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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산에스라 원문보기 글쓴이: 이동기
성경의 힘 - 제119강 말라기
드디어 우리가 구약의 마지막책 말라기를 공부하겠습니다.
구약성경이 우리 교회에 거의 다 바르게 전달이 안 되었습니다만, 그 중에 말라기라는 책도 거의 바르게 인식이 안 되고, 오히려 잘못 가르쳐진 그런 책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라기’ 하면 언필 생각하는게 ‘십일조 하면 복 받는 책이다.’ 거의 그렇게 알고 있죠.
다른 것은 알바 없고 그냥 십일조하면 복 받는다.
전부 그런데에 머물러 버리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고, 매우 유감스러운 그런 잘못된, 매우 잘못된 생각이예요.
여러분 말라기라는 책은 십일조하면 복 받는다 그 말 할려고 쓴 책이 도무지 아니다. 근본적으로 그런 책이 아니예요.
지금쯤 우리가 말라기를 조금 같이 공부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데, 왜냐하면 창세기부터 말라기를 제외한 나머지 책을 쭉 봐왔기 때문에, 이제는 말라기를 이해하면 다 말라기라는 책이 기록된 원 목적 본래 목적을 충분히 이야기 하고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지난번에 우리가 느헤미야서 공부할 때 뭘 봤느냐 하면, 느헤미야라는 분이 아닥사스다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이었는데, 그가 총독자격으로 말미를 얻어온 기간이 얼마였죠? 12년.
여러분 기억력이 대단해요. 보니까..
12년 동안 말미를 얻어서 총독자격으로 왔는데,
아마도 아닥사스다 왕은, ‘이 사람 이게 나이가 몇인데 12년간이나 자리를 비우겠다는 거야? 영 아예 가겠다는 것 아냐? 다시 오지 않겠다는 아냐?’
이렇게 생각했을지 몰라요. 왕으로서는..
그런데 여러분 그 느헤미야라는 분은 그야말로 아주 정확한 사람이야.
12년이면 그냥 12년이지 거기 더하거나 빼거나 하지 않는 거야.
모르긴 해도 이분이 성품상으로 볼 때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정확하게 만 12년 되는 그 날에 왕에게 딱 돌아왔을 거예요.
느헤미야는 성품상 그렇게 하고도 남을 사람이예요.
그래서 12년동안 총독으로 가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저 아닥사스다 왕은 다시 돌아올 것이라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12년 되는 날에 나타나봐요.
얼마나 반갑겠어요? ‘이게 누구야?’ 하면서 ‘느헤미야 아닌가..’
‘왜 이렇게 늙어버렸어? 맛이 팍 갔구만..’
‘밖에 아무도 없느냐?’ 항상 있죠.
‘오늘 주안상을 내 와라. 내가 오늘 느헤미야와 같이 마신다.’
‘이 사람아 역시 술은 자네 술이야..’
그러면서 얼마나 반가워하고 ‘그리고 다시는 가지 마.’
‘역시 자네가 내 곁에 있어야 돼.’
그럴 때 ‘저는 내일 가봐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런 말은 다른 날 해야 돼요. 다른 날..
왕이 너무 반가워하고 어쩔줄 몰라 하는데, 내일 가보겠습니다. 하고 그렇게 매너가 없으면 안 됩니다.
항상 상대방이 기분 좋을 때는 기분 좋은 것을 다 느끼게 가만히 놔두고, 내 이야기는 딴 날에 해야 돼요. 딴 날에..
그런 것을 모르면 사랑을 받지 못하는 거야.
그래서 그 날 참 오랜만에 왕과 함께 있는데,
그러다가 왕이, ‘가만히 있어. 뭐야? 이 사람 봐라. 아니 오늘이 딱 12년 되는 날이구만 그래. 음.. ’
하면서 ‘아이고 이 친구 정말 못 말릴 친구야.’
‘좀 진작에 오든지 하지.. 12년 다 채우고 왔어..’
아마 그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했겠죠.
이런 것은 내 상상입니다. 그냥 느헤미야의 성격이 그렇게 하는 거야.
그런데 문제는 12년 만에 돌아왔습니다만 그 때는 느헤미야도 나이가 상당히 들었고, 에스라는 아마도 천국을 간것 같거든요. 에스라는..
