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 / 요 4 : 19-26
예배는 섬김, 봉사, 엎드리다 굴복하다는 뜻이 있기 때문에 예배는 한분 하나님을 향한 존경과 전 인격에서 우러나는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높이며 베푸신 은총을 감사로 찬양하며,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살아가는 삶이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했을 때 죄인들이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하는 법을 계시해 주었습니다.
그 계시가 잘 나타난 것이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죄를 지음으로 의로우신 하나님과 함께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짐승을 잡아 피 흘리게 하시고 그 가죽으로 옷을 입혀 주었는데
이것은 피 흘림이 없이는 죄를 대속 받을 수가 없고 하나님 앞에 설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때부터 인간은 피 흘리는 제사와 거룩한 삶을 통해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아벨은 아버지 아담을 통해 바르게 예배하는 것을 보고 배움으로
구별된 삶을 살았고 제사에 필요한 양의 첫 새끼를 따로 구별하여 키웠습니다.
그러다가 제사하는 때가 이르자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방법으로 제사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재물을 열납 하셨습니다.
반면에 가인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르지 못한 삶을 살다가
제사하는 때가 이르자 자기 소산을 가지고 제사를 드렸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진리가 아니라 자기 방식, 인본주의 제사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그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언약을 맺고 율법과 성막과 제사법을 주시고
약속에 땅에 들어가면 정해진 장소에서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자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고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며 살았는데
솔로몬이 타락하여 우상을 섬김으로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졌는데 그 때 북이스라엘 왕이 여로보암입니다.
그는 절기 때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제사를 드리면 자기에게 정통성이 없음을 백성들이 알고 자기를 죽일까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게 했습니다.
(왕상 12:28-33)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 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지금 북 이스라엘 사람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말씀에 계시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닙니다.
자기들의 필요에 의해서 자기들의 편리를 위해서 자기들이 만든 가짜 하나님입니다.
제단도 가짜요,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도 가짜요, 예수님을 예표하는 제물도 가짜요
지키는 절기도 가짜입니다. 아무리 풍성히 드리고, 뜨겁게 열심히 드려도 가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에서 벗어나서 자기방식으로 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계속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다가 B.C 722년에 나라가 망하고 이방인들이 그곳에 들어옴으로 혼혈족이 되어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리심 산에 다른 성전을 세워 제사를 드리자 유대인들이 그 전을 무너뜨리자, 그곳을 기도처소로 삼고 모세오경만을 믿으며 메시야를 기다리며 살았는데 이런 일이 예수님 당시까지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남쪽에 사는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부정하게 여기고 그쪽으로 다니지도 않고 먼 길을 돌아서 다니며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지만 그들도 하나님 말씀, 진리보다는 장로들의 유전을 따름으로 헛되게 경배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15:7-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한다고 책망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나 사마리아인 모두가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의도적으로 사마리아 땅으로 가시면서
세겜에 있는 야곱의 우물에서 한 여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예배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20절>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의 말처럼 참 성전이신 예수님이 유대 땅에 오실 때까지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짐승의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리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나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의 구속을 이루시면 그리심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어디서나 아버지께 예배할 수 있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23절>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지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구속을 다 이루시고 성령님을 보내심으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이런 자를 찾으십니다. 이시간 말씀을 통해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로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거듭나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지 못하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가 없고 영과 진리로 예배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수는 있지만 구경꾼이 되어 혼으로 감정으로 기분으로 드리기 때문에
교회는 모든 사람들이 거듭나 예배할 수 있도록 십자가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을 듣지 못하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있어도 거듭날 수는 없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하시고 거듭나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죄인들이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영접함으로 의롭게 되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새 마음이 되고 새 영을 받음으로 성령님이 그 마음에 들어와 내주하심으로
예수님과 연합되어 예수님이 내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됨으로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끊임없이 복음을 선포해야 죄인들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2,오직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 한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거듭난 성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예배의 대상을 잘 알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 자녀들이 예배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 한분입니다.
그 분은 스스로 계시며, 영이시므로 어디에나 계시고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고 하시며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영광과 찬송을 드리며 그 이름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모든 영광을 아버지께 돌리며 경배하라고 했기 때문에 우리는 예배의 대상이 오직 하나님 한분임을 알고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배시간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끼워 너서는 안 됩니다.
예배시간에 어떤 사람을 세워서 자랑하거나 박수를 치게 해서는 안 되고
인간들의 어떤 행사나 의식에 예배라는 용어를 붙이고 예배해서도 안 됩니다.
오직 예배는 하나님 한분께만 드리며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3,영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여기서 영을 성령이라고도 하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도록 영혼을 주셨는데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영이 죽음으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시고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삶을 위해 예수님이 오셨고 십자가를 통해 구속을 이루시고 성령님을 보내 주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면 부패한 마음이 새 마음이 되고 새 영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고 성령님이 새 마음속에 내주하심으로 성령님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배움으로 영이신 하나님과 영(인격)으로 교통하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4,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여기서 진리는 “알레테이아로 ...... 참, 실제, 본질, 사실을 의미합니다.
참 실체이신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모든 인간은 죄 아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들에게 계명을 주시고, 성전을 주시고, 제사법을 주시고, 절기법을 주는데, 이런 것들은 실체가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예표요 모형이기 때문에 실체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시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하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시고 새 계명과 성령님을 주셨습니다.
속죄사역이 완성됨으로 더 이상 짐승의 피를 가지고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지 않고 유월절이나, 맥추절이나,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실체이신 예수님께서 다 이루시고 자유케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루신 십자가 도가 참 진리요, 복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배를 통해 진리의 말씀,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며 예수님 중심으로 구속을 찬양하고 성찬식을 하면서 J.X를 높이는 것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5,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는 주의 이름으로 모여서 드리는 예배와 삶을 통해 드리는 예배가 있는데
이것은 2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자들이 성령의 역사로 마음이 새롭게 변화를 받아 속사람이 강건해짐으로 땅에 가치관을 버리고 하늘의 가치관을 가짐으로, 의롭고 선한 생각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이런 자들이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 선한 삶을 살게 됨으로 어두운 세상의 빛이요, 더럽고 부패한 세상의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한 산제사, 생활예배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영과 진리로 예배를 잘 드렸을지라도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거룩한 생활에 실패한다면 *참된 예배자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괴 진리로 예배를 드리며 거룩한 산제사로 열매를 맺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 : 참된 예배는 장소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배 자의 마음과 삶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알고 구원에 감사하며 전 인격으로 드리는 것이고,
그 이름에 합당하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님을 의지함으로
은혜와 믿음이 충만하여 거룩하게 살아감으로 참된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