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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장>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
위의 내용을 보면 아나니아가 땅을 팔아 일부를 사도들의 발 앞에 바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사도들은 이를 공동체를 위해 재산을 나누기 위함이라고 했지만 명백한 불법입니다. 왜냐하면 재산을 거두는 행위는 왕과 같은 권한이고 이는 세리들이 하던 행위이기 때문 입니다.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은 두가지 입니다. 첫번째로 아나니아를 죽일 때 베드로는 아나니아가 용서를 구하는 말을 듣지도 않고 바로 죽였습니다. 두번째로 아나니아에 대한 소문으로 인해 사람들이 두려워 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사도들을 무서워하여 재산을 바쳤던 것이며 사실은 바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나 강압에 의해 일부만을 바쳤던 것 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그 땅 값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는 베드로에게 세리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땅 값이 얼마인지 알고 있었던 것 입니다.
위 사도행전 5장 6절을 보면 젊은 사람들이 시신을 메고 나가 장사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여기에서 젊은 사람들은 베드로의 제자들입니다. 이제 6절 이후의 성경 구절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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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장> 7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
아나니아를 죽이고 3시간이 지나 아니나아의 아내가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 죽은지 모르고 들어 왔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는 베드로 일당이 아나니아를 그의 아내 삽비라 몰래 암매장 한 것을 의미합니다.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적어도 제대로 된 사람들이라면 아니나아의 시신을 그의 가족에 인계해서 그 가족이 처리 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반적인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삽비라는 남편이 죽은지도 몰랐고 어디에 묻힌지도 몰랐습니다. 또한 삽비라가 아주 멀리가서 오랜 시간 동안 집을 비웠다면 모르겠지만 불과 3시간만에 돌아 왔다는 것은 분명한 암매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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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장>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위에서 말하는 죄인은 세리들을 의미하고 사도들과 예수교도들을 의미합니다. 죄인들이 재물을 위해 사람들을 죽일 때에 제사지내는 것은 당연히 안될 일입니다. 이는 과거 유럽사회에서 기사도라는 이름으로 아무런 꺼리낌없이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유럽사회에서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가 아니였으니 그 이유가 예수교도들 때문이였습니다. 그 때 마다 슬퍼하며 장사를 지내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였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들은 이를 변명하기 위해 죽어서 천국에 갔는데 왜 슬퍼하냐며 비웃는 것이였고 예수교도들은 강압에 의해 슬픔을 참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초기에 예수교도들이 말하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것은 암매장을 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임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질서가 2000년을 지나 현재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아나니아의 아내 삽비라는 남편이 죽었기 때문에 이제 부터 과부가 되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과부는 신약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차후에 다시 이야기 하게 됩니다. 이제 삽비라를 죽이는 베드로의 모습을 확인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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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장> 8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9 베드로가 가로되 ...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10 곧 베드로의 발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
아나니아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왜 속였냐며 화를 내며 죽였지만 과부가 된 그의 아내 삽비라에게는 땅 판돈이 이것 뿐이냐고 묻고 삽비라는 이것 뿐이라고 말을 합니다. 이에 열받은 베드로는 너의 남편 처럼 너도 죽어 봐라고 외치며 삽비라 마저 죽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제자들은 아무일 없다는 듯이 삽비라를 아니나아가 묻힌 곳에 묻습니다.
어떤가요? 기독교도들은 베드로가 죽인것이 아니라 신이 죽였다고 말을 하지만 신이라는 종교적인 표현을 제거하면 완전한 강도집단의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이 죽어간 사람이 아나니아와 삽비라 뿐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사도행전은 계속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후의 사도행전 이야기를 계속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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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장>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12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
위의 11절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이 온 교회와 사람들에게 퍼지고 있었고 이로인해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절에서 설명하기를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손으로 이루어진 표적과 기사가 무엇을 이야기 하는 것 입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분명 합니다. 아니다 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이 문서를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진실을 억지 해석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들의 표적과 기사는 유대인들과 피지배자들의 재산을 빼앗기 위한 죽음을 부르는 행위를 의미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사도들이 병을 고치는 기적 이외에도 사람들을 죽이기 까지 했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오히려 병을 고치는 기적이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 입니다.