그 어간에..
그래서 느헤미야가 그 날 왕 앞에 물러나왔다가 그 동안 인사할 곳 다 인사하고 그리고 수일 후에 아니면 한 달 두 달 후에 다시 왕을 찾아가서,
‘폐하, 폐하께서 즐겨하시고 제가 목전에서 은총을 입었다면 저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보내주셔서..’
‘뭐야? 또 가겠다는 거야? 그런 거야?’
‘아 이 친구 참.. 뭘 꼭 자네가 가야 돼? 그래? ’
‘에스라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지도자가 없어서 하던 일이 미진한 것도 있고 해서 아마도 제가 가는 것이 적격일것 같습니다.’
‘그 쪽은 아직도 여러 가지 불안점이 있고 미진한 점이 있어서 제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12년 기한을 채우고 왔습니다만 아직도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꼭 가겠다면 내가 말릴 일이 아니지.. 그러나 너무 오래 걸리지 말라고..’
‘내가 노년에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네 정이 그리워서 그래.. 알아듣겠나..’
느헤미야가 거기에서 물러나와서 다시 얼마를 인사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지난번에 느헤미야가 12년 채우고 다시 총독자격을 위임하고 페르시아로 돌아갈 때,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은 떠나는 느헤미야의 뒷 모습을 보면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거야.
12년 간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 좋은 자리에 계시던 분이 그 척박한 땅에 가서 성벽 쌓고 고생하고 자기 사유재산 거기에 다 희사하고..
그리고 다시 갔는데 어떻게 다시 온다고 생각 했겠어요?
그러면서 예루살렘 시민들이 ‘좀 까다롭기는 하지만, 좋은 사람이었다..’
보내놓고는 다 그러죠?
있을 때는 까다롭다고 그러면서..
보내놓고는 구관이 명관이다 그러면서 또 실제로 좋은 사람이예요.
느헤미야는 능히 그런 찬사를 받아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예요.
이분이 저의 목회 자문위원이거든요.
에스라 느헤미야 모르드개 에스겔 다니엘..
저의 목회를 자문하는 분이 80여명 돼요.
모세부터 시작해가지고 여호수아 갈렙 사무엘.. 많아요.
제가 이래도 자문위원이 짱짱합니다. 뒤에서..
열두사도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까 제가 시원찮아도 그런 자문위원들 도움을 받아서, 제가 참 어려울 때마다 느헤미야를 자주 찾아가요.
물어보니까 한국사람중에 나 혼자 찾아온대요.
이 분들은 바쁜게 없어요. 나만 시간내면 항상 거기 있으니까..
참 멋쟁이예요. 느헤미야가..
그래서 그 예루살렘 시민들은 다시 안 올줄 알고 있었는데, 1년이나, 정확하지 않습니다.
1년이나 1년 반이 되어서 돌아온 거예요. 이 사람이.. 다시 총독자격으로..
그런데 아까 얘기했죠.
그 때는 이미 에스라는 세상 떠난것 같다고..
와서 보니까 엉망이 되어버렸어요.
12년 동안 고생했던 것이 별로 의미도 없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어요.
성전에 갔더니 성전에 꽤 규모있는 방 한칸을 어떤 건달놈이 차지하고 있어요.
도비야라고 지난번에 성벽 건축할 때 산발랏과 도비야 이런 사람들이 훼방하고 모략 협박 공갈 중상했던 그 도비야 라는 놈이 방을 하나 떡 내가지고 사무실을 내어서 쓰고 있어요. 미친놈이..
그래서 느헤미야가 가서 ‘뭬야?’ 하고 도비야를 그냥 멱살잡고 들었다 놨다 몇번 하고 마당에 패대기를 치고, 안에 사무실 집기 꺼내어서 불싸질러 버리고 레위인들 제사장들 불러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느냐?’ 하고 호통을 쳤더니..
레위인들이 다 없어지고 나니까 성전 관리가 안 되었다고..
‘뭐가 어쩌고 어째? 레위인들이 다 어디를 갔어?’
살 길 찾아 다 갔다는 거야.
