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곳에 얽매여있어서 답답했던 마음은 산행을 하면서 풀어내었다. 주말에는 가까운 수락산을 올라 가볍게 걸으며 산행을 하고, 일요일에는 함께한 적이 없는 장비릿지 공지가 있어서 다음날 있을 등반에 참석할지의 여부를 고민했다가 늦게 결정을 하고 참석하게 되었다. 늦은 밤에 일어나서 함께할 분들과 나눠먹을 달걀을 삶아서 미리 껍질까지 까서 담아두고 마음을 비우고 잠을 청했다.
1시간 반을 걸려서 도착한 등반지에서 늦게 빗자루를 들고 나타나신 대장님의 모습을 보고서 한바탕 웃음이 빵 터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니지않는 가파른 곳을 손에 빗자루를 든 채로 올라오시는 모습에 빗자루를 타고 오셨다고 한 말에는 아무 대꾸도 안 하시고, 산 위의 바위 아래에 쌓여있는 낙엽을 쓸고서 그저 웃으시는 대장님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진 않았다. 전날 내렸던 비로 축축해진 낙엽은 한곳으로 쓸려졌고 시작은 손발이 시린 가운데 함께 모인 분들과 두 조로 나뉘어져 등반이 시작되었다.
나는 대장님의 선등빌레이를 보면서 처음 가게 되는 바위길을 언 손과 발의 통증에 다소 힘들긴 했지만, 미끄러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시린 손 불어가며 잡히지않는 바위를 손끝으로 밀고 당기며 올라서니 어느 순간 거칠게 느껴졌던 바위와 손끝의 통증은 덜해지고 정상을 향해 올라설 수 있었다. 처음 함께한 사람을 선등빌레이까지 맡기신 대장님은 어쩌면 테스트를 하신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실수하지않으려 정신을 더 집중했다. 후등의 두 분과도 처음 등반이고 하강할 때는 그분들이 말구 경험이 없어 안전하게 하강할 수 있게 하강자일 설치도 내가 하면서 등반과 반대로 마지막에 내려오면서 마무리까지 할 수 있었다. 머리와 손이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그동안 암벽을 내려놓고 있었음에도 한편으론 함께하고싶은 마음이 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60m 자일과 암벽장비의 무게를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체력 때문에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는데 대장님과 함께하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즐겁고 안전하게 등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감사하게 생각했다. 무엇보다 배려의 마음이 감사했고 종종 시간만 맞으면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릿지산행을 위주로 다니다가 암벽장비를 모두 챙기고 나가서 자일에 의지한 채 서로의 안전을 위해 빌레이를 봐주고 함께하다 보면 처음 함께한 분들과도 끈끈한 동지애를 느끼는데 그것이 자일의 정인 것이다. 대장님이 말씀하시는 숨소리까지 느껴진다는 뜻을 이해했고 힘은 들어도 암벽장비에 맞게 잘 사용하면서 안전하고 즐겁게 등반할 수 있는 방법을 더 배워나가야 한다는 걸 실감했다. 안전하게 등반할 수 있도록 대장님이 선등을 하시며 자일을 걸어주시고 나는 선등빌레이로서 역할을 하고 마지막에서는 말구까지 보며 멀티플레이어가 되어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등반을 끝내고 하산해서 따뜻한 찌개와 밥을 먹으며 힘들었던 몸은 술 한 잔에 씻은 듯이 나아지고 오랜만에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함께했던 시간은 짧게만 느껴지고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면 이런 기쁨은 없었을 것이다. 컨디션이 안 좋아져서 더는 하고싶어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암벽을 조심히 해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 내년에는 설악산까지 일반산행이 아닌 암벽으로 올라보는 도전을 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