게 되고 骨肉聽之絶(골육청지절) 골육간에 그 말을 들으면 서로 끊어지고 말 것이니 堂堂八尺軀(당당팔척구) 당당하게 8척이나 되는 몸둥이에 莫聽三寸舌(막청삼촌설) 3치밖에 안 되는 혓바닥을 믿지 말라 舌上龍泉劒(설상용첨검) 혓바닥 위에서 용천하는 저 칼날은 殺人不見血(살인불견혈) 사람을 죽이고도 피도 나지 않네 홍만종에 의하면 이 시는 지은이를 알 수 없지만, 참설을 경계하는 시로 많이 전해져 왔다고 한다. 위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면, 임금에게 고하는 참설은 역모를 거짓으로 꾸민 것들이요, 아비에게 자식을 참설하는 일은 이웃 사람들이나 형제간에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부부간의 참설은 가장 많은 것이 외도를 꾸미거나 은밀히 고하는 일일 것이다. 삼국지에서 동탁을 제거하기 위해 여포와의 한 여인을 두고 질투심을 유발한 참설이 있었다. 그 일로 동탁은 여포에게 죽게 된다. 형제간의 참설은 왕가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골육상쟁을 부르고, 일반 서민들에게도 원수지간으로 만들게 된다. 친구 간에도 참설하는 자는 이간질하여 영원히 헤어지게 하고 친척간에는 원수지간으로 만든다. 이 시에 의하면 참설은 인간사 모든 영역에 파괴를 가져오는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이 사회에 그런 유형의 참설이 넘쳐나니 세상에 안정될 수 없다. 참설은 정치, 사회의 안정은 물론 각 개인의 삶의 평화까지 헤치게 되는데 사람들은 그 큰 8척이나 되는 몸에 있는 3치 혀를 함부로 놀려 엄청난 살인을 저지르고 사람 관계를 깨뜨리며 심지어는 세상을 파멸로 이끌게 된다. 그러니 8척의 몸이 아니라 3치의 혀를 경계하며 믿지 말라는 것이다. 그 혀가 얼마나 잔인하고 강한지 사람을 죽이고도 피도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요즈음도 사람들은 그 무서운 참설의 혀를 두려움 없이 마구 놀리는 경우가 많으니 세상이 어지럽다. 3. 참설이 부른 위험한 사건들 가. 에드가 매디슨 웰치의 총기 난사 사건 에드가 매디슨 웰치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샐리스버리에 사는 28세의 가장이었다. 그에게는 아내와 두 딸이 있었다. 2016년 12월 4일 그는 아내와 두 딸에게 볼일이 있다고 말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집에서 6시간쯤 차를 몰아 워싱턴 D.C에 있는 한 피자 가게에 들어섰다. 그에게는 실탄이 장전된 AR-15 반자동 소총과 권총, 산탄총이 들려 있었다. 그는 이날 오후 3시경 피자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AR-15를 난사하였다. 그리고 점포 안에 있는 잠긴 문을 향해 난사했다. 그는 스스로를 영웅이라 했다. 그는 커밋핑퐁(comet pingpong)이라는 이 피자 가게가 국제적인 아동 매춘 조직의 주요 활동무대이고 그 조직의 우두머리는 미국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이라고 믿었다. 웰치는 이 가게 안을 뒤져서 아이들을 구출해 내기 위해 그곳에 갔던 것이다. 웰치는 왜 그랬을까? 2016년 선거를 한 달 앞둔 시점에 FBI 제임스 코미 국장은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에 사용한 개인 이메일 서버 관련 수사를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코미의 수사 재개 선언은 클린턴 측의 수석보좌관 집을 압수 수색해 나온 컴퓨터에서 다수의 새로운 이메일이 있을 가능성에서 비롯되었다. 그 컴퓨터의 주인은 15세 소녀에게 자신의 나체 사진을 여러장 보낸 혐의로 기소되어 망신을 당한 전직 하원의원인 앤서니 위너였다. 위너는 결국 음란물을 미성년자에게 보낸 혐의를 인정했다. 클린턴의 수석보좌관은 위너의 아내 후마 애버딘이었다. 이틀 뒤 ‘뉴욕시경 측 정보’라고 인용한 글이 트윗에 올라왔다. 이 내용은 기밀 자료가 클린턴의 서버를 통과했다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었다. 