왜 레위인들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떠났느냐? 하고 추궁을 했더니 백성들이 에스라가 세상 떠나고 느헤미야 당신 페르시야로 가고 나니까 지도자도 없고 어른도 없고,
그냥 국민들은 십일조도 안 하고 첫열매도 안 가져오고 하니까,
레위인들은 국민들이 십일조를 내야 레위인이 먹고 살고 그리고 성전 관리도 할 텐데,
아무도 십일조도 첫열매도 가져오지 않으니까 레위인이 먹고 살 길이 없으니까, 살 길을 찾아서 전리로 이리 저리 논밭으로 흩어져 갔다는 거야.
그래서 느헤미야가 그 말을 듣고 그야말로 땅을 치고 통곡을 하면서, 빨리 가서 그 레위인들 다 잡아오라고..
그리고 잡아다가 원래 있던 자리에 전부 다 복귀 시켰어요.
그리고 온 국민들을 불러서 정확하게 정직하게 성실하게 십일조 헌물을 제 때에 하나님께 바치기로 전부 맹세를 시켰어요.
맹세를 시키면서, 만약에 이 언약을 지키는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떨치실찌로다 하면서 옷자락에 묻은 먼지를 털털 털면서 하나님께서 그 기업에서 이렇게 떨쳐낼 것이다. 그렇게 맹세를 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런 이야기가 느헤미야서 끝에 있는데, 빨리 읽어오니까 그런 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읽기 전에 이 설명을 하고 읽으면 보이는데, 읽고 나서 말하면 그런 말이 정말 있었나 하고 잘 몰라요. 사람들이..
그러니까 전에 말씀드린 대로 성경을 1장 1절부터 마지막장 마지막절 마지막단어까지 성실하게 읽어야 돼요. 한 절도 빼면 안 되고..
건성으로 요절만 몇절 빼 다닌다.. 백해무익한 거예요.
요절들이 대개는 이기적인 구절들이예요.
그 책에서 실제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구절이 아니고, 대개 이기적 구절 혹은 써먹기 좋은 구절, 그런 식으로 성경 공부하면 100년 하청이야.
백년을 교회에 다녀도 성경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도 알지 못해요.
책 한권 한권을 성실이 정밀이 온전히 통전적으로 그것도 기록된 본래 목적대로 제대로 문맥을 따라서 역사적 사실 파악을 해가면서 읽어야지, 그게 안 되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에 다녀도 하나님을 잘 몰라요. 실제로..
자, 여기 이 정도는 이해한 후에야 말라기라는 책을 다룰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여쭈어 봅시다.
지금부터는 몇 가지 물어볼텐데, 잘 들어보세요.
그러면 이렇게 해서 회복되면 느헤미야가 또 거기에서 관리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런 대로 유지가 되겠죠. 보니까.. 그렇죠?
지도자가 있으니까..
그러면 느헤미야가 땅에서 영원히 살 수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느헤미야까지 죽고 난 이후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과 영적 생활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느헤미야가 세상 떠나고 나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보나마나 그 십일조도 안 하고 물론 첫열매도 안 드리고, 제사도 다 형식주의 메너리즘에 빠져버리고 그리고 모든 것이 다 귀찮다는 거야.
번폐스럽다는 거야.
그래서 제물을 가져와도 성의없이 애정도 정성도 없이 저는 것 병든 것 눈먼 것 이런 것을 가져와요.
어차피 불살라버리는데 좋은 것은 길러야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불사르면 연기만 올라가면 되지 꼭 좋은 것 바쳐야 되나 하면서..
이런 식으로 하니까, 자 여러분 옛날에 바벨론 포로잡혀 가기 전에는 국민들이 오랫동안 성경 교육이 없었기 때문에, 바알이 하나님인지, 아세라가 하나님인지, 밀곰이 하나님인지, 케모쉬가 하나님인지, 몰렉이 하나님인지, 아스다롯이 하나님인지, 여호와가 하나님인지, 뭐가 하나님인지 도대체 분간할 수 없는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손 치죠.
그런데 바벨론 포로잡혀 가서,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며 천하 모든 신들은 아무 것도 아니며 상천하지에 하나님은 한분밖에 없고 그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 곧 자기들의 하나님이고 전능하신 분이고, 거룩하신 분이고 유일하신 분이다 하는 것을 확실히 다 공부하고 왔어요.
