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의 뿌리를 찾아서]
섬밭마을과 폭포사
•장산 폭포사의 기원인 총천사
섬밭[島田] 마을은 장산 절골 일대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상살미가’의 지은이 남옥경 씨(의령 남씨)가 태평양 전쟁 당시(1940년) 손자와 함께 기거했던 피난처였으며 폭포사의 불상, 동종(1937년)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 불상과 동종은 일제강점기 때인 1935년에 일본인이 창건한 총천사(總泉寺)의 불상과 동종이다. 광복이 되자 일본인 주지는 떠나갔고 1946년 폭포사가 토담집 절(좌동 산64)에서 현재 위치에 창건되면서, 총천사에 있던 불상과 동종 등을 옮겨갔다. 한국전쟁 당시 총천사는 해운대 포교소 복천사로 이름을 바꿔 해운대초등학교 임시 교사로 사용되다가 폐사되었고, 복천사 주지 스님는 장산 절골 폭포암(좌동 산64)으로 들어와 수행을 했다고 한다(정민 주지 스님).
장산 폭포사 동종
•윤락가 609의 탄생 배경
섬밭마을 동쪽 해안가에는 노송이 우거진 모래사장이 있었다. 부산도시공사가 현 엘시티와 팔레드시즈 사이 국방부 소유부지(1동 1058번지) 등 15,100평에 해운대관광 리조트 개발사업을 추진한 곳이다. 이 부지에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군 부산지구 병참 독립부대인 609부대가 1971년까지 주둔하였다. 이 부대 앞 일대는 부대원과 군속을 비롯한 종사자 200여 명과 그 가족을 합해 1,800여 명이 생계를 유지한 마을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 이마트 중동점 자리에는 한국전쟁 당시 군수물자를 운송하는 운수업체인 대동운수가 있었고, LG 주유소 앞 마을 입구에는 대동공업이 있었다고 한다(박선동. 63세. 전 구의회 의장). 특히 609부대 미군과 동거한 접대부들(일명 양공주)이 많았고 계약부부로 살다가 국제결혼을 한 여성이 10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주영택 향토사학자).
609부대가 떠나고 051병기창이 주둔하면서 장산 탄약창을 관리하였다. 탄약창이 1991년에 영천으로 떠나자 부지는 국방부 소유로 방치되어 있었다. 이 부지에 부산도시공사는 해운대 관광특구에 걸맞은 사계절 관광집적시설로서 온천센터에 국한하지 않고 계절에 관계없이 관광객들이 찾을 수 있는 관광시설 개발을 위해 민간사업자를 공모했는데, 청안건설 컨소시엄이 선정되었다.
청안건설 컨소시엄은 117층짜리 초대형 사계절 복합관광건물 건축을 내용으로 하는 개발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부산도시공사는 한국콘도 등을 포함한 수변공간을 확대한 해운리조트를 착공할 계획이었다. 이에 따라 지난 15여 년 동안 방치된 ‘금싸라기 땅’에 해운대 관광리조트사업으로 엘시티가 준공되었고 작년 11월부터 입주하고 있다. 오는 6월까지 260실 규모 6성급 관광호텔, 스카이 전망대, 워터파크, 익사이팅 파크, 메디컬온천, 영화체험박물관, 해양화석도서관, 아트갤러리 등의 시설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섬밭마을 폭포사 절터는 현재 엘시티가 들어섰다.
/ 이광영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