이 트윗은 내용은 이메일에 힐러리 클린턴이 ‘국제아동 노예 거래 및 성매매 조직’의 중심인물임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이 트윗은 한 주 만에 6,000회 이상 공유되었으며, 유어뉴스와이어닷컴(YourNewsWire.com) 에는 ‘FBI 내부자’가 이미 미국 정부 내 다수의 인물이 소아성애적 성매매 조직에 연류되어 있음을 확인했으며, 현역 의원 몇몇과 당연히 힐러리 클린턴도 포함되어 있다는 기사가 났다. 이 뉴스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그리고 주제:정치(Subject :Politic)라는 웹사이트는 ‘뉴욕 시경’이 클린턴 주거지를 ‘압수수색’해 추가로 결정적인 자료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압수수색 자체가 없었다. 그 후 수사대들이 파고들어 공개한 자료들에는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본부장이자 클린턴의 전진 비서실장이었던 존 포데스타에게 훔쳐서 위키리크스 웹사이트에 게재한 것이 분명한 다량의 이메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아마추어 탐정들이 포에스타 점심 주문서에 숨겨진 암호를 해독한 것이라 믿고 아동성매매(child prostitution)와 머리글자가 동일한 치즈 피자(cheese pizza)로 해독한 설명서를 공개했다. 그리고 ‘핫도그’는 ‘남자 아이’, ‘파스타’는 ‘남자 아동’, ‘소스’는 ‘난교’를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그리고 곧바로 레딧웹 사이트에는 피자게이트(pizzagate)라는 토론 게시판이 생겨 엄청난 토론이 전개되었다. 거기에는 새로운 증거라는 엄청난 자료들이 올라왔다. 이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장되어 유튜브 채널 200여만 명, 트위트 70여만 명 등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어 갔다. 그해 11월 말경 이 사연이 이목을 집중하자 <뉴욕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등 주류 언론들은 그 주장들이 허위임을 폭로하는 기사를 실었으나 무용지물이었다. 오히려 이들 기사를 반박하는 기사와 영상들이 난무했다. 웰치는 이즈음에 그 음모론을 접하고 분노했다, 그는 친구들을 통해 그 피자 가게를 확인하고 직접 응징하겠다며 중무장을 하고 나선 것이었다.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에게 무차별 총기를 난사했다. 물론 뒷날 밝혀진 것이지만 이 사건은 모두 허위였다. 그 가짜뉴스에 웰치는 분노하였으며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엄청난 사건을 저지르게 했다. (이상은 케일런 오코너․제임스 오언 웨더럴 지음/박경선 옮김 『가짜뉴스의 시대』, 반니, 205쪽〜209쪽을 요약한 것임) 나. 요시라 간계 요시라(要時羅)는 임진왜란 때 일본인 간첩이었다. 조선 국왕과 조정은 그에게 속아 이순신과 조선 수군을 파멸로 몰아넣고 나라를 완전히 왜군의 손아귀에 넘길 뻔했다. 요시라에 대해서는 그 이름이 카게하시 시치다유(梯 七太夫)로 추정하는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류성룡이 쓴 징비록에 의하면 왜장 평행장의 졸병이었으며 조선에서 공식 이름은 요시라였다. 그는 대마도 사람으로 조선을 드나들었기에 조선말과 풍속을 잘 알았다. 그는 조선에 왜군의 정보를 누설하여 환심을 샀다. 일종의 이중간첩 활동을 하였다. 평행장은 그런 요시라를 경상우병사 김응서의 진영에 자주 드나들게 하면서 은근히 정을 쌓도록 하였다. 그는 조선에 여러 번 왜군의 정보를 전해준 공으로 1596년에는 조선 조정으로부터 첨지라는 벼슬을 하사받고 관직은 절충 장군에 이르렀다.(나무위키) (*김응서는 당시 왜인들을 수하로 거느리며 적재적소에 투입한 용병술을 활용했던 인물로 알려진다. 