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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9. 18.
애플 신제품 이벤트가 한국 시각으로 지난 9월15일 새벽에 있었습니다. 아이폰13, 아이폰13 프로, 아이패드 미니(6세대), 애플 워치(시리즈7), 기본형 아이패드(9세대) 등 꽤 많은 제품이 한꺼번에 발표됐죠.
외형 디자인이 거의 바뀌지 않아서인지 ‘혁신이 없었다’는 평가도 꽤 있는 것 같지만, 외관이 안바뀐 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혁신이 카메라 부분에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번 주제는 ‘아이폰13이 바꿀지도 모를 시네마토그래피(영화 찍기)의 미래’입니다. 아이폰13의 신기능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시네마틱 모드’였거든요. 이것을 포함해 아이폰 13의 카메라 기능 향상이 사진·영상 산업 전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 애플은 어떤 이유로 카메라 성능 향상에 집착하는 지, 또 이것이 시장과 경쟁자들에는 어떤 영향을 줄 것인 지 등을 살펴 보겠습니다.
▲ 애플이 아이폰 13에서 선보인 '시네마틱 모드'. 맨 앞의 등장인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 애플 동영상 캡처
▲ 이 인물이 화면 안쪽의 인물에게 고개를 돌리니 초점이 그 인물에게로 전환된다. 물리적으로 초점을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적으로 자동 전환되는 것이다. / 애플 동영상 캡처
◇ 애플, 지난 15일 아이폰 13 출시... 영화 같은 영상 누구나 쉽게 찍을 수 있는 ‘시네마틱 모드’ 제공
시네마틱 모드는 영화 화면처럼 다양한 ‘심도’를 보여주는 영상을 누구나 쉽게 찍을 수 있게 해주는 기능입니다. 아이폰13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심도란, 화면에서 초점이 맞는 깊이의 정도를 말하는데요. 심도가 깊으면 화면 전체, 즉 카메라에서 가까운 쪽의 대상부터 먼 배경까지 초점이 다 맞게 되고요. 심도가 얕으면 카메라로부터 떨어진 거리에 따라 특정거리에 있는 피사체만 초점이 맞게 됩니다. 심도가 아주 얕게 되면, 사람 얼굴의 눈동자에 초점이 정확히 맞으면 코끝의 초점이 나갈 정도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이를 통해 사진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죠. 심도가 깊게 찍는다면 화면 전체 정보를 다 담고 싶은 것일 테고요. 심도를 얕게 한 다음에 하나의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고 나머지를 흐리게 만든다면, 초점이 맞은 그 피사체만 강조하고 싶다는 것이겠죠. 또 영상의 경우라면, 심도를 얕게 한 상태에서 초점을 한 피사체에서 다른 피사체로 전환시키는 것도 가능하겠죠. 하나의 쇼트(shot·촬영의 기본 단위로 한 번에 촬영한 장면) 안에서 영상 제작자가 중요하게 전달하려는 대상이 바뀌는 것을 시청자에게 부연 설명 없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문적이고 고품질이라고 느끼는 영상 중엔 심도를 적절히 활용한 것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영상을 자연스럽게 찍으려면 값비싼 전문가용 디지털카메라와 조리개값이 아주 낮고(렌즈가 아주 밝고) 해상력이 좋은 렌즈(이런 렌즈는 아주 비쌉니다)를 다양하게 갖춰야 할 겁니다. 이렇게 심도를 잘 활용한 영상은 스마트폰 카메라가 아직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으로 여겨져 왔지요.
하지만 애플이 아이폰13을 내놓으면서 “아니야, 우리도 할 수 있고, 어떤 부분에선 더 잘 할 수 있어”라고 선언한 것이죠. 아이폰13에 탑재된 시네마틱 모드는 인공지능(AI)이 인물의 얼굴 방향을 잡아 자동으로 초점을 맞추거나 촬영이 끝난 뒤에도 후반 작업을 통해 영상의 초점을 다른 피사체로 옮길 수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폰에 장착된 복수의 카메라 사이의 격차를 이용해 심도 지도를 만들어 냅니다. 영상과 그 순간의 심도 지도가 함께 저장되기 때문에, 실시간 혹은 촬영이 끝난 뒤에도 초점 전환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조니 만자리(Johnnie Manzari) 휴먼인터페이스 디자이너는 이날 행사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영화 제작자들은 매력적인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초점 전환 기능’을 오랫동안 사용해 왔다. 우리는 이것을 아이폰으로 가져와 단순하고 직관적인 형태로 만들었다. 전문 영화제작자가 아니더라도 영화 같은 순간을 담을 수 있게 했다.