위와 같이 사도행전 5장의 11절과 12절에서 분명히 죽어간 사람들이 많아 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죽어가거나 재산을 빼앗긴 사람은 모두 몇 명일까요? 이를 알 수 있는 내용이 사도행전에 기록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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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장> 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 삼천이나 더하더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
위의 사도행전 2장의 41절을 보면 사도들을 따르는 사람들의 수가 삼천명 이상이라고 적고 있고 43절에는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데 그 이유가 사도들의 기사와 표적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삼천명 이상의 사람들은 사도들의 표적과 기사가 무서워 모였던 것 입니다.
그렇다면 사도들은 왜 삼천명은 모았을까요? 45절을 보면 그 삼천명이 재산과 소유를 팔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하였습니다. 예수교도들은 이를 근거로 공동체 생활이라고 해명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나눈다라는 의미는 차후 신약성경을 통해 설명 할 것인데 사도들의 나눈다라는 의미는 빼앗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학살되고 핍박받은 사람들의 수가 삼천명 이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수긍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 되어 집니다. 그리고 위의 숫자는 예루살람에서의 숫자입니다. 처음에는 예수와 사도들이 갈릴리에서 활동 했음을 기억하시면 그 수는 매우 컸음을 알 수 있고 나아가 갈릴리에서 더 이상 돈을 모을 수 없게 되자 예루살렘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한 것으로 보아도 흐름상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삼천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재산을 빼앗기고 죽어 나갔습니다. 점점 더 악독해지는 사도들의 행동에 대항한 사람들은 헤롯과 빌라도가 아니라 대제사장이였습니다. 대제사장은 유대인들과 함께 바라바가 했던 제2의 민란을 꾸미고 있었습니다. 바라바는 민란을 꾸미는 사람으로 성경에 등장 했음을 잊지 마세요. 대제사장은 베드로를 비판하며 청중을 모으고 나팔 소리를 높여 헤롯과 빌라도에게 베드로의 만행을 외치며 베드로와 사도들을 붙잡기 시작 합니다.
그러나 헤롯과 빌라도는 침묵으로 일관 합니다. 할 수 없이 대제사장과 바리새인(사두개인)들은 스스로 유대인을 결집시켜 베드로를 잡아 들이기 시작 합니다. 그 내용을 성경을 통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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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장> 17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
아주 짧은 두 구절 이지만 전체적인 흐름상 대제사장이 사두개인,바리새인들과 힘을 합쳐 들고 일어났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이를 재치있게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맞습니다. 대제사장은 베드로와 사도들의 만행을 묵과 할 수 없어 '의'를 위해 일어섰던 것 입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헤롯과 빌라도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이 때에 헤롯은 갈릴리가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빌라도와 함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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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4장>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
위의 사도행전 4장 27절을 보면 헤롯과 빌라도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기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곳은 사도들이 있는 예루살렘 입니다. 헤롯과 빌라도는 베드로와 사도들의 병고치는 이야기와 세리들의 정보를 이용하여 유대인들을 죽이며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은 분명 합니다. 왜냐하면 첫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전재산을 빼앗겼고 두번째 유대인과 사도들이 충돌하고 있었으며 세번째 전 재산을 거두는 행동은 왕의 권한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헤롯과 빌라도는 어떠한 제재와 비판도 가하지 않고 그들의 만행을 묵인하고 있었습니다.
헤롯과 빌라도는 예수를 살려 주었을 뿐 아니라 베드로와 사도들이 왕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지만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았고 따라서 이는 헤롯과 빌라도가 예수의 측근임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내용이며 사도들은 세리들의 임무를 대행하고 있었다는 내용이 됩니다. 세리들의 임무를 대행하는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정치깡패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베드로를 붙잡아 가두게 됩니다. 하지만 대제사장은 잘못 알고 있었지요. 공회에도 예수의 측근들은 많았으니까요. 공회의원 요셉도 그러했습니다. 또한 빌라도와 헤롯의 군사들은 베드로를 풀어 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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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장> 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22 관속들이 ... 23 가로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25 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26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 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러라 |
사도행전에서는 또 한번 재치있는 표현으로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어 풀어주고 베드로에게 계속 기사와 표적-죽음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적고 있습니다. 관속들은 이미 예수의 측근들로 매수된 자들이였기 때문에 고양이 앞에 생선을 놓은 격이였습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옥에서 나와 "보라 우리는 또 다시 예수의 은혜로 풀려 나왔도다" 라며 당당하게 외칩니다. 이 모습을 본 대제사장과 유대인들은 얼마나 참담 했을지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대제사장은 다시 베드로를 붙잡아 공회앞에 끌고 옵니다. 이를 사도행전에서는 "베드로를 함부로 하지 못함을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 했다고" 또 다시 허망하게 기록합니다. 하지만 베드로를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것 다른 이유는 바로 백부장과 관속들 때문인데 이를 재치있게 적은 것 입니다.