그러나 요사라의 간계에 빠지게 되었다) 1597년 요시라는 은밀히 김응서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장수 평행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화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순전히 가등청정 때문이다. 나(평생장)은 그를 매우 미워하고 있는데 아무 날에 가등청정이 반드시 바다를 건너올 것이니, 조선 군사는 수전(水戰)을 잘하므로 바다 가운데서 기다리고 있으면 능히 쳐부숴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결단코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마라’고 하였습니다.”(류성룡 징비록) 김응서는 이 사실을 조정에 알렸고 조정의 의론은 요시라의 말을 굳게 믿었다. 특히 해평군(海平君 윤근수(尹根壽, 중종32년 1537〜 광해군 8년 1616년, 서인의 거두 영의정 윤두수의 아들)는 좋아라고 날뛰면서 이 기회를 놓치기 아깝다고 하며 망설이는 임금께 여러 번 아뢰어 이순신에게 나가 싸울 것을 재촉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선조는 이순신에게 출병을 명하였다.(징비록) 그러나 이순신은 분명히 적군의 간계가 있음을 눈치채고 출병이 불가함을 알리며 출병하지 않고 여러 날을 척후 활동만 하였다. 이를 본 요시라는 마음이 조급하여 다시 재촉하였다. “가등청정이 이미 상륙해 버렸습니다. 조선에서는 어찌 출병하여 요격하지 않습니까?”라고 하면서 거짓으로 후회하고 애석히 여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 사실을 조정에 알리자 조정의 의론은 이순신에게 허물을 돌리고 대간에서는 이순신을 잡아와 국문하기를 청했다 현풍 사람 박성(朴惺, 조선 명종 4년 1549년 〜 선조 39년1606년, 조선문식, 학자)이라는 자도 그때의 여론에 영합하여 상소를 올려 “이순신을 참형에 처해야 합니다”라고 극단적으로 말하자 선조는 명을 내려 의금부 도사를 보내 이순신을 파직하고 잡아 오게 하였으며 대신 원균을 통제사로 삼았다. 그래도 선조는 의심이 되어 성균관 사성(成均館 司成) 남이신(南以信, 조선 문신, 명종 17년 1562년 〜선조 41년1608년, 조선의 문신, 대사간 역임)을 한산도로 보내 상황을 사찰하도록 했다. 남이신이 전라도에 들어가자 군사와 백성들이 길을 막고 이순신의 원통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남이신은 이것을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고 “가등청정이 바다 섬에 7일이나 머물러 있었으니 만약 우리 군사가 출정하였더라면 가등청정을 잡아 올 수 있었을 텐데, 이순신이 머뭇거리는 바람에 그만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라고 보고했다.(징비록) 이에 이순신은 만고의 역적이 되었다. 옥에 갇힌 이순신에게는 사형이 내려졌다. 류성룡은 마음이 조급해졌고 바빴다. 어떻게든 이순신을 살려야 했다. 류성룡은 정탁으로 하여금 상소를 올리게 했다. 정착은 장문의 상소문를 올렸다. 상소문에는 ‘이순신은 비록 왕명을 어겼으나 그동안의 공적으로 봐서도 명장이니 죽여서는 안 됩니다. 군사상 기밀의 이롭고 해로운 것은 먼 곳에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으니 이순신이 출정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무슨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청컨대 너그럽게 용서하시어 뒷날에 공을 이루도록 하시옵소서’라는 간곡한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정탁의 상소문은 선조를 움직였다. 조정에서는 이후 한차례의 고문을 가한 후 이순신을 석방하여 사형을 면하고 관직을 삭탈한 채 그대로 군대에 편입하도록 했다.(징비록) 공에 눈이 어두운 원균은 통제사로 부임하여 이순신이 시행하던 모든 군정을 폐지하고 이순신에게 신임을 받던 부하 장수들도 모두 교체했다. 원균은 온갖 행패를 부리며 거들먹거렸기에 백성들과 군사들의 사기는 떨어졌으며 도망가는 자가 생기고 군율이 문란하게 되었다. 