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 광주는 21세기 들어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꿈꾸고 있다. 광주가 역사 속에서 숙성시켜온 항쟁과 저항의 도시정체성과 회화적 전통을 현대화한 비엔날레, 남도의 음식문화를 집적시킨 김치축제 등 다양한 이벤트는 문화중심도시 광주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흔히 이벤트는 도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가장 구체적인 수단이며, 외부세계와 소통하는 창(窓)이자, 지역민의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가장 적절한 도구라고 한다. 따라서 지역을 통합하고 정체성을 드러내며, 나아가 지역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는 이벤트 없이는 결코 문화도시가 될 수 없다. 이벤트는 문화중심도시로 가는 필요충분조건이자 지역을 살리는 <비방>인 셈이다.
1990년대 중반 민선 지방자치시대가 출범하면서 우리나라는 <축제공화국>이 무색할 정도로 축제와 이벤트로 날이 새고 날이 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만 해도 강원도를 제외한 전국 지자체에서 모두 601개의 축제가 치러졌다. 하나의 축제가 보통 3~4일 열린다고 할 때 일년 내내 하루 평균 최소한 일곱 개의 축제가 전국 어디에선가 벌어졌다는 얘기다.
이런 축제의 홍수와 과잉 속에서 <음악>은 축제의 주요한 재료가 되고 있다. 음악 자체를 메뉴로 한 축제 뿐 아니라 음악과 상관없는 축제에도 음악은 축제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등장한다. 최근 들어서는 음악 자체를 테마로 한 축제가 더욱 늘고 있는 추세이며, 기존 축제에 음악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가미하고 있는 경향도 짙어지고 있다.
2006년 여름에 열린 음악축제만 해도 국내 최대의 클래식 음악제인 제주 국제관악제를 비롯, 세계마칭쇼밴드챔피언십 제주대회, 대관령국제음악제, 난계음악축제, 사천세계타악축제, 제천 국제음악영화제, 부산 록페스티벌, 인천 송도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등 부지기수이다.
특히 올해 처음 열린 경남 사천 세계타악축제는 주요무형문화재인 삼천포농악을 바탕으로 삼으면서 호주, 가나 등 세계 유수의 타악팀을 초청, 국제화를 도모했으며, 진도 영등축제는 서울 국악관현악단과 김덕수 사물놀이패, 록음악 공연 등을 추진해 전통 뿐 아니라 현대적인 음악 감각을 부각시켰다.
하지만 이런 전국적인 음악축제화 경향 속에서 예향과 문화중심을 자부하는 광주는 임방울 국창 등 전통 소리와 남도 농악, 5.18 민중음악, 중국 항일음악가 정율성 등 풍부한 자원을 확보하고 있지만, 문화자원화에는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광주가 확보하고 있는 독특하고 다양한 유, 무형의 <소리자원>은 이제 이벤트 관광 상품으로 개발돼 지역 활성화에 한몫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은 실정이다.
소리자원의 문화관광산업화라는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우선 광주 소리산업의 환경, 전통적인 소리자원인 임방울 국악제의 현주소,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과 관련돼 추진 중인 <아시아음악타운>사업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바탕으로 임방울 등 전통적 자원과 중국의 3대 현대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는 정율성의 콘텐츠화, 아시아 음악이벤트 등 미래의 소리자원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 검토하고자 한다.
Ⅱ. 남도 소리의 현주소
1) 광주의 소리산업 환경
예로부터 예향이라 불린 광주는 판소리와 남도민요, 호남농악 등 전통음악 분야에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으나, 음악 시장은 수도권과 다른 광역시와 비교했을 때 매우 협소한 편이다. 대형 뮤지션들의 전국투어에서 광주가 배제되는 경우가 흔하며, 해외 유명 콘서트도 지역에서 만나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 대중음악과 관련한 대형공연을 자체적으로 기획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음반유통의 경우 음반유통사는 한곳도 없으며, 소매상도 대형 음반 몰은 10개 미만, 소형매장은 30여개로 추산되고 있다. 유통되고 있는 음반도 한국 가요와 10~20대 편향의 음반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 광주 공연인프라의 치명적인 한계는 오페라나 뮤지컬 같은 고도의 무대장치가 요구되는 고급 공연 콘텐츠를 소화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광주문예회관 대극장의 경우 수용인원이 1732석으로 클래식에서 포크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공연이 가능하지만, 낡은 무대시설과 빈약한 음향 기술력으로 국제적인 공연유치에는 무리다.
