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하고 장기간동안 요즘 세간에 지천에 깔린 백수일 줄 알았는데 갑자기 임시적으로라도 직장을 구하게 된 덕에 인천에서 홍천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직장을 얻은 것은 좋으나 두 가지 단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수도권에 대부분 몰려있는 여자농구장들과 홍천과의 거리가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제가 사는 홍천읍 주변에 혼자라도 농구를 즐길 실내 / 실외 농구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홍천에서 가까운 곳이 구리시체육관입니다. 홍천에서 용문까지 가는 버스를 탄 다음, 용문에서 중앙선 지하철을 타고 구리까지 가면 걸리는 시간이 1시간 반 정도 됩니다. 그래서 일을 쉬게 되는 일요일에는 꼭 구리 한 번 가봐야지 했는데 마침 일요일에 경기가 있더군요. 이에 주저하지 않고 처음 하는 일에 대한 피로함도 잊고 구리로 갔습니다.
구리로 가기 전 날 인터넷으로 국민은행과 신세계의 경기를 봤습니다. 여기서 국민은행이 졌다면 금호생명이 3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었는데, 금호생명 팬 입장에서는 안타깝게도 신세계의 막판 분전에도 불구하고 국민은행이 승리함으로써 금호생명에 한 게임 반 차이로 앞서가면서 3위를 굳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금호생명에게는 이날 우리은행전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사실, 금호생명이 지난 라운드에 5연승을 달리며 3위를 거의 확정짓는 듯 할 시점에 금호생명이 8라운드에는 주전 선수들에게 한 경기당 최소한 10~15분 정도 휴식시간을 주고, 여유있게 플레이오프를 준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 일이 항상 마음대로는 되지 않듯, 거의 모든 분들이 예상치 못한 국민은행의 막판 초강세는 금호생명 주전 선수들로 하여금 8라운드 마지막 경기까지 최선을 다하게끔 강요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변연하 선수의 국대급을 넘어선 공격과 리딩 능력은 신한은행이나 삼성생명까지 '혹시 이러다가..'라는 예상을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리은행은 금호생명에 비해 여유가 있습니다. 우리은행에 현재 중요한 것은 이번 시즌에 몇 승까지 달성하느냐가 아니라, 다음 시즌에 어느 선수를 언제 그리고 얼마나 쓸 것인지에 관해서 선수들에 대한 모의고사를 치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시즌 동안 '지옥훈련'이 기다리고 있을 손 치더라도 몸이 풀릴 대로 풀린, 페이스가 올라갈 때로 올라간 8라운드의 프로 팀 선수들을 상대로 모의고사를 치른다는 것이 지옥훈련보다 더 효과적입니다.
어차피 다음 시즌에 붙을, 그리고 승을 따낼 대상은 연습 경기 팀이나 자신의 팀의 에이 / 비 팀이 아니라 다른 프로농구단 선수들이기 때문입니다.
금호생명에게는 매우 중요한 경기라 치열한 일전이 예상되었지만 승부는 이미 2쿼터에 났습니다.
경기를 많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금호생명의 공격과 우리은행의 공격을 비교해 본다면 차이를 많이 느끼실 수 있습니다. '짜여진' 공격 성공과 '무리해한' 공격 성공은 크게 차이가 납니다.
우리은행은 지역수비와 대인마크를 병행하며 인사이드의 신정자 - 강지숙 선수와 외곽의 선수들을 동시에 철저히 막을려고 했지만 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느 곳에서든지 빈 공간을 허용하여 쉽게 득점을 허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금호생명의 팔색조의 짜여진 공격을 막기에는 우리은행의 수비는 경기 초반 부족해 보였습니다.
특히 경기 초반에 신정자 선수를 중심으로 한 미세한 패스 성공이 몇 번 나왔는데 그만큼 우리은행 수비의 움직임의 속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반증이 됩니다. 이런 미세한 패스에 이은 높은 슛 성공률을 금호생명은 우리은행을 상대로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앞으로 2~3주동안 이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겠지요.
우리은행은 금호생명과 달리 무리한 공격을 많이 했습니다.
금호생명의 지역수비망에 막혀 픽앤롤에 이은 컷인돌파가 어렵게 되자 공격패턴이 없어지게 되고, 결국 무리한 슛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런 무리한 슛 시도와 성공률 저하가 1쿼터부터 점수차를 매우 크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김계령 선수마저 오늘은 제 컨디션이 아닌 듯 했습니다. 아무리 정 감독님이 "계령이 없이 해봐라."라고 지시해더라도, 김계령 선수의 컨디션 난조는 멀리서도 잘 보일만큼 분명했습니다. 평소의 김계령 선수라면 2쿼터까지 적어도 10득점을 넘겼을 텐데 오늘은 총 8득점이더군요.
정 감독님은 김계령 선수가 컨디션 난조인 것을 미리 알았는지 김계령 선수를 많이 뺐습니다. 이에 금호생명에서도 그렇게도 바라던 주전 선수들의 휴식을 챙길 수 있다 생각하여 2쿼터부터 신정자 - 강지숙 선수를 쉬게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금호생명이 8라운드를 치르면서 꼭 해야될 일들이 이번 경기에서 보였습니다.
신정자 선수가 없으면 점수차가 10점 이내로 좁혀질 줄 알았는데 점수차는 10점차 이하로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홍현희 선수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우리은행은 금호생명에 득점을 너무 쉽게 허용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간만에 홍현희 선수의 부활을 볼 수 있었습니다.