녹화를 시작하기만 하면 시네마틱 모드가 피사체 초점을 유지한다. 피사체가 움직여도 문제 없다. 초점은 실시간으로 한 피사체에서 다른 피사체로 자동 전환된다. 시네마틱 모드는 피사체가 프레임에 들어올 것을 예측하고 피사체가 들어오면 알아서 그 쪽으로 초점을 이동한다. 그리고 피사체가 카메라로부터 먼 쪽을 바라보면 자체적으로 초점을 바꿨다가 돌아온다.
이런 자동 초점 변경을 구현하기 위해 우리는 영화 촬영술은 물론 촬영 감독들이 관객의 시선을 유도하기 위해 구사하는 창의적 기법까지 광범위하게 연구했다. 우리는 이런 연구를 ‘컴퓨테이셔널 알고리즘’에 접목해 여러분이 손쉽게 영화 같은 영상을 만들 수 있게 했다. 이것이 시네마틱 모드이다.”
▲ 아이폰 13 프로. A15 바이오닉 칩의 강력한 연산능력, 2cm 접사 기능을 포함한 초광각 카메라, 빛이 적은 곳에서의 촬영 품질을 높인 광각 카메라, 기존 광학 2배줌을 3배로 높이고 시네마틱 모드와의 궁합을 극대화한 망원 카메라, 전문가를 위한 영상 포맷과 편집 도구 등이 합쳐졌다. / 애플 동영상 캡처
◇ 아이폰 13, 렌즈교환식 전문가용 카메라에서 가능하던 ‘심도 조절’ ‘초점 전환’을 소프트웨어로 수행
쉽게 말하면, 실제 상업영화를 찍는 것에 근접한 수준의 퀄리티를 아이폰13으로도 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전문 장비나 촬영 지식이 없어도 말입니다.
예시 화면을 보니 무척 신기했습니다. 맨 앞 등장인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이 인물이 화면 안쪽 인물에게 고개를 돌리니 초점이 그 인물에게로 이동합니다. 앞쪽 인물이 다시 고개를 카메라 쪽으로 돌리면 초점이 다시 앞쪽 인물로 돌아옵니다. 물론 수동으로도 조절할 수 있는데요. 물리적으로 초점을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적으로 이를 콘트롤하는 것입니다.
또하나 중요한 점은 보케(배경 화면 흐리기) 수준과 초점 적용 위치 등의 심도 효과를 ‘촬영을 마친 뒤에도’ 바꿀 수 있다는 겁니다. 애플은 이것이 가능한 스마트폰은 아이폰13과 13 프로 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애플은 영화업계 최고 전문가들의 입을 빌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애플은 2008년 ‘허트 로커’ 감독 겸 공동제작자로 아카데미 감독상(여성 최초)·작품상을 받은 캐서린 비글로 감독과 2012년 비글로 감독의 ‘제로 다크 서티’ 촬영을 맡았던 그레이그 프레이저 촬영감독에게 ‘아이폰13 프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달라’고 요청했는데요. 그 결과물 일부와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이날 행사에서 공개됐습니다.
▲ 애플은 2008년 ‘허트 로커’ 감독 겸 공동제작자로 아카데미 감독상(여성 최초)·작품상을 받은 캐서린 비글로 감독과 2012년 비글로 감독의 ‘제로 다크 서티’ 촬영을 맡았던 그레이그 프레이저 촬영감독에게 ‘아이폰13 프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비글로 감독이 이날 행사에 나와 그 결과물 일부를 보여주면서 촬영 당시의 느낌을 얘기하고 있다. / 애플 동영상 캡처
◇ '허트 로커’ ‘제로 다크 서티’의 비글로 감독 등 아이폰 13 프로로 찍은 작품 공개 “영상 업계의 작업방식 바뀔 것”
비글로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촬영의 과정이 완전히 통합됐다. 아이폰은 부수적인 장비가 필요 없다. 접근성이 좋아 겉치레가 다 없어지는 것 같았다. 세트장과 촬영 과정의 불안요소가 훨씬 줄어 들었다.”