구체적으로 광주의 기존 소리 축제와 이벤트, 이를 둘러싼 환경을 장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요인(SWOT)으로 나누어 분석해 보고자 한다.
광주 공연환경의 장점(Strength)은 인구 규모에 비해 결코 부족함이 없는 공연장 기반시설을 들 수 있다. 몰론 당장은 초특급 공연물을 무대에 올리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앞으로 문화중심도시 사업의 진척에 따라 이 문제도 해소될 전망이다. 자체 노하우가 부족한 음향, 조명, 무대미술, 특수효과 등은 중앙 전문가의 초청과 렌탈에 의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광주는 임방울 국악제와 정율성음악제, 5월음악제 등 다양한 음악이벤트가 열리고 있는 점도 소리산업화의 전망을 밝게한다.
그러나 약점(Weakness)도 존재한다. 열악한 경제환경과 바닥수준의 재정자립도는 공연과 소리산업의 재원 집중과 소비자 확보라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또 도시 규모와 상관없이 광주가 지닌 자연경관 혹은 역사적 유물 등 관광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여기에 국제공항의 부재와 해외 직항로의 빈약함으로 인한 국제적인 접근성 부족도 지적할 수 있다.
약점을 극복하고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요소(Opportunities)는 무엇보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이라는 국책사업을 들 수 있다. 특히 음악산업 전 분야를 아우르는 산업클러스터로서의 아시아음악타운 조성사업은 지역의 소리산업화에 있어 절대적인 호기가 되고 있다.
또한 서남해 복합관광레저도시 개발과 전북 무주에 들어설 태권도 공원 및 기업도시, 전북 전주시의 전통문화도시 등을 광주와 묶는 초 광역 관광개발도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광주가 극복해야 할 위협요소(Threats)는 여전한 중앙과 수도권 중심의 소리축제와 음악산업 구도, 음악축제에 대한 성공사례의 빈약 등을 들 수 있다.
2) 임방울 국악제 등 음악이벤트
광주에서 열리고 있는 음악 관련 이벤트는 10여개 이며, 올해부터는 지역공연계가 주도하는 국제공연예술제가 열릴 예정이어서 공연과 음악이벤트가 보다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광주라는 도시의 상징성과 정체성을 구현하거나, 음악을 매개로 축제성을 살린 음악이벤트는 아직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임방울 국악제와 정율성 음악제, 5월관련 음악이벤트 등이 시도되거나 운영중이지만, 관객의 참여도와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하다.
광주지역의 음악이벤트는 ▲무등산 풍경소리 음악회 ▲포엠콘서트 ▲모난돌 록 페스티벌(중단) ▲광주 인디 록 페스티벌(중단) ▲인권 평화콘서트 The People(2004년) ▲5.18레드 페스타 록 페스티벌 ▲임방울 국악제 ▲정율성 음악제(2006년 개최 불투명) ▲국제공연예술제 ▲비엔날레, 김치축제 음악공연을 들 수 있다.
이들 가운데 광주의 정체성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지역브랜드화가 가능한 음악이벤트는 임방울 국악제와 정율성음악제, 5.18관련 음악행사로 평가된다.
임방울국악제는 광주출신 국창 임방울선생을 기리는 전국단위의 국악경연제로 1997년부터 열리고 있다. 매년 9~10월 무렵에 열리는 국악제는 전야제, 학생부예선, 학생부본선, 일반부 예선, 일반부 본선, 특별초청공연, 시상 등으로 진행된다. 경연 종목은 판소리, 기악, 무용, 시조, 농악, 가야금병창 등 6개 종목이다. 광주시와 SBS가 주최하며, (사)임방울국악진흥재단, KBC광주방송이 주관하고 있으며, 광주시는 보조금 형식으로 지원하고 있다. 부대행사로 국악체험마당인 임방울 쑥대머리 장기자랑이 있다.