김은혜 선수 이상으로 우리은행에 오래 있었던 홍현희 선수는 최근 존재감이 매우 낮아졌습니다. 긴 부상으로 인해 가진 기본 기량마저도 경기에서 발휘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예전 확률높던 중거리 슛은 링을 매 경기 외면하고, 수준급의 블록은 어디 갔는지 모를 정도로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홍현희 선수는 예전 모습의 반 이상을 보여주며 내년에도 우리은행에서 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홍현희 선수 중거리 능력도 좋고 장신 선수치고 볼 핸들링도 나쁘지 않으며 긴 팔과 긴 다리를 이용한 공격에 능하기 때문에 부상에 대한 공포와 부상에 의한 체력저하만 아니면 내년 '우리은행 돌풍'이라는 기사에서 항상 거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이경은 선수는 이번 경기에서 해설자님 말씀대로 신들린 듯한 슛감각으로 18득점을 올리며 지난 국민은행전에서의 아픔을 어느 정도 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 게시판에서 이경은 선수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그만큼 리그에서 인지도가 놀랍도록 높아졌다는 반증이 되는데, 이 중 부정적인 글을 보면 턴오버 문제와 기복 문제를 꺼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현상에 마음 속으로나마 힘들어했을 것이지만 지난 삼성전에서의 당찬 인터뷰는 이경은 선수가 그런 비난즈음은 개의치 않고 자신감으로 앞으로의 경기를 이끌어 갈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경기에서의 제로에 가까운 턴오버와 박혜진 선수를 상대로 한 기싸움의 승리로 삼성전 이후의 언론플레이에 대한 책임을 다했습니다.
여러 선수마다 자신들의 무기와 팬들에게 보이는 개성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전주원 선수는 나이를 무색케 하는 활약과 깔끔한 매너, 성실함으로 리그의 '전설적 모범선수'의 이미지를 심었고, 김계령 선수는 우리은행 '수호신'의 이미지와 젋은 후배들을 리더쉽으로 잘 이끄는 리더의 이미지로 우리에게 강하게 다가옵니다.
이경은 선수의 리그에서의 매력, 어필점은 자신이 말한 '다크서클'보다도 'G세대다운' 당돌함과 자신감과 경기에서 보여주는 기량발전입니다. 요즘 벤쿠버 동계올림픽에서의 모태범 - 이상화 - 이승훈 선수가 많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88 올림픽둥이'인 동시에 개인주의적으로 보이지만 남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당당한 모습으로 공익을 제공하는 당돌한 G세대라는 것입니다.
87년생인 이경은 선수도 나이는 이들보다 많을 지 모르지만 G세대에 속한다 해도 틀린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전의 선배들과는 다른 매력과 어필점을 이런 좋은 경기들과 경기 후의 인터뷰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프로 선수는 운동실력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많은 생각과 관리도 연예인 못지 않게 중요하니까요.
경기는 내내 뒤집히지 않은 채 11점 차로 금호생명의 낙승으로 끝났습니다.
오늘 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전의 결과를 봐야 금호생명의 3위 탈환 가능성을 알 수 있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신한은행과 플레이오프를 할 가능성도 이제는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신한은행은 연패라는 '망신'을 스스로 택하기까지 하면서 통합우승에 대한 강한 욕심을 패배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패배하는 동안, 모든 팀이 그렇게도 바라고 바라는 우승트로피 획득 가능성을 높여가고 있는 것입니다. 설사 신한은행이 요즘과 같은 선수운용으로 8라운드 전패를 한다해도 신한은행의 통합우승 가능성을 이전보다 낮게 보는 전문가, 팬들은 거의 없습니다.
금호생명이 만약 8라운드 마지막 경기까지 3위 싸움에 '메인다면' 지난 시즌까지의 플레이오프에서 신한은행을 상대했던 모든 팀들처럼 3전 전패 탈락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금호생명은 신한은행과 정규리그에서 좋은 경기를 펼쳐 왔지만 현재 주전 선수들의 체력에서 너무나 현저히 차이가 납니다.
그렇다해도 3위 자리를 완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삼성생명과 상대할 수 있는 이점(?)은 그렇다해도, 3년 연속 3위 달성이라는 팀 자체의 타이틀은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금호생명은 현재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개인적으로, 앞으로 약 일주일 동안 상황이 금호생명에 유리한 쪽으로 '자연스레' 흘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은행의 시즌 막판 '정 박사님(정 감독님 박사 학위라 알고 있습니다)의 실전 실험'은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은행에게 현재 중요한 것은,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같은 패턴에 의한 1~2승 획득보다는 다음 시즌에 쓸 맴버, 옥석을 골라내는 첫 실험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은행은 양적으로 '가드왕국'입니다. 박혜진 - 김선혜 - 김영화 - 이은혜 - 천민혜 선수 등의 가드 자원이 풍부합니다. 이들 가드 선수들을 골고루 기용하며 다음 시즌 질적인 '가드왕국팀'을 만들어낼 구상을 정 감독님이 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2009년 2월 28일, 춘천에서의 삼성생명전을 승리로, 그것도 김계령 선수의 45득점 획득으로 기분좋게 끝낸 우리은행 구단이 경기 종료 후 내건 플랫카드가 있습니다. '다음 시즌에는 달라진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우리은행 팬들은 간절히 이를 올해 바랬지만 실망을 많이 하셨을 것 같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계약 위반이라면 위반인데 내년에는 우리은행 구단이 팬들과의 약속을 4강 진출을 통해 지켰으면 하는 바램이 큽니다.
오랜간만에 관전기를 써서 많이 허접합니다.
많은 지적 부탁드리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