기술 전문가인 프레이저 촬영감독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카메라(아이폰13 프로)로 할 수 있는 것에 제약은 없었다. 보통은 모두가 카메라 렌즈를 애지중지하게 마련이다. 너무 비싸고 망가지기 쉬우니까. 지금까지 아이폰으로 할 수 없었던 것 중 하나가 ‘렌즈의 심도를 활용’하는 것이었는데, 시네마틱 모드에서는 신기하게도 ‘사후에 초점을 선택’할 수가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게 아이폰이 전문 영화 카메라가 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다.
실제로 아이폰에 있는 도구들로 이야기를 쓰고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됐다. 시네마틱 모드의 등장으로 얼마 안가서 영화제작자들이 색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찍는걸 보게 될 것이다. 이 카메라의 크기와 움직임의 자유를 생각해 보라. 긍정적인 의미로, 영화계의 언어를 바꿔놓을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얘기가 나옵니다. 비글로 감독은 촬영 과정이 통합되면서 세트·촬영장 통제가 더 쉬워졌다고 했습니다. 이는 실제 촬영 현장의 작업 효율을 높이는데 매우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죠.
프레이저 촬영감독은 더 중요한 얘기를 했는데요. 그의 말을 풀어 보면 ‘렌즈 걱정 안해 좋았고, 촬영시 초점이 안맞거나 잘못 맞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 좋았고, 덩치 크고 무거운 카메라 대신 작고 가벼운 기기로 찍어 좋았다’는 겁니다. 영화 촬영도 디지털카메라로 하긴 하지만 스마트폰과는 비교가 안될만큼 크고 무겁고 비싼 장비이죠. 특히 전문 렌즈는 아주 비싸고 때로는 희소하기 때문에 대여하는데도 돈이 많이 들고 망가뜨리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게다가 초점이 나간 것을 뒤늦게 알았거나 다 찍고 현장에서 철수했는데 화면에서 강조할 부분을 바꿔야 할 일이 생길 경우 큰 낭패죠. 그런데 시네마틱 모드를 통해 ‘사후에도’ 초점을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촬영 전문가에게도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이 결국 영화계 언어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고 말한 것이죠.
▲ 프레이저 촬영감독 팀이 아이폰 13 프로로 실제 촬영하는 현장. / 애플 동영상 캡처
▲ 해당 촬영 현장에서 아이폰 13 프로로 찍은 결과물. / 애플 동영상 캡처
◇ 애플 “크리에이터들의 고품질 영상 제작 수요 장악”... 이들에게 ‘촬영의 자유’ 제공해 아이폰 판매 늘리려는 전략
애플이 우선 원하는 것은 아이폰 13을 더 많이 파는 것이겠죠. 스마트폰이 점점 고가격·고성능화하면서 소비자들의 보유 주기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아주 강력한 카메라 기능을 통해 소비자들이 꼭 사고 싶게 만들려는 전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SNS에 사진·영상 콘텐츠를 올리는 사람들, 특히 젊은 층은 전문가급 장비를 갖추거나 빌릴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겠죠. 하지만 더 좋은 영상을 찍고 싶은 열망은 절대 부족하지 않을 겁니다. 이런 이들에게 아이폰13이 도구의 제약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겠다는 겁니다. 유튜브가 크리에이터들에게 전세계 시청자와 접할 수 있는 ‘무한 채널’을 열어줬듯, 아이폰13이 전세계 모든 크리에이터들에게 전문가급 지식이나 자금이 없어도 상업 영화에 근접한 퀄리티의 영상을 찍을 수 있는 ‘무한 도구’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죠.