국악제는 전반적으로 경연 위주인 만큼 일반인 보다는 국악 엘리트들의 무대이며, 관객들도 일반시민 보다는 노년층과 경연관계자들이 주를 이뤄 한계를 보이고 있다. 국악제 예산은 시비 2억5000만원(2006년 3억원) 내외이며, 참여 관객은 평균 2000여명 수준이다.
정율성 음악제는 지난 2004년 국제학술대회에 이어 2005년 첫 음악제를 실시했으나, 정율성 선생에 대한 고증과 학술적 공감대 확보가 미흡한 상황이라서 반향이 크지 않았다.
<하나되는 아시아 함께하는 음악축제>를 테마로 한 <제1회 광주정율성 국제음악제>는 2005년 11월11일부터 12일까지 이틀 동안 광주문예회관에서 열렸다. 주최는 광주시 남구와 중국대외문화교류협회였으며, 주관은 광주정율성국제음악제조직위원회가 맡았다. 구체적인 행사일정을 보면 음악제 첫날인 11일에는 정율성에 대한 인물소개, 동요합창(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 소프라노, 베이스 독창(중국), 합창(중국가극무극원합창단), 합창과 관현악(한국국립합창단), 합동공연(중국가극무극원합창단, 한국국립합창단, 광주시립교향악단)이 열렸다.
12일에도 첫날과 유사한 음악공연이 열렸으며, 부대행사로 학술세미나가 개최돼 정율성의 삶과 음악세계에 대한 조명이 이뤄졌다.
정율성음악제는 한, 중 양국의 문화교류와 관광객 유치라는 점에서 볼 때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행사주최가 자치구인데다, 예산도 부족해 <2006음악제> 자체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광주음악축제의 한계는 기본적으로 광주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타 지역에서 광주를 방문할만한 매력적인 관광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술축제인 비엔날레와 공연예술의 결합 등이 시도된 바 있지만, 유기적인 결합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또 광주의 정체성을 살린 5.18관련 음악이벤트도 저항성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홍보와 무대구성, 향후 발전계획 등이 소홀, 1회성 행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3) 광주 아시아음악타운 사업(GAMT)
아시아 음악타운 사업(GAMT)은 교육문화사업과 더불어 문화관광부의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광주 조성사업의 핵심 프로젝트이자 핵심 콘텐츠이다. 이 사업은 문화중심도시 광주지역에 온-오프라인 음악산업의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으로 12대 세부사업으로 구상되고 있다.
주요 사업을 보면 ▲ 오-오프라인 음악박물관 ▲ 오-오프라인 음악 비즈니스 ▲한국음악 전문 방송사업 ▲광주음악상(Gwangju Music Award) ▲광주공연예술시장 ▲클럽 멀티플렉스 사업 ▲세계적 수준의 음악학교 운영 ▲해외 음악인 및 음악산업인 유치 ▲음반제작, 음원 유통 및 공연사업 ▲악기제장 공방촌 및 악기판매업체 유치 ▲음악관련 테마상품 제작 사업 ▲GAMT 광장 문화거리 조성 등이다.
가히 음악관련 사업의 백화점으로 광주 사직공원 일대를 사업 예정지로 삼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전체 사업 가운데 음악축제 관련 용역을 발주, 연구 보고서를 납품받아 적용 여부를 검토중이다.
이들 사업은 광주 문화중심도시 특별법과 특별회계의 설치 여부에 따라 구체적인 실천 여부가 결정될 전망으로 아직 구상단계에 머물고 있다.
Ⅲ. 광주소리 문화자원화 전략
1)국내 소리이벤트 현황
국내 음악이벤트 가운데 벤치마킹이 가능한 사례로는 경기도 가평 자라섬 음악페스티벌, 광명 음악벨리 축제, 통영 국제음악제, 안동국제 탈춤페스티벌, 부산 국제록 페스티벌, 전주 소리축제 등이다.
