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 사는 새 해
전도서 7;10-12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지혜는 유산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
지혜의 그늘 아래에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 지혜에 관한 지식이 더 유익함은 지혜가 그 지혜 있는 자를 살리기 때문이니라.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부유한 형 카심과 달리 가난한 나무꾼으로, 산중에서 나무를
하다가 우연히 40인의 도적이 보물을 감춘 동굴을 발견하고,
그 동굴에서 보물을 얻어서 형 뺨치는 부자가 된 뒤로
분기탱천한 40인의 도적이 알리바바에게 보복을 하러 오는데,
하녀 마르자나의 기지로 위기를 벗어나는 게 간단한 기본
줄거리이다.
알리바바는 보물을 얻고 나서 이 비밀을 욕심쟁이 형
카심에게도 알려준다.
하지만 카심은 보물을 챙기다가 욕심 때문에 그만 동굴 문을
여는 주문을 까맣게 잊어버렸고,
동굴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바람에 도적들에게 들켜서
그 자리에서 피살당했고, 시체는 난도질당해 토막이 났다.
도적 중 하나가 토막난 카심의 시체를 꿰매준 장님 재봉사로
부터 알리바바의 집의 위치를 듣고 알리바바를 다음 목표로
삼는다는 신호로 분필로 알리바바의 집 문에 표시를 해
놓았는데, 하필 너무 대놓고 X자로 표시해서 티가 나버린 탓에
마침 심부름 간 마르자나가 이걸 보고 수상히 여겨 본인도
분필로 다른 집들에도 X자로 다 표시한 덕에 도적들은
알리바바의 정확한 집의 위치를 알아채지 못했다.
결국 이 작전에 실패한 부하 둘은 잔뜩 화난 두목에게
참수되었고, 이후 다른 방법으로 알리바바가 보물을 훔쳐갔다는
것을 알고 두목 본인은 기름장수로 위장하고 부하들은 항아리에
숨어 있다가 밤중에 일시에 튀어나와 보복하기로 했는데,
마르자나가 이 사실을 눈치 채고, 도적들이 있던 항아리에 끓는
기름을 부어버리는 바람에 부하 도적들 모두 찍소리도 못하고
차례차례 암살당했다. 그리고 혼자 남은 도적 두목은 도망쳤다가
다시 다른 변장을 한 채로 알리바바와 친해져서 그의 집에서
같이 술을 마시며 잔치를 한판 벌이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도적 두목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마르자나가 그 앞에서 칼춤을
추는 척 하다가 가까이 가서 단칼에 목을 베어버린 뒤
알리바바에게 그동안의 자초지종을 알려준다.
알리바바는 감사의 의미로 마르자나를 며느리로 삼았다.
여담으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는 알리바바와 마르자나의
동상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 동상은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에
만든 작품이었는데, 후세인 정권이 실권하고 2000년대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과 이라크 저항 세력과의 교전으로 이라크
전역이 쑥대밭이 된 와중에도 (동상만큼은) 파괴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집트에서는 '도적'이라는 은어로 쓰이고,
리비아 방언에서는 강도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아랍어권과는 한참 떨어진 베트남에서도 도둑이나
도둑질을 뜻하는 은어로 쓰인다.
왜 알리바바가 도적의 대표어가 되었는지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아무래도 도둑들의 보물을 '훔쳤고',
아무리 도둑이라지만 37명을 기름에 튀겨 죽이고 3명을 칼로
찔러서 죽인 연쇄 살인사건의 공모자(?)라 그런 것이 아닐까?
왜 하필 암호가 '참깨'인가에 대해 여러 가지 속설이 많다.
깨가 익어 꼬투리가 탁하고 터지며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착안했다는 설,
아랍 사람들이 참깨를 많이 먹기 때문이라는 설,
이름을 뜻하는 히브리어 'šem'과 관련이 있다거나
참기름을 사용하는 바빌로니아의 마법과 연관된다는 설 따위도
있다.
참깨가 중세 아랍어로 Simsim인데 참깨라는 뜻 이외에 문이라는
뜻도 있다는 주장도 있으나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도둑 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나쁜 이미지이다.
왜 일까? 남의 것을 훔치기도 하지만 정당하지 않은 물건이기에
은신처가 필요하다.
그래서 돈을 숨겨둔다.
숨긴 것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있다.
예) 옛 날 이야기
더 나아가서는 숨긴 것은 전체 경제를 어렵게 한다.
유통되는 화폐가 없어지기 때문에 원활한 경제 흐름을 방해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을 제한한다는 것입니다.
훔친 것도 쌓아둔 것도 말입니다.
예) 십계명의 이유
발견되게 하였다.
어떤 사람에게?
돈을 모아두지 아니하고 아름답게 사용할 사람에게 말입니다.
형 카심에게 일러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오늘 본문은 이야기 한다.
“지혜의 그늘 아래에 있음은 돈의 그늘 아래에 있음과 같으나.”
돈이 중요함을 이야기 한다.
맞다. 그런데 더 큰 것이 있다.
지혜의 그늘 아래 있는 것이 더 크다는 것이다.
돈이 목적이 되면 모아놓고, 도둑질 하고,
자기만의 유익을 취하려고 한다. 심지어 죽이기도 하고
더 많은 계략을 세우기도 한다.
지혜가 지혜 있는 자를 살린다.
돈으로 인하여 사람이 죽었다.
물론 욕심이 앞섰다.
그러나 결국은 돈에 취해 자신의 중요한 기억하여야 할 것을
잊었고 결국 죽음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지혜자를 통해 정의와 사랑을 살린다.
죽음의 표시를 생명의 표시로 바꾼다.
누군가가 죽어야 만 할 때 모든 사람을 죽음의 표를 던진 것
때문에 다 살게 되었다.
하나님의 지혜를 보지 않는가?
사람을 살리는 일은 돈으로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바탕에 사랑이라는 지혜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때는 돈이 없는 지혜로도 가능하다.
이 여인이 그렇지 않은가?
죽음의 표시를 생명의 표시로 바꾸어주었다.
예수님의 모습이 그런 것 아닐까?
십자가는 형틀인데 그 십자가롤 사람을 살리고
예수님은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 죽음으로 생명의 길을 열어주었다.
여전히 십자가가 있는 곳은 사람을 살리는 곳이 되었지요.
내가 죽어야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은 모든 민족의 정설이
되었지요.
돈은 거래를 속임수의 현장으로 몰고 간다.
항아리 속에 숨은 위장 물품들
그러나
꾀는 복잡하나 진실은 단순하다.
문제는 어려우나 답은 간단하다.
지혜는 복잡한 것을 단순화하는 것이고
진리를 통해 살게 하는 것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한다.
돈만 생각하는 복이 아니라 세상을 살리는 지혜가 있는 복을
비는 설날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열려라 참깨
생명을 여는 주문
갇혀 있던 재물을 세상의 필요를 따라 여는 사람에게 필요한
주문
욕심에 가독한 사람에게는 잊혀지는 주문
렘 33;3
부르짖으라.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을 보이리라
지혜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돈은 보이는 곳에 있으면서 우리의 왕이 되려고 하지만
지혜는 숨겨져 있으면서 우리를 섬긴다.
지혜는 기도를 통해 은사로 주어지는 것이다.
내가 공부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 지혜를 얻는 과외?
카네기 연구소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지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지혜는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잠언 3;13-14)
잠언 13;14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