그리고 아시는 대로 에스라 느헤미야때에 7월달에 성경낭독회 성경통독회까지 해서 정말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알아도 진정으로 안게 아니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안게 아니라 머리로만 알았는데, 그나마도 지도자가 떠나 버리고 나니까, 지도자 에스라 느헤미야가 있을 때는 하는 척 하더니 그 지도자가 사라지고 나니까 원점으로 다 돌아가버리고 엉망이 되어 버린거예요.
이렇게 되니까 이제는 정말 하나님이 지쳐버렸어요.
여러분 하나님이 지쳐버렸다는 말을 하니까 저게 무슨 참람한 말이냐 싶죠.
아무리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도, 사랑에 상처를 입어버리면 어찌할 줄 모르는 거예요.
우리는 그동안에 하나님이 얼마나 마음이 상해 있는지 하나님이 얼마나 애가 타는지, 통곡하시는 하나님, 칼을 갈고 계시는 하나님, 지옥을 불을 때고 계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은 상상도 못해 본거죠.
왜냐하면 그 동안에 우리가 너무 달콤한 구절만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한 지에 대해서 한번도 상상도 안 해 본거야.
하나님께서 지금 심정 같으면 말라기서를 쓸 때의 하나님의 심정은 아예 다 어떤 방법이 없으니까, 온갖 방법을 모세부터 말라기까지 하면 꼬박 1천년입니다.
천년을 하나님께서 온갖 방법을 다 해 봤어요.
모세를 보내고 여호수아를 보내고 그 사사를 10여명씩이나 보내고 사무엘을 보내고 다윗을 보내고, 나중에 안 되어서 엘리야를 보내고 엘리사를 보내고..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수많은 예언자를 보내고..
여러분 문서를 남긴 예언자만 그렇지, 비문서 예언자까지 합해봐요. 얼마나 많은 종들을 보내고..
그래도 안 되어서 그래도 안 되어서 결국은 나라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고, 바벨론에 70년 포로생활 하는 가운데 아무 것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는 곳에 가서,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며 상천하지에 유일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한분밖에 없다’는 것을 다 공부하고 그리고 데려와서 성전도 건축하고 성경통독까지 다 해보고..
그러고도 다시 타락해버리니까 이제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아무 길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 심정은 딱 제일 간단한게 다 죽여버리는 거야.
다 진멸해버린다..
여러분 몇번씩이나 하나님이 진멸할려고 했어요.
출애굽할 때 남자만 603,550명이니까 여자 어린아이 다 하면 200만이 넘었을거야.
그런데 바벨론 포로 잡아간 사람은 불과 4600명이거든요.
그 나머지는 다 칼과 기근과 염병에 다 죽었거나 아니면 온 세상 만국에 쩔쩔 흩어놓고 칼이 따라가면서 죽게 만들거나 그렇게까지 진노하신 거야.
그래서 지금 돌아온 사람 해봤자 10만명 안팎 돌아왔을 텐데, 그 사람들이 불어나서 70-80년 지나면 20만명쯤 되었을란가 그런 정도인데, 그 전능나신 하나님께서 20-30만도 안 되는 그 정도 예루살렘이 마음대로 안 되어가지고 다 죽여버릴까 아니면 아예 이혼을 해 버릴까..
그것도 안 되면 하다못해 별거라도 해 볼까..
이렇게까지 마음이 상해있는 그 상황이 그런 분위기가 말라기 시대 이야기예요.
그리고 죽여버리든지 이혼해버리든지 때려죽이든지 별거를 하든간에 마지막으로 한번 만나보고 일을 정리하자 하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마지막 대화, 대화입니다.
마지막 대화처럼 마주앉았는데, 여러분 그쯤 되면 분위기가 많이 무겁고 서로 말하기 싫죠.
그래도 누군가가 말을 먼저 시작해야 돼요. 그렇죠?
마지막으로 만났으니까 누군가 먼저 말을 시작해야 되잖아요
그럴 때 남자가 말을 시작하는 거요? 여자가 말을 시작하는 거요? 남자.
그 때 여자가 뭐하고 있는 거죠?
새파랗게 토라져가지고 빼딱하게 앉아 있는 것이고, 결국은 약한게 남자라. 남자가 먼저 말을 해요.