그리고 8월 초순 원균과 휘하의 군사들은 한산도와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여 원균과 이억기는 전사하고 경상 우수사 배설은 달아나서 죽음을 면했다. 특히 원균은 적의 기습을 받고 도망치다가 어디서 죽었는지조차 알 길이 묘연하였다.(징비록) 조선 조정이 요사라 간계에 넘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정쟁 때문이었다. 모든 상황을 정쟁에 유리하게만 활용하려 했던 조선 조정의 당쟁은 전쟁 중에도 진행형이었다. 특히 원균의 지나친 공명심과 오만함은 무모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다가 이순신의 명성에 대한 질투심은 사인들과 공명심에 눈이 어두운 상대 진영의 시기심을 유발하였다. 학자라는 박성(朴惺)도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보다는 조정의 중론에 결탁하여 정치적 편을 들고 이순신을 탄핵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들은 어떻게든 남인과 이순신을 견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것은 당시 왜적들의 이순신 제거라는 목적과 일치되었다. 이순신이 있는 한 왜적들은 조선 바다를 쳐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거짓 정보를 진짜로 확신한 결과는 조선 수군의 괴멸과 나라를 완전히 적군의 손아귀에 넘겨줄 지경에 이르렀다. 조선 조정이 요시라 간계에 속아 넘어간 것은 정쟁이 빚어낸 가짜뉴스에 몰입한 결과가 빚은 엄청난 재난이었다. 다. 링컨의 위험한 결투 미국 대통령은 취임식 때 자기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택하여 취임 선서를 한 후 성경에 입을 맞춤으로써 하나님 말씀에 경외심을 나타낸다 이 의식은 전 재임 기간 가슴에 새기고 명심하여 실천하겠다는 결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이 취임 선서에서 사용한 성경 구절은 마태복음 7:1의 말씀인 “비판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였다. 링컨은 왜 이 구절을 택하였을까? 이 구절은 링컨이 평생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간 문구였다고 한다. 거기엔 어떤 사연이 숨어 있을까?
링컨은 어린 시절 장남이 매우 심하여 사람들을 잘 놀리고 골탕을 먹였다. 그런 행동 중에 특히 누군가를 비난하는 글을 써서 사람들의 눈에 잘 띄게 길거리에 떨어뜨려 놓고 사람들이 그 글을 읽고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했다. 그런 행동은 성장하면서 사라지지 않고 더욱 강화되었다.
링컨이 성장하여 변호사가 되었을 때도 그 나쁜 습관은 이어졌다. 특히 잘난 척하는 사람을 보면 더욱 그런 습관이 발휘되어 그를 꼬집었다. 그런 링컨에게 매우 잘난 척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일랜드 출신의 젊은 정치인 제임스 쉴즈였다. 링컨은 잘난 척하는 그를 골탕 먹이기 위해 그를 비난하는 글을 써서 스프링필드 저널에 익명으로 실었다. 이 글이 지역 신문에 게재되자 쉴즈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가졌던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으며 그를 놀려댔다. 쉴즈는 당황했다. 그리고 글의 출처를 찾아 나섰다.
시간이 흘러 쉴즈는 그 글을 쓴 사람이 링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쉴즈는 흥분하여 곧바로 링컨에게 달려가 결투를 신청했다, 링컨은 쉴즈에게 사과하며 피해 보려 했지만, 분노로 가득 찬 쉴즈는 그 어떤 화해도 받아주지 않았다. 링컨은 큰 난관에 봉착했다. 결투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설령 결투에서 이긴다 해도 자기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이치였기 때문이었다.