또하나의 전략은 아이폰을 주요 저작 도구로 사용하는 사진·영상 크리에이터들을 계속 늘려나가는 것입니다. 자연 발생적으로 혹은 애플의 인위적인 전략에 따라 인플루언서들이 아이폰13을 통해 사진·영화 작품을 찍는 사례가 늘어나면, 이것이 일반 소비자들의 아이폰 추가 구매로 이어지는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겠죠.
▲ ‘제로 다크 서티’의 촬영을 맡았던 그레이그 프레이저 촬영감독이 아이폰 13 프로로 영화 촬영을 하고 있다. / 애플 동영상 캡처
◇ ‘디카 업계의 마지막 희망’인 미러리스 시장의 소멸 앞당겨질 수도
이번 행사에서 애플이 밝힌 내용에 따르면, 이미 아이폰 13, 특히 13 프로의 경우는 카메라의 하드·소프트웨어 스펙 향상 뿐 아니라, 영화나 방송 업계에서 쓰기에 손색이 없는 영상 포맷과 각종 편집 도구 등을 풀라인업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애플에 따르면, 영화·방송 업계에서 직접 영상을 제작하고 이것을 방송국이나 영화사로 전송한 뒤 편집 등 후반작업까지 업계 기준을 충족하는 고품질 공정으로 마칠 수 있도록 해주는 스마트폰은 아직 아이폰 프로와 프로 맥스 뿐입니다.
아직 한계도 분명히 있습니다. 시연 영상으로 판단해 볼 때, ‘시네마틱 모드’ 즉 화면 내 자동 초점 전환 등이 영화에서 보는 정도의 자연스러움을 주진 못했습니다. 초점이 이동할 때 살짝 어색한 느낌이 듭니다. 상업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더 많은 발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하나의 한계는 시네마틱 모드가 풀HD(1080P, 200만 화소) 초당 30프레임까지만 촬영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4K(800만 화소) 촬영은 불가능하다는 것인데, 이는 특히 상업용 촬영에서 시네마틱 모드를 사용하려고 할 때 큰 제약이 될 것입니다. 풀HD로 밖에 못찍는다는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시네마틱 모드를 돌릴 때 디바이스 성능의 한계에 근접할만큼의 풀 컴퓨팅파워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4K를 감당할 능력이 안된다는 얘기일 수 있지요. 좋게 말하면 그나마 아이폰13이니까 풀HD라도 구현할 수 있는 고급 기능인 것이고요. 나쁘게 말하면 아직 미완성의 기술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촬영기능을 담은 아이폰13이 영상 업계의 전문 촬영 장비를 대체한다는 것은 많이 이른 얘기일지 모릅니다. 시간이 흐르더라도 일부 영역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전문 장비와 인력이 꼭 필요하겠죠. 다만 시네마틱 모드 그리고 이런 기능이 앞으로 계속 발전한다고 봤을 때 일정 부분은 대체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시네마틱 모드의 자동 초점전환이 전문 카메라와 카메라맨을 쓰는 것에 근접할만큼의 자연스러움을 구현하고, 또 현재 1080p가 한계인 제약을 극복해 4K 나아가 8K(3200만 화소) 촬영까지 가능해진다면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이 아이폰 13에서 모두 실현되긴 어려울 수 있지만, 스마트폰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향상 속도를 봤을 때 차기·차차기 모델로 가면 결국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렌즈교환식 전문가급 디카의 ‘좋은 렌즈를 다양하게 장착해 쓸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너무 비싸고 무겁고 번거로운 것도 사실이죠. 스마트폰의 저조도 촬영 퀄리티 향상, 접사부터 망원까지 렌즈의 다양화, 심도의 이해와 활용 등을 생각할 때, 일부 전문가를 제외한다면 ‘디지털카메라 업계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미러리스를 새로 구입해야 할 이유가 더 줄어들게 될 것 같습니다. 미러리스의 올해 1~7월 누적 세계 판매량은 이미 180만대에 불과합니다. 미러리스를 포함한 세계 디카 시장은 2010년 1억2146만대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떨어져 2019년 1522만대, 작년엔 정점 대비 7% 수준인 888만대로 급락했습니다. 올해 1~7월 누적은 494만대로 작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더는 못버틸 것 같습니다.