지난해 10월7일부터 9일까지 열린 제1회 광명 음악벨리축제는 <광명에서의 60시간의 음악축제>라는 슬로건으로 출범했다. 이 축제는 음악창작자, 애호가, 일반인에게 현재의 음악을 향유할 기회를 마련하고, 아직 기회를 갖지 못한 전도유망한 미래의 음악인을 발굴하고 소개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또 전국 실용음악과 학생들이 교류하는 난장을 통해 한국 대중음악의 미래를 가늠하는 부수 효과도 노리고 있다.
이 축제는 문화관광부와 광명시가 대중음악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대중음악 중심도시 구축을 위한 첫걸음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즉 음악과 관련된 창업보육센터를 비롯한 음악기획 및 제작사 집적시설, 유통, 스튜디오, 가요박물관, 대중음악거리, 공연장, 음악대학, 연구개발센터, 방송국, 공연 관련 집적시설 및 악기공방시설 등을 조성하여 광명시를 음악산업의 메카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광명 음악도시의 출발점이자 대외적인 교류의 창이 바로 음악축제이다.
통영국제음악제는 봄, 여름, 가을에 개최되고 있는데, 계절별 개최 특성을 고려해 초연 현대음악, 윤이상 음악 아카데미, 국제 콩쿠르 등으로 구성되고 있다. 이 음악제의 시작은 1999년 세계적인 작곡가 고 윤이상 선생을 기리기 위한 <통영 현대음악제>였다. 2002년부터는 지금의 통영국제음악제로 명칭을 변경하고 시즌 마다 현대음악, 고전음악,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소개하면서 국내외 음악팬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통영음악제는 윤이상의 고향에서 열리는 음악제로 소개되면서 해외게스트의 수준도 스티브 라이히, 하인츠 홀리거, 주빈 메타 등 세계정상급으로 확대돼 국제적인 위상을 확보하고 있다. 이제 통영은 남해안의 조그만 도시가 아니라 아시아를 대표하는 현대음악의 도시로 위상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국내 유수의 소리(음악)축제와 이벤트를 분석해 보면, 성공적인 음악축제는 개최지역의 정치, 사회적인 함의 뿐 아니라 공간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윤이상을 극대화한 통영음악제와 지역발전 전략과 음악축제를 일체화한 광명시의 사례가 이를 반영한다.
또한 독특한 이벤트 프로그램과 자연환경을 적절하게 결합하고 있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1만여평에 달하는 천혜의 휴양지에서 다양한 가족 이벤트와 함께 열리는 자라섬 축제, 풍물경연대회 등 400여개의 전통문화행사로 외지인을 적극적으로 유입하고 있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은 좋은 예에 속한다.
여기에 메인스테이지를 장식하는 세계적인 뮤지션의 참여는 축제의 성공을 보증하기도 한다. 통영음악제에 주빈 메타의 참여는 그해 행사의 성공을 예감케 하기에 충분하며, 나아가 <음악투어 패키지>라는 관광상품을 개발할 경우 집객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2) 소리 문화자원화, <올드&뉴> 전략
성공 가능한 음악축제는 축제 자체가 지역성을 담보하고 있거나, 지역의 발전 전략으로 민관의 장기적인 계획과 투자가 확보돼야만 한다. 다시 말해 소리이벤트의 성공 조건은 ▲지역정체성을 반영하거나 ▲매력적인 프로그램으로 방문 충동을 자극하고 ▲스타 마케팅 등을 통해 홍보력을 높이는 것이다.
광주지역 음악 축제가 고려해야할 아이템으로는 남도소리, 즉 임방울로 대표되는 판소리와 5.18광주민중항쟁에서 배양된 저항적인 음악, 그리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의 핵심 프로젝트인 아시아 음악타운 사업과 광주출신의 중국 항일음악가 정율성을 들 수 있다.
다시말해 광주가 음악과 소리로 지역발전의 성장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임방울+5.18음악+정율성 등 아시아음악>이라는 3요소의 적절한 결합과 연계가 필수적으로 판단된다. 이는 전통의 보존과 계승이자, 남도 문화의 원형질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전통에만 매몰되지 않고 광주의 소리문화를 국제화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광주시 광산구 송정동 출신인 임방울은 그만의 독창적인 창법을 개발해 화려한 무대보다는 시골장터나 강변의 모래사장에서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과 한을 노래했다. 그가 독특하게 다듬어 부른 <춘향가>의 한 더늠 <쑥대머리> 음반은 조선과 일본, 만주에서 100만장 넘게 팔렸다.
