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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 白頭大幹 ]
* 위 치 : 경북 문경/영주 , 충북 단양
* 산행일시 : 2023년 12월 23일
* 교통편 : 안내산악회
* 회차 : 대간 74-14
* 산행코스 : 벌재-문복대-저수령-촛대봉-투구봉-시루봉-싸리재-흙목재정상-뱀재-솔봉-묘적령-묘적봉(1149.1m)-도솔봉(1315.7m)-삼형제봉-죽령 (14시간/25.5km)
* 산행시간 : 02:45~14:13 [12시간38분] (휴식시간: 1시간38분)
* 산행속도 : 2.4 km/h
* 산행거리 : 26km
* 날씨 : 맑음
* 기온 : -17~-7℃ (바람 8m/sec)
* 약수터 정보 : -
* 조망점 : 정상
* GPX 트랙 : 별도 첨부
* 산행 난이도 : 고도차: 매우 힘듦 , 거리:힘듦
* 주요 볼거리 : 능선길. 정상 조망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동쪽 해안선을 끼고 남쪽으로 흐르다가 태백산 부근에서 서쪽으로 기울어 남쪽 내륙의 지리산에 이르러
우리나라 땅의 근골을 이루는 거대한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백두대간(白頭大幹)은 이나라 골격의 틀 중에서 장대하고 당당한 산줄기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길게 연결된 장대한 산줄기로 그 길이는 약 1,400km이나 남한에서 종주할 수 있는 거리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향로봉까지 약 684km이다.
이번에 갈 수 있을까..!
인원은 계속 빠지고 결국 14명 다행히도 14명인데 차량이 배정되었다.
거의 대부분 아는 사람들이다.
단단히 준비를 하고서 버스에 올라탔는데 그중 2명이 또 오지 않은 것이다.
결국 12명이서 대간을 시작했다.
예보에 본 산행의 일기를 볼 수 없어서 근처의 날씨 예보만 보았는데.
속리산의 경우 너무 기온이 차가웠는데 근처 황장산의 경우에는 훨씬 더 따뜻하였다.
바람도 초속 4m로 그리 춥지는 않은데.
실제 가봤더니 바람이 8m/sec 정도로 정말 추웠다.
장갑에서 손을 꺼내서 10초도 있지 못할 정도로 추웠다.
체감온도는 영하 25도를 육박한 것 같다.
[벌재] 625m
<소백산맥 지역의 교통로와 유적>(박상일, 국사관논총 16, 국사편찬위원회 1990)이라는 논문에 '적성은 바로 벌재의 한역으로 보인다'는 언급이 있다. 벌재의 남쪽 마을이 바로 문경시 동로면의 적성리인데, 한자 표기가 붉을 '赤'인 것으로 보아 '붉은 재'를 이 고장 말로 벌재라 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뿐만 아니라 단양의 옛 지명인 적성 역시 벌재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단양읍 벌천리의 속칭이 벌내이고, 벌내는 벌천리 앞을 흐르는 하천의 이름이기도 하다. 고개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되어 벌령, 벌치, 벌재라 하였고, 이것이 고개 양쪽 마을(적성리와 단양)의 지명이 된 것으로 보인다.
[문복대] 1,074m
문복대는 경북 예천군과 문경시, 충북 단양군의 경계지점에 위치한 저수재와 벌재사이에 있는 백두대간상의 산이다. 문복대는 이 산에서 한줄기가 북으로 뻗어 수리봉.신선봉과 단양팔경 중 유명한 상.중.하선암이 있는 도락산을 두고 있다. 이 산 밑에 배나무골,호박골,세작골,성골을 두고 있으며, 이 골짜기들이 모두 동로면 석항리를 이루고 있다. 석항을 돌목이라고 하는데 아직까지 남아있는 예쁜 우리마을 이름이다.