남자가 뭐라고 합니까? 경험도 없으면 가만히 있어요.
남자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 ‘내 인생이 정말 이렇게 될줄 누가 알았나?’
‘내가 하는 말 당신이 액면대로 다 수용할런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내가 당신을 사랑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렇게 말하면 여자가 그때까지 빼딱하게 앉아있다가 딱 눈 부릅뜨고 대들면서,
‘뭬요? 당신이 나를 사랑했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를 사랑했냐고’ 하면서 덤벼요.
그렇게 덤비면 대답할 남자는 세상에 아무도 없죠.
여쭤 봅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했어요? 안 사랑했어요? (사랑했어요.)
확실합니까?
그런데 때렸어요? 안 때렸어요? 때렸어요.
얼마나? 사랑하면 때리는 거요?
사실 많이 맞았거든요.
죽도록 맞고 한대 더 맞고.. 되지게 맞고 또 맞고.. 허벌나게 맞고 두 대 더 맞고..
워낙 많이 얻어맞았기 때문에 사랑받은 기억이라고는 전혀 없고 얻어맞은 기억은 확실해..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고 말을 시작하는데, 대뜸 그냥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했나이까?’ 하고 덤비니까..
여러분 그 말 듣자마자 하늘이 노란 거예요.
눈 앞이 캄캄하고..
그 한마디가 하나님 가슴에 얼마나 큰 충격과 쇼크를 줬던지..
여러분 그 날 이후로 하나님이 400년간 말을 못해요.
그 충격으로..
모세부터 말라기까지 하나님이 천년을 사랑했는데, 천년의 사랑을 한마디로 묵살해서 ‘ 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그 말을 듣고 나니까 천지가 아득하고 하늘이 노랗고 그냥..
그래서 말을 양쪽 다 입을 열어서 말 하기 시작하면, 네가 옳다 내가 옳다 티격태격 왕배덕배하고, 말로 가지고 계속 말이 빨라지고 언성이 높아지고 숨이 가빠지고 계속 말대꾸하고 그렇게 말로 하면, 여자가 져요? 이겨요? 이겨요.
그러니까 그게 문제라는 거요.
하기사 지면 여자가 아니죠? 그렇죠?
계속 말로 해가지고 여자가 이기면 결과적으로 뭐가 날아옵니까?
마침내 뭐가 날아와요? 주먹이 날아온다.
이것 봐요. 주먹이 날아오면 아직도 애정이 남아있다는 증거야.
주먹은 무슨..
UFO가 날아오는 거야. 미확인비행물체가..
이미 벌써 뭐가 날아오는지 모르는데 눈탱이는 밤탱이가 되었고, 뒤에는 거울이 깨어져서 와장창 내려앉았고, 거울이 깨어지는 것이 파경이야. 파경..
여러분 이 말라기 라는 책을 보면 꼭 그렇게 진행됩니다.
많은 사람이 아직도 말라기라는 책의 분위기도 파악 못하고, 말라기를 펴놓고 십일조하면 복 받는다고 그것을 설교나는 말이라고 하고 있는데, 눈치가 있어야지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죽여버릴까 살려버릴까 할 정도로..
천년의 사랑이 무참히 묵살당해가지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그 날 이후로 400년간 말을 못할 지경인데, 눈치도 없이 거기 쭈그려 앉아서 십일조하면 복 받겠다고 앉아 있어봐.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요? 그게..
여러분 이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말라기라는 책이예요.
저도 멋 모르고.. 똑 같습니다. 저라고 해서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십일조하면 복 받는다는게 거기 있으니까 앞에도 안 보고 뒤에도 안 보고,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그런 소리 하다가,
어느 날 구약성경을 쭉 읽어오다가 하나님께서..
여러분 말라기 펴 보세요. 1장,
[말라기 1장]
1 여호와께서 말라기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이렇게 나오는데 하필 그 때가 어느 때냐 하면, 저로 하여금 이것을 깨닫게 할려고 그랬는지 어떻든 그렇게 하다가 되는지 모르지만, 제가 부부싸움을 해가지고 심각한 상태까지 와서, 우리도 지금 목사만 아니면 몇번 이혼 했을 거야.
그런데 참 목사가 되어가지고 이혼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 있죠?