임방울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암울한 시기였던 일제 강점기와 해방 전후에 활동하며 민중의 아픔을 달랬던 대표적 소리꾼이었다. 해방 후에는 서울에서 박초월 등과 동일창극단을 만들어 전국 순회공연을 펴고 성악연구회 등을 설립, 판소리 보급에 나서는 등 국악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임방울의 소리와 그의 음악 혼을 담은 광주의 소리이벤트가 바로 <임방울국악제>다. 임방울국악제는 현재 경연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소리의 문화자원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전면적인 개편이 불가피하다.
무엇보다 경연 일변도에서 탈피, 공연과 관객참여의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경연과 공연(축제)의 결합이 요구된다. 즉 국악 인재 발굴이라는 경연방식을 채택하면서 동시에 광주와 남도 소리의 멋과 맛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이 이뤄져야 한다. 공연 방식은 판소리 뿐 아니라 남도 민요, 농악(사물놀이), 가야금 병창, 민속무용 등 다양한 전통 연희양식을 선보여야만 경쟁력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또 초, 중, 고교의 전통동아리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청소년들이 전통의 마당에서 흥을 나누도록 만들어나가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열리고 있는 국악제는 400여개 정도다. 임방울국악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주관사인 임방울진흥재단의 행사 전문성을 드높이고, 과감한 국악제의 프로그램 개편이 필요하다. 광주 임방울국악제에 오면 남도의 전통 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으며,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임방울국악제를 김치축제가 열리는 기간에 병행 개최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광주의 지역성을 반영할 수 있는 소리이벤트로 <5.18 민중적 저항음악>을 들 수 있다. 광주는 5.18항쟁의 기억으로 인해 한국 민중음악의 대표곡이랄 수 있는 <임을위한 행진곡> 등 수많은 민중가요가 창작되거나 불려졌다. 광주에서 민중음악 이벤트가 열릴 경우 한국 민중음악의 역사와 전통이 집대성되고, 현재 활동하는 모든 민중음악인들이 모일 수 있는데다, 80년 광주민중항쟁을 기억할 수 있는 좋은 모티브라는 점, 인권과 평화를 주제로 해서 전 세계 민중음악인들이 모일 수 있다.
물론 민중음악콘서트가 민주화 추세에 따라 관심도가 옅어지는 측면이 없지 않으나, 전국에서 민중음악인들이 집결하고, 현재 이런 내용의 축제형식이 없다는 점에서, 또한 민중음악과 386(또는 7080세대)세대의 결합과 전국 대학생들의 광주방문을 촉진시킬 수도 있다는 점에서 성공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광주지역에서는 5월행사의 일환으로 이와 유사한 형식, 예를 들면 <인권평화콘서트 THE PEOPLE>(2004년) 등이 열렸지만,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낮은 관심과 사업비의 부족으로 대규모 이벤트로는 발전하지 못했다.
앞으로 5.18전야제나 5월 행사 기간 중에 고정프로그램으로 가칭 <5월 민중음악제>를 개최할 필요가 있다.
광주 소리전통을 국제화시키고 이를 문화관광 상품화하는 방안으로 광주출신의 중국 항일 음악가 고 정율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33년 의열단 단원이던 셋째 형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간 정율성은 13억 중국인이 추앙하는 <국제전사> 이자 <중국의 3대 음악가>의 한사람으로 북경 교외의 <팔보산 혁명공묘>에 잠들어 있다. 팔보산 혁명공묘는 중국의 혁명 열사들이 묻힌 우리네 국립묘지와 같은 곳이다.
그는 항일 시기 투쟁 혼을 담은 <연안송> 과 240만 인민해방군이 공식 행사에서 반드시 제창하는 공식 의전곡인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했으며, 수 천 만명 중국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우리는 행복해요>(초등 3학년 음악교과서)라는 동요를 지은 작곡가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독립기념관>과 같은 <중국 인민항일전쟁 기념관>(북경)을 방문하면 벽면을 가득 메운 동판을 볼 수 있다. 바로 정율성 작곡의 '팔로군 군가'악보다.