백두대간이 죽령, 도솔봉, 향적봉, 저수령을 지나서 문경시 관내로 들어오면서 처음으로 큰산을 두고 있는데 바로 운봉산이다. 석항리 사람들은 '문복대'라고 부르고 있으나 산이름에 '대'가 붙어 있어 알아본 결과 옛 이름이 운봉산, 운봉재라 하였다 한다. 운봉재라고 부르는 것은 문복대의 벌재 방향으로 잘록이 부분을 통해 석항리 주민들이 산 너머의 마을로 오가던 길이 있다는 데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백두대간 산줄기가 소백산을 거쳐 예천군을 지나 문경 땅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지켜 서서 복(福)을 불러오는 문(門)과 같은 첫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 것. 국토지리정보원의 1:50,000 지도에는 문봉재라고 표기돼 있다고 하는데, 1,000m가 넘는 봉우리를 재라고 한 것은 분명한 오식인 것 같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경천호 주변의 붕어 입을 한 천주산과 공덕산이 장관이다. 조망지로서 최적의 장소다.
다행하게 차에서 모든 준비를 하고서 버스에서 내려와 아이젠만 차고서 바로 출발을 했다.
처음에 플리스 재킷에 슬림다운을 입었는데 오르는데 땀이나 다운재킷은 걸치고만 갔다.
나중에 해가 뜨고서는 더워서 결국 슬림다운을 벗고 가야만 했는데.
벌써 땀으로 다 젖어 있었다.
오늘 코스 중 제일 가파른 곳이 이곳 문복대에 오르는 코스이다.
아니 실제로는 도솔봉 오를 때 더 심하게는 삼형제봉을 오르는데 제일 힘들었었다.
이곳 문복대 정상까지는 약 3.5km 정도이고 1시간 40분이 소요되었다.
너무 추워서 사진을 찍지 못할 정도였다.
저수령을 지나서 촛대봉도 다시 가파르게 올라야만 한다.
촛대봉(촉대봉)]
소백산 마지막 봉우리. 저수령 건너편의 옥녀봉과 마주 서 있다. 서쪽 사면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편으로 목장용 초지가 넓게 조성되어 있다. 이곳부터 대간은 방향을 틀어 서진하면서 내륙의 중앙부를 동서로 관통한다. 세워놓은 촛대와 같이 높게 솟아 있다. ‘촉대’는 촛대의 한자어다.
촛대봉을 지나서 투구봉도 다시 올르면 나오는 곳이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사진도 찍기 어려운 상태이다.
[투구봉]
정상에 있는 투구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이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오늘의 일출은 7시 35분경.
투구봉을 지나서 시루봉도 지나고 싸리재를 지나서 7시 50분경 일출을 보았다.
조망이 되지 않아서 정작 뜨는 일출은 담지를 못하고 해가 뜨고서 약 10분 정도 지나서 이렇게 일출을 담았다.
흙목재이다.
길은 좋으나 등산로에 눈이 쌓여 있고 러셀이 되지 않은 아무도 걷지 않은 대간길을 걷다 보니
평상시보다 힘은 배가 드는 것 같다.
체력 소모가 상당하다.
무릎 안쪽이 뻐근해 오는 것이다.
[시루봉] 1080m
소백산의 산괴가 월악으로 이어지기 전에 두 개의 봉우리로 마감된다. 시루봉과 촉대봉이다. 산의 성질은 벌써 월악을 닮아 바위로 빚어졌다. 저수령에서 출발해 간단하게 등반하고 유황온천으로 향하는 잉ㄹ반 산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떡쌀을 찌는 시루와 같이 생겨서 붙은 이름인데, 밑에서 무엇이 받쳐주는지 뭉뚝한 모습으로 우뚝 솟아 있다.
[배재]
싸리재에서 서쪽으로 1Km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다. 북쪽 구릉 너머로 지나온 삼형제봉과 도솔봉, 묘적봉 등이 부채를 편 듯이 펼쳐진다. 남쪽의 척 밑에 저수령으로 향하는 927번 국도가 산모퉁이를 이리저리 감돌며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마을의 ‘등뒤(背)에 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용두리의 등 뒤인지 남조리의 등 뒤인지는 모르겠다.