‘내가 그래도 당신을 사랑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랬더니 집사람이 ‘뭬요? 하면서, 당신이 나를 사랑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했는데?’
그 얘기를 들으니까 하늘이 노란 거예요. 정말..
솔직히 내가 별로 사랑해준 것이 없는 거야. 없어.
사랑도 신혼초에 말이지 사랑이 맨날 무슨 장미꽃에 초코렛 사주는 것 아니잖아.
그저 남편이 저녁에 딴 집에 안 가고 집 찾아오면 사랑하는 거니.. 이렇게 생각해야지..
여성들은 그것으로 만족이 안 되는 거야.
맨날 사랑한다. 예쁘다. 그렇게 해 줘야 되고..
그러니까 맨날 천날 그러니까 어른이 안 되고 사람이 안 되고. .
그래서 수염이 안 나는 거야. 수염이..
하여튼 그 때 우리 집사람에게 그런 말을 듣고 정신이 아득하더라고..
야, 목사가 자기 아내도 사랑하지 못해 놓고 뭘 성도를 어떻게 사랑하며, 나를 그렇게 밤마다 안아주고 품어주고 애 낳아주고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이런 아내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내가 누구를 사랑하겠다는 건가..
내가 정말 사랑했나? 사랑하지 못했나?
그런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있는데, 어느 날 그 즈음에 말라기를 펴서 공부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천년을 사랑해놓고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이 그 모양 되어있을 때에라도 마지막 하나님께서 미련이 남아 있어서, ‘내가 너희를 사랑했노라’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했나이까’ 하니까..
그 뒤에 이어지는 대화도 계속해서 말대꾸 합니다.
여자가 한마디도 안 지는 거야.
우리가 말라기를 길지 않은 책이니까 읽어가면서 같이 봅시다. 같이 느껴 보자고요. 하나님의 심정이 얼마나 상해있는지..
2절,
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
3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4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경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영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5 너희는 목도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경 밖에서 크시다 하리라
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앞으로 보세요. 이스라엘을 천년을 사랑했는데, 천년 사랑의 결과가 이 모양 밖에 안 돼요.
앞으로 보세요.
그 크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나라 강원도 만한 이스라엘 이게 마음대로 안 되어서 천년을 씨름했다는 것 아닙니까?
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원만한 의사소통이 쉬운 것 같아요? 어려운 것 같아요?
어렵다고..
항상 사람이 이기적인 소원이 앞서 있으면 하나님 음성이 안 들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제일 먼저 우리소원 우리욕심부터 내려 놓아야 돼요.
우리소원과 우리욕심이 꽉 찬 사람은 하나님 말씀이 하나도 안 들려.
사람이 살아가다가 그런 것 있죠?
어떤 시인이 말한 것처럼 숲속에 난 두 길처럼..
이 길을 갈까 저 길을 갈까 하다가 어느 한 길을 선택하는데, 그 길 가다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저쪽길로 갔으면 어떠했는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거죠.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택할 때 잘 나서 택한게 아닙니다.
잘난 것들은 하도 교만하기 때문에 세상에 못난 것 세상에 거지같은 것들..
에스겔서 16장 봤잖아요.
길 가다가 누가 풀 섶에다가 계집애를 하나 낳아가지고 탯줄도 안 자른 피도 안 닦은 것 내팽겨치고 가버린 그런 것을 줏어다가 키웠다는 거야.
일부러.. 교만 떨지 말라고..
잘난 체 하는 것 보기 싫어서..
생 거지같은 것 줏어다가 키웠는데, 이것들이 하나님 속을 썩이는 거야.
천년 동안 하나님께서 온갖 정성을 쏟아 부었는데, 끝내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거야.
12절,
12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상은 더러웠고 그 위에 있는 실과 곧 식물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하나님 섬기는 것이 번폐스럽다는 거야.
..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14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라기 2장]
1 너희 제사장들아 이제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노라
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만일 듣지 아니하며 마음에 두지 아니하여 내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려 너희의 복을 저주하리라,
‘복을 저주한다’는 것은 자녀를 친다는 겁니다.
너희 자녀를 저주할 것이다.
.. 내가 이미 저주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라
3 보라 내가 너희의 종자를(자식들을)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이 명령을 너희에게 내린 것은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항상 있게 하려 함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이 ‘레위기’예요. 레위기..