▲ 렌즈교환식 미러리스 카메라의 올해 1~7월 누적 세계 판매량은 180만대에 불과하다. 세계 디카 시장은 2010년 1억2146만대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떨어져 2019년 1522만대, 작년에는 정점 대비 7% 수준인 888만대로 급락했다. 올해 1~7월 누적은 494만대로 작년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애플 아이폰 등 스마트폰의 카메라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있어 시장 소멸이 눈 앞이라는 관측도 있다. / 카메라영상기기공업회(CIPA)
◇ 아이폰 카메라 성능 향상의 비밀은 반도체,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팀의 통합 개발에 따른 ‘전체 최적화’ 전략
아이폰의 카메라 기능이 전문가급 카메라를 일부 영역에서 이미 압도하게 된 것은 반도체·소프트웨어·하드웨어의 뛰어난 통합 능력 때문이겠죠.
호프 질스(Hope Giles) 엔지니어링 프로그램 매니지먼트 & 하드웨어 테크놀러지 담당 부사장의 말에 핵심이 다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칩은 아이폰의 엔진이다(Our silicon is the engine of iPhone). (아이폰13에 탑재한 신형 칩) A15 바이오닉으로 시스템 전체를 혁신했다. 5나노 기술로 만들었고 150억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했다.
6코어 CPU(2개의 고성능, 4개의 저전력) 덕분에 더 파워풀하고 부드럽게 작업할 수 있게 됐다. 경쟁업계 선두 제품보다 50% 빠르다. (아이폰13과 13미니의) 4코어 GPU는 경쟁업계 선두 제품보다 30% 빠르다.(13 프로와 13 프로 맥스의 5코어 GPU는 50% 더 빠르다고 주장.) 16코어 뉴럴엔진은 머신러닝 작업에 최적화돼 있다. 초당 15조8000억 회 계산한다.
우리는 뉴럴엔진을 카메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팀과 함께 설계했다. 이 독특한 비전과 융합을 통해 업계를 선도하는 영상·이미지 처리 능력이 실현된다. 그리고 모든 과정이 (바깥의 서버를 통하지 않고) 기기 안에서 이뤄진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애플이 사진·동영상 처리의 품질을 좌우하는 뉴럴엔진을 카메라 하드웨어, 카메라 소프트웨어팀과 ‘초기 단계부터 함께’ 설계했다는 것입니다. 뉴럴엔진을 먼저 설계한 것이 아니고, 어떤 카메라 하드웨어 기능, 어떤 카메라 소프트웨어 기능이 아이폰13에 들어갈지 미리 계획하고 이에 맞춰서 모든 요소가 어우러졌을 때 최적의 성능을 낼 수 있도록 뉴럴엔진을 만들어나갔다는 얘기입니다. 바로 이런 계획 능력, 통합 능력이, 아이폰의 사진·동영상 품질이 뛰어난 이유, 또 1년이라는 짧은 주기로 신제품을 계속 내는데도 큰 폭의 개선을 이룰 수 있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 아이폰 13 프로로 빛이 매우 적은 환경에서 찍은 사진. 애플은 아이폰 13 프로가 특히 조도가 낮은 환경에서 명암부와 디테일을 더 잘 포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애플 동영상 캡처
◇ 아이폰13의 외형 디자인 거의 손 안대고, 사진·동영상과 배터리 성능 향상에 올인
애플이 아이폰13에서 보여준 전략은 명확합니다. 사진·동영상 촬영 품질에서 경쟁자와 격차를 벌리겠다는 겁니다. 여기에 집중했을 뿐, 외관 디자인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아이폰13은 동영상 뿐 아니라 사진에서도 특히 밤 상황 즉 조도가 낮은 상황에서 명암부와 디테일을 더 많이 살린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미지 센서의 크기를 키워서 빛을 더 많이 받아들이고 광학 렌즈나 소프트웨어 성능을 개선한 덕분입니다.
카메라 기능의 향상 이외에는 모델에 따라 이전 세대보다 1시간 반에서 2시간 반 배터리 지속 시간이 길어진 것, 아이폰의 기본 기억용량을 이전의 64기가에서 128기가로 늘린 것(아이패드 9세대는 이전의 32기가에서 64기가로 증설) 등이 주요 변경 사항이었고요.