[싸리재]
저수령이 없던 시절 예천 용두리에서 이 고개를 거쳐 남조리로 넘어가면 단양에 닿을 수 있었다. 지금도 걷는 거리로는 저수령보다 싸리재가 더 가깝다. 남조리의 단양유황온천으로 내려서는 등산로가 이곳에서 갈라진다. 공터가 있다. 이구간에는 우리말 지명이 특히 많다. 싸리재도 이름 그대로 ‘싸리고개’다. 싸리>사리>솔이(松)이므로 ‘솔재’일 수도 잇으나 현지의 형상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흙목]
흙목 근처 예천군 상리면 두성리에 흙목마을이 있다. 토항(土項)이라고도 한다. 중국의 명풍수 ‘박성’이라는 사람이 산천에 제사 지낼 때 향을 피운 곳이라고 하여 吐香이라고 적기도 한다. 吐香이 土項ㆍ흙목이라 와전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등산로가 능선에 위치하다 보니 바람이 눈을 가득 등산로에 쌓아놓은 형상으로
진행하는데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체력 소모도 상당하다.
날씨도 추운데..!
흙몰재를 지나서 바람을 피할 곳이 있어 아침을 간단하게 해결하였다.
오늘 총 12명이 산행을 하였는데.
앞쪽 선두에는 8명이 같이 진행을 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서로 바꿔 가면서 길도 찾고 러셀을 해가면서 산행을 하였다.
따뜻한 물과 함께 커피를 한잔씩 하면서 각자 들고 온 것으로 아침을 해결하였다.
벌써 아침 9시 50분이나 되었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데 26km를 14시간이나 주워졌는데.
정말 시간이 여유롭지만은 아니었다.
평소 같으면 그래도 제법 속도가 날 수 있었지만.
눈이 쌓여 있다 보니 속도도 나지 않고 힘은 배가 들었다.
이곳까지 약 15km 정도 되고 6시간 2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뱀재]
솔봉에서 남쪽 1Km 지점에 있는 공터다. 대강면 남조리와 상리면 초항리의 중간에 위치한다. 예전에는 양쪽을 넘나드는 고갯길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오솔길조차 보이지 않는다. 뱀처럼 길다고 하여 뱀재로 부른다. 우리말이다.
[솔봉]
도솔봉 구간의 한가운데에 해당한다. 첩첩산중이기는 하지만 조망이 매우 좋다. 동쪽으로 예천군 고항리의 시골마을 풍경이 발끝에 놓이고, 서쪽으로는 단양유황온천이 있는 남조리 일대의 농경지와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솔봉은 ‘소나무봉’이다. 고항리의 ‘송전마을’도 소나무가 많은 산촌이다.
이곳에서 묘적령까지 올랐다가 묘적령을 지나고 조금 내려갔다
다시 묘적봉까지 가파르게 올라야만 한다.
[묘적령]
묘적봉 남쪽 사거리의 안부로 대간은 이곳에서 경북 예천군과 단양군의 지경으로 들어선다.
묘적봉(1146m)이다.
묘적령에서 가파르게 오르면 이곳 묘적봉에 도착을 한다.
제일 높은 곳은 저 묘적봉 뒤로 보이는 도솔봉이다.
이곳에서 도솔봉을 오르는데 가파르기도 하지만 암릉이라서 조금 위험하기도 하다.
[묘적봉]
칼바위능선과 1185봉을 지나서 만나는 경승지다. 봉우리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데 먼저 만나는 것이 정상이다. 정상은 바위와 흙과 나무가 잘 조화를 이루면서 오똑하게 올라앉았다. ‘묘(妙)하게 쌓여진(積) 봉우리’이니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든 어느 방향으로 바라보든 경관이 빼어나다.
저 앞이 도솔봉이다.
이곳에서 약 1.9km 정도 되는데 약 45분 정도 소요되었다.
바람도 정말 거세고 아직도 춥다.
이미 슬림다운재킷은 땀으로 다 젖어서 그냥 플리스재킷만 입고서 가야만 했다.