그 언약을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마치 약혼식 서약문 쓰듯이 쓴 책이 바로 레위기라는 책인데,
5 레위와 세운 나의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라,
여러분 레위기라는게 꼭 무슨 죄인을 심히 죄인되게 해가지고 은혜베풀려고만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바울이 나중에 말할 때 결과론적으로 볼 때는 그렇게 되어 버렸다. 하는 말을 했지만, 목적론적으로 볼 때는 레위기가 생명을 주시고 평강을 얻게 할려고 주신 거예요.
원래..
그것을 지키지 않고 결과론적으로만 보니까 인간이 얼마나 못되었는가..
그 복스러운 것도 지키지 않은 것을 볼 때 인간은 얼마나 악한 존재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드러내는 결과만 가져왔다. 그런 식으로 바울이 해석한 것 뿐이지,
처음에 그 레위기를 주신 목적이라는 것은 생명을 얻고 복을 얻는 거예요. 평강을 얻는 거예요.
.. 내가 이것으로 그에게 준 것은 그로 경외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계명과 율례와 법도 레위기라는 책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게 할려고 주신 거예요.
그래서 성경공부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어떻게 공경하고 어떻게 두려워하는가 어떻게 섬기는가. 그것을 배우는 거예요.
우리가 오늘 복음주의적인 어떤 주의(主義)속에 치우치게 되면, 복음주의는 매우 건전한 줄 대개 알고 있지만, 주의(主義)속에 치우칠 때는 복음은 좋은 건데, 복된 소식, 복음 복받는 것 구원받는 것 외에는 나머지는 거의 안 보는데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아주 편협하게 치우쳐 버려요.
무슨 주의(主義)로 기울어지든간에 한 주의(主義)로 빠집니다.
사실은 성경의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나님을 바로 알게 하나님 믿고 마침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데까지 가야 돼요.
맨날 구원받는 그것만 가지고 씨름하지 말고..
하나님을 우리가 경외하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는데, 구원이 문제겠어요? 복받는게 문제겠어요?
그런 것을 배우지 않고 오직 구원받는 교리만 구절만 달달 외우니까 졸속한 신앙이 되고 마는 거예요.
정말 성경을 제대로 배워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고 한다면 뭐가 문제가 되겠냐고..
.. 그가 나를 경외하고 내 이름을 두려워하였으며
6 그 입에는 진리의 법이 있었고 그 입술에는 불의함이 없었으며 그가 화평과 정직한 중에서 나와 동행하며 많은 사람을 돌이켜 죄악에서 떠나게 하였느니라
7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8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많은 사람으로 율법에 거치게 하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파한게 아니고 사람들 편에서 먼저 파기했다는 거예요.
9 너희가 내 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율법을 행할 때에 사람에게 편벽되이 하였으므로 나도 너희로 모든 백성 앞에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10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여 우리 열조의 언약을 욕되게 하느냐
11 유다는 궤사를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호와의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우리가 에스라서 봤죠? 에스라서 보니까 이방 여자들과 결혼했던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방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12 이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속한 자는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 가운데서 끊어 버리시리라
사실상은 그런 식으로 이방신의 딸과 결혼했다는 것은, 어떤 안 믿는 여자가 결혼한 것 그것보다 더 문제가 뭐냐하면, 반드시 그 여자가 자기 친정나라 신을 가져와서 남자를 타락시키고 만다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도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윽박질러대니까 믿는 사람은 수단도 가려야 되고 방법도 가려야 되니까 결국은 강요에 의해가지고 신앙을 팔아먹게 되는 수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여기 이방신의 딸과 결혼했다는 것은 결국은 그들의 종교를 가져오니까 문제가 되는 거죠.
13절,
13 너희가 이런 일도 행하나니 곧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우게 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다시는 너희의 헌물을 돌아보지도 아니하시며 그것을 너희 손에서 기꺼이 받지도 아니하시거늘
14 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찌기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하도다
15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앞으로 보세요.
에덴 동산에 흙도 무진장으로 많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후~’ 불어넣을 영도 많이 있었어요. 그렇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동시 다발형으로 대량 생산으로 인간을 창조하지 않고 하나만 지었다는 겁니다. 하나만..
