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잔의 카피
오연복
본향은 에티오피아
너의 아명은 카파¹⁾
아라비아 반도에 카베²⁾로 주민등록하고서
카페의 화신이 되었지
선홍색으로 빛나던 커피콩, 네가
매캐한 연기를 머금고
까맣게 타오른 불향으로
산고를 넘어
윤회를 그려낸다
거룩한 다비에 속세의 옷을 벗고
부활의 축배를 점령한다
오스만 제국의 깃발에 스며든
에티오피아의 진갈색 아라비카
아침이면 이웃을 부르던 분나³⁾의 메시지는
유목민이 빚어낸 젖과 꿀을 머금어서
비엔나⁴⁾ 라는 이름으로
알프스 자락을 커피 빛으로 물들였지
한잔 속에 깃든 온기로
마터호른을 모락모락 녹여낸
경이로운 커피여, 향의 마술사여
산맥을 넘어온 너의 향기가
탁자 모서리에 숱한 사연들을 버무리고
혀끝에 세상살이를 펼친다
더불어 앉는 세상을
어울려 나누는 삶을
【註】 카파(Kaffa)¹⁾ : 에티오피아의 지명.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재배하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갖춘 곳으로 꼽힘.
카베(kahve)²⁾ : 아랍인들은 카파에서 온 분나를 줄여 ‘카베’라고 불렀다고 함.
분나(bunna)³⁾ :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이르는 말.
비엔나 커피(Vienna coffee)⁴⁾ : 오스트리아 빈에서 1683년에 크림+설탕+커피의 조합
으로 처음 만들어 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