도솔봉도 그냥 쉬운 코스는 아니다 능선을 따라 오르다가 몇 번을 가파르게 올라야만 도솔봉이 나온다.
지나온 능선이다.
멀리 오뚝하게 생긴 봉우리가 묘적봉이다.
저곳에서 이곳 도솔봉을 오르는데 암릉을 계속 지나야 만 한다.
눈도 쌓여 있고 그렇지만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다.
도솔봉을 오르는데 가파른 계단이 있다.
도솔봉 정상석은 2곳이 있는데.
이곳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넓은 헬기장이 있는데 그곳에 작은 정상석이 있고.
그곳에서 약 50m쯤 가파르게 오르면 바위암릉 위에 도솔봉 정상석이 또 하나 있다.
묘적봉에서 도솔봉을 오르는 능선길이다.
앞으로 가야 할 삼형제봉의 능선이다.
저곳도 러셀이 되지 않아서 삼형제봉에서 2봉을 올라서 우측으로 죽령으로 향하는데.
정말 힘도 빠진 상태에서 오르는데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날씨가 좋아서 먼 곳까지 조망은 좋다.
도솔봉에서 바라본 소백산의 모습이다.
중앙에 뾰족하게 안테나가 있는 곳이 연화봉이다.
멀리 소백산 정상까지 보이는데 정작 눈으로는 가름하기 어렵다.
삼형제봉의 능선 모습이다.
헬기장 쪽에 있는 도솔봉 표지석이다.
삼형제봉 능선이다.
앞쪽 우측으로 1봉이고 중앙쯤에 2봉 그리고 좌측으로 3봉이 아닌가 한다.
그렇지만 2봉을 오르고서 1봉으로 가는 길은 없다.
2봉에서 우측으로 죽령으로 가는 길이 있다.
또 하나의 정상석인 도솔봉 정상석이다.
아담한 정상석이다.
[도솔봉] 兜率峰 1314m
도솔봉은 형제봉과 더불어 가장 한적한 육산으로 꼽히고 있다. “여지도서”에 (두솔산:兜率山)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도솔천에서 따 온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도솔산에는 도솔산성이 있었는데, 대동여지도에 따르면 ‘등강성’이라 했다. 6.25 당시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 도솔천 [兜率天, Tusita]
불교에서 말하는 욕계(欲界) 6천(六天) 중의 제4천.
통속적인 어원 해석으로는 ‘만족시키다’의 의미로 설명하여 지족(知足) ·묘족(妙足) ·희족(喜足), 또는 희락(喜樂) 등으로 번역한다. 장차 부처가 될 보살이 사는 곳이라고 하며, 석가도 현세에 태어나기 이전에 이 도솔천에 머물며 수행했다고 한다. 현재는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여기에서 설법하며 남섬부주(南贍部洲)에 하생(下生)하여 성불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도솔천은 미륵보살의 정토(淨土)로서, 정토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소백산 국립공원에 속하는 도솔봉은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형제봉과 더불어 가장 한적한 육산으로 꼽히고 있다. 도솔봉은 소백산의 축소판이라 불릴만큼 한 키나 되는 철쭉과 진달래가 화원을 이루며 각종 고산식물이 많다. 또한 숲길 가득 수목이 울창하고 계곡마다 꽃피는 초본류가 무성하여 발길 닿는 곳마다 풍치가 그만이다. 정상 도솔봉을 주축으로 삼형제봉과 묘적봉을 거느리고 우뚝 솟아 있으며, 능선에는 바위지대와 억새등이 있다. 정상 암봉에 서면 중령에서 장엄하게 뻗어 오른 소백산의 장릉을 끝까지 바라볼 수 있어 황홀하고, 남쪽으로는 활같이 구부러지면서 황정산으로 이어내린 백두대간이 아련하기만 하고, 단양팔경으로 유명한 산야가 펼쳐져 보인다.
이렇게 가는 길은 눈이 많이 쌓여 있다.
