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9. 27
'매주 토요일이면 아버지는 로또 복권을 샀다. 정확히 말하면 2004년 9월 25일부터였다. 그해 나는 맹장 수술을 했고 어머니는 늘어나는 뱃살을 고민하다 러닝머신을 샀다.' 소설가 윤성희의 단편 '구멍'엔 매주 로또 복권을 사면서 인생 대박을 꿈꾸는 아버지가 나온다.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에게 연정을 품고, 그날 앉은 좌석 번호를 행운의 숫자로 믿는 아버지다. 매번 그 숫자를 중심으로 고르지만 번번이 허탕 친다. 삶이 고단한 가장(家長)의 꿈은 주인공 딸이 보기에도 위태롭다.
▶ 2002년 첫선을 보인 로또는 전체 복권 판매액의 90%를 차지하는 대표 상품이다. 작년에만 3조8000억원쯤 팔렸다. 역대 1등 최고 당첨금은 407억원이고, 평균 20억을 받아 갔다. 하지만 숫자 1부터 45 중 6개를 맞히는 1등 당첨 확률은 814만5060분의 1이다. '벼락 맞을 확률'이나 같다지만 혹시나 해서 손에 넣어본다. 성인 열에 여섯은 복권을 산 적 있다고 했다.
▶ 로또를 포함한 전체 복권 판매액은 작년 처음 4조원을 넘더니 올 상반기에만 2조1705억원어치가 팔렸다. 기록 경신을 일찌감치 예고해 놓았다. 복권 판매는 2011년 3조원을 돌파한 뒤로 해마다 치솟고 있다. 더욱이 최근 4년 연속 줄어 9.9%나 떨어진 세계적 추세와는 대조적이다. 정부는 경기가 괜찮을 때도 복권 판매가 늘었다고 해명하지만, 복권은 대표적 불황 상품으로 알려져 있다.
▶ 복권은 정부 독점 사업이다. 기재부 밑에 복권위원회가 발행·관리, 수익금 배분을 총괄한다. 실제는 복권위가 5년마다 사업자를 선정, 위탁 관리한다. 복권 매출액 가운데 절반은 당첨금으로 돌려주고, 40% 넘게 복권기금에 넣어둔다. 이 돈을 저소득층 주거 안정과 소외 계층 복지, 문화 예술 사업에 쓴다고 한다. 하지만 구체적 내역을 보면 정부 예산처럼 쓰는 곳이 많다. 올해도 과학기술 진흥(807억), 국민 체육 진흥(682억), 중소기업 창업 및 진흥(488억), 문화재 보호(842억)에 수백억씩 출연한다.
▶ 복권을 '고통 없는 세금'이라고 말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정부는 부족한 재정을 보완해 공익사업에도 쓰고 국민에게 건전한 오락의 즐거움도 준다고 광고한다. 하지만 일자리는 위태롭고 집값은 폭등할 때 기댈 곳 없는 서민이 자꾸만 로또 한 방을 기웃거리게 되는 상황을 정부는 대수롭잖게 보면 안 된다. 복권으로 '인생 역전'을 꿈꾸는 사람이 늘어나는 사회는 미래가 어둡다.
김기철 논설위원 kichul@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