중국 국가1급작곡가인 최삼명(73ㆍ중국 연길)씨는 <정율성은 섭이, 선성해와 더불어 중국의 3대 현대음악가의 한 사람으로 조선족의 자랑이자 천재성을 지닌 작곡가>라면서 <그가 항일 전쟁 시기에 작곡한 곡들은 청년들을 항일 투쟁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지녔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정율성의 고향인 광주에서 본격적으로 정율성 음악세계를 조명하는 음악제가 열릴 경우 한-중 우호교류 뿐 아니라 남북한의 문화교류와 화해무드에도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정율성은 중국 뿐 아니라 해방 후 북한에서 해주음악학교를 만드는 등 다양한 음악활동을 전개한 바 있어 북한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 그에 대한 영화가 중국과 북한에서 각각 제작돼 상영된 바 있기 때문에 북한의 20대 젊은이들도 익숙하다.
정율성음악제는 정율성의 음악에만 국한하지 말고 통영국제음악제처럼 아시아 현대음악을 메뉴로 삼았으면 한다. 항일시기 아시아 각국의 독립과 혁명의 노래에서부터 현대 환경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의식을 껴안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정율성음악제는 중국인의 광주방문을 적극적으로 유인할 수 있기 때문에 지역의 관광산업 발전에도 한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광주의 소리전통을 문화자원화하는 방안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와 유기적 결합에 달려 있다. 이를 <OLD& NEW>전략이라 말할 수 있는데, 임방울국악제가 남도의 소리 원형을 볼 수 있는 <OLD이벤트>라면, 5.18음악제와 정율성음악제는 광주라는 도시의 정신적 자산을 음악으로 구현한 <NEW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Ⅳ. 소리의 도시를 꿈꾸며
지역의 발전전략은 차별화된 비전을 보유하고 동일한 방향으로 자체역량을 결집시켜 장기간에 걸쳐 산업을 재편하거나 육성시켜 나가는 것이다. 전략 수립의 첫 걸음이 바로 비전설정이다. 비전이란 조직의 임무와 미래의 모습을 기술한 것으로 여기에는 기본철학, 핵심가치, 목표, 기본전략, 성과기준, 윤리기준이 포함돼 있다.
광주의 비전과 발전전략은 무엇일까. 광주시는 첨단산업과 문화산업을 도시성장의 양대 축으로 삼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생산적인 도시를 그리고 있다. 광주의 발전전략을 그리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름 아닌 <현재 광주가 잘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앞으로도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지역 내에 성장잠재력이 전혀 없는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기 보다는 발전의 맹아와 뿌리를 확보하고 있는게 경쟁에서 유리할 것은 자명하다.
광주가 잘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문화>이다. 이미 광주는 비엔날레와 임방울국악제, 김치축제, 5.18항쟁 등 다양한 정신사적, 문화적 자양분을 살린 이벤트를 확보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문화중심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광주가 문화로 지역의 성장동력을 구하고, <먹을 거리>를 해결하는데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소리의 전통>이다. 헌데, 소리의 전통은 현대적으로 재해석되고, 업그레이드되지 않으면 구닥다리가 되기 십상이다. 전통은 박물관과 민속공연장의 콘크리트 숲속에 갇혀 있어서는 안된다. 적극적으로 현대와 결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광주가 낳은 임방울과 정율성의 결합, 5.18민중가요와 현대 아시아음악의 결합은 필수적이고, 이 결합이 성공을 거둘 때 광주는 <소리문화의 고장>으로 새롭게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 혼의 원형질에 다름 아닌 남도 소리가 도시 곳곳에서 흐르고, 도시의 정신적 자산을 배경으로 한 자유와 민주의 노래가 북소리처럼 울리고, 남북 뿐 아니라 중국 등 동아시아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아시아를 합창하는 그런 도시, 광주를 꿈꾼다. 전남일보 / 이건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