핸드폰 배터리가 다 뛰어 빌려줬던 보조 배터리를 회수하기까지 기다렸다
앞의 3명을 따라갔다.
이곳이 1봉을 오르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길은 확인 가능할 정도이나 숨겨진 바위 돌 때문에 조심해서 올라야만 했다.
1봉을 올라서 선두와 헤어졌던 3명을 만났다.
뒤에 배터리를 받아서 충전하면서 선두를 따라잡았다.
결국 3명 중 한 사람은 힘들어 속도를 현저하게 늦출 수밖에 없었고.
2분은 이곳 1봉을 넘어서 만나 잠깐 쉬는 사이에 추월하고 제일 앞쪽에서 진행을 하였다.
형제봉에서 바라본 도솔봉 쪽 모습이다.
양지에는 이렇게 녹았던 눈으로 고드름이 이쁘게 매달려 있다.
조망이 좋아서 도솔봉 구간 능선이 훤하게 잘 보인다.
도솔봉에서 약 2.2km를 온 곳이다.
2봉까지는 약 500m가 남았다.
그렇지만 또다시 가파르게 봉우리를 넘아야만 한다.
이렇게 삼형제봉에서 2봉을 넘어서 죽령으로 향한다.
2봉 쪽에서 바라본 삼형제봉 1봉 쪽 모습이다.
[삼형제봉]
우리나라에서는 ‘형제봉’이라는 산 이름이 유난히 많다. 대부분 엇비슷한 높이의 봉우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거나 나란히 늘어서 있는 형상을 산 이름으로 지은 것이다. 봉우리가 두개면 ‘형제봉’, 세 개면 ‘삼형제봉’, 일곱 개면 ‘칠형제봉’으로 부르는 식이다. 이곳의 ‘삼형제봉’도 예외는 아니다. 부분적으로 암릉을 형성한다.
눈 온다음에 걷지를 않아서 산죽에 이렇게 눈이 한가득 쌓여 있다.
나무에 눈은 없지만 등산로에는 이렇게 많은 눈이 쌓여 있다.
드디어 죽령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죽령까지 약 3.3km를 내려가야 한다.
다 시든 산죽에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다.
아직 음지에는 바람도 없고 이렇게 나뭇가지에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다.
내려갈수록 눈은 적었다.
예상 시간보다 상당히 늦게 하산을 하는 것 같다.
다 내려와서 이렇게 산 허리를 몇 번 지나야 만 죽령에 도착을 할 수 있다.
눈이 녹으면서 서리가 되었는지.
서리가 이렇게 커졌는지 처음 보는 모습인데 특이하고 이쁜 것 같다.
드디어 죽령에 도착을 했다.
이곳에 3시 20분 정도 도착을 했다.
오늘 주막에서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때마침 주막이 쉬어서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서 컵 나면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이 휴게소 편의점이다.
[죽령] 689m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과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경계의 소백산맥에 있는 고개.
높이 689m.도솔봉(兜率峰:1,314m)·연화봉(蓮花峰:1,394m)·국망봉(國望峰:1,421m) 등 높이 1,400m 내외의 높은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는 험한 지세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조령과 더불어 영풍-단양 간의 주요교통로였다. 옛날 어느 도승이 짚고 가던 대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 하여 죽령이라 했다 한다. 서쪽 사면은 충주호로 흘러드는 죽령천의 상류 하곡과 연결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아달라이사금 5년에 이 고개를 사람이 통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전한다. 비교적 높고 험한 고개이므로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걸어다녀야 했던 시절에는 이 고개에 도둑떼가 들끓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도둑떼에게 아들을 잃은 할머니가 도둑소굴로 숨어들어 망을 보다가 사람들에게 신호로 "다자구야"라고 외쳐서 도둑떼를 사로잡는 데 공을 세워 이곳 주민들은 매년 대강면 용부원리의 산신당에 모여 다자구 할머니에게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중앙선이 이 고개를 통과하기 위해 '또아리굴'이라 불리는 루프식 터널을 건설했다. 죽령에서 단양까지의 서쪽 사면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여 높은 곳까지 개간되었고 동쪽 사면인 경상북도 풍기 쪽으로는 산림이 우거져 있다. 부근에 죽령 봉수와 보국사, 희방사·죽죽사가 있다.