맞아요?
왜 하나만 지은거죠? 이유가 뭐죠?
성경을 보라니까..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하나만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함이라.
여러분 만약에 여자 따로 짓고 남자 따로 지어서 여자는 여자를 낳고, 남자는 남자를 낳고 그러면 웃길거야.
세상이 남자파 여자파로 갈라져가지고 대한예수교장로회 남자파, 기독교감리회 여자파 이래 나와가지고..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남자를 지어가지고 남자에게서 여자가 나오게..
둘 사이에서 또 한 생명이 나오게 이렇게 한 것은 아무도 서로 남이라 할 수 없게..
혈연으로 사랑으로 그렇게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함이라.
여러분 천사는 그렇게 지은게 아니죠?
천사가 얘를 낳아 본 적이 없잖아요.
아마도 천사는 한꺼번에 천천만만으로 이렇게 대량 생산한 모양인데, 한무더기 그저 타락해버리니까 걷잡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해서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하나만 지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만약에 아내가 둘씩 셋씩 넷씩 되면 경건한 자손 나오기 어려워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못된 남자들이 아내가 조금만 잘못하면 이혼증서만 써주고 쫓아버리고 이렇게 했는데 그런 궤사를 행치 말라는 거야.
그래서 여자관계 남녀관계가 이게 1차 관계, 인간관계중에서 제 1차 관계가 남녀관계인데, 이 관계가 문란해지면 경건한 자손이 안 나와요.
그래서 16절,
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
17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이렇게 떠들어.
[말라기 3장]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2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4 그 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6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3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14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
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1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말라기 4장]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3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이렇게 하고 구약의 문이 ‘쾅!’ 닫히고 하나님이 떠나 버립니다.
대화가 안 되니까..
무슨 말을 해도 꼬박꼬박 말대꾸하고, 자기들 잘못을 깨닫지도 못하고 시인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문을 닫아버리고 떠나서 400년간 어떤 예언자도 보내지 않았습니다.
업어 가든지 물어 가든지 보쌈을 해가든지 나도 모르겠다.
이 가슴아픈 슬픈 대화, 하나님의 천년의 사랑이 일언지하에 묵살당하는데 그런 기가 막힌 책이 말라기라는 책인데, 어떻게 성경을 봤는지 이 책을 가지고 그런 하나님의 심정을 한치도 헤아리지 못하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십일조하면 복 받는다.
이것 보세요. 이것 보세요.
여러분 예수님 오셨을 때에 십일조 땡전 하나 안 떼어먹고 철저하게 바치고 안식일 그렇게 철저히 지키는 바리새인을 향하는 예수님의 평가는 ‘독사의 새끼들’이었어요.
맞습니까?
물론 십일조는 당연히 바치는 것이지만, 십일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되는 것이지, 복 받을 욕심으로 바친다면 그것도 바리새인들 보다 별로 나을게 없다는 거예요.
기껏 우리가 십일조 바치는 목적이 복 받을 욕심으로 바친다면 얼마나 졸속한 신앙이겠어요? 그게..
아무리 십일조 열심히 바치고 안식일 그렇게 철저히 지켜도 너희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는 것을 내가 알았노라. 끝장입니다. 그 길로..
그래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되고, 우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성품이라고 번역되었는데, 히브리어 원문은 네페쉬입니다. 네페쉬. 성품이 아니고 목숨입니다.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또 우리가 율법을 볼 때도 억지로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그런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예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 종교행위에 불과해요.
이 엄청난 이야기가 말라기라는 책인데, 여태까지 교회에 바로 소개가 안 되고, 전혀 하나님의 심정은 전달이 안 되고 기껏해서 십일조하면 복 받는 그것이 요절인것처럼 이렇게 성경이 잘못 전달되고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러한 대화를 더 이어갈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 떠나버립니다.
떠나버리고 그 이후 400년 동안은 공백기간입니다.
세례요한이 나타날 때까지..
여러분 말라기 끝난 자리에서 세례요한이 나타나기 약 400년인데, 세례요한 같은 그런 인물이 준비가 안 되니까, 하나님 뜻이 전달될 길이 없어서 400년간 그 많은 사람들 하나님 음성을 듣지 못한채 어둠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