이런 전략은 소비자 성향 분석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블링크AI가 아이폰 유저에게 ‘어떤 신기능이 교체 동기가 되는가’(복수 응답 가능)를 물었더니 ‘더 긴 배터리 지속시간(72%)’이라는 답이 가장 많았습니다. 다음이 ‘더 많은 기억 용량(49%)’, 3번째가 ‘사진·동영상 기능의 향상(43%)’이었습니다. 애플이 작년 아이폰 12 시리즈에서 선보인 ‘5G 대응’은 32%에 머물렀습니다.
▲ 구글이 다음달 출시하는 스마트폰 '픽셀 6'와 '6 프로'. 기존에 썼던 퀄컴 칩 대신, 최초로 구글 자체 개발 칩 '텐서'를 탑재해 카메라 기능을 대폭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 구글
◇ 프리미엄 스마트폰 승부처는 카메라... 다음달 출시하는 구글 ‘픽셀6’와 내년 초 갤럭시 S22의 추격도 관전 포인트
아이폰13에서 강조된 영화 수준의 촬영 기능이 스마트폰은 물론 영상 업계에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애플의 강력한 컴퓨팅 파워와 머신 러닝 능력,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통합 경쟁력을 통해 계속 개선돼 나간다면 말입니다. 프레이저 촬영감독 말대로 아이폰13이 영화계 언어를 바꾸게 될지도 모릅니다.
또하나 기대되는 것은, 다음달 나올 것으로 보이는 구글의 최신 스마트폰 ‘픽셀6’입니다. AI를 통한 사진 품질 개선은 구글이 먼저 시작한 것이기도 한데요. 다만 구글 스마트폰은 지금까지 외부회사의 범용 칩을 탑재했기 때문에, 애플과 같은 하드·소프트웨어 통합 경쟁력을 보여주기에 한계가 있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픽셀6는 구글이 자체 개발한 AP인 ‘텐서’를 탑재하는 최초의 구글폰입니다. 따라서 다음달의 픽셀6 발표는 구글이 스마트폰에서 애플에 맞설 실력이 있는지를 보여줄 첫 무대가 될 겁니다. 어쩌면 애플의 시네마틱 모드나 저조도 촬영 능력에 필적할, 혹은 이를 능가할 만한 카메라 기능을 선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애플도 구글도 핵심은 카메라입니다. 카메라에서 승리하면 소비자 특히 젊은층의 입소문·지지를 통해 시장을 지배하게 될 것이고요. 여기에서 밀리는 스마트폰 업체의 미래는 점점 어두워질 수도 있습니다. 삼성전자의 경우 최신 프리미엄폰인 갤럭시 S21 시리즈가 전작에 비해 판매가 저조했는데요. 다른 여러 요인도 있겠지만, AP와 디바이스 특히 카메라 성능 향상 간의 최적화 문제, 발열에 따른 성능 제한 문제 등으로 프리미엄폰이 반드시 가져야 할 신뢰도에 일부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삼성은 갤럭시 Z폴드3와 Z플립3 등, 애플을 포함해 다른 경쟁사들이 아직 따라오지 못하는 차별화된 제품력으로 맞선다는 전략이지만, 폴더블폰이 아직 볼륨으로 전면전을 벌일만한 제품은 아니라는 것이 과제입니다.
결국 차기작인 갤럭시 S22에서 애플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 즉, 칩·카메라·소프트웨어 통합의 최적화 경쟁력, 그리고 스마트폰의 기본기 면에서도 눈에 띌 만한 개선을 보여줘야 할 텐데요.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갤럭시 시리즈의 명성이 계속 이어질 테고요. 잘 안될 경우, 삼성 프리미엄폰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밀릴 우려도 있어 보입니다. 아이폰 13의 카메라 성능을 보니, 여기에 대응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걱정도 드는데요. 스마트폰 판매량 세계 1위 삼성전자의 프리미엄폰이 앞으로도 오래오래 명성을 떨쳐주기를 기원해 봅니다.
최원석 국제경제전문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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