아흔아홉 구비의 험하고 힘든 고개로 유명한 죽령은 옛날부터 오르막 30리, 내리막 30리라 했다. 소백산맥이 영남과 호서를 갈라놓는 길목에 해당하며, 추풍령, 문경 새재와 더불어 삼국시대 이래 군사적인 요충지로 영남권과 기호지방을 연결하는 3대 관문의 하나로 각광받아 왔다. 삼국사기에 ‘아달라왕 5년 3월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리다’라 했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달라왕 5년에 竹竹(* 642년 대야성에서 백제의 윤충에게 죽은 죽죽과는 동명이인)이 죽령길을 개척하고 지쳐서 순사(殉死)했고, 고갯마루에는 죽죽을 제사하는 사당(祠堂)이 있다’ 했다. 그래서 죽령이라 한다. 일명 대재. 삼국시대 이래로 봄·가을에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죽령사(竹嶺祠)라는 산신사당이 있었다. 대강면 용부원리 죽령역에서 풍기읍 희방사역으로 빠지는 중앙선 철도가 길이 4,500m의 똬리굴(죽령터널)을 통하여 죽령 산허리를 통과한다. 또 중앙고속도로 단양~풍기 구간이 죽령터널을 통과하여 나 있다.
죽령은 한동안 고구려의 국경으로 신라와 대치, 삼국의 군사가 엎치락 뒤치락 불꽃 튀는 접전장이었다. 고구려가 죽령을 차지한 것은 장수왕 말년 신라 진흥왕 12년, 왕이 거칠부 등 여덟 장수를 명하여 백제와 함께 고구려를 공략, 죽령 이북 열 고을을 탈취했으며, 그뒤 영양왕 1년 고구려 명장 온달장군이 왕께 자청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가면서 ‘죽령 이북의 잃은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라고 한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보아서도 죽령이 막중한 요충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고려시대를 지날 무렵에는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여 우왕 8년(1382년)과 9년에 각각 왜구가 죽령을 넘어왔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 있다.
- 죽령 산신당(용부원리) 설화
매바우(鷹岩) 마을(면사무소 직원들은 아예 그런 마을 이름들을 뭉뚱그려 용부원리(用富院里)라 하는데 조선 시대 용부원이 있었다)에는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던 산신당이 있다.
죽령의 산신은 ‘다자구 할머니’다. 단양문화원이 펴낸 『단양군 민속조사 보고 서(김영진ㆍ1992)』에 따르면 일찍이 신라시대부터 죽령에는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國行祭)가 있었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도 “봄가을로 나라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보내 작은 제사를 지낸다”고 죽령 밑에 주석을 달았다. 지금의 죽령사(竹嶺祠)를 짓고 산신제의 틀을 갖춘 것은 대략 조선 중기로 보이는데 이때 등장하는 산신이 바로 다자구 할머니다.
당시 나라에 바치는 세금으로 삼베니 무명, 엽전 따위가 죽령을 통해 넘어가는데 고갯마루에 숨은 도둑들이 사람 물건 할 것 없이 빼앗고 헤치지만 관병도 이를 다스리지 못했다.