공회에서 재판을 받는 베드로를 예수의 측근들이 변호를 하고 베드로는 무사히 풀려 납니다. 대제사장도 어찌 할 수 없었던 막강한 힘이 존재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베드로가 한번 붙잡혔다가 재판을 받고 무사히 풀려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살인으로 인한 재판을 받아도 풀려날 수 있었던 것 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사도 바울도 이와 유사한 형태로 풀려나게 됩니다. 이제 권세가들은 베드로의 편이였음을 우리는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잠시 다른 생각을 해 봅시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면 어딘가에 그들이 묻혀 있어야만 합니다. 어디에 묻혀 있을까요? 그곳은 예루살렘 인근으로 부터 3시간 이내에 위치한 밭과 같은 평지이거나 나무가 없는 산 능선일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피밭이라고 불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증명 할 성경 구절을 보겠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모두 알고 있는 피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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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장> 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 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
사도행전 1장의 내용을 보면 피밭이라는 곳을 모든 예루살렘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 만큼 피밭이라는 곳은 감추인 곳인데 어떻게 알게 되어 소문이 자자한 곳이 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피밭이라고 하는 곳이 어떻게 불리우게 되었는지 성경은 해명하고 있는데 그 부분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피밭이는 나그네의 묘지라고 변명하는 사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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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장>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 7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
위의 마태복음 내용을 보면 유다가 목메어 죽었고 유다의 “은”을 대제사장이 거두어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았더니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 된 말인데 왜냐하면 유다 한 명이 피를 흘리며 죽었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피밭이라고 부를리가 없기 때문이며 또한 나그네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서 묻혔을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그랬다면 나그네의 무덤이라고 불리워야 했을테니까요. 결국 당시 유대인들이 그 곳을 피밭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피를 흘리며 죽어간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 묻혀 있어야만 그 밭이 피밭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도들이 얼마나 잔혹하게 많은 유대인을 살해해 왔는지 그 실상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예수와 제자들에 대해서 히틀러 만큼 악독한 악마로 불러도 좋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유대인들의 피나는 절규를 잊지 말아 주시길 바라며 유대인의 아픔을 기억해야 할 것 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만행은 이것만이 아닙니다. 그 내용들을 뒤에서 계속 보게 됩니다.
<피밭이를 제공한 사람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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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4장>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
위의 사도행전 4장 36절에 보면 바나바라고 하는 사람이 밭이 있어 그것을 팔아 돈을 사도들에게 제공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추측이지만 바나바에 대해서 상세히 적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밭이 피밭이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사도들은 바나바를 위해서 그 밭을 팔아 돈을 제공했다고 적고 있었던것입니다.
우리는 사도행전 5장을 통해서 무서운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제5장의 문서 내용을 통해서 사도들은 신약성경을 작성함에 있어서 자신들의 사악한 이야기를 신의 이름으로 둔갑하여 정당화 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를 통해서 우리는 신약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약간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먼저 사도들이 말하는 표적과 기사가 죽움을 이야기 하고 있었고 두번째로 사도들이 사람을 죽여서 대제사장이 베드로를 잡은 것인데 '시기가 가득해서' 라고 해명하였습니다. 세번째로 피밭이에 대한 소문에 대해서 유다와 나그네의 무덤이라고 해명하였고 네번째 헤롯과 예수의 측근이였던 관리와 로마병사등이 베드로를 풀어 주었는데 이를 종교적으로 해명하였습니다. 물론 사도바울은 직접적으로 병사들이 도와주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성경 구석 구석에 자신들의 만행에 대해서 해명하는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약성경에서 종교적인 이야기를 제거하면 진실이 보이는 내용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후에 베드로가 많은 과부들과 간음하는 내용을 종교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 부분에 대한 논쟁을 불식 시키기 위해서는 사도행전 5장을 먼저 이해 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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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단 하루를 밝은 눈으로 산다면 세상의 이치가 보입니다. 성경을 읽는 이치도 이와 다를바가 없음입니다. 밝은 해석..........., 글 쓴 분에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