링컨은 어쩔 수 없이 쉴즈와의 결투를 위해 검을 잘 쓰는 친구에게 지도를 받으며 결투에 대비했다. 드디어 결투의 날이 다가와 두 사람은 결투 장소인 미시시피 강변에서 만났다. 목숨을 건 결투가 시작되기 적전까지 링컨은 서로의 목숨을 빼앗는 결투만은 피하고 싶었다. 링컨은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중재를 부탁했다. 다행히 쉴즈가 링컨의 사과를 받아들였고 피를 부르는 결투는 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링컨에게 매우 큰 충격임과 동시에 가장 큰 교훈을 안겨주었다, 그는 남을 비방하는 잘못된 자신의 습관으로 인해 큰 화를 자초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링컨은 쉴즈와의 결투 사건 이후로 그 누구도 비방하거나 모욕하는 일을 하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아 칭찬하고 이해하며 그를 높혀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링컨은 평생토록 그 사건을 마음에 새겨 실천에 옮겼다. 링컨은 아내나 주변 사람들이 타인을 나쁘게 말할 때면 그들을 변호하고 감싸주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 그 사람들을 책망하지 마세요. 우리도 그들과 같은 상황에 놓인다면 똑같은 행동을 취할 것입니다.”
위의 글은 <전광 지음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링컨』, 생명 말씀사>의 글을 참고한 것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린 시절부터 잘못된 습관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어느 계기가 되어 곤란에 처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잘못된 습관이 자기에게 치명적인 것이 될 수 있음을 알고도 고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깨달음과 실천이다,
링컨이 깨달은 것은 타인을 비방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대안을 찾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 탕니에 대한 이해와 관용, 칭찬과 존중의 실천이었다. 그것은 링컨을 위대한 정치가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성찰과 깨달음이 있는 자는 성공한다. 위대해진다.
링컨은 말했다.
“타인의 나쁜 점을 말한다는 것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손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상대의 좋은 점을 말하라. 그리하면 자신도 남도 이롭게 되리라” 남의 약점이나 잘못을 과대 포장하여 비방한다는 것도 참설의 일종이다. 링컨은 참설의 젊은 시절 잘못된 습관으로 목숨을 잃고 정치적 생명까지 끝장날뻔했다. 거기에는 링컨의 오만함이 있었다. 그것을 겪은 후 링컨은 겸허함과 진실의 힘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달았다.
4. 참설은 자기 혀를 스스로 자르는 일 참설을 일삼다 보면 최종적으로 타인의 몸이 아닌 자기의 혀와 몸을 자르게 된다. 타인과 세상에 참설을 일삼다 보면 그 자신도 언젠가는 참설을 당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참설 자체가 이미 진실을 외면한 것이기에 자신을 죽여가고 있는 것이 된다. 다음 이야기를 보자 “흰 족제비 한 마리가 대장간의 작업장에 숨어 들어갔다. 족제비는 대장간에서 줄칼을 발견하고 그것을 핧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줄칼을 핥아 댔으니 어떤 일이 생겼을까? 족제비의 햣바닥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하지만 족제비는 그 피를 빨아 먹으면서도 그 쇳조각에서 무엇인가를 핥아먹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족제비는 온갖 상상을 하면서 즐거워했다. 그리고 계속 줄칼을 핥았다. 시간이 흐르자 흰 족제비의 혓바닥은 몽땅 없어지고 말았다. 족제비는 더이상 아무것도 핥아먹을 수가 없었다.”-이솝 우화 <흰 족제비와 줄칼>- 참설을 일삼는 행위는 결국 흰 족제비가 줄칼을 핥고 있는 것과 같다. 계이참설(誡以讒說)을 새길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