어느날 두 아들을 잃은 할머니가 죽령의 산적을 잡는 데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던 토포군과 미리 짜고 산적굴에 들어갔다. ‘들자구야’는 기다리라는 신호였고 ‘다자구야’는 공격 신호였다. ‘다 자구’는 모두 잔다는 뜻이고 ’들자구’는 아직 덜 잔다는 뜻이다. 산적에게는 이름이 ‘들자구’와 ‘다자구’인 두 아들을 찾는다고 둘러댄 터였다. 마침내 산적이 모두 술 취해 잠 든 사이 노파의 ‘다자구야’ 소리를 신호로 토포군이 들이닥쳐 산적을 섬멸했다. 이에 나라에서는 죽어 산신령이 된 ‘다자구 할머니’를 기려 해마다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후 나라에서 할머니를 찾으려 애를 태우자 관리의 꿈에 나타난 할머니가 '나는 사람이 아니라 산신이니 정 보답하고 싶으면 서울에서 연을 띄워 처음 앉는 자리에 사당을 짓고 1년에 제를 두 번씩 올려달라' 했다. 두 번째 시도 끝에 지금의 터에 연이 내려앉았고 그 자리에 서있던 옻나무를 베어 산신당을 짓고 나라에서 하사한 사당 옆의 토지에서 얻은 곡식으로 국행제를 올리는 풍습이 시작되었다 한다.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이 땅의 모든 국행제를 금지시켰다. 죽령 산신제 역시 마을 사람들의 손에 의해 근근이 그 명맥을 이었다. 매바우에선 지금도 매년 음력 3월 과 9월이면 어김없이 산신제를 지낸다. 날짜는 초정(初丁)인데 초정에 부정(不淨) 이 들면 중정(仲丁)으로 넘겼다가 중정마저 부정이 들면 또 하정(下丁)으로 넘긴다. 도가(都家:제사 준비를 맡은 집)로 뽑힌 집주인은 목욕재계하고 3일 동안 기도를 올려 정성을 들인다. 매바우에선 마을 사람 누구라도 산신당에 대한 믿음은 가히 절대적이다.
그런데 현재 도가인 김성락 옹에 의하면, 김순재라는 면장이 부임하고선 그 땅을 빼앗아 사람들에게 전부 분배해준 뒤, 다자구 할미산신의 재산이 없어졌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군수와 문화원에 사정해 돌려주라고 했지만 이뤄지지 않고 그 후로 때마다 50만원씩 지원금을 받아 겨우 제사만 지내고 있다고.
- 죽령 터널
중앙고속도로 구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길이 4.6㎞. 죽령터널은 죽령고개를 관통해 경북 영주와 충북 단양을 연결한다.
추울 것 같아서 다운바지를 입고 왔는데 땀이 나서 내의와 함께 다 젖어서
라면을 먹으면서 옷을 말려 그대로 입고 갈 수밖에 없었다.
찾아보니 상의는 있는데 바지를 챙기지 않았나 보다.
그렇지 않아도 백두대간 길 중 난이도가 상인데
거기에 눈까지 쌓이고 극강의 한파에 춥기까지 하다 보니 얼마 안 되는 거리가 정말 힘들었다.
아무쪼록 한분이 조금 늦어서 그 산우님이 탑승하고서 10분 늦게 버스가 출발할 수 있었다.
GPS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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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기온이 -17...
이번에는 누리사랑님도 힘드셨군요.
수고 하셨습니다.
네..
바람도 거세고 날씨는 춥고..!
정말 장난 아니더라구요.
거기에 등산로에는 등산객 흔적도 없고 바람이 불어온 눈만 가득 쌓여 있어서 계속 러셀을 해야하고.
그냥도 난이도가 상인데 눈과 바람 때문에 최상이 되었네요..
다들 힘들어서 근육 이완재도 먹고 갔었네요..
함산 즐거웠습니다. 덕유산 눈꽃 맘껏보시고 여행도 잘 다녀오세요.다음 산행에서 뵙죠.
러셀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추룬날 산행 하는 것도 참 힘든것 같습니다.
그래도 쨍한 하늘에 즐거웠던 산행이었습니다.
휴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늘 멋진 산행. 앞에서 이끌어 가시는 모습 최고입니다. 감사합니다.
*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트랙도 가지고 다니고 길을 알아서 가다보니 앞에서 가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사진을 담다보니 앞에 사람이 없어야만 깨끗한 풍경을 담을 수 있는데.
그러다보니 앞쪽에서 가지 않나 생각듭니다.
이틀남은 올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내년에도 안전하고 행복한 산행 이어가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